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아름다운 불교의례 ]
마지 ❶ 마지, 후원에서 피워낸 신성한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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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래 / 2025 년 3 월 [통권 제143호] / / 작성일25-03-09 14:47 / 조회60회 / 댓글0건본문
사찰에서는 매일 사시巳時가 되면 부처님께 마지 공양을 올린다. 공양주가 정성껏 밥을 지어 불기佛器에 소복이 담은 마지는 사찰 후원後院에서 피워내는 신성한 꽃과 같다. 흰색이 지닌 성스러움과 봉긋하게 솟은 풍요로운 모습은 ‘밥’이 지닌 보편의 가치와 함께 부처님께 올리는 최상의 공양물로 부족함이 없다.
승가의 본사, 부처님을 기리는 공양
한국불교에서는 부처님께 올리는 밥을 ‘마지’라 부른다. 마지는 ‘공들여 만든[摩] 맛있는 음식[旨]’이라는 뜻으로 새겨 ‘마지摩旨’라 쓰는데, 우리나라에만 있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손으로 만져서 지은 밥’이라는 뜻에서 마지라 부른다는 견해도 있다. 예전에는 쌀에 뉘나 돌, 깨진 쌀이 많이 섞여 있어 이를 일일이 골라낸 다음 조리로 일어서 정성껏 밥을 짓고, 주걱으로 매끈하게 매만져 담는 일련의 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두 가지 모두 공들여 지은 음식이라는 공통의 뜻을 지녔다.

어원적으로 보면 마지는 ‘영약靈藥의 약초’라는 뜻을 지닌 산스크리트어 ‘maghi’에서 온 것으로 보고 있다. 당나라의 불교 용어사전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에도 한자 표기는 다르나 음이 같은 ‘마지’가 있어 이를 신단神丹이라 불렀다. 따라서 한국불교에서 산스크리트어를 한자로 음차音借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승가에서 발우에 밥을 나누어 담는 것을 진지進旨라 부르니, ‘어른의 밥’을 뜻하는 우리말 ‘진지’도 불교에서 온 용어일 가능성이 크다.
신령한 약초라는 마지의 뜻을 새겨보노라면 ‘부처님의 밥’이 지닌 상징성을 짐작하게 된다. 매일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에 사부대중의 지극한 정성과 귀의가 함축되어 있을뿐더러, 그 밥을 내려 다시 대중이 먹으니 부처님의 가피가 미친 신묘한 영약과 다름없다는 뜻일 터이다. ‘위로 올리는 지극함’과 ‘아래로 내려오는 가피’ 모두 단순한 밥을 넘어서서, 부처님과 그 가르침을 따르는 사부대중 제자들의 성스러운 종교적 구도가 담긴 것이다.
마지는 아침 9시에서 11시 사이의 사시에 올리는 것이기에 ‘사시마지’라 즐겨 부른다. 이때 공양과 함께 올리는 예경 의식을 ‘사시예불·사시불공’이라 하여, 조석으로 올리는 새벽예불·저녁예불과 합하여 삼시예불三時禮佛로 정착되어 있다.
사시예불은 부처님과 제자들이 정오가 되기 전, 하루 한 끼 공양한 오후불식午後不食·일종식一種食에서 유래하였다. 그 시간에 맞추어 불단에 마지를 올리며 승가의 본사本師인 부처님을 기리는 것이다.
이처럼 초기불교 당시 승단僧團에 공양 올리던 재가자들의 지극한 마음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아무리 작은 암자에서도 출가·재가의 제자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부처님께 마지를 올린다. 부처님께서 재가자들이 올린 공양을 받고 그들을 위해 법문을 베풀어 수행의 길로 이끌었듯이, 오늘날의 사시예불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새기는 수행의 자리이다.
‘중노릇 잘하고 복 받는’ 마지 괴기
사찰에서는 불기에 밥을 담는 것을 ‘마지 괸다’고 표현한다. 마지를 괼 때는 밥을 뜨는 큰 주걱과 함께, 물을 묻혀 봉긋하게 괴는 작은 주걱이 필요하다. 진관사 공양간에서는 마지를 다듬을 때 밥주걱을 기다랗게 반으로 잘라 만든 ‘마지칼’을 사용하고 있다. 공양간 스님들은 노스님들로부터 “마지를 빈틈없이 매끈하고 수북하게 잘 괴어야 복이 많고 중노릇 잘한다.”는 말씀을 소중히 이어간다.
일반적인 밥 푸기와 달리, 마지는 주걱으로 밥을 섞거나 휘젓지 않고 그대로 떠야 한다. 운문사 스님들은 이에 대해 “뒤집어 뜨지 않고 잘라 세워서 담는다.”고 표현하였다. 밥솥의 밥을 케이크 자르듯이 수직의 방사형으로 잘라서 불기에 담은 뒤 모양을 다듬는 것이다.
따라서 사찰 후원에 전하는 「원주일지」·「찬상일지」 등을 보면, 조리법이나 찬상 구성 등의 다양한 내용과 함께 마지 괴는 법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러한 기록은 후원의 가풍과 특성이 담긴 소중한 자료로, 후원 소임 중심으로 전승되면서 그 사찰의 음식문화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사찰마다 아침·저녁 공양은 남은 밥을 먹더라도, 사시에는 마지를 올리기 위해 새로 밥을 짓는다. 장작불을 때어 밥을 하는 통도사에는 전통 공양간에 4개의 가마솥이 걸려 있는데 가장 작은 것이 마지 솥이다. 마지 솥에 밥을 하고 불기에 담아 전각마다 올리는 모든 소임을 학인 스님들이 맡고 있다. 공양간 외벽에는 17개의 전각 명칭을 나란히 써놓아, 사시마지 시간이 되면 그 아래 탁자에 불기를 펼쳐두고 마지를 뜨게 된다. 빈틈없이 계량해서 짓고 뜨니 마지 솥의 밥은 한 톨도 남지 않는다.

