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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엄주, 마장 극복에 탁월한 이유 서원과 의지 그리고 회향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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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스님  /  2024 년 9 월 [통권 제137호]  /     /  작성일24-09-05 11:15  /   조회68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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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능엄주는 마장魔障 극복에 탁월하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답변)

능엄주를 백일기도 일과로써 받아 하시는 분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며 질문해 왔습니다.

수행(기도)은 ‘정신의식을 모아 마음을 온전히 관찰하고, 제어하기 위한 힘’[삼매력三昧力]을 갖기 위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합니다. 참선參禪 수행에서는 ‘화두話頭’, 주력呪力 수행에서는 ‘진언眞言’, 정근精勤 수행에서는 ‘불보살님의 명호’가 그 수단이 됩니다.

 

진언은 뜻보다는 ‘소리’를 중요시하기에 산스크리트어(범어梵語) 원음을 그대로 인용하며, 그 내용의 의미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습니다.

대불정능엄신주大佛頂楞嚴神呪(이하 능엄주) 역시 그래서 범어梵語 그대로 표기하여 암송하지요. 그러다 보니 “뜻도 모르면서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이의를 제기하며 번역해서 그 내용을 소개하는 분들이 있고, 실제로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수행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런데 막상 진언을 번역한 걸 보면 싱거울 정도로 그 의미가 단순하고 평이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존재가 변화해 가는 이치나 마음의 원리를 설명하는 깊이 있는 글도 아니고, 고준한 철학이나 사상을 담은 글도 아닌, 오히려 ‘행동하자, 실천하자’는 단순한 내용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장 많이 알려진 『반야심경般若心經』에 있는 진언,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디 스바하’를 볼까요. 내용의 의미는 ‘가자. 가자. 어서 가자. 저 언덕으로, 모두 함께 어서 가자’입니다.

그런데 이 단순하고 평이한 내용의 진언을 왜 ‘가장 신령스러운 주문이고[시대신주是大神呪], 가장 밝은 주문이고[시대명주是大明呪], 가장 높은 주문[시무상주是無上呪]’이라고 하는 걸까요? 제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서원誓願과 실행實行’

 

수행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간절하면서도 강력한 ‘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이는 믿는 마음, 즉 신심信心의 기본이자 시작이 되며, 내가 하는 수행의 귀결歸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결국 실행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고, 체험할 수 없고, 확인할 수 없음을 경전 『쌍윳따니까야』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계십니다.

 

“현세現世에도 내세來世에도 이익이 되는 하나의 원리가 있느니라. 그것은 방일하지 않는 것이니라.”

 

즉, 간절하게 뭉쳐진 하고자 하는 의지의 마음으로 몸소 실천해 가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바꾸어가는 진정한 힘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자신과 늘 씨름하고 있는 수행자에게 부처님이 표현하신 방일放逸하지 않음이란, 단지 게으르지 말라는 단순한 의미로 새겨지진 않습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멈추거나 중단하지 않고 진득하게 해나가는 것,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고,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이 ‘방일하지 않음’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것이 현생의 삶에도, 다음 생에서도 ‘이익이 되는 하나의 원리’라고 하시는 것이겠지요. 

 

사진 1. 인도 성지순례 때, 녹야원에서 다메크 스투파를 향해서 예불을 드리는 정림사 신도님들.

 

『반야심경』의 진언도 결국 ‘하자’(피안彼岸으로 함께 가자)는 것 아닙니까? 이런 의지와 실천의 마음이 담긴 소리이기에 그렇게 최상으로 찬탄하는 게 아닐까요?

 

여기서 앞서 하신 질문, “능엄주가 마장魔障을 극복하는 데 가장 탁월한 주문이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에 대한 답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능엄주, 길이가 긴 것이 장점인 이유

 

‘대불정능엄신주大佛頂楞嚴神呪’는 다른 다라니에 비해 내용이 긴 편입니다. 그만큼 공부를 지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내적, 현실적 어려움과 절박함 그리고 목표에 대한 간절함이 절절하게 표현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장 눈앞의 이익 때문에 그릇된 것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부처님이 일러주신 목표를 성취할 때까지 그 ‘의지’와 ‘실행’을 멈추지 않겠다는 강력한 서원의 소리가 능엄주인 것입니다.

