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및 특별기고]
성철스님의 수좌형 리더십과 사회적 영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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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 필자 / 2023 년 11 월 [통권 제127호] / / 작성일23-11-04 21:16 / 조회1,783회 / 댓글0건본문
특집 | 성철 대종사 열반 30주기 추모 학술대회 : 제5주제
김응철•중앙승가대 교수
퇴옹당 성철대종사(1912~1993, 이하 성철스님)는 근현대 한국불교뿐만 아니라 종교계에서 가장 많은 조명을 받은 수행자 중 한 분이었음은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서 이미 상세하게 알려져 있다. 본 연구에서는 성철스님의 리더십을 수좌형 리더십으로 설정하고, 그 리더십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종단과 사회에 어떻게 영향력을 미쳤는가를 분석하였다.
분석 시기는 1980년대 이전의 해인사 방장 재임기, 1980~1993년까지의 종정 활동기, 1993년 이후 열반기 등으로 구분하였다. 본고에서는 1993년 열반 이후에 보도된 기사 내용 중 일부만을 요약하였다.
20세기를 대표하는 한국의 인물로 선정
수좌형 리더십은 출가 수행자가 수행에만 전념하지만 그 덕화德化로 많은 대중을 이끌고, 동시에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도력으로 불교계에서만 볼 수 있는 매우 독특한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수좌형 리더십은 수행처 내에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 역량에 따라서는 사찰을 넘어서서 종단과 교단 전체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상당한 정신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성철스님은 동시대를 살아간 많은 선지식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한국불교의 선맥을 형성하고, 수행풍토를 일신하는 데 기여했다. 스님의 수행적 특징은 장좌불와, 동구불출, 그리고 백일법문 등의 가르침을 통해 제시한 『선문정로禪門正路』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장좌불와長坐不臥와 동구불출洞口不出은 수행자로서 선택한 자기 자신을 절제하고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선문정로』에서 보여준 수좌의 삶은 수행의 길에 들어서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될 수 있는 가르침이다.
성철스님은 오롯이 불교 수행자로 일생을 보냈지만 의도하지 않게 종단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다. 종단적 지도력은 백련암 수좌, 해인총림 방장, 종정 등의 소임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발휘되었다. 스님은 사판에 나서지 않았으나 당대에 활동한 청담스님을 비롯하여 많은 스님들과 함께 수행하면서 쌓은 교분이 있었기 때문에 상당한 수행적 영향력과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언론기관이나 학술단체 등에서 시행하는 여론조사는 나름대로 공신력을 갖춘 기관에 의뢰하여 실시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신뢰성은 담보하고 있다. 그렇지만 조사 대상자를 어떻게 추출하느냐에 따라서 평가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조사 결과를 있는 그대로 신뢰하기는 어렵다.
1999년 20세기를 마감하면서 MBC TV에서는 “20세기 한국의 인물들”이라는 특집방송을 편성한 바 있다. 이 방송에서는 20세기에 대중의 사랑을 받은 인물, 자기를 던지는 용기 있는 행동으로 존경을 받은 인물 등을 3부작으로 편성했는데, 성철스님은 ‘무소유하는 화두를 던져준 스님’으로 소개되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한국의 인물들에 종교인은 성철스님 한 분만 포함되어 있었다. 이와 관련된 기사는 서울신문, 조선일보, 연합뉴스 등에서 보도함으로써 대중매체의 관심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2001년 가장 존경하는 스님으로 성철스님이 선정된 바도 있다. 불교계 주간지 <법보신문>과 격월간지 <불교와 문화>가 공동으로 스님과 재가불자 5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성철스님을 가장 존경한다는 응답은 10.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또한 가산불교문화원(당시 원장 지관스님)에서는 1600년 한국불교사를 밝혀 온 불교지성 33인을 선정 발표한 바 있다. 여기서 성철스님은 근현대를 대표하는 13인 중 한 분으로 선정되었다.
2003년 <월간 조선>에서 인터넷 여론조사로 1,400여 명을 조사한 결과에서 ‘한반도에서 가장 호감 가는 종교인’으로 성철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이 선정되었다. 이러한 조사는 스님의 사회적 영향력이 열반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2005년 <한국일보>가 광복 60주년을 맞아 미디어 리서치에 의뢰,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성철스님은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 2위로 조사되었다. 이 조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으로 당시 생존했던 김수환 추기경이 50.1%, 열반한 성철스님이 24.4% 등으로 나타났다.
