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다도]
새해맞이차회를 열다
페이지 정보
오상룡 / 2022 년 2 월 [통권 제106호] / / 작성일22-02-04 09:57 / 조회5,153회 / 댓글0건본문
한국의 茶道 14 | 명등계 ②
94년에 창립되어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명등계는 여러 ‘차 관련 행사’를 이끌어 왔다. 이번 호 발행 달에 음력 설이 있어서 차 관련 행사 중, ‘새해맞이차회(新年茶會)’에 관하여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설의 유래와 풍습 등에 대해서는 필자의 졸고 「우리의 명절 설」(주1)을 참고해 주시기 바란다.
어릴 때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명심보감』(주2)에 아래와 같은 공자의 말씀이 있었다.
“일생의 계획은 어릴 때에 설계되고[一生之計在於幼], 일 년의 계획은 봄에 세워지며[一年之計在於春],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는 것이다 [一日之計在於寅].”
스캔 1. 1998년 첫 신년차회 참석자 명단.
봄의 시작을 입춘立春으로 본다면 입춘 무렵, 즉 음력 정월에 일 년의 계획을 세우고 염원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다. 마침 필자가 하이텔 불교동호회의 총괄시삽과 대표시삽을 지내고 1997년 10월에 제4대 명등계 유사를 맡으면서 새해맞이차회 즉 신년차회를 1998년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요즈음 신년차회라고 하면 신년하례회 같은 행사를 떠올리지만, 이와는 좀 다르게 명등계의 신년차회는 ‘새해맞이차회’다. 이것은 지극한 정성으로 차를 다려 부처님과 이웃, 그리고 나에게 차를 올리며 밝은 새해를 염원하고 덕담을 나누며 새해와 차의 뜻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차회를 이른다.
양음이 조화로운 차
차 한 잔을 우리려면 우선 차가 있어야 하고 물이 있어야 한다. 차는 양과 음의 조화의 산물이다. 차가 아무리 비싸고 좋은 것이라도 너무 많이 취하게 되면 그 맛이 쓰고, 물이 아무리 좋은 물이라 하더라도 너무 많이 취하게 되면 차는 싱거워지고, 아무리 맛있는 차라고 하더라도 차를 너무 많이 취하게 되면 차가 짜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욕심을 줄이는 법을 배우고 더욱 적극적으로 남에게 베푸는 일을 해야 한다. 묵은해가 지나고 새해가 되면서 음과 양이 바뀌는 정월에 공양하는 차茶는 아낌없이 남에게 베푸는 보시布施의 뜻이기도 하다.
또한 목마를 때 마시는 한 잔의 차는 말 그대로 감로다甘露茶이다. 감로다를 공양하니 사바에 찌들은 죄업 중생의 미혹한 마음과 멍든 육신을 말끔히 씻어내어 맑고 밝은 마음이 되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한 잔의 차를 부처님 전에 올리면서 부처님의 감로의 법문을 생각하고, 나도 부처님처럼 이웃에게 만족과 청량함을 줄 수 있을 것을 발원하고, 일 년 계획을 구상하는 것이 바로 새해맞이차회다.
새해맞이차회 준비물
각자 준비해야 하는 준비물은 다음과 같이 석 잔의 차를 우릴 수 있는 차와 차도구를 준비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참여하면 된다.
차 : 종류에 상관없이 석 잔을 우릴 만큼의 차
차우림그릇茶罐 : 차를 우려내는 그릇으로 손잡이가 윗부분에 있는 윗손잡이 차우림그릇茶罐, 손잡이가 옆으로 꼭지와 직각을 이루어 자루를 붙여서 만든 옆자루 차우림그릇茶甁, 손잡이가 부리의 뒤쪽에 있는 뒷손잡이 차우림그릇茶壺 등이 있다. 중국 사람들은 세번째 모양을 즐겨 이용하여 중국에서는 차 우림그릇을 아예 ‘차호茶壺’라 부르나 우리나라에서 차호는 차를 넣어두는 통을 뜻하니 중국 문헌을 볼 때 주의를 요한다.
찻잔茶盞 : 차를 담아 마실 때 쓰는 그릇으로 세 개가 필요하다. 잔의 입이 넓고 크며 밑이 좁은 형태의 것을 찻잔茶盞이라 하고, 종의 모습을 축소하여 뒤집어 놓은 듯한 모양을 찻종茶鐘이라 하며, 입과 밑의 넓이가 비슷하고 굽이 비교적 높으며 수직으로 생긴 것을 차구茶毆라 하고, 찻잔을 키워서 만든 듯한 굽이 높고 입이 넓고 크며 밑이 좁은 크기가 보통 사발만한 것을 차완茶碗이라 하고, 굽이 없이 공을 반 자른 듯한 모양의 큰 것을 발鉢이라 한다.