그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불보살님에게 귀의함을 밝히고, 그분들의 자비와 위신력을 찬탄한다. 그리고 그 자비와 위신력을 본받아서 나 자신도 그렇게 이뤄내기 위해 바르게 수행할 뿐, 일체의 그릇된 목적과 이유를 금지하고 배제할 것을 서원한다. 즉 모든 삿된 신과 기운의 도움은 금지하고 배제할 것을 다짐한다. 이러한 굳센 마음으로 노력하고자 하니 저를 수호하여 주실 것을 권청한다. 그리하여 장애되는 모든 것이 다 파쇄破碎되어 마침내 모든 결박이 다 풀어져 자유로워지길 소망하는 능엄주 지송자持誦者의 강력한 서원을 표명한다.

 

결국 “발심수행자의 마음에 절절하게 담겨져서 생기生起하는 ‘서원’과 ‘실행’”이 그 어떤 장애도 헤쳐나갈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무기이며 에너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능엄주와 귀한 인연이 되었다면 이왕이면 이런 마음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능엄주를 할 때는 자신이 내는 그 간절한 마음의 파동이 담긴 소리를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들려주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내면의 단단한 업業의 습기習氣가 부수어지고, 마침내는 ‘각覺의 성품’이 온전히 발휘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장애를 극복하는 가장 큰 힘이며, 이렇게 활용되도록 제시된 것이 ‘대불정능엄신주’입니다.

 

능엄주는 산스크리트어 원음原音 그대로 소리를 내기에 발음도 쉽지 않고, 뜻을 인지하기도 어렵습니다. 더구나 길이도 깁니다. 이렇게 힘든 요소가 오히려 집중력을 확보해 가는 과정에서 장점으로 작용됨을 느낍니다.

 

“수행승들이여, 삼매를 닦아라. 삼매를 닦으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알게 된다.” - 『쌍윳따니까야』

 

삼매를 닦기 위한 마음집중을 할 때, 마음에 이런저런 감정이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감정이 일어난다는 것은 내가 아직 어떤 내용이라는 개념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사유작용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사유와 숙고가 멈추어진 뒤, 내적인 평온과 마음의 통일을 이루고, 사유와 숙고를 여의고, 삼매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을 갖춘 두 번째 선정에 든다.” 

- 『쌍윳따니까야』

 

부처님께서는 삼매라는 상태에 들어갈 때는 먼저 사유와 숙고를 멈추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마음의 통일을 이루며 내적 관찰을 함에 있어 개념을 지닌 채로 하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개념을 지닌 채 집중 관찰을 하면 그 관찰하는 것에 알음알이가 붙어 이미 입맛대로 관찰하기 때문입니다.

 

글에는 내용이 있고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글의 내용을 접하다 보면 현재의 내 마음 상태에 따라 어떤 감정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감정은 쉽게 바뀌고 변합니다. 설사 그것이 어떤 감동적이고 거룩한 감정일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의 집중과 평정은 감정에 의해 일어나는 심리적 상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감정은 이것에 방해가 되지요. 그런데 성스러운 감정에 잘 속기도 합니다. 성스러운 감정에 젖어들어 있을 때 그것이 마치 집중이 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산스크리트어 원음原音의 능엄주 암송은 글의 내용에 영향받지 않고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암송하는 동안 소리를 듣는 집중의 깊이 정도와 그 상태가 능엄주 한 편 하는 동안 얼마나 지속되고 유지되는지 알아차리며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능엄주 길이가 길기에 가능한 것이며, 이것이 능엄주 수행에서 매우 장점이 됨을 하면서 많이 느낍니다. 처음엔 발음도 어렵고 길이도 길어서 힘이 들겠지만 그 점이 익숙해지면 오히려 큰 장점으로 작용됨을 알게 됩니다.

능엄주를 하시는 분들, 모쪼록 그것이 자신의 성장과 이익에 큰 성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능엄주 회향의 참뜻

 

보례진언普禮眞言

 

아금일신중 我今一身中 

즉현무진신 卽現無盡身 

변재삼보전 遍在三寶前 

일일무수례 一一無數禮 

옴 바아라 믹 (3번)

 

제가 이제 이 한 몸 가운데에서

바로 다함 없는 몸을 내어서

시방에 두루두루 계시는 삼보三寶님 전에

한 분 한 분 빠짐없이 무수한 예배를 드리옵니다.

 

저는 능엄주를 시작할 때, 경전을 공부할 때, 이 보례진언을 합송合誦하면서 시작합니다. 일종의 약식 예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경전을 읽기 전에 이 가르침을 주시는 분께 예경禮敬 올리는 마음을 갖는 것은 그 자체로 스스로에게 경건하고 차분하며 진지한 마음으로 대하도록 해줍니다. 

 

사진 2. 정림사 일행스님과 함께하는 능엄주기도, 언제나 보례진언으로 시작해서 회향게로 마무리를 한다.

