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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하고 아름다운 인연]
“선생이 졸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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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 필자  /  1997 년 6 월 [통권 제6호]  /     /  작성일20-05-06 08:32  /   조회9,528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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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주/명성여자고등학교 교감

 

불기 2511년(1968) 4월 초순, 동국대학교의 책임 있는 분이 나에게 자문을 구해 왔다. 4․8행사 때 사용하는 부처님 탄신일 명칭 개정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당시는 조계종의 큰 행사는 동국대학교가 주관이 되어 계획하고 실행하던 때였다. 불교가 이 땅에 전래된 이래 4월 초파일은 석탄절(釋誕節), 불탄절(佛誕節), 석가탄신일(釋迦誕辰日), 성탄절(聖誕節) 등의 혼란스럽고도 대중성이 없는 이름으로 우리 민족의 문화 현상인 체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때에 내게 닥친 거대한 불사(佛事)의 역할이야말로 부처님의 가피가 아닌가 싶었다. 골몰하던 중 ‘부처님 오신 날’이 순수한 우리말의 표현으로 적합할 것 같다는 의견을 전달했더니 4․8봉축준비위원회 심의를 거쳐 나의 제안이 채택된 것이다. 그리하여 조계종 총무원에서는 1968년 5월 5일(불기 2511년 음 4월 8일)부터 ‘봉축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사용하도록 전국 사암에 공문을 발송하였다.

 

 

 

 

참으로 감개무량했다. 영겁(永劫)의 인연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즈음 동국학원 산하 초중고등학교에서 가장 먼저 학생법회가 진행된 학교가 명성여자 중․고등학교였다. 1968년 학교법사〔敎法師〕제도가 마련되기 전에 이미 두 번의 불교학생회 수련대회가 개최되었고, 교직원 법회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동국학원 초대 교법사의 소임이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30여 년간, 이 학교를 부처님의 품 안이라 생각하고 교사로서, 불자로서 보람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교법사로서 활기찬 포교활동에 매진하고 있을 때, 명성여중고 불교학생회의 세 번째 수련대회가 해인사 홍제암에서 개최되었다. 그런데 그 많은 수련회 가운데 이 세 번째가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왜일까. 돌이켜보니, 아마도 성철 방장 스님의 그늘에서 실시한 수련회이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여름방학 중 5박 6일간 가야산 수련의 인연이야말로 어찌 감동이 아니라고 표현하겠는가?

 

40여 명의 학생과 인솔교사 2명이 서울에서 출발, 대구를 경유하여 해인사를 향한다. 가야산 입구에 들어섰을 때, 우리 일행은 모두 황홀감에 사로잡혔다. 계곡을 부딪쳐 쏟아져 내리는 백색 물기둥이 우리 눈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쭉쭉 뻗어선 소나무 군상들은 그야말로 선경(仙境)이 아니런가! 신라국 최치원 선생께서 풍월 읊으며 살아 있을 법도 한 비경(秘境)이 바로 이곳인 듯하였다. 사명대사가 입적한 곳으로 유명한 홍제암(弘濟庵)에 도착하여 마루 사이에 불교학생회 플래카드를 걸어두고 입제식을 시작으로 부전스님의 진행에 따라 수련회가 착착 진행되었다.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이 서로 도우며 밥 짓고 나물 다듬고 대중공양하고 암자 안팎을 청소하고, 기도․여불․참선․사하촌 일손 돕기 등등 길 닦는 일〔修鍊〕이 무르익을 무렵이었다. 회향일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원주(院主)스님은 수련회 회향식 때 성철스님 설법을 들어야 한다고 일러주셨다. 나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3천배 기도 성취가 있어야만 청법(請法)이 가능하다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저절로 하는 것이 절〔拜〕이라지만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지 아득하기만 했다. 3천배를 하는데 도무지 몇 시간이나 소요될지 선뜻 개념이 잡히지 않았다. 또 학생 중에는 몸이 불편한 아이도 있고 약한 아이도 있는데, 이를 어쩐담. 우선 내 자신이 학생인솔 등으로 피로가 쌓여 있어 삼천배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전혀 내색할 수가 없었다.

