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산책]
그 마음이 보석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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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기 / 2020 년 10 월 [통권 제90호] / / 작성일20-10-21 14:31 / 조회8,358회 / 댓글0건본문
선시산책 29 | 석성우 스님
경남 밀양 출생의 석성우(1943- ) 스님은 197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산란」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정운 시조문학상을 수상한 스님은 현재 불교텔레비전 회주이며, 율승의 사표로서 『우리들의 약속』, 『어둠이 온다고 서러워 말라』, 『금가락지』, 『선시』 등의 시집과 수필집으로 『해와 달 사이』, 『죄 없어 미운 사람』 등을 남기고 있다.
선의 진리는 마음에 있으므로 마음의 당체를 터득하면 마음의 본체가 저절로 드러난다고 하였다. 깨달으면 법의 실체는 어디에나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원각이다. 그러나 우매한 우리 중생은 허상에다 초점을 맞춰두고 그것을 향해 질주한다. 하여 성우스님은 깨달음의 세계에는 과거나 미래도 없고 오직 절대적인 순간인 ‘현재’만이 있기에 현재의 그 ‘마음’을 찾을 것을 설파한다.
천 년이 지난대도 고쳐보면 지금이요
억 겁이 흘러가도 다시 보면 이제로다
지금의 이 마음자리 놓을 곳이 어딘가.
과거는 저기만큼 이미 흘러갔는데
미래는 여기까지 아직 오지 않았네
오로지 현재의 마음 그 마음을 찾으렴.
사물에 대한 정밀한 관찰과 정관의 자세는 고요한 선정의 상태와 연관된다. 선정의 상태는 망념이 배제된 순수한 마음의 상태로서 무심의 경지이기에, 허상을 배제하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대하게 된다. 그러므로 스님은 자신의 근본 마음자리를 비추어서 아는 것만이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며, 자신의 마음 그것이 곧 부처이므로 ‘현재의 그 마음’을 찾을 것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 즉 그 마음을 찾으면 천하를 얻게 되고, 그 마음을 잃으면 세상을 다 잃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 마음 찾으면 천하를 다 얻는다
그 마음 잃으면 이 세상 다 잃는다
얻고 잃는 마음 밖에 자성불이 웃는다.
사실, 법계의 만상은 미혹한 중생의 눈으로 보면 차별적인 현상 그대로이지만, 깨달은 자의 눈으로 보면 고금의 구별이 없고, 처소의 차별이 없어진다. 마음과 경계가 일체가 된 불이不二 법문 안에 무슨 범부와 성인, 선과 악의 분별이 있겠는가? 결국 마음이란 늘 가까이 있느니 애써 멀리서 찾으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곧 ‘지금 여기’의 그 마음을 찾으라는 것이다. 또한, 보석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 마음이 보석임을 강조하는 스님은 깨달음의 본질이 마음의 묘용임을 역설한다.
그 마음 편안하면 그게 바로 부처 마음
그 마음 때 없으면 그게 바로 보살 마음
편하고 편치 않은 마음 그게 바로 중생 마음.
마음 열어 놓으면 천하가 나의 것
마음 닫아 놓으면 일체가 남의 것
기러기 가을 하늘 날아 흔적 하나 없구나.
보석이 따로 있나 그 마음이 보석인 걸
탐심에 가리우고 욕심에 묻혔지만
영겁을 쓰고도 남을 마음 줄에 꿰어보렴.
스님은 모든 것이 오직 마음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마음을 닫고 보면 바늘 꽂을 틈이 없고, 마음을 열면 용서 못할 흠이 없다. 따라서 그 마음 편안하면 그게 바로 부처 마음이고, 그 마음 때 없으면 그게 바로 보살 마음이며, 편하고 편치 않은 마음 그게 바로 중생심이라는 것이다. 또한 마음 열어 놓으면 천하가 나의 것이지만, 마음 닫아 놓으면 일체가 남의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깨달음을 얻어 새로운 혜안으로 보면 일체의 경계가 없다. 이 꿈을 깬 순간의 환희가 기러기 가을 하늘 날아 흔적 하나 없는 모습으로 형상화 되고 있다. 새가 허공을 나는 것이 실상이지만 그 실상은 순간일 뿐 허공에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야말로 ‘제상비상’이다. 우주 공간의 모든 현상이 늘 변화하고 덧없이 지나가는 것이기에, 스님은 현상에 집착하지 말고, 영겁을 쓰고 남을 보석[마음]을 잘 찾아서 크게 쓸 것을 당부한다.
