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산책]
산사의 스님 달빛 탐낸 자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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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기 / 2020 년 1 월 [통권 제81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756회 / 댓글0건본문
백원기 | 동방문화대학원대 석좌교수 · 문학평론가
시와 술과 거문고를 너무 좋아하여 ‘삼혹호三酷好’ 선생으로 불렸던 이규보(1168-1241)는 평생을 ‘시마詩魔’에 붙들려 살았다. 그런데 그의 시벽詩癖은 결국 시마에 대한 관심과 그것의 극복으로 연결된다. 특히 그는 시 창작에 있어 감정에 연유하여 발로되는 ‘연정이발緣情而發’과 시는 새로운 뜻新意과 새로운 언어新語로 담아내야 한다는 ‘어의창신론語意創新論’을 시론의 핵심으로 삼았다. 그의 이러한 독특한 시론은 선심의 시심화에서 한결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 합격한 후 벼슬을 제수 받지 못하고 방황하던 시절, 이규보는 자연스럽게 산사를 찾게 되었고, 스님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의 고달픈 심경을 달래기도 하였다. 어쩌면 산사는 그에게 세상의 번다함과 현실의 시비분별을 떠난, 마음의 여유와 탈속한 정신세계를 지향하는 공간으로 놓이게 된다 할 수 있다.
사진. 이규보
족암은 푸른 바위 아래 우뚝 기대어 섰고 足庵高寄碧巖根
스님은 향로에 향을 사르고 밤이면 문 닫네 銀葉燒香夜閉門
연꽃도 필요 없는데 공연히 물시계가 필요하랴 不用蓮花空作漏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눕는 것이 일과라네 飢飡困臥是朝昏
『파한집』의 저자 이인로(1152-1220)는 무신의 난을 피해 입산해서 승려가 되었다가 환속하였다. 이규보는 영수좌 이인로가 주석하는 족암足庵을 방문하고 득도한 선승의 내면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족암은 속세와 떨어진 한적한 물리적인 공간인 동시에 화자가 속세를 벗어나 살아가는 정신적 경지를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곳에 사는 영수좌가 하는 일은 은향로에 향을 사루는 일과 해지면 문을 닫고,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쉬는 일이다. 이러한 일상은 남전南泉의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에 조응하는 행위이고, 또한 “일 없으니 밥 먹고 졸리면 잠을 잔다.”는 임제의 일상적인 삶이 ‘도’라는 법문과도 상통하는 면을 보인다. 이처럼 유유자적하고 탈속적인 삶을 사는 영수좌가 고결함과 불성을 상징하는 연꽃에 대한 집착까지 버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세인들이 재는 물시계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한편 이규보는 자신의 선에 대한 관심을 실행으로 옮겨 실제로 선사를 찾아가서 참선을 구하기도 하였다. 다음의 시에서는 선적인 청정심의 경계를 지향하는 모습이 산사를 배경으로 잘 그려지고 있다.
방석 위에서 곤히 졸아 갓은 벗겨지고 蒲團睡熟落冠巾
빈방은 고요하여 인기척도 없네 空室寥寥不見人
고쳐 앉아 마음을 맑혀 온갖 생각 사라지고 更坐觀心融萬想
휘영청 밝은 달 티끌 한 점 없네 炯然明月自無塵
응선사應禪師를 찾아 방장실에 갔다가 벌어진 일이 선명하게 표출되고 있다. 선정에 든 스님을 따라 방석위에 좌선을 한다고 앉아 보았지만, 그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었다가 문득 깨어난 정황이 묘출되고 있다. 세속의 얽힌 번뇌로부터 벗어난 잠깐 동안이나마 누려보게 된 한가로움의 극치이다. 즉 졸음을 떨치고 단정히 앉아서 모든 잡념도 사라진 선정의 상태에서 투명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들여다본다. 선종에서 말하는 ‘회광반조廻光返照에 해당하는 이때의 마음 상태를 ‘한 점 티끌 없이 밝은 달’에 비유하고 있다.
불가에서 연꽃은 처염상정處染常淨의 상징으로, 이는 곧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자성 그 자체를 의미한다. 비록 불성을 갖추고 있다하더라도 깨치지 못하면 범부인 것처럼 연못 밖으로 나오지 않은 연꽃, 즉 피지 못한 연꽃은 미오迷悟의 경지이다. 이규보는 청정한 가을 호수에서 ‘연꽃이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상황’은 불성을 깨닫는 순간이고, 또 번잡한 사려와 현상에서 해탈한 열반의 경지임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새 한 마리 물속에 들며 푸른 비단물결을 가르니 幽禽入水擘靑羅
온 연못을 뒤덮은 연꽃잎이 살며시 움직이네 微動方池擁蓋荷
선심이 원래 스스로 청정함을 알고자 하면 欲識禪心元自淨
맑고 맑은 가을연꽃이 찬 물결 속에서 솟은 걸 보소 秋蓮濯濯出寒波
밤이슬을 맞고 피어난 연꽃은 선가에서 수많은 화두를 간직한 깨달음의 보고로 여겨진다. 이 ‘조용한 곳에 사는 새幽禽’ 한 마리가 먹이를 찾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들자, 푸른 물결에 작은 파문이 생기고, 이 파문은 맑고 맑은 가을 연잎을 살짝 흔든다. 연못에 이는 작은 ‘파문’은 어리석은 중생의 흔들리는 마음을 상징하지만 결국에는 연꽃의 개화를 이끌어내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자연현상과 조사의 공안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여 오도의 상황을 명징하게 포착하는 시인의 통찰력에는 선기가 번득인다.
