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의 세계]
나한상
페이지 정보
유근자 / 2020 년 3 월 [통권 제83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7,848회 / 댓글0건본문
유근자
나한은 산스크리트 아르하트arhat의 한자 음역어인 아라한을 줄여서 부르는 말로, 마땅히 인천人天의 공양을 받을 만하다는 의미로 응공應供·응진應眞 등으로 번역되었다. 나한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깨달음을 얻은 불제자로 초기불교 수행의 가장 높은 지위인 아라한과를 얻고, 온갖 번뇌를 끊고 깨달음에 이르러 존경과 공양을 받을만한 성자를 말한다.
그림 1. 영광 불갑사 아난존자상, 1706년
나한의 다른 명칭으로는 응공·응진 외에도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으므로 무학無學, 번뇌를 없앤다는 의미로 살적殺賊, 생사의 고통을 더 이상 겪지 않고 삼계 윤회에 들지 않는다는 불생不生 또는 무생無生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조선시대에는 나한과 응진이 가장 많이 사용되어 이들은 모신 전각을 나한전·응진전·영산전이라고 했다.
그림 2. 영광 불갑사 가섭존자상, 1706년
사진3. 완주 송광사 나한전 16나한상. 1655년.
아라한Arhat, 나한羅漢, 응진應眞
나한은 부처님의 뜻에 따라 그의 신통력으로 인간의 수명을 늘리거나 중생에게 복덕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키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공양을 베푸는 자에게 복을 준다고 해 조선시대에는 나한을 모신 나한전이 많이 건립되었다. 경북 영천의 거조암 영산전의 오백나한상은 다양한 얼굴 표정으로 유명하며 운문사 사리암과 금산사 나한전은 나한기도처로서 영험하다.
그림 4. 영광 불갑사 16나한상, 1706년
그림 5. 영광 불갑사 장군상, 1706년
그림 6. 영광 불갑사 사자상, 1706년
나한은 10대제자상과 16나한 및 18나한 그리고 오백나한이 대표적인데 부처님의 10대제자는 아난존자(그림 1)와 가섭존자(그림 2)를 비롯한 대표적인 부처님의 상수(上首)제자를 말한다. 16나한의 유래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아미타경>에서 설하는 부처님의 10대 제자를 비롯한 열 여섯 명의 제자라는 설과, 당나라 현장 스님이 654년에 번역한 <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기大阿羅漢難提密多羅所說法住記>(이하 『법주기』로 약칭)에 등장하는 부처님의 뜻에 따라 사바세계를 왕래하면서 정법을 지키는 성자라는 설이 그것이다. 18나한은 주로 중국에서 유행했는데 16나한에 가섭존자와 군도발탄존자가 추가되었다.
그림 7. 영광 불갑사 제화갈라보살상, 1706년
그림 8. 영광 불갑사 석가여래좌상, 1706년
그림 9. 영광 불갑사 미륵보살상, 1706년
오백나한의 기원 역시 두 가지로 부처님 열반 후 제1·2 결집에 참가한 제자들을 일컫는다는 설과, <법화경> 「오백제자수기품」에 등장하는 제자들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나한전에서 만나는 나한은 그림[나한도]과 조각[나한상]으로 표현되는데 자유자재한 수행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인자한 노스님을 보는 듯하고 손자들에게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유쾌한 할아버지를 만나는 것 같기도 하다. 불교미술 가운데 작가의 창의성이 가장 잘 발휘되는 분야가 나한상이다(그림 3).
