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산책]
대각 국사 의천 - 윤회를 벗어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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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기 / 2020 년 5 월 [통권 제85호] / / 작성일20-06-01 17:06 / 조회7,942회 / 댓글0건본문
백원기 |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문학평론가
고려의 대각 국사 의천(1055-1101)은 선교 대립과 갈등을 원융회통하고, 『법화경』의 ‘회삼귀일’ 사상에 근거한 교관겸수 제창과 천태종을 열었다. “아들 넷이면 한 아들은 출가시켜야 한다.”는 국법에 따라 11세의 의천이 자청해 출가, 개성 영통사 난원 스님의 제자가 되었다.
출가 후 의천은 숱한 어려움을 무릅쓰면서도 구법의 행각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의천은 원효의 위대함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으로, 원효를 ‘해동교주, 원효 보살’로 극찬하고 있다. 형 숙종이 원효에게 ‘화쟁국사’란 시호를 내리게 한 것도 의천이었다. 의천이 지난한 구도의 길에서 한 줄기 광명이 되는 지남指南을 발견한 것은 원효의 『금강경소』를 만난 덕분이었다.
옳은 말씀 꾸미지 않아도 불심에 들어맞거니 義語非文契佛心
분황사 스님 가르침에 따라 경의 뜻을 찾으리. 芬皇科敎獨堪尋
다생을 캄캄한 어둠 속에 홀로 헤매다가 多生孤露冥如夜
오늘에야 희귀한 이 소疏를 만났네. 此日遭逢芥遇針
원효의 『해동소』에 의거해 『금강경』을 강의하고 나서 기뻐하며 지은 시다. 다생의 어둠 속에서 헤매던 과거와 이제 『금강경』에 대한 원효의 주석을 읽음으로써 비로소 등불을 찾은 환희심이 분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즉, 해박한 교리로 불법을 회통시켰고, 민중 속으로 뛰어들어 중생을 교화하고 불법을 진작시킨 원효의 흠모와 존경은 “오늘에야 이 희귀한 금강경소를 만남”은 겨자가 바늘을 만나듯 기적이라는 대목에서 선명히 드러나 있다.
구도시가 구도과정에서의 고뇌와 법열을 읊은 것이라면 교화시에는 불법홍포의 난관이 되는 말세인식에서 오는 갈등과 호법의 의지가 담지되어 있다 할 수 있다. 몸을 던져 불법의 씨[불종佛種]를 심고자 했던 그의 강한 전법과 교화의 의지는 이차돈 성사의 사당을 참배하고 쓴 「염촉사인묘厭髑舍人廟」에서 잘 묘사되고 있다.
천리 길 남쪽으로 내려와 성사께 문안드린다 千里南來問舍人
청산은 적막한데 몇 번이나 봄이 지났던가, 靑山獨立幾經春
만약 말세에 법이 어지러울 때를 만난다면, 若逢末世難行法
나 또한 당신과 같이 몸을 아끼지 아니하리라. 我亦如君不惜身
경주 백률사 이차돈 성사(506-527)의 사당을 참배하고 난 후 신명을 아끼지 않고 불법을 펴겠다는 굳은 결의가 잘 드러나 있다. 염촉은 이차돈의 자이며, 사인은 염촉의 벼슬이다. 1, 2행은 찾아 주는 이 없이 오랜 세월 동안 외로이 남아있는 성사의 쓸쓸한 사당을 묘사하고 있다. 순교 후 5세기가 지난 의천의 시대에 불교는 찬란하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러나 의천은 5세기라는 시공을 초월하여 옛날의 법난을 회상한다. 3, 4행은 이차돈과 같은 상황을 만난다면 의천 자신도 불법수호를 위해 기꺼이 신명을 바치겠다는 맹세와 성사의 거룩한 순교에 대한 추모의 상념을 표출하고 있다.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스님이 되어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본보기를 위해 인생의 부귀영화를 풀잎의 이슬같이 여긴 의천은 은거생활에서 단순한 산수 경계의 범위를 넘어 출세간의 법열을 추구하고자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처의 길을 찾는 것 밖에 할 일이 없다는 그의 지극한 구도일념은 「부귀영화는 모두 봄꿈」라는 시에 잘 묘파되고 있다.
