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
여름의 맛, 호박잎과 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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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 2024 년 8 월 [통권 제136호] / / 작성일24-08-05 09:32 / 조회1,811회 / 댓글0건본문
24절기 중에 열세 번째 입추(양력 8월 8일)와 열네 번째 절기인 처서(양력 8월 23일)가 들어 있는 8월은 사실상 입동 전까지는 가을이라 말하지만 처서가 오기 전까지는 무더위가 한창입니다. 그래서 여름의 맛이 계속되는 달입니다. 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기만을 기다리며 여름의 맛을 즐길 시간이지요. 봄에는 산과 들에서 다양한 산야초들이, 여름에는 밭에서 갖가지 과채류들이 식탁 위에 오릅니다. 자연의 일부인 우리도 자연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르며 살아야 함을 실감합니다.
뜨거운 물도 함부로 버리지 말라
‘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은 사찰의 음식문화가 얼마나 바람직한 식문화인가에 대해 알아보고 함께 실천해 나가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생명을 존중하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사찰의 식문화가 지구를 살리는 데 얼마나 귀한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찰의 수행문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일상의 모든 일들을 감사로부터 시작합니다. 이 음식이 나에게 오기까지 두두물물의 인연이 바탕이 되어 내가 우주이고 음식은 곧 생명임을 깨닫게 만듭니다.
문득 나물을 모두 삶은 다음에 뜨거운 물을 버릴 때 찬물을 섞어서 버리던 저희 할머니가 생각납니다. 독실한 불자였던 할머니는 오계를 철저히 지키셨던 분이십니다. 할머니에 이어 어머니까지 절대 뜨거운 물을 함부로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뜨거운 물을 갑자기 흘려보내면 혹시 모를 생명을 다치게 하거나 죽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주의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아주 어릴 적 이야기지만 저는 그 말씀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납니다.
식경食經을 통한 배움
고대 중국의 의학서인 ‘황제소문’의 첫머리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습니다.
“옛날 사람 가운데 도를 아는 사람은 음양의 법도가 있다. 마시는 것에 절도 있고, 기상시간과 수면시간을 규칙적으로 하며, 일할 때 과로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옛사람들은 건강한 신체와 건강한 정신을 갖추어 천수를 누렸다. 그런데 요즘 사람은 과음, 과식, 과로를 일삼으니, 정기가 고갈되고 노쇠한 것이다.”
지금 들어도 정말 와닿는 내용입니다. 절제하지 않고 스스로 고통 속에 가두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수행자의 라이프 스타일이 기본적으로 위와 같다는 점에서 건강한 삶을 사는 데 우리도 참고할 만한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선조들의 음식문화 백과라고 불리는 중국 수나라 때의 의서인 『식경食經』을 보면 건강한 삶을 향한 여러 가지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중국 고전에도 식食에 대한 기록이 많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음식’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지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이 음식에서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고전들을 살펴보며 그 가르침을 배워보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주시할 만한 것은 예로부터 먹는다고 하는 것을 인간에게 중대한 일로 보았고 조리법, 먹는 방법 등을 여러 가지 방면으로 연구해 왔다는 것입니다.
의학서 『황제내경』
『황제내경黃帝內經』은 중국의 의학서 중에 가장 오래된 책입니다. 『황제내경』은 의학서이면서 예절서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다섯 가지 맛의 근본을 이야기합니다. 다섯 가지 맛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먼저 맛의 근본은 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짜고, 쓰고, 시고, 맵고, 단맛의 오미를 3가지 재료(물, 불, 나무)로 9번 끓여서 9번 변하게 하는데, 이것을 불로 조절을 합니다. 불의 강약을 조절하며 불순하고 역한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하되 식재료가 지니는 근본 이치를 잃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맛을 고르게 조절하기 위해서는 단맛, 신맛, 쓴맛, 매운맛, 짠맛의 순서로 먼저하고, 그 뒤에 무엇을 더 첨가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요리를 하며 맛을 결정짓는 데 이와 같은 미묘한 것이 전체의 조화를 아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솥 안에서의 조화는 매우 정묘하고 미묘하고 섬세하여 말로써는 설명하기 어렵고 무엇과도 비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을 읽는 동안 저는 맛에 대해 점점 자신감을 잃어 갔지만 이 모든 것이 정성과 사랑에서 온다는 점만은 명확해졌습니다.