조선시대 나한전의 존상
조선시대 나한전에는 중앙에 석가여래·제화갈라보살·미륵보살 등 수기삼존상授記三尊像이 봉안되고, 좌우로 아난상과 가섭상, 16나한상(그림 4), 사자상, 제석천상, 장군상 등이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나한전 문 입구에는 명부전과 마찬가지로 2구의 ‘장군상’(그림 5)과 ‘사자상’(그림 6)이 배치되었고 명부전과 달리 ‘제석천상’이 좌우로 2구가 배열되었다. 조선시대 나한전 존상의 명칭은 1656년에 조성된 완주 송광사 나한전 석가삼존상과 16나한상 및 1685년에 조성된 고흥 능가사 석가삼존상과 16나한상 조성 발원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나한전의 석가여래·제화갈라보살·미륵보살상의 삼존상은 수기삼존불이다. 과거 연등불(제화갈라보살)로부터 부처님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석가여래께서 미래에 미륵불(미륵보살)이 될 것이라는 수기授記를 함으로써 세세생생 불법佛法이 이어지는 공간이 바로 나한전이다. 석가여래의 좌우 협시로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이 배치된 것은 <법화경>의 수기사상을 반영한 것으로 과거 제화갈라보살(그림 7), 현재 석가여래(그림 8), 미래 미륵보살(그림 9)로 이루어진 석가여래삼존상은 조선후기에 유행한 시간적 의미의 삼세불三世佛이다. 석가여래·약사여래·아미타여래가 공간적인 삼세불이라면 석가여래·미륵보살·제화갈라보살은 시간적인 삼세불인 것이다. 나한전과 영산전은 석가여래가 영축산에서 제자들에게 설법하는 모습을 상징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법화경>의 「오백제자수기품」을 연상케 한다.
16나한, 500나한
16나한의 존명이 기록된 최초의 기록은 654년 당나라 현장 법사가 번역한 <법주기>인데 16나한의 성격과 역할 그리고 머무는 곳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16나한은 제1존자 빈도라발라타사賓度羅跋囉惰闍, 제2존자 가락가벌차迦諾迦伐蹉, 제3존자 가락가발리타사迦諾迦跋釐墮闍, 제4존자 소빈타蘇頻陀, 제5존자 낙거라諾距羅, 제6존자 발다라跋陀羅, 제7존자 가리가迦理迦, 제8존자 벌사라불다라伐闍羅弗多羅, 제9존자 술박가戍博迦, 제10존자 반탁가半託迦, 제11존자 나호라囉怙羅, 제12존자 나가서나那伽犀那, 제13존자 인게타因揭陀, 제14존자 벌나파사伐那婆斯, 제15존자 아씨다阿氏多, 제16존자 주다반탁가注茶半託迦 등이다. 1706년에 조성된 영광 불갑사 16나한상에서 발견된 조성문에도 <법주기>의 16나한과 같은 명칭이 사용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그림 10).
그림 . 영광 불갑사 제2 가락가벌차迦諾迦伐蹉 조성발원문, 1706년
조선시대와 달리 고려시대에는 500나한신앙이 유행했다. 고려 말 이성계가 앞으로 왕이 될 것이라는 무학대사의 해몽을 듣고 오백나한을 모시기 위해 석왕사 경내에 응진전을 세우고 폐사된 함경도 길주의 광적사 오백나한을 이곳으로 모셔온 이야기는 유명하다. 조선후기의 나한전에는 주로 석가여래삼존상과 16나한상이 모셔졌는데 완주 송광사 나한전에는 오백나한상이 함께 봉안되어 있다.
조선후기 유학자인 이옥(李鈺, 1760-1815)은 완주 송광사에 들러 나한전의 오백나한상을 보고 글을 남겼다. 완주 송광사 나한전 존상은 1656년에 조각승 무염無染의 지도하에 수조각승 계훈戒訓이 조성한 것이다.
“나한전을 보니 나한은 오백을 헤아리는데 눈은 물고기 같은 것, 속눈썹이 드리운 것, 봉새처럼 둘러보는 것, 자는 것, 불거진 것, 눈동자가 튀어나온 것, 부릅뜬 것, 흘겨보는 것, 곁눈질하며 웃는 것, 닭처럼 성내며 보는 것, 세모난 것이 있다. 눈썹은 칼을 세운 듯 꼿꼿한 것, 나방의 더듬이 같은 것, 굽은 것, 긴 것, 몽당비 같은 것이 있다. 코는 사자처럼 쳐들린 것, 양처럼 생긴 것, 매부리처럼 굽은 것, 주부코인 것, 밋밋한 것, 납작코인 것, 대롱을 잘라놓은 듯한 것이 있다.