물식힘그릇熟盂 : 녹차를 우릴 때는 끓인 찻물을 우리기에 적당한 온도로 식힐 때 쓰고, 발효차를 할 때에는 차우림그릇에서 오래 지체하지 않게 나누는 그릇이다. 옛날에는 계절에 따라 차법을 달리하고 사용하지 않았다(주3).
차숟가락 혹은 차주걱 : 숟가락 모양의 차숟가락(차술, 茶匙)이나 대나무를 반 자른 듯한 모양의 차주걱(차쪽술, 茶則)은 차 통에 있는 차를 떠서 차우림그릇에 넣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차숟가락은 차를 떠내는 용도로 사용되지만 차주걱은 차를 부어서 차의 모양을 감상하는 데 쓰기도 한다.
찻잔받침茶托(주4) : 찻잔받침은 찻잔을 받치는 것으로 우리 조상들은 잔만 사용하지 않고 반드시 받침을 사용하였다.
깔개 : 깔개는 차를 다룰 때 쓰는 찻상茶床을 대신 하는 것으로 우리 조상들은 상이 없이 음식을 먹지 않았다.
사진 5. 여러 종류의 찻잔받침.
차호茶壺 : 차를 담는 통으로 중국 사람들이 쓰는 말과 구별하자.
헹굼그릇退水器 : 헹굼그릇은 처음에 잔을 데운 물을 버리고, 차를 마시고 난 다음 차도구를 씻는 그릇이다. 물로 차 우림그릇이나 찻잔을 덥힌 물을 버리기도 하고, 차찌꺼기를 씻어내기도 한다. 이 그릇은 차우림그릇 보다는 큰 것이 좋다.
차수건茶巾 : 차우림그릇, 찻잔 등 차도구를 사용할 때마다 닦는 것을 말한다. 가로 35∼40㎝, 세로 20∼25㎝ 정도이면 편리하다.
차상포茶床布 : 옛날부터 빨강색과 남색으로 안팎을 삼아서 만들어 사용하였다. 빨강색은 부정을 타지 말라는 뜻이며, 이는 불의 빛깔로 짐승이나 벌레가 싫어하는 색이다. 차구에 먼지가 앉지 않도록 덮어두는 것인데 크기는 찻상을 덮을 만하면 족하다.
보온병 : 작은 것
새해맞이차회 순서
죽비 3성으로 차상포를 접어 오른쪽 퇴수기 밑에 두고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한다.
1. 예열 : 숙우, 차관, 찻잔을 데운다.
2. 차우리기 : 적당량의 차를 차숟가락으로 차관에 넣고, 숙우의 더운물을 붓고, 차의 종류에 따라 차가 우러나면, 1·2·3번, 3·2·1번 찻잔의 순으로 차를 따른다.
3. 차나누기 : 부처님께 올릴 1번 잔의 찻잔을 앞으로 내어놓고, 2번 잔의 찻잔은 왼쪽 다우에게 건네주고, 3번 잔은 차관과 숙우 사이에 놓는다.
4. 헌다獻茶 : 부처님께 올릴 헌다용 큰 찻잔에 1번 잔의 차를 모두 모아 부처님께 올린다. 이것은 모두의 정성을 모으는 것이다(사진8).
5. 발원發願 : 대표가 발원문을 낭독하고 난 후 잠시 스스로 자신의 축원을 마음속으로 염원한다.
6. 차마심 : 3번 잔의 차를 마시고, 옆 다우의 차를 음미한다. 이때 다시 차를 우려 오른쪽 다우에게도 차를 권한다.
7. 덕담德談 :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자신의 금년 목표나 계획, 그리고 덕담을 나눈다.
8. 음복飮福 : 부처님께 올린 차를 내려서 조금씩 나누어 마신다. 각자 다른 차를 가지고 왔으나 맛은 한맛이 되어 생각보다 맛있는 차가 된다는 것을 실제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한솥밥의 의미와 같이 한맛의 차를 통해 모두가 하나가 된다.
9. 차도구 감상 : 돌아가면서 각자 자신의 차도구의 특징을 설명하고 자유롭게 질문도 한다.
새해맞이차회 발원문
2001년 신사년 선혜 이영희 법우가 작성하여 낭독한 우리들의 발원문을 찾을 수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참고가 되셨으면 한다.