오장육부와 오미
위는 오장육부의 바다라고 합니다. 위는 사람의 밥통에 해당하고 오장은 간장, 비장, 폐장, 신장, 심장을 말합니다. 그리고 육부는 담, 위, 대장, 소장, 삼초, 방광을 말합니다. 그렇게 위는 오장과 육부의 바다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음식이 위에 들어가면 오장과 육부가 받아 내기 시작합니다. 다섯 가지 맛을 구분하여 각각 오장과 육부로 전달됩니다. 맛이 신 것은 간으로 가고, 맛이 쓴 것은 심장으로 가고, 맛이 단 것은 비장으로 가며, 맛이 매운 것은 폐장으로 가고, 맛이 짠 것은 신장으로 간다고 합니다.
오곡도 다섯 가지 맛으로 구분하는데 멥쌀은 단맛이고, 참깨는 신맛이며, 콩은 짠맛이고, 보리는 쓴맛이고, 기장은 매운맛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과일과 육류, 채소도 다섯 가지 맛으로 구분하였는데요. 대추는 단맛이고, 오얏은 신맛이며, 밤은 짠맛, 살구는 쓴맛, 복숭아는 매운맛이라 하였습니다.
육류의 소고기는 단맛, 개고기는 신맛, 돼지고기는 짠맛, 양고기는 쓴맛이고 닭고기는 매운맛이라고 합니다. 채소의 아욱은 단맛이고, 부추는 신맛, 콩잎은 짠맛, 염교는 쓴맛이고, 파는 매운맛이라 하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색깔에도 맛이 있으니 황색은 단맛, 청색은 신맛, 흑색은 짠맛이고 적색은 쓴맛이요, 백색은 매운맛이라 하였습니다. 오곡과 오과, 오축, 오채, 오색의 맛을 다 살펴보았으니 우리 몸에 맞는 맛을 찾아 몸을 보호하고 건강을 지켜나가면 좋겠습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오장의 병은 오미에서 온다고 할 수 있으니 오곡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이고, 오과는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오축은 우리 몸을 이롭게 하고, 오채는 우리 몸에 보탬이 되는 음식이라 표현하면 될 거 같습니다.
우리 몸에는 우리 것이 최고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나고 자란 그곳에서 건강한 생명을 부여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 이번 호에는 호박잎으로 만들어 먹는 ‘호박잎전’과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할 수 있는 ‘수박고’ 만드는 법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호박잎전
호박잎이 가장 신선하고 맛이 좋은 계절입니다. 어린 호박잎은 나물로도 먹고 찜이나 국에 넣어 먹기도 합니다. 호박잎은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유명한데요. 농촌진흥청에서 발효한 호박잎의 칼로리는 대략 100g당 45cal라고 합니다. 저열량, 고영양 식품으로 장점이 아주 많은 식재료입니다. 특히 살짝 데 친 잎을 쌈장에 싸서 먹으면 입맛을 돋게 하지요.
우리나라 전통의서인 『동의보감』에는 호박잎이 산모의 부종에 좋고 뼈가 삐거나 아픈 곳, 특히 멍이 든 곳에 바르면 효과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뼈를 튼튼하게 하고 칼슘 성분의 원천이라고 하니 골다공증을 염려하시는 분들은 잊지 말고 드셔 보시기 바랍니다.
호박잎 전
재료: 호박잎, 통밀가루, 채수, 간장, 식용유.
만드는 법
1. 싱싱한 호박잎을 준비하고 깨끗이 씻어 준비합니다.
2. 통밀가루에 채수를 넣어 반죽하고 간장으로 간을 합니다.
3. 호박잎 한 장에 반죽을 묻히고 팬에 기름을 두른 뒤 앞뒤로 지져 냅니다.
TIP.
- 통밀가루 대신 도토리가루나 메밀가루를 반죽하여 만들어도 좋습니다.
- 채수를 낼 때는 표고버섯, 다시마, 무말랭이, 말린 과일 껍질 등을 넣어 만들어 줍니다.
- 반죽의 농도는 엷게 해야 호박잎의 맛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수박고
재료: 수박
만드는 법
1. 수박의 껍질은 제거하고 빨간 부분만 잘게 썰어 줍니다.
2. 씨를 제거한 뒤 냄비에 수박을 넣고 약불로 시작해서 중불로 끓여 줍니다.
3. 수분이 반으로 줄면 다시 약불로 뭉근하게 끓여 주세요.
4. 과육이 걸쭉해지면 불을 끕니다.
TIP.
- 수박을 먹고 남았을 때 만들어 보면 좋습니다.
- 씨를 제거하지 않고 만들어도 상관없습니다.
- 여러 차례 끓이고 식히기를 반복하며 조청의 질감이 나도록 합니다.
- 끓여서 바로 드시거나 냉장보관하여 차게 드셔도 좋습니다.
- 수박고는 김치의 양념으로도 아주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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