 

능엄주 기도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자신도 스승처럼 되고자 간절히 본받고 애쓰고자 하는 마음이게 합니다. 그래서 저와 공부하고 기도하는 불자님들에게도 시작 전에 합장하고 보례진언을 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능엄주 기도를 마치며 읊는 능엄주 회향게에 대하여 간단하게 언급합니다.

 

능엄주 회향게楞嚴呪 廻向偈

 

상래현전청정중 上來現前淸淨衆 풍송능엄비밀주 諷誦楞嚴秘密呪  

회향삼보중룡천 廻向三寶衆龍天 수호가람제성중 守護伽藍諸聖衆  

삼도팔난구리고 三途八難俱離苦 사은삼유진점은 四恩三有盡霑恩  

국계안녕병혁소 國界安寧兵革銷 풍조우순민안락 風調雨順民安樂  

대중훈수희승진 大衆熏修希勝進 십지돈초무난사 十地頓超無難事  

삼문청정절비우 三門淸淨絶非虞 단신귀의증복혜 檀信歸依增福慧  

시방삼세일체불 十方三世一切佛 제존보살마하살 諸尊菩薩摩訶薩  

마하반야바라밀 摩訶般若波羅蜜  

 

여기 이 청정한 대중이

능엄楞嚴의 비밀주秘密呪를 풍송諷誦하여

삼보三寶와 이를 수호하는 보살님께 회향하오니

삼도三途와 팔난八難의 모든 고통 없으며

사은四恩(주1)과 삼유三有(주2)는 모두 은혜 입으며

나라가 평안하여 전쟁이 없고

비와 바람 순조로워 국민이 안락하며

대중의 수행이 매우 뛰어나서

어려움 없이 십지十地를 뛰어넘고

가람伽藍이 청정하고 아무 근심 없어져

신도信徒들 귀의함에 복과 지혜 자라지이다

시방삼세 제불 보살님께 귀의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蜜

 

능엄주 회향게입니다. 번역은 하남 정심사 원영스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기도의 끝은 항상 회향으로 마치도록 해야 합니다. ‘회향廻向’은 내가 기도한 공덕이 행여나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뭇 존재들에게 돌리는 일종의 나눔의 마음을 갖는 것이고, 그 마음을 일상생활에서 실행하는 삶으로 펼쳐내는 보살로서의 행위를 말합니다. 그래서 능엄주 기도를 하고 마칠 때는 항상 회향게를 끝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집에서든 어디서든, 개인적으로든 여럿이 함께하든 마찬가지입니다.

 

대승불교에서 특히 강조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회향하는 삶’입니다. 안으로는 회향의 마음을 갖는 것이고, 밖으로는 그 마음을 펼쳐내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보살의 삶이겠지요. 

성철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대승불교가 왜 위대할 수밖에 없는지 아나? 그것은 해탈에서 그치지 않고 해탈지견을 공부의 끝으로 하고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수계受戒를 하고 백련암에서 의무생활을 하고 있을 때, 어느 날 성철스님께서 불쑥 당신의 공양상을 차리는 소임을 맡고 있는 도반스님에게 들려준 말씀입니다. 해탈解脫과 해탈지견解脫知見이라는 용어를 접할 때면 이 말씀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해탈은 상구보리上求菩提의 완성이요, 해탈지견은 상구보리의 회향, 즉 하화중생下化衆生이 그 주된 내용이겠지요. 그만큼 자신의 공부와 공덕을 뭇 삶들에게 되돌리는, 즉 회향의 삶을 사는 것이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체임을 잊지 말라는 가르침으로 마음에 새겼었습니다. ‘회향’이라는 용어를 접할 때마다 자신의 공부에 대한 마음가짐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정림사 일행스님의 글을 더 보실 분은 https://cafe.daum.net/jeonglimsarang을 찾아주세요.

 

<각주>

(주1) 사은四恩 : 네 가지 은혜. ①부모은父母恩(부모에 대한 은혜), ②중생은衆生恩(더불어 사는 모든 존재에 대한 은혜), ③국왕은國王恩(나라를 잘 다스려주어 태평성세를 만들어주는 통치자에 대한 은혜), ④삼보은三寶恩(불법승 삼보에 대한 은혜).

(주1) 2) 삼유三有 : 삼계三界의 존재. 12연기법緣起法에서 10번째가 ‘유有’로서 유有는 존재를 말한다. 불교에서는 자아의식이 있으면 물질적(육신)이든 비물질적이든 ‘존재한다’라고 본다. ①욕유欲有(욕계欲界에 사는 존재), ②색유色有(색계色界에 사는 존재), ③무색유無色有(무색계無色界에 사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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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출가. 안산 정림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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