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주인공의 삶]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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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7 년 5 월 [통권 제49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870회 / 댓글0건본문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왔다. 침몰한 지 3년 만에, 말할 수 없는 곡절을 담고 처참한 모습이 되어 올라온 배를 보자 그날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 날은, 왜 그런지는 몰라도, 그날 일어났던 일과 함께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도 뚜렷이 기억난다. 어릴 때 무장공비가 서울에 침투했던 날, 동네 위로 저공비행하던 헬리콥터의 굉음과 함께, 내 손을 꼭 쥔 외할머니의 치마 색깔까지도 기억이 난다. 2009년 5월 23일, TV화면 가득히 ‘노무현 대통령 서거’라는 글자가 뜨고, 이어서 영화의 엔딩타이틀처럼 천천히 올라가는 글자들. ‘님은 갔습니다.’로 시작되는 시. 그렇게 그날의 기억은 ‘님의 침묵’으로 남았다.
그리고 3년 전 4월 16일, 하루 종일 뉴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저녁에 대학로에서 친구를 만나 밥을 먹는데, 그 식당에서 밥 먹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말없이 뉴스만 보고 있었다. 가라앉는 배를 보면서 내 마음은 “아, 저 아이들 불쌍해서 어떡하나.” 그랬다. 그 뒤로 며칠 동안, 발을 동동 구르며 통곡하는 부모들을 보면서도 “아, 저 사람들 불쌍해서 어떡하나.” 그랬다.
구조를 못하는 건지 안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서 한동안은 숨은 뉴스들을 찾아보았다. 유투브나 팟케스트를 통해 유가족, 생존자, 잠수부 등 관련자들의 증언을 보고 들으면서 화가 치밀었다. 가만있을 수 없어서, 뭐라도 해야겠기에 서명을 하고 시위에도 나갔다. 그러나 진상규명은커녕, 오히려 유가족들이 모욕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자, 한편으로는 분노가 심해지고 한편으로는 무력감 때문에 점점 지쳐갔다. 마음이 불편해서 한동안 뉴스조차 보지 않고 외면하다가 바쁜 일상에 묻혀 점점 무관심해져 갔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연민으로 시작해서 무관심으로 끝남. 이것이 남에게 닥친 고통을 대하는 나의 태도이다.
수잔 손택은 『타인의 고통』(이후, 2004)에서 우리에게 연민을 넘어선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그녀는 1990년대 보스니아 전쟁이 한창일 때 그 속에 살았다. 보스니아에 가해진 세르비아인들의 무자비한 만행이 국제뉴스를 통해 전 세계에 생생히 전해졌고, 저자의 표현대로 ‘스펙터클’한 그 장면들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TV를 통해 중계방송을 보았던 사람들은 저런 끔찍한 일들이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내게 일어난다면 어떡하지 하는 공포와 저 사람들 어떡해 라는 연민이 복합적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TV를 보는 구경꾼에게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완전히 타자가 되었다. 처음의 충격은 점점 무뎌지고, 그들의 고통은 이제 리모콘을 돌리다가 잠시 멈춰서 보는 정도의 구경거리가 된 것이다. 저자는 그렇게 무뎌지는 이유가 무력감과 두려움 때문이며, 그것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게 되는 하나의 이유라고 한다.
“연민은 변하기 쉬운 감정이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런 감정은 곧 시들해지는 법이다. 따라서 정작 문제는 이렇다. 이제 막 샘솟은 이런 감정으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알게 된 지식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만약 ‘우리’(그런데 ‘우리’란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느낀다면, 그리고 ‘그들’(그런데 ‘그들’은 또 누구인가?)이 할 수 있는 일도 전혀 없다고 느낀다면, 사람들은 금방 지루해하고 냉소적이 되며,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연민은 사람의 본능이자 보살이 될 기질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통을 받는 자가 ‘그들’이고 연민을 느끼는 자가 ‘우리’인 한, 고통은 계속될 것이다. 저자는 연민의 한계를 지적하고 그 한계를 넘어설 과제를 제안한다.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수잔 손택은 미국 사람이다. 그녀는 수많은 학살 위에 세워진 나라가 미국임을 인정하고, 초강대국이 되는 과정에서 저질러온 악행이 많은데도 미국인들은 그런 역사를 되돌아볼 줄 모른다고 용감하게 말한다. 2001년 9・11테러가 났을 때 그녀는 “미국이 저지른 특정 행위에 따른 당연한 귀결”(「뉴요커」2001, 9, 24)이라는, 미국인으로서는 드문 발언을 했다. 하나의 사건을 놓고 인과관계를 따져 역사를 되짚어 보는 자세이다. 그런 성찰을 통해 그녀는 9・11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다 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 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
나는 세월호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 같이 슬퍼했지만 다 같이 바보가 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처음부터 연민에 주저앉지는 않았다. 안전 대신에 돈을 선택해온 삶을 돌아보고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은 나태함을 후회했다. 남의 고통을 자기 문제로 삼고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 모여서 고민하는 중이다. 세월호가 사람들을 성숙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게 되었을 때 나는, 노란 리본이 불편했다. 아무것도 못하면서 리본만 달고 다니는 것이 스스로 가증스러워서 떼어버릴까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가족의 인터뷰를 듣게 되었다. 길을 가다가 앞 사람 가방에 붙은 노란 리본을 보면 너무 반갑고 너무 고마워서 달려가 아는 척하고 안아주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가족은 살고 싶지가 않아서, 그래서 죽으려고도 했다가, 리본을 단 사람들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한다. 그 인터뷰를 듣고 나서 마음을 고쳐먹고 계속 달고 다닌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무력감을 느낀다는 것이 바로 공감능력이 있다는 증거라고 한다. 이 말에 조금은 위안을 받았다. 다음 대통령은 공감능력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며칠 후면 대통령을 다시 뽑는다. 이제는 누가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새로 뽑힌 대통령이 대통령 노릇을 못하면 또 탄핵을 하면 될 테니까 말이다. 이번 겨울을 지나면서 얻은 자신감이다. 그러나 촛불 들고 추위에 떠는 수고를 미리 막기 위해, 세 번 남은 대선후보 토론회를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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