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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❶ 이슬람 국가에서 꽃핀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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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열녕  /  2025 년 1 월 [통권 제141호]  /     /  작성일25-01-05 13:36  /   조회8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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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의 종교’라고 하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아마도 곳곳에 보이는 이슬람 사원과 히잡을 착용하는 여성 등 전형적인 이슬람 국가의 이미지일 것이다. 사실 말레이시아의 공식 종교가 이슬람교이긴 하지만 종교의 자유는 헌법 제11조에 의해 보장되고 있다.

 

사진 1. 말레이시아 크다 주에서 발견된 불상(8~9세 추정). 사진: BERNAMA.  

 

이러한 환경 속에서 말레이시아의 불교는 다른 종교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건국 초부터 지금까지 빠른 속도로 발전해 왔다. 1975년에야 부처님오신날을 공휴일로 지정한 한국과 달리, 말레이시아는 1962년에(당시 국호는 ‘말라야’) 이미 부처님의 탄생, 성도와 열반을 기념하는 웨삭데이(Wesak Day)를 전국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는 불교가 이슬람 다음에 신자 수가 제일 많은 종교라서 가능했던 일인 것 같다.


 

말레이시아 불교의 양대 산맥: 상좌부 불교와 중국식 북방 불교

 

2024년 여름, 말레이시아 과학대학교(Universiti Sains Malaysia)의 고고학 연구팀이 크다(Kedah) 주에서 발견한 불상을 공개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 불상은 8~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말레이시아 불교는 천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교가 전래되면서 불교의 맥이 거의 끊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 1-1. 말레이시아 크다 주에서 발견된 불상(8~9세 추정). 사진: BERNAMA. 

 

현대의 말레이시아 불교는 영국 식민지 시대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중국식 북방 불교는 화교들에 의해 전파됐고, 남방의 상좌부 불교는 스리랑카, 태국과 미얀마 이민자들에 의해 전래됐다. 포교하러 온 스님들 역시 이민자였다. 중국에서 온 스님 중 축마竺摩 스님, 광여廣餘 스님과 금명金明 스님이 유명했고, 스리랑카 출신 스님 중 2006년에 입적하신 스리 담마난다(K. Sri Dhammananda) 스님이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진 2. 담마난다(Dr. K. Sri Dhammananda, 1919〜2006). 사진: Nalanda Buddhist Society Malaysia. 

 

대승 보살도를 실천하는 북방 불교는 중국계 사회에 전파됐고 그 신도들은 주로 중국어(또는 중국어 방언)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상좌부 불교는 크게 스리랑카, 태국과 미얀마 세 계통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중에서 스리랑카 계통의 영향력이 제일 크다. 초기에는 상좌부 불교의 신자들은 주로 영어를 모어로 하는 중국계와 인도·스리랑카계였지만 나중에 중국어 방언과 표준 중국어로 설법하는 스님이 많아지면서 포교의 범위도 점점 확대됐다.

 

사진 3. 2014년 말레이시아 항공 370편 실종 당시, 상좌부 불교 스님과 북방 불교 스님들이 전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실종자들을 위한 발원문을 함께 낭독하고 있다. 사진: 불광산사 인간통신.

 

남방 불교와 북방 불교가 공존하는 말레이시아에서는 ‘소승불교’라는 말은 거의 들을 수 없다. 영어로 대화할 때 ‘Hinayana’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다. 산스크리트어 ‘hīna’는 말레이어에도 차용됐는데 ‘작다’가 아닌 ‘천하다’의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식 북방 불교 사찰에서는 항상 신도들에게 상좌부 불교를 ‘남전불교南傳佛敎’, 즉 남방 불교라고 부르도록 가르친다. 

 

사진 4. 웨삭데이 제등행렬에 등장한 말레이시아불교총연합회의 장엄등. 사진: 光華日報.

 

두 전통의 불교는 서로 존중하고 힘을 합친 덕에 불교가 다민족·다문화 사회인 말레이시아에서 일찍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웨삭데이의 공휴일 지정도 북방 불교와 상좌부 불교 교단이 함께 이룩한 성과이다. 나중에 티베트 불교까지 들어와서 남방·북방·티베트 3대 전통이 말레이시아 불교를 대표하게 됐다. 해마다 봉행하는 전국 또는 국제 공승법회供僧法會에서는 각 전통의 스님들이 한자리에 모여 음식이나 가사 공양을 받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종교 인사들이 참석하는 국가 중요 행사에서도 각 전통의 가사를 수한 스님들이 함께 참석한다. 

 

전국적 불교조직 말레이시아불교총연합회

 

다양한 전통의 불교도들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한 것은 체계적인 조직들이다. 그중에서 전국의 출·재가자를 대표하는 단체는 바로 1957년에 창립된 말레이시아불교총연합회(Malaysian Buddhist Association, 馬來西亞佛教總會)이다. 페낭Penang 주에 본부를 둔 이 단체는 한국불교종단협의회와 성격이 다르다. 말레이시아불교총연합회의 회원은 단체 회원과 개인 평생회원으로 나뉜다. 사암과 신행 단체는 물론 불교 재단이 설립한 학교도 단체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고, 만 18세 이상의 출·재가자들은 개인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데 비구와 비구니 개인 회원은 승가증僧伽證을 발급받아야 한다. 

 

사진 5. 말레시아불교총연합회. 사진: 말레시아불교총회.

