[설산 저편 티베트 불교]
구루 린뽀체를 따라서 삼예사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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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 2024 년 11 월 [통권 제139호] / / 작성일24-11-05 11:24 / 조회315회 / 댓글0건본문
공땅라모를 넘어 설역고원雪域高原 강짼으로
현재 네팔과 티베트 땅을 가르는 고개 중에 ‘공땅라모(Gongtang Lamo, 孔唐拉姆)’라는 아주 높은 고개가 있다. ‘공땅’은 지명이니 ‘공땅의 선녀고개’로 풀이된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 구루 린뽀체가 여러 차례 넘나들었다는 유서 깊은 고개이다. 그럴 뿐만 아니라 연꽃도사 보다 2세기나 앞서서 네팔의 브리꾸띠Bhrikuti 공주가 정략결혼으로 라싸로 시집가기 위해 넘어갔던 ‘니번고도尼蕃古道’ 상의 고개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유서 깊은 고개가 중국의 티베트 점령 후 완전 차단되어 망각의 강너머로 들어가 버린 지 반세기가 넘었다. 그렇기에 필자를 비롯한 티베트 마니아들에게는 불가능한 버킷리스트 1번이었다. 뜻밖에도 2015년 4월 대지진의 여파로 그동안 두 나라 간의 유일한 통로였던 ‘잠무Jammu-꼬다리Kodari’(주1)국경이 막히게 되어 두 나라는 궁여지책으로 이 고갯길을 대신 개방하게 되었다.
영광의 삼예 추라캉
이에 필자도 설레는 가슴을 안고 네팔에서 바로 공땅라모 고개를 넘어, 그리운 티베트 본토에 입성하여 마침내 대사원을 내려다볼 수 있는 해뽀리Hapori산 언덕에 다시 설 수 있었다.(주2)
삼예Samye의 정식 명칭은 ‘삼예 미구루 룬둡 추라캉’인데, ‘영광의 불가사의 대가람’이란 뜻이다. 티베트에서는 일반적인 법당을 ‘라캉’이라 부르는데, 삼예는 특별히 ‘추라캉Tsula Khang’이라 부르며 차별화할 만큼 존재감이 뚜렷한 가람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가람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올라갔다. 멀리는 설역고원의 젖줄인 드넓은 얄룽짱뽀강이 굽이져 누워 있고 사방으로 크고 작은 산들이 평탄한 분지를 에워싸고 있는 가운데 유서 깊은 추라캉이 솟아 있었다.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그것은 입체적 만다라였고 인공적 수미산須彌山이었다.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하는 ‘대일여래大日如來 만다라’ 그 자체였다.
수미산은 우주의 중심축으로 인식되고 있는 산으로 7겹 황금산과 7겹 바다로 에워싸여 있으며 그 밖으로 잠부디빠Jambudipa라고 부르는, 우리가 사는 이 지구별이 자리 잡고 있는 구도로 되어 있다. 한역하면 염부제주閻浮提州 또는 남섬부주南贍部洲라고 부르는데, 그런 우주론을 상징하듯이 동그란 가람의 경내에는 수미산을 상징하는 3층의 위체라캉Utse Lhakhang[大殿]을 배치하였고, 그를 중심으로 동서로는 일광전과 월광전이, 4방으로는 4천왕과 4대탑인 청, 홍, 백, 흑색의 초르텐을 조성해 놓았다.
삼예 창건에 관한 기록인 「바세르-바의 유언遺言(Testament of Ba)」(주3)에 의하면 티송데짼 왕의 원력 아래 토끼의 해(763년)에 시작하여 양의 해(775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창건 당시는 크고 작은 108좌의 탑이 세워져 있었다니 당시의 장엄한 모습을 상상해 보면 저절로 환희심이 우러나온다. 현재 사원 안에는 석비石碑와 동종銅鐘이 보존되어 있어서 이 추라캉의 유구한 역사를 증언해 주고 있다.
“이 종을 만들어 시방세계 삼보三寶에게 공양을 드린다. (중략) 티송데쩬 쩬뽀 모자와 부부 그리고 60여 명 시주자들은 이 종의 법음法音을 듣고 깨달음을 얻기를 기원한다.”
드디어 12년간의 공사 끝에 이 웅장한 추라캉이 준공되어 불상의 개안법회開眼法會가 벌어졌는데, 이 자리에서 티송데쩬Trisong Detsen(재위 755〜797, 서거 804) 왕은 이전에 시행하던 배불排佛 정책인 팀부충을 파기하고 대신 불교를 숭배하는 조칙詔勅을 내려 조정 대신들에게 서명하게 하였고, 그것을 돌에 새겨 영구히 보존토록 하였다. 바로 유명한 〈흥불맹서석비興佛盟誓石碑〉로 1천 2백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위체 법당 왼쪽에 서서 그날의 정경을 전해 주고 있다.
