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주인공의 삶]
내 몸은 내 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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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8 년 4 월 [통권 제60호] / / 작성일20-05-29 12:29 / 조회6,810회 / 댓글0건본문
"지난 1월 29일, 서지현 검사가 jtbc 뉴스룸에 나와서 자신이 당한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했다. 가장 영향력 있는 뉴스였고 그 사람이 검사였기 때문에 폭발력은 대단했다. 그것을 계기로 사회 각계에서 고발이 이어졌다. 이른바 ‘미투’ 운동이 한창이다. 가해자가 밝혀질 때마다 다들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법조계, 영화계, 문학계, 학계를 막론하고 그 바닥에서는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단지 말하지 못했을 뿐. 그렇다면 피해자들은 이제껏 왜 말하지 못했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화엄경』 「십지품」에서 두려움의 종류를 다섯가지로 들고 있는데, 그중 첫 번째가 생계에 대한 두려움이고, 두 번째가 오명에 대한 두려움이다. 여자들이 성폭력을 당해도 말하지 못하는 데는 이 두 가지 두려움이 깔려 있다.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수치를 뒤집어쓸 거라는 두려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아니라 피해를 당한 사람이 이런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는 현실이 기막힐 뿐이다.
여자가 남자와 같은 직업을 갖고 같은 지위에 오르려면 남자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갈아 넣어야 한다. 검사가 되기까지, 무대에서 배역을 맡기까지, 회사에서 팀장이 되기까지, 남자들보다 더 많은 장애물을 넘어서야 그 자리를 얻을 수 있다. 절박한 생계가 걸렸든, 간절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든, 여자에게는 그래서 그 일이 인생을 걸 만큼 중요하다. 성폭력을 당하고도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를 생각하면, 모든 것을 잃느니 덮고 가는 게 낫겠다는 결론이 난다. 당하고도 밝히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검사가 된 똑똑한 여자도 피해 사실을 밝히는 데 장장 8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그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찍히면 곤란하다. 어느 바닥이든, ‘그 바닥’이라는 데는 왜 그렇게 좁은지.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같은 바닥이라도 여자한테는 더 좁기 마련이다. 그것은 남성 중심의 질서로 짜진 바닥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넓고 넓어도, 같은 하늘 아래 살아도,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지위에서 불평등을 감내하며 살아왔다. 불평등의 기원에 대해서는 복잡한 이론을 말해주는 다양한 연구들이 있다. 그러나 기성 종교들이 불평등에 한 몫을 했다는 데 대해서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 그렇지만, 서양 사람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친 기독교는 시작부터 불평등을 내재하고 있다. 그분이 ‘Him’이기 때문이다. 서양 사람들은 ‘아버지 하나님’을 발명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황당한 이 발명품 아래, 모든 중생은 그의 피조물이 되었다. 그중에 남자는 그 아버지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이유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누려왔다. 성경에 따르면,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 하나를 뜯어 만들었다고 한다. 갈비뼈. 하필이면 하나쯤 부러져도 생명에 별 지장 없어 보이는 뼈 말이다.
그렇게 인류의 ‘나머지’ 절반은 남자의 부산물로서 하찮은 지위에 머물게 되었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을 닮은 자랑스러운 피조물은, 어찌된 일인지 큰 결함을 가지고 있다. 자기도 제어하지 못하는 몸의 기관이 자꾸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인류의 절반이 치러야 했던 불행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여자들이 아주 오래도록 말 못할 불행을 겪는 동안, 남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유리한 지위를 누리며 가해자가 되거나, 아니면 최소한 여자들의 불행을 모른 척 해왔다. 그 결과 오늘날‘미투’ 국면을 맞게 되었다.