 

 

성철스님과의 기념촬영. 동그라미 안이 필자

 

 

그러나 어쩌랴. 이미 주어진 일, 인연따라 가다 보면 어찌 되겠지. 인솔교사와 수련회 참가학생 모두는 3천배를 하기 위해 해인사 큰 법당인 대적광전(大寂光殿)에 자리를 잡았다. 집전스님의 격려에 힘을 입으며 한 배 한 배 절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무더운 여름 낮, 40여 명이 뿜어내는 땀 냄새와 계속되는 목탁소리! 찬물이 가득 담긴 양동이와 물바가지가 높은 인기였다. 목이 타면 찬물을 마시고 또 마시고. 안색이 창백해지는 아이는 절을 그만하게 했다. 땀으로 뒤범벅이 된 육신의 굴절운동, 종교행위라기보다는 차라리 극기 훈련이라고 하는 게 낳을 것만 같았다. 여섯 시간 이상의 악전고투가 끝나고 아! 드디어 3천배 발원기도를 성취하였구나 싶었을 때는 다리가 제멋대로 후들거려 돌계단 내려가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모두들 계단에 주저앉아 다리를 주무르고 한참 휴식을 한 후에야 홍제암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성철스님의 3천배는 오만한 아상(我相)에 대한 하심(下心)의 실천행 그 자체였고, 자기 자신에 대한 금강심 같은 확신을 엿보게 하는 기회였었다. 그런 의미에서 3천배가 불자들의 신심을 확고하게 계발하는 데 보탬이 되는 훌륭한 보약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 일행은 퇴설당 큰 방에 모여 수련회 회향식을 식순에 따라 거행하였다. 드디어 방장 성철스님의 설법시간이 되었는데, 긴 시간에 걸쳐 하신 말씀은 인연과 업보에 대한 캐논 보고서에 관한 내용이었다. 심령과학에 대한 말씀 중, 특수 카메라 촬영으로 아브라함 링컨 등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연고지에서 그들의 잔영이 사진으로 나타난다는 말씀과 윤회전생에 따른 추적 환생에 대한 보고서 소개는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귀중한 말씀을 듣고 있던 중, 갑자기 스님께서 버럭 지르는 고함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선생이 졸고 있나?!”

방장스님 설법 중에 내가 그만 졸고 있음이 발견된 것이다. 큰 방망이로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예나 지금이나 선생이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저지르면 학생들은 웃어버린다. 나는 정말 무안하고 당황스러웠다. 단체의 지도자가 졸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꾸지람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절실한 화두가 아니었을까. 나는 크나큰 스승의 말씀에 감사해마지 않는다.

 

회향식이 끝난 후 곧이어 백련암 참배가 있었다. 오솔길, 그 오솔길이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큰 할아버지 성철스님은 우리 모두의 가슴 가슴마다에 짙은 추억으로 남아 있으리라. 성성적적한 선사의 기골과 눈빛을 직접 뵈온 자리에서 경험한 수련회의 감동과 희열을 인연 있는 모두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회향하는 바이다.

 

이때 동참한 내 어린 제자들은 이제 50의 나이가 되었고, 훌륭한 어머니가 되었다. 어린 학생들에게 천진하신 모습으로 다정하게 일러주신 성철선사의 가르침이 그들의 인성(人性)에 큰 바탕을 이루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자녀들에게까지도 그 가르침이 알게 모르게 이어지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종교행위는 모름지기 인간 내면에 두텁게 쌓인 벽을 녹아내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신앙의 형태는 오솔길이어야 한다. 누구나 가기 싶게 뚫려 있는 넓고 큰 길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이 힘을 들여 찾아가야 하는 오솔길이어야 한다. 만난 적 없으나 우뚝하고 뵈온 적 없으나 낯설지 않은 높이 높이 인자하신 그 분은 어느 산이든 몸을 숨길수록 더욱 뚜렷하지 않았는가. 깨달은 이의 삶이야 무애자재하니 어느 때 어느 곳에 머문다 하더라도 현실에 참여하고 있음이 아니던가! 성철 크신 스님께서는 우리가 반드시 찾아가야 할 오솔길을 가르쳐 주셨다. 찾아가야 할 길, 영원한 오솔길, 우리는 닦으면서 이 길을 찾아야 한다.

 

교법사로 시작한 교직생활 30여 년, 그 사이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오직 하나, 졸지 않고 깨어 있는 교사로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리고 마음속에는 이 시대의 선각자이자 살아있는 부처를 친견했던 68년의 그 무더운 여름날이 한 폭의 그림처럼 생생하게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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