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노래]
볶은 배추씨를 밭에 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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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 1997 년 6 월 [통권 제6호] / / 작성일20-05-06 08:32 / 조회8,951회 / 댓글0건본문
지난달 마지막 토요일에는 마산을 다녀왔습니다. 항공편으로 김해까지 가서 다시 공항버스를 이용하여 마산까지 갔습니다. 창원 경계에서 터널을 지나는데 스님께서 6․25동란 중에 잠시 머물렀던 성주사가 보이더군요. 성주사가 얼마나 마음에 드셨으면 천제굴 시절을 마감하고 그곳에다 수도원을 만들려고 하였겠습니까. 스님께서 부산과 마산 일대에서 도인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한 발원지도 역시 성주사였다는 얘기를 저는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주사를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으므로 그냥 지나쳤습니다. 스님이 천제굴 시절에 행자생활을 했던 성일스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내와 같이 내린 곳은 창원 시외버스터미날이었습니다. 성일스님에게 전화를 하고 난 뒤, 천주산(天柱山)을 오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호주머니를 뒤지던 저는 그만 등골이 오싹해지고 말았습니다.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성철스님.
무엇을 하건 간에 확철하게 하라는 스님의 말씀을 잠시 잊어먹은 바보가 바로 저였습니다. 준비만 철저하면 무엇합니까. 그게 실행으로 옮겨져야죠. 그나저나 저는 한동안 허둥대지 않을 수 없었지요. 공중전화 부스 옆에서 가방을 든 채 서 있는 아내를 바라보기도 민망한 일이었습니다. 아내가 조금만 실수를 해도 너그럽게 봐 주지 못하는 옹졸하고 소심한 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잠시 후, 겨우 기억을 되살려 성일스님이 머물고 있다는 ‘석굴암’을 114 안내로 물었지만 허사일 뿐이었습니다. 조계종 사암이 아니어서 그런지 석불암은 전화번호부에 등재되어 있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몇몇 스님에게 전화를 해봤지만 출타중이었고, 또한 성일스님의 전화번호를 알 리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서울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어렵게 신청하여 허락받은 토요일 휴무를 그렇게 낭비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아내가 대구의 만수스님을 들먹였습니다. 순간 저는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만수스님이 제게 성일스님의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던 것이고, 그 스님의 절 이름을 똑똑히 외우고 있어서였습니다.
금각사-한자를 어떻게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 작가 미시마 유끼오의 작품 ‘금각사’와 동명이어서 뇌리에 선명하게 입력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성철스님.
이렇게 겨우겨우 성일스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스님을 만나는 것은 두 번째인 셈이었습니다. 고생끝이라 첫 번째보다 더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만났을 대보다 더 귀한 증언을 해줄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습니다. 사실 첫 번째 만났을 때는 여러 스님과 함께 만났으므로 큰스님에 대한 한두 개의 일화 정도만 들었을 뿐, 그것도 제 귀에 쏘옥 들어오는 얘기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스님, 사람들은 오늘 제가 하고자 하는 얘기에 실망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큰스님은 확철대오하여 그야말로 완벽한 분인데, 스님의 실수담을 짓궂게 끄집어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스님, 몸에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인 이상 실수가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스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늘 긴장을 하고 진지하게 들었습니다만 이번에 성일스님한테 들은 실수담에서는 하하하 마음껏 웃으며 들었답니다. 비로소 스님이 저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할아버지 같은 느낌도 들었구요.
그렇습니다. ‘웃음을 주는 참공양’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성일스님과 저는 시종 하하하 웃으며 큰스님의 체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철스님.
성일스님 얘기로는 추석 전이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정진하는 스님을 두 어린 행자가 시봉하면서 살고 있었다면서요. 한 행자는 이 행자, 다른 행자는 진 행자라고 불렀는데, 이 행자는 오늘의 성일스님이고, 진 행자는 바로 천제스님이지요.
저는 그 사건을 이렇게 들었습니다. 두 어린 행자가 배추씨를 밭에 뿌리고 있던 중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린 행자들은 배추씨가 든 그릇을 밭에 두고 추녀 끝에서 소나기를 피했던 것인데, 배추씨는 그만 그릇을 채운 빗물에 젖고 맙니다. 비가 그치고 난 후, 씨를 뿌리려고 해도 젖은 씨들이 덩이가 져 뿌릴 수가 없게 되고 말입니다.
할 수 없이 이 행자는 꾀를 내었다고 합니다.
“아마 제가 머리를 썼을 겝니다. 씨를 불에 말려서 뿌리자고 말입니더.”
온돌에 말리기는 너무 젖어서 이 행자는 진 행자와 함께 불에 말리자고 약속을 합니다. 그래서 이 행자는 풍로에 숯을 넣고 진 행자는 숯에 불이 잘 붙도록 부채질을 했다고 합니다. 큰스님은 “역시 내가 똑똑한 행자를 두었어!” 하듯이 두 어린 행자의 행동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구요.
“배추씨를 볶은 것은 세 사람의 합작품이었심더.”
밭에 뿌린 볶은 배추씨가 싹트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린 천제굴의 신선(神仙)들은 씨를 갖다 준 마산신도들을 원망했습니다.
소나기가 내리기 전에 부린 씨들은 파랗게 싹을 틔우고 있는데, 그 후에 뿌린 씨는 감감무소식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스님께서도 신도가 오자 이렇게 말씀하셨다면서요.
“니는 어떤 씨를 사왔길래 저렇게 배추가 나고 안 나고 그러노!”
그러나 두 행자를 밖으로 불러내 자초지종의 얘기를 들은 그 신도가 도리어 스님께 항의를 하자, 허허 웃으며 ‘우리들은 밭에 볶은 배추시를 뿌린 바보들’이라고 천제국 시절 동안 계속해서 우스갯거리로 삼았다는 얘기였습니다.
성철스님.
저는 솔직히 스님의 실수가 아주아주 고소합니다. 그러면서도 스님이 시계를 달걀로 착각하여 끓는 물에 집어넣은 아인슈타인 같게도 느껴집니다. 출가하기 전, 소년 시절에는 경호강변에서 밭을 갈고 씨를 뿌려봤을 터인데도 성성한 화두의 불길로 세속의 번다한 소식을 모두 태워버린 당신이 탈속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볶은 배추시를 뿌리고도 싹을 기다린 두 어린 행자 역시도 세속의 때가 느껴지지 않는 틀림없는 동자(童子)였고요.
그렇습니다. 상대성이론을 향해 몰두하던 아인슈타인이나 화두를 든 당신이나 선가의 말로 ‘오매(寤寐)가 일여(一如)된 분’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스님께서는 늘 수좌들이 찾아오면 “나하고 얘기하는 도중에도 화두가 성성하냐”고 물었다지요. 오늘 저에게는 “늘 소설이 성성하느냐”라는 얘기로 들리니 말입니다.
스님, 무슨 일을 하건 간에 볶은 배추시를 뿌리고 나서 싹을 기다릴 정도는 돼야 확철하게 자기 생(生)을 산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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