동양은 어떤가. 공자의 가르침은 아시아 전역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공자는 삶에 도움이 될 만한 좋은 말씀을 많이 남겼고, 그의 『논어』는 지금도 베스트셀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이런 말씀과 함께 기억된다. “여자와 소인은 가까이 하기 어렵다.” 여자는 인류의 반을 차지하고, 소인은 군자를 뺀 다수의 보통사람을 가리킨다. 군자를 중심에 두고 인류의 대부분을 소외시킨 것이다. 더 나아가 유교에서는 여자를 암탉에 비유하였다. 『예기』에 나온다는, 이른바 “암탉이 울면 집안 망한다”는 소리를, 내 나이쯤 되는 여자라면 분명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런 교육을 비판 없이 대물림해온 탓에, 여자들의 말과 행동은 심하게 제한되었다. 유교의 가르침을 따르자면, 여자들에게 세상은, 해서는 안 될 것들로 가득하다.
불교는 어떤가. 불교의 계율에서도 여자 수행자들에게 부과된 금지조항이 훨씬 더 많다. 또한 경론에는 여자에 대한 혐오표현이 수위를 넘는다. 지극히 더럽고 요사스러운 존재로 묘사되기도 하고, 모든 화의 근원으로 꼽히기도 한다. 2천 년이 넘는 동안 여자 수행자가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들 이야기는 제대로 소개조차 되지 않았다. 이것이 불교 안에서 여자의 지위를 말해준다. 처음부터 그랬을까. 부처님은 애초에 어떤 입장이셨을까.
『화엄경』에 따르면, 부처님께서는 깨닫고 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참 기이한 일이다. 중생이 부처와 똑같은 지혜, 똑같은 덕성을 가지고서도 무명에 덮여 저렇게 사는구나.” 이렇게 한탄하시고 나서 편안하게 열반하려던 길을 돌려 사바세계로 다시 오셨다. 그리고는 중생이 부처와 같음을 깨우쳐주기 위해 남은 생을 다 바치셨다. 처음으로 하신 일은, 과거에 같이 수행했던 다섯 비구를 찾아가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들을 필두로 승단을 만드셨는데, 그 안에는 계급의 차별이 없었다.
「장아함경」 「소연경(小緣經)」에는 이런 말씀이 나온다. “나의 참된 도에서는 족성을 따지지 않는다. 세속의 법에서는 이것을 따지지만 나의 법은 그렇지 않다.” 또한 아난의 청으로 여자를 승단에 받아들이셨다. 당시 인도 사회를 생각할 때 부처님의 승가는 아주 급진적인 단체였다. 지금의 눈으로 보아도 평등사상에 있어서 부처님 같은 분은 찾기 힘들다.
그러나 부처님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인도에서 성평등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구사론』에 전하는 바, 비구니를 범한 자는 왕에게 배상하라는 사례에서 당시 여자 수행자의 지위를 엿볼 수 있다. 지금도 부처님의 나라 인도에서는 매일같이 많은 소녀들이 강간을 당하며, 결혼지참금을 마련하지 못한 아버지와 딸이 동반자살하는 일이 큰 뉴스거리도 못된다. 여자 몸은 여자 것이 아니다.
고대 인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여자 몸은 남자들의 지배하에 있는 남자들의 영토이다. 여차하면 언제나 가장 먼저 짓밟히는 곳이다. 그래서 ‘미투’는 외친다. “내 몸은 내 꺼”라고. 여자들은 아직도 이 자명한 사실을 외쳐야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지난 달, 오십대 남자들과 밥을 먹다가 이런 질문을 받았다. 마침 밥집 TV에서 미투 이슈를 집중 보도하고 있었다. 질문은 이랬다. 그러면 앞으로 남자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러니까, 여자에게 친근감을 표시할 때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헛갈린다는 것이었다. 그걸 질문이라고 하나. 만지려던 그 상대가 당신 딸이라면 기분이 어떻겠냐고 혼을 내주려다가 참았다.
미투운동의 지침에 ‘남자를 적으로 돌리지 말라’는 조항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헛갈릴 것 없다고, 만지지 말라고, 남의 몸이라고. 이 대화에서 남녀 간에 이 문제에 대해 시각 차이가 크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 사람들이 불교를 전공하는 사람들이라서 실망이 더 컸다.미투운동을 계기로 불교계는 돌아볼 것이 없을까. 큰 숙제고 큰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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