입은 입술이 말려 올라간 것, 앵두 끝처럼 생긴 것, 말 주둥이 같은 것, 까마귀 부리 같은 것, 호랑이 입 같은 것, 비뚤어진 것, 물고기처럼 뻐금대는 것이 있다. 얼굴은 누런 것, 약간 파란 것, 붉은 것, 분처럼 흰 것, 복사꽃 같은 것, 불그레한 것, 밤색인 것, 기미 낀 것, 사마귀 있는 것, 마비된 듯한 것, 어루러기가 돋은 것, 혹이 난 것이 있다. 물고기 눈에 사자 코를 한 것, 양 코에 눈썹이 드리운 것, 사자 코에 부릅뜬 눈에 호랑이 입을 한 것이 있다.
눈이 같으면 코가 다르고, 코가 같으면 입이 다르고, 입이 같으면 얼굴빛이 다르며, 모두 같으면 키와 체구가 다르고, 키와 체구가 같으면 자세가 다르다. 혹은 서고, 혹은 앉고, 혹은 숙이고, 혹은 옆의 것과 가깝고, 혹은 왼쪽을 돌아보고, 혹은 오른쪽을 돌아보고, 혹은 남과 이야기하고, 혹은 글을 보고, 혹은 글을 쓰고, 혹은 귀를 기울이고, 혹은 칼을 지고, 혹은 어깨를 기대고, 혹은 근심하는 듯 머리를 떨어뜨리고, 혹은 생각하는 듯하고, 혹은 기쁜 듯 코를 쳐들고 있다. 혹은 선비 같고, 혹은 환관 같고, 혹은 아녀자 같고, 혹은 무사 같고, 혹은 병자 같고, 혹은 어린애 같고, 혹은 늙은이 같아서 천 명이 모인 모임, 만명이 모인 저자처럼 제각각이다.”
그림 . 완주 송광사 나한전 오백나한상, 1656년
(이옥 지음·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옮기고 엮음, 『完譯 李鈺全集』1, 휴머니스트, 2009)
송광사 나한전 오백나한상은 근래에 들어 모두 흰색으로 개채改彩했지만 그 전에는 다양하게 채색이 되어 있었다. 나무로 조성된 오백나한상은 이옥이 본 것처럼 실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그림 11). 공양을 베풀면 16대아라한과 여러 권속들이 감응해 여러 곳으로 나뉘어 다니면서 갖가지 모습을 나타내 시주자들에게 복을 준다는 나한의 모습이 현실세계에 나툰 듯하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옛거울古鏡’, 본래면목 그대로
유난히 더웠던 여름도 지나가고 불면석佛面石 옆 단풍나무 잎새도 어느새 불그스레 물이 들어가는 계절입니다. 선선해진 바람을 맞으며 포행을 마치고 들어오니 책상 위에 2024년 10월호 『고경』(통권 …
원택스님 /
-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물병 속에 있다네
어렸을 때는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 시절에 화장실은 집 안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거든요. 무덤 옆으로 지나갈 때는 대낮이라도 무서웠습니다. 산속에 있는 무덤 옆으로야 좀체 지나…
서종택 /
-
한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없다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음이니 하나마저도 지키지 말라.二由一有 一亦莫守 흔히들 둘은 버리고 하나를 취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두 가지 변견은 하나 때문에 나며 둘은 하나를 전…
성철스님 /
-
구루 린뽀체를 따라서 삼예사원으로
공땅라모를 넘어 설역고원雪域高原 강짼으로 현재 네팔과 티베트 땅을 가르는 고개 중에 ‘공땅라모(Gongtang Lamo, 孔唐拉姆)’라는 아주 높은 고개가 있다. ‘공땅’은 지명이니 ‘공땅…
김규현 /
-
법등을 활용하여 자등을 밝힌다
1. 『대승기신론』의 네 가지 믿음 [질문]스님, 제가 얼마 전 어느 스님의 법문을 녹취한 글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겨 이렇게 여쭙니다. 그 스님께서 법문하신 내용 중에 일심一心, 이문二…
일행스님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