삼예 창건의 주역 구루 린뽀체
우리의 연꽃도사 즉 우디야나의 비댜다라Vidyadhara가 설역고원으로 올라와 처음 티송데쩬을 대면하는 광경은 거창하게 포장되어 민간에 회자되고 있다. 시절인연이 무르익은 것을 깨달은 구루 린뽀체는 왕의 초청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도중에 네팔에서 악마들의 조복을 받고 히말라야를 넘어 마침내 라싸 근교까지 마중 나온 티송데쩬과 대면하였다. 이때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는데, 그는 왕에게 절을 하지 않고 다만 게송偈頌 하나를 읊었다.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 속에서 복덕과 지혜를 쌓은, 나는 연꽃 속에서 태어난 붓다라네. 무한히 심오한 진리를 터득하고 삼장을 배워 통달한, 나는 연꽃 속에서 태어난 성스러운 ‘다르마Darma’라네.”
이런 무례한 모습에 신하들이 흥분하여 칼을 빼 들자 빠드마는 손가락으로 그들을 가리켰다. 그러자 손끝에서 불꽃이 일어 왕과 신하들의 옷을 태웠고, 천둥과 지진이 뒤따랐다. 이에 왕과 대신들과 사람들은 ‘연꽃도사’ 앞에 엎드려 경배를 드렸다고 한다.
또한 삼예의 건설을 놓고 그와 토지신들과 벌인 대결도 역시 한편의 SF같은 스토리이다. 삼예의 공사는 토지신의 훼방으로 여러 차례 중단되곤 했는데, 사실 이 귀신이라는 것은 전통 신앙인 뵌뽀교와 손잡아 왔던 극우파 세력이었다. 그들은 ‘토지신의 노여움’을 내세워, 낮에 쌓아 올린 공정을 밤에 몰래 허무는 식의 조직적인 방해를 하였다. 이에 국왕조차도 어찌할 수 없었기에 신통력이 막강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인물을 수소문하여 초청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선정된 인물이 바로 연꽃도사였다. 그는 공사장에 도착하자마자 무서운 형상의 가면춤Charm을 며칠 동안 밤낮으로 추게 하였는데, 그때 춤에서 정화의 기운이 토착귀신을 길들여서 공사를 회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진 7-1. 삼예사원의 청색 초르텐(좌). 사진 7-2. 홍색 초르텐(우).
사진 7-3. 백색 초르텐(좌). 사진 7-4. 남색 초르텐(우).
이런 요란한 딴트라 불교의식이 어떻게 설역에서 삼예 창건의 또 다른 주역인, 샨따락시따Śāntarakṣita(725〜788)로 대변되는 경전에 기초한 언어적인 가르침보다 우위에 서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실례라 하겠다.
삼예쟁론
삼예 추라캉이 준공되고 794년에는 티베트 불교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건 중의 하나가 이곳을 무대로 벌어지게 된다. 이른바 삼예쟁론이 그것이다.
티베트에 인도불교가 뿌리를 내릴 당시, 이미 오래전에 당唐나라로부터 문성, 금성공주를 따라 중국불교도 전래되어 있었고, 당시 티베트고원을 횡단하여 인도를 드나들었던 현조玄照 법사(주4)를 비롯한 몇몇 중국 승려들이 왕래를 하면서 왕후를 비롯한 왕실에 신자를 두고 있었다.
그러니 먼저 자리를 잡은 선종계 중국불교 신자들의 눈에 비친 금강승불교는 해괴한 종교로 보였고, 반대로 인도불교의 눈에는 돈오頓悟를 강조하는 선불교의 수행방법이 역시 이단적인 것이었다. 이에 서로 반대의론이 거세게 일어나자 티송데쩬은 중국계와 인도계 불교가 논쟁을 벌여 우열을 가리도록 하는 조칙을 내렸다.
「바세르」에 의하면 이에 인도불교 측에서는 산따락시따Śāntarakṣita의 제자이며 중관계中觀界 불교의 학자인 까마라실라Kamalasila가 출전하고 중국불교 측에서는 마하연摩訶衍 선사가 대표선수가 되어 어전御殿에서 며칠 동안 격렬한 대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결과는 인도불교의 승리였다고 한다. 이에 결과에 승복하고 마하연은 인도의 전통대로 상대방의 머리에 꽃다발을 얹어 주고는 그해 다시 돈황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각주>
(주1) 네팔의 라수와 가디Rasuwa Ghadhi 마을은 카트만두에서 110km 떨어져 있고, 끼롱현 마을은 티베트의 제2의 도시 시가체에서 540km 떨어져 있다.
(주2) 졸저, 『티베트의 역사산책』(정신세계사, 2003)에 필자의 삼예사원 순례기가 수록되어 있다.
(주3) 대영도서관에 소장된 「바세르-바의 유언」은 6줄에 불과한 필사체 기록으로 역사적 인물로서의 구루 린뽀체에 대한 초기의 연대기로, 티송데쩬(재위 755〜797, 서거 804)의 통치하에 삼예의 설립에 대한 사실이 기록된 소중한 사료이다.
(주4) 당나라 사신 왕현책王玄策이 중천축을 4번씩이나 들락거렸던 고개인데, 당시 이 사절단에는 서역 개척을 최우선으로 하던 당나라의 정책으로 대흥선사大興善寺의 현조법사玄照法師를 주축으로 하는 승려들도 한 무리를 이루었는데, 그들 중에는 혜륜慧輪을 비롯한 6명의 해동海東의 순례승이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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