송광사에서도 사시의 마지 밥과 오시午時의 대중 스님 밥을 따로 짓는다. 공양주가 탁자에 12개의 전각 명칭이 적힌 비닐을 펼쳐놓고 불기에 마지를 담아두면, 9시 20분경부터 각 전각의 마지 공양을 맡은 학인 스님과 행자들이 차례로 와서 마지를 나르기 시작한다. 마지를 올리는 곳은 대웅전·응진전·승보전·영산전·지장전·관음전·화엄전·약사전·국사전·사자루·해청당·조왕단의 12개 전각이다.
모든 전각에 마지를 나르고 나면, 공양간 가마솥에 대중 스님들의 오공午供을 위한 밥을 안친다. 부처님의 마지는 사시에 올리고 스님들의 점심은 오시(11~13시)에 이루어지니, 오시 공양을 줄여 ‘오공午供’이라 한다. 그런데 스님들은 오공을 ‘사시 공양’이라 즐겨 부르니, 실제 시간과는 다르나 부처님 사시마지에 이어 공양하는 의미를 중요하게 여긴 데서 비롯된 말이다.
한 치의 어긋남 없는 마지 나르기
마지를 나를 때는 오른손에 든 불기를 어깨 위로 올리고 왼손으로 오른팔을 받쳐든 채 조심스레 걷는다. 예전에는 삿된 기운이 침범하지 않도록 마지 뚜껑 위에 붉은 보자기를 덮었다. 불전에 올릴 마지를 나르는 데 한 치도 어긋남이 없게 하고자, 도중에 큰스님을 만나도 절을 올리지 않는 것이 법도이다. 그런가 하면 마지를 가마로 실어나르는 사찰도 있었다.
재齋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 정서에 최고 어른에게 올리는 음식 그릇을 그냥 손에 들고 가는 법이 없지요. 그래서 어른 스님들은 가마에 태워 다녔습니다. 공양물이나 음식을 손에 그냥 들고 가는 걸 낮게 보신 거지요.
삼척 안정사 주지 다여 스님의 말이다. 이곳에서는 대재大齋에서 마지를 올릴 때 불기를 가마에 실어서 이운할 뿐 아니라, 공양간을 지키는 조왕신이 앞장서서 호위하는 가운데 불단으로 이동한다. 평시의 마지 또한 호족반虎足盤에 담아 붉은 사각보를 씌워서 나르고 있으니, 지극한 정성으로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신심을 느낄 수 있다.
사시 무렵은 예불에 동참하기 위해 불자들이 절을 찾으면서 본격적인 활력을 띠는 시간이기도 하다. 불자들은 조석예불보다 사시예불에 가장 많이 참석하는데, 10시경이라는 시간의 적합성과 함께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공덕에 동참하기 위함이다.

