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 큰스님 추모 기사]
부디 이 땅의 업장 가운데 다시 오셔서 “잠자지 말라” 외쳐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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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 1996 년 9 월 [통권 제3호] / / 작성일20-05-06 08:32 / 조회8,319회 / 댓글0건본문
큰스님을 생각하며 / 부디 이 땅의 업장 가운데 다시 오셔서 “잠자지 말라” 외쳐주소서
고은 / 시인
성철 큰스님의 열반으로 새삼 출가 승니(僧尼)의 본분을 생각한다.
세상이 당장 통쾌한 말을 듣고자 했을 적에 그 분은 『벽암록(碧巖錄)』 속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를 읊어 옛 소리를 살려냈다. 이에 혹은 어리둥절했고 혹은 과시평상심저(果是平常心底)로구나 했으리라. 이 말의 파장이 있었던 바는 저 처참한 80년대 초가 아니었던가. 나야 그것을 들을 처지도 아니었다. 하지만 긴 안목이건대, 한 시절에 값하는 수작일 뿐이라면 그것은 출격장부(出格丈夫)의 소임이 아닐 터이다.
그 분은 비구승단 조계종의 종권 확보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같은 연배의 지난날 결사도반(結社道伴)들이 배를 가르고 손가락을 자르는 위법망구(爲法忘驅)에 여념 없을 때도 다못 팔공산 성전 토굴에서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 일 하나로 보아도 스승 하동산(河東山) 스님까지 능히 저버리는 정진의 이판(理判)이었다. 하기야 그 옛날 금강산 선방에서 공부할 적에 거기까지 찾아온 어머니한테 돌팔매를 던진 데서 그 단호한 임제가풍(臨濟家風)의 의지는 비롯되고 있다. 말 그대로 한 번 산에 들면 그 산을 나가는 길을 없애 버린 것이다.
불법이 중생을 위한 온갖 방편을 다 발원하여 우리로 하여금 멀리는 원효(元曉)의 길이 있고 가까이는 경허(鏡虛)와 만해(萬海)의 길이 있건만 그 분은 그런 선사(先師)들도 한 방망이로 타파한 납자 그 자체였다. 이로써 생각건대, 한 번 집을 나간 중은 첫째 정진(精進)이 으뜸이라는 그것이다.
결연히 보살의 화현(化現)으로 나서서 세상만사에 동참하는 일이 쉬운 노릇이 아니건만 일단 축발(祝髮) 이후의 산중살림이라면 그 바탕에 공부가 먼저 있어야 마땅하다. 이것이 상구보리(上求菩提)의 진면목이다.
성철 큰스님은 바로 이 점에서 작금의 불교계에 뇌성벽력을 내리친 권보살(權菩薩)이며, 다른 모든 종교계에도 말의 거짓, 말의 집착에 대한 경책을 보낸 이보살(理菩薩)이었다. 초조(初祖) 달마 9년 변멱(面壁) 정진과 어깨를 겨루어 오늘의 선지식 중에 8년 동안 눕는 일 걷어치운 그 치열한 용맹이 어찌 일대사인연 아니랴.
말을 하기로 하면 그 분만큼 현학적일 정도의 해박한 식견도 없거니와 그 분이 설한 성철오계(性徹五戒)의 으뜸이 ‘말 많이 하지 말라’는 것이었고, 이어서 ‘책의 문자에 다가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말의 생명을 살려내자는 것밖에는 다른 바 아니라면 그 분의 원력으로 완간한 선림고경총서(禪林古鏡叢書)와 법어집은 그 분의 열반을 앞둔 선지(禪旨)의 결집(結集)이매 새삼 눈물겨운 일이다.
성철 큰스님은 자애롭다, 천진이다 하고 누가 말하지만 그 분의 특장(特長)은 엄혹 거기에 있다. 사람 하나 다루는 데도 금강산 1만 2천 봉을 다 써버리며 시자나 상좌 하나 길러내는 데도 향수해(香水海) 바닷물을 다 써서 그 파도에 실려 보내는 것이다. 실로 자비문중(慈悲門中)의 무자비(無慈悲)였다. 그런 뼈 으스러지는 공부를 통한 뒤에라야 겨우 가야산 겨울 홍시 두어 개를 따먹으리라 하는 것이다.
앞으로 산중에 이런 스님이 또 나타나야 한다. 문이 없이 그냥 벌판의 무애(無碍)도 썩 좋으나 문 닫혀 꽉 막힌 그 오도 가도 못할 궁처(窮處)가 있어야 한다. 거기에 백척간두진일보가 있음이라면.
성철 큰스님은 소금 없는 식단으로 한 평생을 다하였다. 그 분 자신이 소금이었기 때문인가. 이 세상 썩어 가는데 그 소금의 법(法)이 있어 아직 이 세상은 그 분의 열반에 옷깃을 여미는 것이다.
이제 연화대에 하화(下火)하면 그 연화대가 화중연화(火中蓮華) 아니랴. 부디 이 땅의 수고 많은 업장(業障) 가운데 다시 오셔서 잠자지 말라 외쳐 주소서. 부디부디 산이 물이요 물이 산이로다 하고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어긋나 새로운 법계에 주장자를 치소서.
* 이 글은 성철 큰스님이 열반하신 93년 11월 4일 이후, 각계의 인사들이 스님이 열반을 애도하는 글을 발표한 가운데 경향신문 11일 자에 실린 고은 시인의 추도사입니다. 3주기를 즈음하여, 큰스님께서 우리 곁에 오고 가신 뜻을 깊이 생가하며, 이 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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