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 큰스님 추모 기사]
인연의 고리에 매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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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 필자 / 1996 년 12 월 [통권 제4호] / / 작성일20-05-06 21:16 / 조회8,125회 / 댓글0건본문
지난 10월 24일, 성철 큰스님의 열반 3주기를 맞이하여 일체중생의 행복을 기원하는 “남을 위해 기도합시다” 칠일칠야 참회법회 기도 입재를 오전 7시에 마치고 10시에는 신도 및 문도 스님들이 모인 가운데 큰스님 존상 제막법회를 봉행하였다. 이 존상(尊像)은 높이 1.8m, 무게 1000㎏의 청동반가상으로 오른손에는 육환장을 집고 계시는 모습이다. 1년 6개월의 지난한 작업 기간을 기도와 정진으로 일관한 조각가 강대철 씨가 한 숨 돌리고 작업 기간 동안의 감회를 글로 적어 보내주셨다.
대학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 불교는 네게 생소한 종교였다. 더욱이 집안의 종교가 기독교인 분위기 속에서 자란 나에게 어린 시절 탁발 다니는 승려를 보면 어떤 이질감을 가질 정도로 편협된 종교적 정서를 교회의 주일학교에서부터 갖게 되었던 듯싶다. 또한 청소년기를 거쳐 청년기에 이르도록 불교는 네게 미신을 믿는 저급한 종교로만 생각되었던 것은, 읍내 변두리에 있던 절이 산신각이나 칠성당이 함께 어우러져 있었던 터라 할머니나 여인네들이 기복적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고 그러한 풍경들이 더욱 그러한 사고방식을 갖게끔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네게 불교가 다른 차원의 모습으로 다가오게 된 것은 불상조각에 동참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부터였다. 미술대학 재학시 담당교수로부터 자신의 작업에 동참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그 작업은 70년대에선 가장 큰 불사 중 하나가 된 거대한 청동불상 조성 작업이었다. 십여 미터가 넘는 아미타여래상 제작이었는데 교수를 중심으로 한 조각팀은 일곱 명으로 구성되었고, 당시로서는 워낙 큰 조형작업이었기에 치밀한 계획과 설계가 이루어져야만 했다.
불상 조각은 일반 조형물과는 달라 본상을 제작하기 전에 많은 모형을 만들어 보아야 한다. 불상은 시대에 따라 또 불상이 지니고 있는 이름에 따라 그 얼굴 모습과 몸의 자세를 달리했기 때문에, 몇 가지 모형을 만들어 봤으나 모두에게 만족할 만한 불상의 모습이 나오질 않았다. 어떻게 하면 이 시대의 가장 그럴 듯한 부처님 상을 만들어 내느냐 하는 고민 끝에 조각팀들은 한 달간 전국의 유명사찰을 여행하기로 하였다. 사찰 여행을 하면서 각 불상의 표현양식과 얼굴표정을 연구하고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더욱이 문화재로 지정받고 있는 수준 높은 불상들에 대한 실제 견학을 통해 우리가 조성하고자 하는 불상의 기본 표정과 양식을 결정짓는 데 그 한 달간의 여행은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불상 제작을 위한 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사찰을 자세히 답사한 나로서는 불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저 고향의 산신각과 칠성당이 어우러져 있는 작은 절의 분위기를 불교로만 생각하고 있던 나는, 한 달간의 사찰 여행을 통해 불교는 고등종교로서 아직은 내가 알 수 없는 엄청난 어떤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이러한 인식전환은 여행 도중 만났던 몇 몇 스님들과의 대화와 그들의 수행방법을 겉으로나마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그 후 기회가 닿는 대로 불교에 관한 서적을 읽게 되었고, 나름대로 현실을 살아가면서 삶에 대한 어떤 확실한 답을 찾아보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책을 통해 불교의 지식을 얻을 수는 있었으나 실제 생활 속에서 내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삶의 방법을 체득하기엔 많은 시간과 방황이 있어야만 했다. 이런저런 명상법을 통해 어떤 경계를 얻고자 허튼 욕망을 부려보기도 했고, 이러저러한 수행자들을 찾아 의문 나는 문제점들을 묻기도 했으나 내적인 방황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던 게 불교를 지식적으로 어느 정도 접근한 후에도 계속되는 생활이었다.
