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사냥의 명수 이랑진군 > 월간고경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월간 고경홈 > 최신호 기사

월간고경

[불교로 읽는 서유기 ]
마음 사냥의 명수 이랑진군


페이지 정보

강경구  /  2024 년 11 월 [통권 제139호]  /     /  작성일24-11-04 18:55  /   조회121회  /   댓글0건

본문

둥글고 밝은 이것, 예로부터 항상 존재해 온 이것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네.

밝게 빛나는 한 알의 마니주여!

칼과 창과 어떤 무기로도 상할 수 없다네.

착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어

모든 선과 악이 이것에 의해 이루어지니

선하면 부처가 되고 신선이 되며

악하면 가죽 쓰고 뿔을 단 축생이 된다네.

 

『서유기』의 마음 노래다. 마음은 특정한 모양으로 규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여러 모양을 갖는가? 물론이다. 마음은 손오공의 변신술처럼 참새도 되고, 가마우지도 되고, 물고기도 되고, 물뱀도 되고, 토지신의 사당도 되고, 자신을 좇는 이랑진군 그 자체도 된다. 불교의 공부는 이 변화무쌍한 마음의 정체를 밝혀서 드러내는 일을 본질로 삼는다.

 

사진 1. 손오공을 좇는 이랑신과 그의 군대.

 

공부가 제대로 되면 모양에 휘둘리지 않는 깊은 통찰이 일어나게 된다. 이랑진군이 그랬다. 그는 모양에 휘둘리지 않고 존재를 구성하는 다섯 요소의 비 실체성을 비춰보는 깊은 관찰을 실천한다[照見五蘊皆空]. 바로 그래서 『반야심경』의 설법주인 관세음보살이 그를 전투의 적임자로 추천한 것이다.

 

두 가지의 변신 이야기

 

이랑진군은 마음 사냥의 명수로서 손오공이 어떤 모양으로 변신해도 그 허위성 속에 숨은 원숭이를 찾아낸다. 손오공이 토지신 사당으로 변했을 때의 일이다.

 

손오공은 토지신의 사당으로 변신하면서 큰 입은 사당의 문, 이빨은 문창살, 혀는 보살상, 눈은 창문으로 바꾸었다. 다만 꼬리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뒤편에 세워 깃대로 바꾸었다. 이랑진군이 절벽 아래로 내려와 찾다가 작은 사당을 발견했다. 이에 제3의 눈을 떠 자세히 관찰해 보니 깃대가 뒤편에 세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이랑진군이 웃으며 말했다. “이 원숭이야! 누구를 속이려고? 내가 사당을 여럿 보았어도 깃대가 뒤에 세워진 것은 본 적이 없단 말씀이야. 틀림없이 네놈의 장난이로구나.”

 

사진 2. 토지신 사당으로 변신한 손오공.

 

손오공은 다양한 모양과 크기로 몸을 바꿀 수 있지만 그 본질을 바꾸지는 못한다. ‘입→문, 이빨→문살, 혀→신상, 눈→창문’으로의 변신만 해도 그렇다. 변신 전후의 모양은 다르지만 기능적 동질성은 여전하다. 그래서 모양을 뒤좇는 6형제의 눈은 피할 수 있었지만 허상의 이면에 숨은 본질을 놓치지 않는 이랑진군의 눈은 피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꼬리의 변신은 파탄이 아닐 수 없다. 건물이 되었거나 군대가 되었거나 깃발은 맨 앞에서 그 정체를 널리 알리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손오공은 처리가 곤란한 꼬리를 사당의 뒤편에 깃대로 세운다. 드러냄을 본질로 하는 깃대를 감춤에 쓴 것이다. 이 어긋남을 간파한 이랑진군이 바로 달려든다.

 

사진 3. 전투의 중심, 이랑진군.

 

이에 손오공은 마지막의 변신을 행한다. 바로 상대방인 이랑진군으로 변신한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이랑진군과 손오공의 변신술 시합은 마음이 마음을 보는 일을 상징한다. 이랑진군이 손오공을 추적할 수 있었던 것은 보는 마음(이랑진군)과 보여지는 마음(손오공)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손오공이 이랑진군으로 변신하여 보는 주체와 보이는 대상이 하나가 되어 버렸다. 주체와 대상을 함께 보는 더 큰 눈이 필요한 상황이다. 『서유기』에서는 하늘 높은 곳에서 요괴를 비추는 조요경照妖鏡을 정답으로 제시한다. 이랑진군은 손오공의 종적을 찾지 못하자 조요경을 비추고 있는 탁탑천왕을 찾아간다.

 

탁탑천왕이 조요경으로 사방을 비춰보고는 껄껄 웃으며 말하였다. “진군! 빨리 가보십시오. 어서요. 저 원숭이가 은신법을 써서 포위망을 뚫고 진군의 관강구로 갔습니다.”