부귀영화는 모두 봄날의 꿈이요 榮華富貴皆春夢
모이고 흩어짐, 삶과 죽음도 물거품일 뿐 聚散存亡盡水漚
안양에 깃들일 마음 제외하고는 除却栖神安養外
아무리 생각해도 추구할 게 없구나. 算來何事可追求
의천이 해인사에서 지은 이 시는, 왕자였던 그가 왜 출가를 하였는지 그 동기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속세가 허망무실하다는 인식에서 그는 더 이상 세속의 일에 연연하지 않으리라는 결의를 다진다. ‘버리면 얻는다’는 말처럼, 출세간의 도는 세속의 영화를 버림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토에 인연을 맺어 내생을 기약하겠다는 것이다. ‘안양에 깃들일 마음 제외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추구할 게 없다’는 대목은 그 점을 한결 명징하게 보여준다.
‘화경청적和敬淸寂’과 ‘명선茗禪’의 수행을 바탕으로 하는 다담선茶談禪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들여 온 스님이 의천이다. 이 시기에 승려나 문인들 사이에는 차가 중요한 선물의 하나였고, 차 선물을 받은 이들은 흔히 다시를 써서 화답하곤 했다. 의천은 「화인사다和人謝茶」라는 시에서 달밤에 차 끓여 마시며 세속 근심을 잊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슬 내린 봄 동산에서 무엇을 구할 건가 露苑春峯底事求
달빛 아래 차 끓여 마시며 세상 걱정 잊는다. 煮花烹月洗塵愁.
가벼워진 몸 삼동 유람도 힘들지 않고 身輕不後遊三洞
뼛골 속 으쓱하니 가을에 들어온 듯하네. 骨爽俄驚入九秋.
좋은 품격은 선문에도 합당하고 仙品更宜鍾梵上
맑은 향기는 시 읊고 술 마시는 일을 허락하네. 淸香偏許酒詩流.
영단이 오래 산다는 걸 누가 보았는가 靈丹誰見長生驗
그대를 향해 그 이유 묻지 말게나. 休向崑臺問事由.
산중에서 수도하는 수행자들의 삶에 있어 차는 빼놓을 수 없는 생활의 일부였다. 의천은 이슬 내린 봄 동산, 달빛 아래 차를 끓여 마시며 시름을 달래고, 또한 좋은 차는 수행하는 절간에 잘 어울리고 맑고 그윽한 향기는 술과 시를 낳은 동인임을 말하고 있다. 차를 선물하는 마음씨도 아름답지만 차갑고 맑은 샘물을 길어 차를 달이는 그 마음에는 한 점 티 없는 맑음이 존재함을 동시에 읽어 낼 수 있다.
구례 화엄사의 각황전 뒤편 언덕에 있는 ‘효대孝臺’는 화엄사를 세운 연기조사가 속세의 어머니가 그리워 차를 봉양한다는 전설 서린 곳이다. 이곳에는 4사자 3층 석탑이 있는데, 삼층 석탑을 떠받친 네 마리 사자 가운데 있는 분이 연기조사의 어머니고, 무릎을 꿇고서 어머니에게 차를 올리고 있는 분이 연기조사이다. 어느 날, 의천은 화엄사에 들렀다가 경내의 ‘효대’에서 연기조사의 효심을 생각하며 상념에 잠겼을 터이다. 그 감회의 서정이 「효대」에서 이렇게 노래되고 있다.