조가가로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때로는 내가 체험한 정신적 세계의 경계라면서 어줍잖게 작품의 주제로 삼아 발표하기도 했으니 마음공부를 핑계 삼아 자신의 비틀려 있는 습기를 즐기려 했던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게 작가로서의 내 모습이었다.
80년대 초, 성철 큰스님께서 불교계의 새로운 거듭남을 위해 종정 직책을 수락하시면서 세간에 보내신 말씀은 당시 불교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불교에 대한 새로운 호기심과 신선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었다.
“…산은 산이요 불은 물이다.”
높은 지혜의 경지에서 일갈하신 말씀을 놓고 세간의 사람들은 각자의 경계에서 이러쿵저러쿵 말들도 많았으나 어쨌든 그것은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하게 되었던 분위기의 한국 불교계를 거듭나는 산, 거듭나는 물이게 하신 말씀이었다. 성철 큰스님의 그러한 세간으로의 나타나심은 어줍잖은 불교지식으로 자신의 작품세계와 인생을 저울질해 보던 내게도 영적인 충격의 산으로 나타나셨던 것이다.
그렇게 내게는 아직은 멀리 있는 산의 모습으로만 계시던 성철 큰스님이 1993년 11월 4일 열반에 드심으로써 다시 한 번 한국불교의 위상을 국내는 물론 국제적 관심사로 불러일으키게끔 원력을 일으키셨으니, 조선시대 이후 불교가 온 국민의 관심사로 들끓게 했음은 전무후무했던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모든 메스컴들은 밤을 새워 스님의 다비식을 생중계했고 우리나라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큰 도인의 원력이 어떻게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가를 실감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다비식 후 거두어진 유골 속에서 드러난 영롱한 사리의 모습이 TV 화면을 통해 공개되자, 오감(五感)에 와 닿게 하는 물질적 경계를 통해서만 믿음의 자리를 챙기는 저급한 현대인의 메마른 가슴에 쾅쾅 두드리는 깨우침의 메시지로 전해지기도 했다.
해인사 계곡이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물결로 가득한 속에서 나도 꼭 두 눈으로 스님의 영롱한 메시지를 확인하고 그 앞에서 경배를 드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사리 친견을 마치고 돌아온 후, 나의 머리 속은 스님의 온갖 메시지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것은 조형작가로서 내가 추구하고 있는 ‘생명’에 대한 화두를 비로소 풀어 낼 수 있으리라는 예감이기도 했었다.
그 후 스님의 사상을 담은 책들과 법어짐을 읽으면서 나의 두서없었던 불교적 이치와 세계관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스님이 사상이 조금이나마 내 경계 속에서 파악되어지는 부분이 있게 된다면 그 내용을 조형작업으로 표현하리라는 구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곤 스님의 존상을 내 손으로 직접 제작하여 내 작업실에 모셔 놓으리라는 계획까지 세우기도 했다.
스님께서 내 욕망으로 계획된 생각들을 그래도 가상히 생각하셨던가, 1995년 봄 성철 큰스님의 존상제작 의뢰를 원택 스님으로부터 받았을 때, 나의 감격은 더할 나위 없었다. 얼마나 내가 간절한 마음으로 스님의 모습을 조형화해 보고 싶어했기에 스님께서 그 생각을 들어주셨을까.
정식으로 스님 존상 제작 의뢰를 받은 날, 나는 밤이 깊도록 잠들지 못했다. 그리고는 스님이 이십대의 젊음을 이끌고 구도의 길을 가기로 결정하시며 지으셨다는 출가시(出家詩)를 몇 번이고 되뇌어 읊조려 보았다.
