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탁소리]
길에서 얻은 단상 나누기를 잘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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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24 년 8 월 [통권 제136호] / / 작성일24-08-05 10:57 / 조회2,116회 / 댓글0건본문
지금 백련암에서는 백중 영가 100일 기도를 매주 일요일에 올리고 있습니다. 올해는 무릎이 아파 부산 고심정사에서 머물며 병원 치료를 받다 보니 참석하기가 여의치 않아 자주 빠지게 되었습니다.
어허~~, 사무장은 어디에?
마침 7월 6일 음력 6월 초하루가 토요일인 데다가 하안거 결제를 한 지 한 달 보름이 되는 반살림이 되었습니다. 고심정사에서 법회를 보고 다음 날 일요일에 백련암에 올라가서 반살림을 지나는 기념으로 모처럼 백중 영가기도에 참석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 백련암 사무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부산역에서 14시 31분에 출발하여 김천구미역에 15시 46분에 도착하는 차표를 샀습니다. 연착과 내가 지팡이를 짚고 나가는 시간을 합하여 4시까지 오시면 충분하겠습니다.”
그동안 치료 덕분인지 요즘은 걷기가 좀 나아져서 김천구미역에서는 휠체어 도움을 받지 않고도 걸어서 역사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무장이 기차 좌석이 있는 열차 칸 앞까지 와서 기다리곤 했는데, 오늘은 자가용을 타는 장소까지 걸어 나왔는데도 모습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가 할 수 없이 사무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이쿠!! 스님, 제가 연락을 받고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1시간이면 도착할 터이니 기다리고 계시면 곧 가겠습니다.”
졸지에 낭패를 만났지만 이전에도 상좌들과 더러 겪은 일이라 한숨 돌리고 나서 “여기서 1시간 기다리고 있기는 그렇고…, 오히려 가야호텔까지 와서 기다리고 있으소. 내 택시를 타고 가면 3~40분 후면 도착할게요.”라고 하고 택시 정류장으로 갔습니다.
“여기서 가야산 가야호텔까지 가려는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스님, 가는 방법이 둘인데요,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갈 수도 있고 국도를 이용해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국도로 가면 시간이 더 걸립니다.”
라고 택시 기사가 답을 했습니다.
늘 자가용으로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다니던 길이라 국도로 가면 지루할 것이 뻔하고 요금도 시간이 느는 만큼 더 많이 나올 거라는 직감이 들어 “고속도로로 갑시다.” 하고 김천구미역을 출발하였습니다.
기동성을 발휘해 시간을 벌다
처음에는 철도 환경을 잘 몰라 서울에서 해인사 백련암을 가려면 서울에서 동대구 기차표를 끊고, 동대구에서 내려 서부시외버스정류장까지 전철을 타고 가서 ‘서대구-해인사행’ 버스 차표를 사서 해인사 정류장에 도착하면 백련암에서 내려와 기다리고 있던 자가용을 타고 백련암을 오르내렸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가 어느 날 사하촌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데, “요즘 KTX 타고 해인사 오기가 참 편해졌다.”라고 누군가 떠벌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KTX를 타고 김천구미역에 내리면 요사이 어지간하면 집에 자가용이 있으니 기다렸다가 해인사 들어오면 얼마나 빠른지 아나?”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 말인즉슨, “서울-대구행 차표를 샀는데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에라도 걸리면 동대구에서 시내를 빠져나오는 데만 해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리지만 김천구미역에서 해인사까지 오는 데는 신호등이 하나도 없잖냐. 그러면 한 시간이면 충분히 해인사에 오는 기라.”고 하며 침이 마르게 설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론 사하촌에서 들은 대로 소납도 ‘서울-김천구미’행 열차를 타고 내려와 김천구미역에서 백련암으로 자가용을 타고 다니고 있습니다. 백련암에서 출발하여 김천구미역까지는 네비게이션 안내로는 64km, 69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그러나 운전자 성향에 따라 55분도, 60분도, 70분도 걸리는 들쭉날쭉한 실력입니다.
오랜만에 택시를 타고 달리니 재깍재깍 요금 올라가는 소리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고, 또 도와 군에 따라 요금 또한 달라진다고 들었는데, 지금 달리는 길이 경북 김천시에서 경남 합천군을 오가니 머릿속 계산 또한 복잡해졌습니다. 택시 기사님에게 요금 체계를 물으니, “스님, 요새는 그런 것 없습니다. 요금 계산기 표시대로만 주시면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출발한 지 한 30분쯤 지나서 사무장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지금 가야호텔에 와 있습니까?” 하니, “거기는 지났고요, 수륜교차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길에 있는 백운호텔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탄 택시도 수륜교차로를 막 지나려 하고 있어서 택시 기사님께 “저기 수륜교차로 옆을 지나 막 올라가면 백운호텔이 보입니다. 지금 거기서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라고 알리고 요금판을 보니 5만 4천 원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남김천IC에서 성주IC까지 1,700원의 통행료를 감안해서 6만 원을 드리니 기사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기다리고 있던 사무장은 머리를 긁적이며 애써 무안함을 표했습니다.
그 옛날 원택스님은 돈 아까운 줄만 알아서 시자侍者가 올 때까지 60분 넘게 기다리다가 식식거리며 백련암을 왔던 기억인데, 이제는 시간 아까운 줄 알아서 기동성을 발휘해서 백련암으로 빨리 올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필요한 곳에 잘 나누는 세상이 되었으면…
오늘 이렇게 김천구미역 상봉 이야기를 자세하게 쓰는 사연은, 언젠가 해인사 – 성주 IC – 김천구미역까지의 길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은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오늘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그 옛날에는 백련암에서 가야호텔까지 가는 길도 제대로 나 있지 않았는데 수륜교차로까지 33km에 이르는 산길이 뚫리면서 성주에서 해인사로 오는 길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금릉군 금수면의 성주호를 반 바퀴 돌아 김천으로 넘어가는 2차선 국도 길로 다녔습니다. 그 후 고령군에서 수륜면을 지나 성주IC까지 4차선 지방도로가 나기까지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2차선으로 길을 내는가 했는데, 완성된 길을 보니 4차선으로 그때는 없던 김천 지역에서 창원시까지 4차선 고속도로가 생김으로써 수륜면에서 성주 지역까지 천지개벽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해인사 - 성주 IC – 김천구미 KTX역까지 4차선 도로를 달리노라면 “이렇게 오랜 시간, 이렇게 많은 예산을 들여 한적한 촌길을 4차선으로 만들어서 과연 얼마나 지역 발전에 효과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늘 마음 한 켠이 울적하곤 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팬데믹 사태로 인해 3년 여간 우리나라의 구석구석이 경기 침체에 빠져들 때에는 서울 가느라 해인사에서 김천구미역까지 달리다 보면, 적막강산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너무나 한산하여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듯이 힘들었습니다.
오늘도 이 길을 달리면서 도로 건설의 과잉 투자에 대한 염려가 떠나질 않았습니다. 물론 자주 그 길을 오가는 저로서는 고맙고 고마운 길이지만 시간과 돈이 필요한 곳에 ‘고르게 잘 나누어 투자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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