2009년 대한불교조계종이 승려 1,0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식 조사에서 ‘가장 닮고 싶은 스님’을 조사한 결과 원효스님 80명, 성철스님 57명, 달라이라마 23명 등의 순서로 나타났다. 이 조사 결과에서는 문중과 은사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스님들 사이에서 성철스님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열반 후에도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에 뽑혀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을 선정하는 <시사저널>의 조사는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총 9회가 실시되었는데, 이중 성철스님은 8회에 걸쳐서 10위 이내의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2010년도는 성철스님 열반 후 17주기가 되는 해로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수 있는 기간이 경과한 때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사에 응한 패널 중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영향력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사저널>의 조사기간 중에서 성철스님의 영향력이 가장 크게 나타났던 시기는 2012년으로 열반 19주기가 되는 해로 21.6%의 응답자가 성철스님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 2011년 9.2%, 2014년 8.1%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2015년부터 지지율이 낮아지면서 대중에게 잊혀지는 듯 했으나 열반 25주기가 되는 2018년도에 다시 4.2%로 대중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시사저널>에서 조사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종교인’의 순위가 우리 사회에서 절대적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조사에 응답한 패널들이 어떤 종교를 믿고 있는가에 따라서 평가가 크게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조사에 응한 패널들이 그만큼 기억하고 평가해 준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고, 열반하거나 선종하면 점차 잊혀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철스님이 사후에도 오랜 동안 대중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생전에 큰 지도력과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성철스님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평가는 언론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칼럼이나 기사로 얼마나 많이 재생산하느냐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조선일보> 강천석 칼럼에서는 성직자의 가장 큰 덕목을 청빈으로 규정하고 무욕, 솔선수범, 관용의 자세가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던 시절 성직자의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이 칼럼에서는 성철스님에 대해 “스님은 기우고 기워 누더기가 된 두 벌 가사袈娑를 세상에 두고 떠났다. 성철스님 열반涅槃 뒤 스님의 삶이 알려지면서 불교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길 자체가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동아일보> 허문명 기자는 “미국에 9·11 테러가 날 때까지만 해도 우리사회는 큰 어른이자 영적 지도자로 존경받는 김수환 추기경, 성철 큰스님이 계셨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난 오늘 어려울 때 기대고 슬플 때 위로받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영적 지도자들이 안 보인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라고 지적한 바 있다. <조선일보> 김한수 종교전문기자는 “한국 종교계는 리더십 교체라는 큰 물결을 건너가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성철스님 등 많은 성직자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거인의 시대는 갔다.”고 토로하였다. 그리고 “거인이나 거성이 아니어도 좋다. 오히려 큰 별 몇 개 보다 작지만 아름다운 별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라고 했다.
사회 각 분야로 확산된 성철스님의 영향력
성철스님의 영향력은 사회 각 분야로 확산되었다. 대표적으로 문화 분야에서 스님 관련 기사 중에서 사회적 영향력을 평가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문화 분야의 영향력은 스님과 관련된 사리탑 건립 등 건축 분야, 그림 및 사진 전시회, 기념메달과 기념우표 제작, 만장 전시회, 둘레길 운영, 사찰음식, 서화전 등 매우 다양한 행사들이 기사화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스님의 다비식에 사용된 만장 776점은 국립민속박물관이 영구 보존처리하고 대중에게 공개했다. 만장이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된 것은 공공기관에서 성철스님의 대중적 영향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스님과 관련된 사진이나 그림 등이 유명 작가에 의해 작품으로 제작된 것은 작품집과 함께 스님의 가르침이 후세에 오래도록 기억되고 평가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문화예술 분야의 유명한 작가들이 성철스님과 법연을 맺고, 그 가르침을 수용한다는 것은 스님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1995년 한국조폐공사에서 성철스님 기념메달이 제작되었으며, 2016년에는 성철스님을 기리는 기념우표가 발행되었다. 기념우표는 성철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이 동시에 발행되었는데, 국내 종교인이 우표 인물로 등장한 것은 최초인 것으로 알려졌다.
성철스님의 가르침을 후대에 길이 기억할 수 있는 둘레길도 조성되었다. 성철스님 순례길(양천 엄혜산 생태길)은 2010년 조성된 산청 지리산 둘레길에 포함되어 있는데, 20대 청년시절 성철스님이 수행을 위해 지리산 대원사로 향하며 걸어간 순례의 길을 생태숲과 함께 조성하였다.
기념메달과 기념우표의 발행, 그리고 둘레길 조성은 동시대에 살았던 지도자들 중에서 대중적 인지도가 높고 사회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은 여러 분야의 중요 인물들이 선정된다. 이러한 현상은 열반 후 20년이 지난 이후에도 성철스님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계속되고 있으며, 상당한 영향력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철스님의 일대기는 각종 영상물로 제작되어 방송되고, 유품인 누더기 두루마기가 보존처리 되어 근대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것은 스님의 영향력이 후대에도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2013년도 열반 20주기 기념으로 TV 조선에서 “성철스님의 건강을 지킨 자연밥상”이라는 주제로 “전설의 맛”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사찰음식 명장 1호로 지정된 선재스님은 “오랜 수행 과정에서 성철스님이 건강을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소식小食과 자연식”이라고 평가하였으며, 청국장으로 만든 요구르트, 제철 채소 등 사찰寺刹의 100% 자연밥상을 소개한 바 있다.
2023년 1월부터 9월말 현재까지 성철스님이 언급된 신문기사는 동아일보 3건, 조선일보 9건, 중앙일보 5건이다. 이들 기사는 종교 관련 기자들이 게재한 것과 불교계를 소개하거나 일반 필자들이 칼럼 속에서 성철스님을 언급한 내용들이다. 이러한 내용을 분석해 보면 성철스님을 기억하고, 가르침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때 성철스님의 가르침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성철스님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성철스님에 대한 언급도 점차 사라진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성철스님은 『백일법문』, 『선문정로』 등을 비롯해 다양한 저술과 가르침, 녹음 자료 등이 남아 있기 때문에 후학들이 학문적으로 연구하기에 충분하다. 때문에 성철스님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스님의 영향력은 학문적 영역 속에서 계속 평가받을 수 있고,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성철스님과 관련된 여론조사나 대중들의 인식조사, 각종 평가 등은 열반 30주년이 지나면서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또한 성철스님을 언급하고 있는 언론 보도, 칼럼 등이 줄어드는 것도 당연한 현상이다. 그렇지만 불교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있고, 불교를 공부하는 불자들이 있다면 성철스님의 영향력은 소멸되지 않고 지혜의 빛으로 세상을 계속 비추어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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