彌天大業紅爐雪
跨海雄基赫日露
誰人甘死片時夢
超然獨步萬古眞
하늘에 넘치는 큰 일들은
붉은 화롯불에 한 점 눈송이요
바다를 덮는 큰 기틀이라도
밝은 햇볕에 한 방울 이슬일세
그 누가 잠깐의 꿈 속 세상에
꿈을 꾸며 살다가 죽어가랴
만고의 진리를 향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초연히 나 홀로 걸어가노라
내가 스님의 출가시를 읊조림 것은 스님의 존상을 제작 하는 동안이라도 내가 끌어안고 있는 세속의 인연들을 잠시 잊고 출가하는 마음으로 스님의 모습을 재현시켜 보고 싶은 열망에서였다. 스님의 상을 제작하는 동안, 나는 세속을 살아가면서 인과에 순응하지 못하고 나의 인연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직도 분별심으로 보고 있는 마음자리를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는 다짐 속에서 기도하는 마음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작업은 매일 백팔배를 함으로써 시작되었고, 작업이 끝난 저녁시간엔 될 수록 명상의 시간을 오래 갖고자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잘 해 보려는 욕심이 지나쳐서 였을까. 점토를 붙여가면서 형태가 점점 드러날수록 불안해지고 때론 자신마저 없어지기도 했다. 어쩌면 이 소중한 작업이 내겐 너무 벅찬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스님의 모습이 담긴 『포영집』을 수십 번 다시 들쳐보고, 또 비디오 테잎에 기록된 모습들도 여러 번 재생하여 되돌려 보면서 스님의 파장을 내 의식 속에 연결시키려 조바심을 내기도 했다. 수차례 원택스님과 문도스님들의 지적과 감수를 통해서 스님의 이미지가 잡혀가기 시작했을 때, 그때서야 겨우 불안감을 떨칠 수 있었다. 그리곤 제작 중에 큰스님께 떼를 쓰듯 매달렸다.
“스님! 스님의 존상은 제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스님이 이 모습을 통해 다시 백련암 신도들 앞에, 수많은 대중들 앞에 다시 나타나주셔야 합니다. 그러니 무딘 제 손끝을 꾸중하지 마시고 스님 스스로 나타나 주셔야 합니다.”
점토원형 작업이 완성되었을 때 나는 만족할 수 있었다. 청동 주물작업도 성공이었다. 완성된 청동 존상이 작업실 마당 가운데에서 태양 광선을 받으며 선명한 윤곽을 드러내 보였을 때, 이제 내가 할 일은 다했다는 만족감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완성된 존상을 고심원에 모셔놓고 보니 다시 불안해지고 말았다. 태양광선 속에서 보여주시던 스님의 모습이 아니었다. 실내의 흩어진 광선과 적절하지 못한 조명 때문에 뚜렷한 안광과 얼굴 표정을 드러내 보이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리 조명광선의 각도와 위치를 계산해서 적절한 위치에서 조명이 이루어져야 함을 미처 챙기지 못한 탓이었다. 조각으로 표현된 인물상은 평면그림과 달라 특히 광선의 위치와 밝기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갖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실내에 놓이는 인물조각상의 경우, 조명과 조명의 조절기능이 절대적인 조건인 것이다.
그러한 기본상식을 알면서도 현지에다 충분히 여건을 마련하지 못했던 것은 내 감정에 내가 너무 취해 있었기 때문이었고, 작업이 이루어지는 작업실 공간 속에만 완전히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현재의 적절치 못한 환경은 개선을 하면 되지만 스스로 업장애의 그물에 걸려 전체를 순리 있게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신의 자리에만 집착해서 어떤 상황이나 일을 판단하는 어리석음, 욕심으로 일을 하다 보니 또 저지르고 만 셈이었다. 어찌 보면 선욕(善慾)이라 할지라도 전체를 보게 하는 지혜를 흐려 놓는 업장애임을 일깨워주는 스님의 가르치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스님의 존상작업은 끝났지만 내겐 이제 스님에 관한 얘기들을 풀어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아마 조각가로서 조형작업을 통해 큰스님의 발자취와 그 사상의 변두리라도 접근해 보고 싶은 바람에서 생기는 욕심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 욕심은 내 인생의 길을 영적으로 높이기 위해 스님의 가피를 받고 싶은 간절한 소망 때문일 것이고, 지금까지도 소중한 인연이었지만 더 높은 경계에서 이어지는 인연으로 승화시켜 보고 싶은 구도적 열망에서 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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