 

그러니까 손오공을 찾아내는 눈의 발전을 화살표로 표시하면 ‘손오공←이랑진군의 6형제←이랑진군의 제3의 눈←조요경’의 방식이 된다. 이것을 유식唯識의 용어로 바꾸면 ‘상분相分←견분見分←자증분自證分←증자증분證自證分’이 된다. 

 

사진 4. 중국 최고의 수리시설 도강언.

 

원래 유식에는 마음의 관찰을 2분, 3분, 4분으로 설명하는 학설이 있다. 2분설은 상분을 보는 견분이 있다는 주장(무착無着), 3분설은 그 견분을 인식하는 자증분이 있다는 주장(진나陳那), 4분설은 다시 그 자증분을 인식하는 증자증분이 있다는 주장(호법護法)이다. 『서유기』의 주인공인 삼장법사 현장스님은 호법 계열의 계현戒賢에게 배웠으므로 4분설의 관점을 갖는다. 이것을 형상화한 것이 이랑진군의 눈(자증분)과 요괴를 비추는 하늘의 조요경(증자증분)이다. 이렇게 거듭거듭 그 정밀도와 범위를 더해 가는 관찰의 눈앞에 손오공은 달아날 곳이 없다. 그래서 결국 이랑진군의 개에게 종아리를 물려 천상으로 압송되는 것이다. 

 

관강구灌江口의 수호신  

 

비록 조요경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손오공을 체포한 최대의 공로자는 이랑진군이다. 그러므로 이랑진군은 마음 여행기로서의 『서유기』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관건적 인물이다. 손오공을 압도하는 무력을 지닌 인물이라는 점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그에 대한 얘기를 조금 더 해보기로 하자. 중국에는 이랑진군을 관강구의 수호신으로 모시는 민간신앙이 있다. 관강구란 강물이 흘러 들어가는 입구[灌江口]라는 뜻이다. 중국에는 관강구가 여럿 있고 대체로 그곳에는 이랑진군의 사당이 세워져 있다. 그중 사천성의 관강구가 가장 유명하다. 이랑진군의 신화가 시작된 발원지이기 때문이다.

 

원래 사천성의 성도成都는 큰 산을 기준으로 서쪽은 홍수가 심하고 동쪽은 가뭄이 심했다. 그런데 진秦나라의 이빙李冰과 그 둘째 아들인 이랑이 산을 쪼개 물길을 냄으로써 이 문제를 동시에 해결한다. 그것이 도강언都江堰이라는 수리시설이다. 그 공사가 이루어진 것이 기원전 256〜251년 사이로 추정되니까 최소 2,275년 전의 일이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여전히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하니 그 주역인 이랑진군이 신으로 신앙되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로 인해 이랑진군을 모신 이랑묘二郞廟라는 사당을 중국의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성도 다음으로 유명한 곳이 강소성江蘇省의 관강구다. 『서유기』의 작가라고 얘기되는 오승은吳承恩이 직접 그곳에 가서 손오공과 이랑진군의 싸움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는 여행기가 전한다. 거기에는 손오공이 변했다는 토지신의 사당이 있었고, 정말로 깃대가 뒤편에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사진 5. 이랑신의 외삼촌 옥황상제.

 

『서유기』에서 이 관강구는 마음의 작동이 시작되는 지점을 상징한다. 강이 천 가지 만 가지로 변화한다 해도 결국 그것은 하나의 근원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랑진군은 강의 근원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홍수와 가뭄의 두 문제를 동시에 해결했다. 이랑진군의 흔들리지 않는 손오공 추격은 이렇게 강의 근원을 장악하고 하류의 변화에 대응하였던 그의 전설적 모습을 변용한 것이다.

 

이랑진군이 하늘의 여신과 지상 남자의 만남으로 태어난 존재라는 점도 중요하다. 『서유기』에서 천상은 정신, 관념, 원리를 대표하는 세계이다. 천리天理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것은 손오공을 항복시키지 못한다. 원리만 가지고는 실상의 반만 상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지상은 구체적 사물, 모양, 현상을 대표하는 세계이다. 천상의 여신과 지상의 남자가 만나 이랑진군이 탄생하였으므로 원리와 현상이 통일되었다. 이사무애, 진공묘유의 현장이 마련된 것이다. 천신들이 잡을 수 없었던 손오공을 이랑진군이 잡을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랑진군의 군대, 매산梅山의 6형제와 사냥개

 

이랑진군은 손오공을 잡는 전투에 매화산 6형제와 매와 사냥개를 데리고 출전한다. 6형제는 누구인가? 전설에 의하면 이랑진군은 매화산에 사는 일곱 영웅과 의형제를 맺는다. 그래서 이랑진군의 형상은 항상 매화산의 일곱 성인[梅山七聖]과 함께 그려진다. 『서유기』에서는 여기에서 하나를 빼서 6형제로 만든다. 6식을 표현하는 ‘6’이라는 숫자를 얻기 위해서이다. 6식은 수행에서 극복의 대상인 동시에 없어서는 안 되는 동반자이다. 번뇌의 시작점이므로 극복의 대상이고, 그 작용을 아는 일 자체가 수행이므로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근원이 되는 신화를 보면 이 형제들은 원래 매산의 괴물이었다. 그런 그들을 이랑진군이 항복시켜 부하로 거느리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번뇌를 일으키는 매개자[梅山=媒]인 6식을 조복받았다는 의미가 담긴다. 전에는 괴물이었지만 지금은 성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매산의 6형제는 최전선에서 오묘한 관찰의 지혜[妙觀察智]로 이랑진군의 사냥을 돕는다.