마지 나르는 소임이 불단에 마지를 올리고 물러나면, 대웅전 소임의 노전爐殿 스님이 헌좌진언獻座眞言을 할 무렵 소종小鐘을 다섯 망치 울리고 불기 뚜껑을 열게 된다. 이때 치는 종은 부처님께 마지를 올린다는 신호로 ‘마지쇠·마지종’이라 부른다. 대웅전의 마지 종소리가 들리면, 이어 각 전각에서 마지 올리는 목탁 소리가 울려 퍼진다.
통도사에서는 대웅전의 마지쇠를 울리고 나서 바깥에 있는 소종으로 다시 마지쇠를 울린다. 법당 안의 마지쇠가 부처님과 동참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라면, 법당 밖의 마지쇠는 대웅전 부처님께 마지 올렸음을 각 전각에 알리는 확실한 신호이다. 이제 삼보를 청해 공양 올리는 삼보통청을 하고 그 공덕이 동참자들에게 두루 미치도록 축원을 이어간다. 새벽예불에는 발원문을 읽고 사시예불에는 축원문을 읽는 것이 특징이다.

예불을 마치면 마지를 중단으로 퇴공退供하여 신중에게 예불을 올리고, 각 전각의 마지를 퇴공 솥에 모은다. 송광사에서는 사시 무렵에 부처님의 마지 밥과 스님들의 오공 밥을 각각 지어서 다음 날 아침까지 끼니로 삼는다. 불기가 커서 전각 12곳에 올린 마지만 내려도 40인분 이상이 되니, 넉넉하게 지은 오공의 가마솥 밥을 합하여 저녁과 이튿날 아침 죽까지 공양하는 것이다.
따라서 스님들은 “탁자 밥 내려 먹은 지 몇 년 되었다.”는 표현을 일상적으로 쓴다. 이때의 탁자는 불단을 말하고, ‘탁자 밥’이란 마지를 뜻한다. ‘탁자 밥 내려 먹기’는 승가의 일상사이니 출가를 뜻하는 말과 동의어로 쓰는 셈이다.
사시마지와 연동된 오시 공양
사시마지와 오시 공양은 ‘승가의 근본 스승인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공양’이라는 의미로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다. 오후불식을 한 부처님의 공양 시간에 맞추어 사시에 마지를 올린 다음, 제자들이 이어서 오시에 공양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찰에서는 삼시 공양 가운데 오시 공양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면서, 발우공양을 할 때도 ‘법공양法供養’이라 하여 여법하게 행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법공양에서는 가사를 갖추고 절차마다 게송을 외며, 헌식을 위해 각자의 밥알을 더는 생반生飯의 절차도 두고 있다. 이처럼 오시 공양을 법공양이라 부르면서 묵언의 발우공양과 구분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한국불교의 특징이기도 하다.
오시 법공양의 전통이 깊은 송광사는 이러한 의미를 빈틈없이 구현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찰이다. 마지종을 울려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나면, 10시 반이 지나면서부터 각 법당의 마지 퇴공退供과 청수 퇴수退水가 이어진다. 오시 밥공양을 알리는 종은 ‘11시 7분’으로 정해져 있는데, 이는 마지 퇴공과 오차 없이 분 단위로 연동된다. 사시예불을 마치고 대웅전에서 마지를 퇴공하면 소종을 다섯 망치 쳐서 법공양의 시작을 알리는데, 이 종을 사중에서는 ‘밥종·공양종’이라 부른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배치도 주목할 만하다. 모든 법당의 마지와 청수가 통과하는 선열문禪悅門은 대방 뒤로 나 있고, 문 바로 옆에 퇴수구가 있다. 밥종 또한 마지가 통과하는 문 옆에 달아놓아, 대기하고 있던 소임자가 대웅전 마지 퇴공과 청수 붓기를 확인한 다음 밥종을 치는 것이다. 따라서 밥종은 오시 공양을 알리는 소리이자 부처님 마지를 마쳤다는 신호이다.
밥종이 울리면 사시예불을 마친 스님들과 선방 스님들이 가지런히 열 지어 나는 기러기처럼 안행雁行을 이루어 선열문으로 들어선다. 스승의 사시 공양이 끝난 뒤 그 제자들이 오시 공양하는 뜻이 일련의 행위에 잘 담겨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공양에 이어 스님들이 나란히 큰방으로 향하는 모습에서, 부처님의 길을 따르리라는 출가자의 묵묵한 다짐이 그대로 담겨 있는 듯 느껴진다.

마지 밥을 공유하는 존재 또한 널리 확산된다. 사시예불을 마치면 헌식 소임이 마지 밥을 한술 덜어 헌식대에 올려둠으로써 굶주린 뭇 중생에까지 미치는 것이다. 재가 들어 떡·과일·한과 등의 재물을 불단에 올렸다면, 이 또한 스님들은 물론 그들까지 고루 맛볼 수 있다. 부처님의 가피 깃든 마지가 제자들에게 이어지고 굶주린 생명에까지 베풀어지니, 널리 퍼져 가는 마지 공덕이 무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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