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기도]
옴 마리아 훔 컴 사바
페이지 정보
최준혁 / 1998 년 6 월 [통권 제10호] / / 작성일20-05-06 08:33 / 조회11,323회 / 댓글0건본문
최준혁(龍岩, 대구 시지중학교 3학년)
3000배, 정말 꿈 같은 소리였다. 처음 천배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매우 방심하다가 더 힘들게 되었다. 허리와 팔다리는 저려오고, 겨울의 찬바람 속에서도 옷은 서서히 땀으로 젖어 갔다. 하기 싫어하면서도 끝까지 해내고 있는 형, 누나, 동생들, 그리고 수련생들을 위해 함께 수고해 주신 법사님까지 모두들 열심이었다. 2000배를 끝낸 후 먹은 공양, 비록 우리가 매일 먹던 고기는 하나도 없었지만 꿀맛 그 자체였다. 절밥이 맛있다는 게 실감났다.
그리고 마지막 3000배가 끝났을 때, 우리들의 몸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지만 밤 하늘에 초롱초롱 빛나는 별들을 보는 순간, 피로는 순식간에 눈 녹듯이 풀려버리는 듯했다. 멋진 광경, 그야말로 휘황찬란한, 도시에선 결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리고는 곧장 잠에 푹 빠져버렸다.
다음날, 처음으로 바루 공양을 해보았다. 지금까지 일곱 끼를 바루 공양으로 하였는데 한 끼도 안 먹은 사람이 있는 반면, 나에게는 한 번도 맛보지 못한 꿀맛이었다.
삼천배 다음으로 우리를 힘들게 했던 아비라 기도,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를 계속해서 되뇌이는데 반복해서 하다 보니 ‘옴 마리아 훔 컴 사바’로 외기도 하였다. 기도를 하는 30분 동안은 말 그대로 고통의 연속이었다. 아예 주저앉아 일어나지를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두 번째 할 때는 그 사람이 가장 큰 소리로 ‘옴 아비라…’를 외쳤다. 정말 신기하였다.
3박 4일 동안 무지무지하게 고생도 많았다. 하지만 결코 잊지 못할 시간을 만들어 추억으로 고이 간직하도록 한 행사가 있으니, ‘촛불 의식’이다. 몇몇 학생들 때문에 가끔 분위기가 흐트러지기도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의식이다. 차분한 음성으로 전체 학생들을 감동시켜 눈물마저 글썽이게 하는 법사님, 물 흐르듯 바람이 일듯 잔잔하게 흐르는 구성진 음악과 이에 맞춰 하나가 되어버린 학생들, 한마디로 끝내줬다.
어쨌든 3박 4일간의 백련암 수련법회는 파란만장(?)했다. 힘도 들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 삼천배도, 아비라 기도도, 언젠가는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인생의 고통을 대신해서 미리 받은 것이라 여길 수 있는 여유도 함께 느낄 수 있었기에….
끝으로 개구쟁이 학생들을 위해 애써 주신 스님들과, 가끔은 짜증이 날 정도로 미우면서도 결코 미워할 수 없었던 법사님이 고맙기만 하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옛거울古鏡’, 본래면목 그대로
유난히 더웠던 여름도 지나가고 불면석佛面石 옆 단풍나무 잎새도 어느새 불그스레 물이 들어가는 계절입니다. 선선해진 바람을 맞으며 포행을 마치고 들어오니 책상 위에 2024년 10월호 『고경』(통권 …
원택스님 /
-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물병 속에 있다네
어렸을 때는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 시절에 화장실은 집 안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거든요. 무덤 옆으로 지나갈 때는 대낮이라도 무서웠습니다. 산속에 있는 무덤 옆으로야 좀체 지나…
서종택 /
-
한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없다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음이니 하나마저도 지키지 말라.二由一有 一亦莫守 흔히들 둘은 버리고 하나를 취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두 가지 변견은 하나 때문에 나며 둘은 하나를 전…
성철스님 /
-
구루 린뽀체를 따라서 삼예사원으로
공땅라모를 넘어 설역고원雪域高原 강짼으로 현재 네팔과 티베트 땅을 가르는 고개 중에 ‘공땅라모(Gongtang Lamo, 孔唐拉姆)’라는 아주 높은 고개가 있다. ‘공땅’은 지명이니 ‘공땅…
김규현 /
-
법등을 활용하여 자등을 밝힌다
1. 『대승기신론』의 네 가지 믿음 [질문]스님, 제가 얼마 전 어느 스님의 법문을 녹취한 글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겨 이렇게 여쭙니다. 그 스님께서 법문하신 내용 중에 일심一心, 이문二…
일행스님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