적멸당 앞에는 빼어난 경치가 많고 寂滅堂前多勝景
길상봉 높은 봉우리 티끌조차 끊겼네 吉祥峰上絶纖矣
종일 서성이며 지난 일 생각하니 彷徨盡日思前事
날 저물고 가을바람 효대에 몰아치네. 薄暮悲風起孝臺
어느 면에서 불교는 출세간적인 종교로 효와 거리가 있는 것으로 오해를 받아 왔다. 사실, 불교는 효를 강조한다. 불교가 얼마나 인간적인 가르침이며, 효를 강조하고 있는가를 이 ‘효대’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하여 가을바람에 낙엽이 지나간 세월의 잔해처럼 ‘효대’에 쌓일 즈음, 의천이 절창한 이 시를 새긴 시비 ‘효대’는 숱한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선승의 효심일 일깨워 주리라 생각된다.
“머리털이 이다지도 희었는가! 학업의 수고로움 쌓이고 또 쌓인 탓인가?”라고 언급했듯이, 의천은 백발이 될 때까지 사명감을 가지고 대중교화에 전념했다. 다음의 시는 단순히 육체적인 노쇠현상을 탄식하기라기보다는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았는데 벌써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어버린 의천 국사의 자책적인 심사를 보여 준다.
24년을 부지런히 강의에 힘쓰고 二紀孜孜務講宣
300권의 경전을 방언으로 번역했네. 錦飜三百貫花詮
과로에 전등의 힘이 부족함을 부끄러워함은 憔勞愧乏傳燈力
노산에서와 같이 연사의 씨앗이 될까 한 것이네. 祇合匡盧種社蓮
국사가 입적하기 1년 전인 46세에 쓴 시로, 생을 반조하며 정리를 한 느낌마저 준다. 첫 행은 교화의 열정을 말하고, 2행에서는 경전을 방언으로 풀어 유통한 일을 말하고 있으며, 3행에서는 자신의 몸조차 돌보지 않는 불법 전파에 대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 마지막 행에서는 이러한 열의가 저승 영혼의 구제로 이어지고 있다. 연사(蓮社) 결성의 희망은 의천이 가진 광대한 교화의 의지를 말해줄 뿐만 아니라 그의 입적 후 1세기가 지난 뒤에 문도인 요세(了世, 1163-1245))에 의해 백련사라는 염불단체의 결성으로 실현된다.
신라통일의 원동력이 된 원효의 화쟁사상은 『법화경』의 중심사상인 ‘회삼귀일’에서 비롯되며, 의천 역시 고려의 불교통합을 위해 원효와 『법화경』이 추구한 통합과 조화를 주장했다. 이는 분열되어 있던 고려 불교계를 일신하려는 움직임으로써 법화사상이 중요한 것이지만, 학인들은 이에 대한 공부에 힘쓰지 않는 우둔함을 경계했던 국사였다.
법화는 곧 윤회를 벗는 길임을 圓經本是出離緣
요즈음 사람, 이것에 힘을 안 쓰네. 末學區區未勉旃
곁길로 명성 구함 경계 되지만 依傍求名深有誡
끝끝내 잘못인 줄 모르는구나. 可憐終日不知衍
‘원경’은 원만하고 완전한 경의 의미로, 『법화경』을 가리킨다. 의천은 『법화경』이야말로 부처님께서 출세의 본의를 밝히신 경전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하여 방편설에 불과한 다른 종파에 매달리는 학인들의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고, 이를 경책하고 있다. 진리탐구 자세는 지금도 그 빛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치 제3탑
요컨대, 이른 나이에 출가하여 입적할 때까지 오직 구법과 전등을 발원하며 수행과 학문, 그리고 강학으로 일생을 살았던 대각국사 의천은 고려의 통합을 위해 원효의 화쟁사상과 『법화경』이 추구한 통합과 조화를 내세웠다. 아울러 그는 법화사상이야 말로 중생들이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 길임을 확신하고 경전의 다양한 비유와 상징을 시에 서정적으로 담아냄으로써 불교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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