 

말레이시아불교총연합회는 대내적으로 다양한 전통과 종파의 출·재가자들을 단합시켜 부처님의 법을 전하고 실천하며, 대외적으로는 불교계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산하 기관으로는 1970년에 설립한 말레이시아불학원(Malaysian Buddhist Institute, 馬來西亞佛學院), 말레이시아불학고시위원회, 의료센터(무료), 유치원, 청소년 담마스쿨 등이 있다. 또한 불교계 대표로서 기독교(천주와 개신교 포함), 힌두교, 시크교, 도교 단체와 함께 5대종교자문협의회(Malaysian Consultative Council of Buddhism, Christianity, Hinduism, Sikhism and Taoism)를 창립해 비非 이슬람교와 관련된 종교 문제에 대해 정부와 교섭해 왔다.

 

사진 6. 말레시아불학원. 사진: 말레시아불학원.

 

이 단체는 출·재가자를 모두 포함한 조직이지만 요직은 주로 스님들이 맡는다. 불교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 항상 스님들이 나서서 목소리를 내곤 한다. 예를 들어 1982년에 배우 이연걸이 주연한 영화 ‘소림사’가 말레이시아에서 상영되기 전 말레이시아불교총연합회가 영화심의청에 서한을 보내 극중에서 출가자가 육식·음주·살생하는 장면을 모두 삭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 결과 말레이시아 영화심의청에서 요구된 내용보다 더 많은 분량을 삭제했다. 한국의 ‘뉴진스님’이 공연하러 갔을 때 역시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젊은 재가불교

 

출가자 외에 재가불자도 각계각층에서 활약하고 있다. 특히 청년 불자들은 포교의 일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 불교는 오래전부터 청소년을 중요시하는 포교를 실천해 왔다. 스리랑카 사찰에서 먼저 도입한 일요일 청소년 법회(담마스쿨)는 나중에 중국식 사찰에 확산되어 거의 전국 사찰의 상설 법회가 됐다. 이런 청소년 포교를 지원하기 위해 불교총연합회에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단계별 청소년용 불교 교과서를 제작·배포하기도 했다.

 

사진 7. 국립말라야대학교 불교학생회에서 2006년에 제작·발표한 창작 찬불가 앨범 ‘법음청류’.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는 중국계 불자를 주축으로 한 불교학생회 역시 매우 다양한 활동으로 동년배에게 불법을 전해 왔다. 그중에서 불교 음악을 이용한 포교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말레이시아의 찬불가는 음대 교수나 성악가가 아닌 청년 불자에 의해 많이 창작된다. 그렇다고 힙합이나 락 같은 장르를 선택하는 것도 아니다. 이 찬불가들은 주로 통기타나 피아노로 연주하기에 적합한 서정적 편곡으로 되어 있다. 1961년에 창립된 국립말라야대학교(University of Malaya) 불교학생회에서 창립 45주년을 맞아 2006년에 제작·발표한 창작 찬불가 앨범 ‘법음청류法音淸流’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한국에서 ‘이미 우이(Imee Ooi)’로 알려진 말레이시아 불교 음악가 황혜음黃慧音이 창작한 작품 역시 그런 ‘자극적이지 않은’ 음악 장르에 속한다.

 

한편, 대만 법고산 성엄聖嚴 선사의 선맥을 이은 계정繼程 스님이 1990년대 중반에 창설한 ‘전국 대학생 불학 연수반’은 수많은 대학생을 불교에 입문시켰다. 이 프로그램은 일주일간 사찰에 머물면서 경전 공부와 참선을 하는 것인데 수십 년 동안 대학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 대학 불자들은 나중에 각 사찰이나 신행 단체에서 활발하게 포교하거나 출가한다. 대만의 자제공덕회가 말레이시아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것도, 성운星雲 스님이 창건한 불광산사의 출가자 중 말레이시아 출신 젊은 스님들이 많은 것도 모두 말레이시아 불교계가 그동안 청소년 포교에 심혈을 기울인 덕분이다.

 

사진 8. 대한불교조계종의 초청으로 2015년 세계평화기원대회에 참석한 말레이시아불교총연합회 스님들. 사진: 필자.

 

개그맨 뉴진스님 공연 취소

 

말레이시아 불교는 한국과 달리 ‘불교 인구 감소’나 ‘교세 위축’을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이웃 종교와도 충돌 없이 평화롭게 지내 왔다. 대신 ‘부불외도附佛外道(불교에 빌붙은 외도)’와의 갈등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가는 앞으로도 직면해야 할 문제로 보인다. 특히 중국식 북방 불교에서는 유교와 도교의 요소가 녹아든 불교신행 활동에 대해 관대하면서도, 전통적인 상좌부·북방 불교·티베트 불교의 전승에 속하지 않는 신흥 종파에 대해서는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 불교의 교리를 왜곡하거나 출가자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일에 대해서는 더더욱 용납하지 않는다. ‘뉴진 스님’의 말레이시아 공연 취소 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젊은 불자 중 ‘뉴진 스님’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 ‘뉴진 스님’의 공연이 흥미롭고 멋지며 불교 교리에 어긋나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공연을 공권력까지 동원해서 막는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앞으로 이런 형태의 ‘포교 음악’이 외부에서 계속 유입될 텐데 말레이시아 불교계에서도 대응 방식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다. 강력하게 ‘파사破邪’하는 것보다는 그동안 해 왔던 것처럼, 유연한 자세로 청소년 포교에 전력을 다하다 보면 저절로 ‘현정顯正’이 이뤄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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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열녕
말레이시아 페낭 출생. 국립말라야대학교 중문과 졸업.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문학박사(국어학 전공). 광운대 글로컬교육센터 부교수. 주요 논문으로 「'인두' 어원 연구」, 「어원에 입각한 한자어 판별 기준」, 「다국적 학습자를 위한 LBH 한자어 학습교수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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