이규보의 선시에서 읽어낼 수 있는 또 다른 코드는 ‘자재로움’이다. 부질없는 욕망은 물론 도를 이루겠다는 집착마저 버리고 걸림 없이 사는 모습은 달관의 경지에 이른 도인의 마음과 같은 경지이다.
고목나무 옆 한적한 방장실 方丈蕭然古樹邊
감실엔 등불이 빛나고 향로에는 연기이네 一龕燈火一爐烟
노승의 일상사 물어볼 것 있으랴 老僧日用何須問
객이 오면 청담 나누고 객이 가면 조는 것을 客至淸談客去眠
산승의 걸림 없는 삶에 대한 이규보 자신의 놀라움이 간결하게 그려지고 있다. 세속의 인연에 매여 시달리고 바쁘기만 하던 객의 눈에 들어온 산승의 살림살이와 일상이 화자에게 너무나 신선하게 다가 왔던 것이다. 그 절의 최고 어른스님이 기거하는 방장실에 들렀을 때 객의 눈에 들어온 것은 등잔 하나와 향로 하나뿐이었다. 이 순간 숱한 번뇌 망상도 자신의 참모습을 찾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임을 깨닫는다. 이와는 반대로 산승의 살림살이는 어둠을 밝히는 등잔과 마음을 가라앉히는 향로일 뿐이지만, 텅 빈 마음의 여유는 텅 빈 그 자체로서 번뇌로 꽉 차 있는 세속인의 마음을 비우게 하고 있는 것이다. 객의 오고 감에 따라 다담을 나누거나 오수를 즐기는 노승의 일상사는 ‘자재함,’ 바로 그것이다.
이규보는 방황시기에 사찰을 자주 찾았고, 또한 격의 없이 스님들과 함께 차를 마실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 현실적 불우함의 울분을 달래는 것이 술이었다면, 현실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아의 내면을 성찰을 하는 매개로 차茶를 가까이 했다 할 수 있다. 어쩌면 이러한 생각은 맑은 물이나 그윽한 차 맛이 주는 이미지가, 흐린 이미지의 술보다 품격 있는 것으로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설봉산 노규老珪선사로부터 조아차早芽茶를 선물로 받고 남긴 다음의 시는 맑은 물과 그윽한 차 맛이 주는 격조를 잘 묘사하고 있다.
돌화로의 센 불에 손수 차를 달이니 塼爐活火試自煎
찻잔의 차 빛깔과 맛이 자랑스럽네 手點花甕誇色味
향긋한 맛 입속에 부드럽게 녹으니 黏黏入口脆且柔
내 마음 어머니 젖내 맡는 아이 같구나 有如乳臭兒與稚
“향기로운 차는 참다운 도의 맛”이고 “한 잔의 차는 바로 참선의 시작”이라고 했던 이규보는 단순히 차를 마시는 일에서뿐만 아니라 차를 달이는 과정 자체에서 번뇌를 해소하는 길로 인식했다. 화롯불에 차를 손수 달이는 것은 스스로의 깨달음을 얻는 수행심을 표현한 것이다. 또한 차 맛이 입속에 녹으니 ‘내 마음 어머니 젖내 맡는 어린아이 같다’라는 것은 차를 끓여 마시니 편견이 없어지고 마음이 밝아져 생각에 그릇됨이 없음을 묘사한 것이다.
신라시대 이래로 달은 아주 친숙한 불교적 소재로 다루어졌다. 진여의 상징인 달빛에서 공空을 간파해내는 시인의 감수성과 선사의 깨달음의 절묘한 융합은 한결 고상한 시로 형상화 되고 있다.
산사의 스님 달빛을 탐내어 山僧貪月色
한 항아리 가득 물과 함께 길어 갔네 幷汲一甁中
절에 도착하면 응당 깨달으리라 到寺方應覺
항아리 비우면 달빛 또한 비게 되는 걸 甁傾月亦空
우물에 비친 달빛이라는 허상에 주목하여 불교의 핵심인 공과 연기의 문제를 형상화 하고 있는 압권의 시이다. 산승이 우물에 비친 달빛을 진상으로 오인하고 물병에 물과 함께 병속에 담아 가지만, 암자에 이르러 물병의 물을 비우면 그 달도 함께 텅 비어 공空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달빛이 허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자연물인 달빛도 탐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병통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수행자가 마음 밖에서 불성을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이미 내재된 불성을 깨달아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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