“언제나 큰 자비로 중생을 이롭게 하시며, 법비 내려 저마다의 그릇 따라 평등하게 채워주시는 부처님.
여기 하이텔 불교동호회 명등계 가족이,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남수동 92-1번지, 수원포교당 불교회관 대웅보전에 모두 모여, 정성을 다하여 감로차를 올리며, 불·법·승 삼보의 존귀하심을 찬탄하며, 참되고 슬기롭게 살기를 발원하고 있사옵니다.
바라옵건대, 저희가 보살도 닦는 가운데,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부처님의 자비로운 위신력이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세간의 큰 복밭이신 부처님.
우러러 원하오니, 신사년 저희들 신심은 날로 깊어지고, 집안이 화평하고, 자손은 학업에 전념하며, 사업이 번창하여, 이웃을 위해 뜻하는 모든 일들이 크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가슴속에 지닌 원력 크게 빛나 가는 길마다 막힘이 없고, 하려는 일마다 순조로우며, 만나는 사람마다 착한 뜻 함께하여, 머물고 가는 곳에 기쁨의 노래 이어지며, 널리 모든 사람의 참 빛이 되어 정법으로 인도하고 정토를 이룩하여 부처님의 크신 은혜 갚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 가족 모두가 올해에는 불법에 대한 믿음 더욱 두터워져서 어린이에게는 꿈을, 어른에게는 희망을, 노인에게는 건강을 주시어 삶의 보람과 기쁨 속에 집안이 날로 번창하고 복덕이 늘어가도록 보살펴 주소서.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하고 발원합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2022년 임인년 새해를 맞아 독자 제현 모두에게 필자의 따뜻한 마음 담은 차 한 잔 올리오니, 한맛의 맛있는 차 드시고 소원 성취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주>
(주1) 오상룡, 「우리의 명절 설」, 계간 『차생활』 제7권 제4호 통권 29호, pp.72~80.(2012년 겨울호).
(주2) 『명심보감明心寶鑑』. 고려 충렬왕 때 노당露堂 추적秋適(1246~1317)이 편찬함. 어린이들의 학습을 위하여 고전에서 선현들의 금언명구를 편집하여 만든 책.
(주3) 겨울에는 물이 빨리 식으므로 하투법下投法 즉 차를 미리 넣고 끓인 물을 붓는 방법을 썼고, 여름에는 물이 잘 식지 않으니까 물을 먼저 붓고 물이 적당 온도가 된 후 차를 나중에 넣는 상투법上投法을 썼다. 또한 봄과 가을에는 중투법中投法이라 하여 물을 반쯤 붓고 차를 넣고 다시 물을 붓는 방법을 사용하여 차가 알맞은 온도에서 우러날 수 있도록 하는 지혜가 있었다.
(주4) 차탁茶托은 찻잔을 받치는 것이고, 차탁茶卓은 차를 의자에 앉아서 내는 찻상이고, 잔탁盞托은 찻잔 진열대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옛거울古鏡’, 본래면목 그대로
유난히 더웠던 여름도 지나가고 불면석佛面石 옆 단풍나무 잎새도 어느새 불그스레 물이 들어가는 계절입니다. 선선해진 바람을 맞으며 포행을 마치고 들어오니 책상 위에 2024년 10월호 『고경』(통권 …
원택스님 /
-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물병 속에 있다네
어렸을 때는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 시절에 화장실은 집 안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거든요. 무덤 옆으로 지나갈 때는 대낮이라도 무서웠습니다. 산속에 있는 무덤 옆으로야 좀체 지나…
서종택 /
-
한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없다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음이니 하나마저도 지키지 말라.二由一有 一亦莫守 흔히들 둘은 버리고 하나를 취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두 가지 변견은 하나 때문에 나며 둘은 하나를 전…
성철스님 /
-
구루 린뽀체를 따라서 삼예사원으로
공땅라모를 넘어 설역고원雪域高原 강짼으로 현재 네팔과 티베트 땅을 가르는 고개 중에 ‘공땅라모(Gongtang Lamo, 孔唐拉姆)’라는 아주 높은 고개가 있다. ‘공땅’은 지명이니 ‘공땅…
김규현 /
-
법등을 활용하여 자등을 밝힌다
1. 『대승기신론』의 네 가지 믿음 [질문]스님, 제가 얼마 전 어느 스님의 법문을 녹취한 글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겨 이렇게 여쭙니다. 그 스님께서 법문하신 내용 중에 일심一心, 이문二…
일행스님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