 

사진 6. 이랑신과 사냥개.

 

한편 이랑진군은 손오공을 잡는 싸움에 매와 사냥개를 동원한다. 특히 사냥개는 손오공의 장딴지를 물고 늘어져 그를 잡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다. 어떻게 사냥개가 하늘의 천신들도 하지 못한 일을 한 것일까? 우리는 이 사냥개가 매와 짝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랑진군의 원래 신화에는 사냥개만 나타나는데 여기에 매가 추가된 것이다. 왜일까? 매는 시력이 뛰어나고 사냥개는 후각이 뛰어나다. 이랑진군은 이 사냥개와 매를 같이 묶어 관리한다. 매의 밝게 보는 눈과 사냥개의 물고 놓지 않는 이빨을 통일시키기 위한 조치이다.

 

이 매와 개는 집중[止]과 관찰[觀]을 함께 닦는 길을 상징한다. 집중은 사냥개의 이빨처럼 물고 놓지 않는 일이고, 관찰은 매의 눈처럼 놓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랑진군을 둘러싼 거의 모든 것들(6형제, 제3의 눈, 조요경)이 관찰을 상징하는 것이므로 그 무게감의 차이는 확연하다. 집중보다는 관찰이 더 중요하게 다뤄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냥개의 ‘물고 늘어지기’가 없었다면 손오공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집중과 관찰[止觀]을 동시에 갖추지 않고 마음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집중은 관찰에서 오는 것이고, 관찰은 집중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관찰 없는 집중은 고여 있는 썩은 물과 같아서 용이 살 수 없다. 집중 없는 관찰은 미친 지혜라서 어지러이 마음을 놓치게 된다. 그래서 능숙한 마음의 사냥꾼인 이랑진군은 사냥개와 매를 함께 묶어 둔다. 집중과 관찰을 통일하고 있다는 말이다.

 

요괴를 비추는 거울, 조요경照妖鏡

 

『서유기』의 전투 장면을 보면 탁탑천왕을 사령관으로 하는 천군들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패전의 연속이다. 유일한 공이라면 조요경을 들고 있다가 손오공을 찾아낸 일 정도가 될까? 그조차 전투에 임한 이랑진군의 부탁에 의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궁지에 몰린 손오공이 이랑진군으로 변해 관강구의 사당으로 숨어들었을 때 조요경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랑진군이 자랑하는 제3의 눈으로도 찾을 수 없는 것을 조요경이 찾아낸 것이다. 이것이 제3의 눈인 자증분을 인식하는 증자증분의 상징이라는 것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

 

사진 7. 천상의 사령관 탁탑천왕.

 

손오공이 이랑진군으로 변신하자 이랑진군의 봉황 눈은 작동이 중지된다. 자기 눈으로 자기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흔히 무심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실천적으로 해결해야 할 찌꺼기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근본무명根本無明, 즉 모든 것의 뿌리가 되는 무명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랑진군은 무심의 자리에서조차 비춰보기를 계속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봉황 눈이 작동을 멈춘 것은 좋은 일이기는 하다. 보는 주체가 사라져 분별의 장벽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다만 비춰보기는 유지되어야 한다. 그래서 관찰 그 자체인 조요경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보는 나도 없고, 보이는 대상도 없이 오직 보는 일만 생생하다. 의단독로疑團獨露의 구현이다.

 

이랑진군은 이렇게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손오공의 자아는 천상에 압송된 뒤에도 여전히 꺾일 줄 모른다. 그것이 꺾이려면 부처의 불가사의한 위신력을 직접 체험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것은 다음의 이야기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강경구
현재 동의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앙도서관장을 맡고 있다. 교수로서 강의와 연구에 최대한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한편 수행자로서의 본분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kkkang@deu.ac.kr
강경구님의 모든글 보기

많이 본 뉴스

추천 0 비추천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우) 03150 서울 종로구 삼봉로 81, 두산위브파빌리온 1232호

발행인 겸 편집인 : 벽해원택발행처: 성철사상연구원

편집자문위원 : 원해, 원행, 원영, 원소, 원천, 원당 스님 편집 : 성철사상연구원

편집부 : 02-2198-5100, 영업부 : 02-2198-5375FAX : 050-5116-5374

이메일 : whitelotus100@daum.net

Copyright © 2020 월간고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