『화엄경』에는 “법공양이란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하는 것이며, 중생을 이롭게 하고 구제하려는 보살의 뜻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며, 보리심을 잃지 않는 것”이라 했다. 성우 스님은 어느 회상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발우를 폈다가 학인 스님들이 탁발하여 대중공양을 낸 것을 알고 업이 될 것이라 하여 무거운 마음으로 발우를 거두었으며, 또 고암 종정께서 달여 준 차를 마신게 마음의 큰 빚으로 남아 있음을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수행자가 어떻게 공양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어느 회상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발우를 폈다가
운문사 학인들이 탁발하여 대중공양 낸 것이라기에
무거운 마음으로 거두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 고암 보살이
달여 주는 차를 홀짝 홀짝 먹은 게
큰 빚으로 남았음을 이십여 년 지나고야 알 것 같다
이른 봄볕 머금고 흘러가는 석간수 한 사발이
참으로 좋은 공양임을 ···
대접 받으려는 생각은 기득권에 대한 집착이고, 기득권에 대한 탐욕임을 깨닫게 해 준다. 수행자가 공양의 대상이 된다고 자만해서는 안 되며, 철저하게 자기를 낮추는 모습이 역력하다. 수행자의 사상과 정신은 하늘보다도 높을 만큼 고준해야겠지만, 마음가짐과 행동거지는 겸허하게 낮추어야 한다는 스님의 올곧은 수행자세가 그대로 묻어난다. 수행자가 분에 넘치는 공양을 받으면 업이 된다는 것이다. 하여 진정으로 좋은 공양은 이른 봄볕 머금고 흘러가는 “석간수 한 사발”이라는 말에는 율승의 사표로서의 검박한 수행정신이 담지 되어 있다.
봄철이 되면 산하대지에 물이 흐르고 수많은 꽃들이 피어나며 새가 지저귄다. 이 모두 진여의 모습으로 법음을 노래하고 불법의 꽃을 피운다. 한때 성우 스님이 주석했던 파계사를 품은 팔공산에도 갖가지 꽃들은 아름다움을 지니며, 뽐내지도 않고, 다투지도 않으면서 저마다의 자리에서 자신의 향기를 피웠을 것이다. 이 거대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자연의 장엄함, 이것이 바로 화엄華嚴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지극히 소중하다는 것을 스님은 「화엄의 바다」 연작시에서 이렇게 담아내고 있다.
보아라 저 아름다운 푸른 보석 광채를
들어라 저 은밀한 고요의 작은 소리를
오늘도 마음자리에 웃고 있는 돌부처.
불법이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붉은 꽃, 푸른 산, 고요하게 들려오는 소리 등 자연 그대로 만물 속에 완연히 드러나 있다. 때문에 새의 지저귐이나 계곡물 소리, 짐승의 울음까지도 모두 실상을 이야기하고 반야를 드러내는 것으로 파악하는 스님이다. 여기에는 스님의 직관적 자연 관조를 기조로 한 자연과 합일에 이른 선적 세계가 다분히 내재되어 있다.
차에는 부처님의 가르침法과 명상禪의 기쁨이 다 녹아 있고, 또한 차는 그 성품에 삿됨이 없어서 욕심에도 사로잡히지 않으며 청정한 본래의 원천 같은 것이라 하여 무착바라밀無着婆羅蜜로 부르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선사들은 ‘다선일미’라 하여 차를 다루는 일을 일상사로 여겼던 것이다. 성우스님 역시 깨달음을 얻어 가는 수행과정에서 선다시禪茶詩로 마음을 맑히고 진여를 찾는다. 스님은 차 한 잔에 담긴 이로움과 의미를 이렇게 묘출하고 있다.
한 잔의 차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한 잔의 차는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한다.
한 잔의 차 속에 무량한 역사가 있고,
한 잔의 차 속에 아름다운 향기가 있다.
차는 그 자체에 참된 향기와 참 맛, 참 빛깔을 가지고 있어서 따스한 마음의 여유와 맑은 마음을 갖게 한다. 맑은 차 한 잔을 마시며 느껴지는 오묘한 선열을 노래하고 있는 이 시에는 스님의 청허한 수행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비록 차를 한 잔 마시는 것이지만, 모두가 자신의 깊은 선심(禪心)을 드러내는 일이다. 중국 송대의 대문장가 황정견은 “고요히 앉은 곳에서 차를 반이나 마셨는데 향은 처음이나 다름없고 / 차 마신 기운이 오묘하게 작용할 때 물 흐르고 꽃이 핀다[靜坐處茶半香初 / 妙用時水流花開]”라고 하였다. 아무도 없는 적정처寂靜處에서 차를 마심으로 얻는 이로움은 스스로를 반조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뿐만 아니라 타인과 함께 나누어 마심으로 얻는 즐거움이다.
이규보는 “향기로운 차는 참다운 도의 맛”이고 “한 잔의 차는 바로 참선의 시작”이라고 했다. 그래서 선사들은 차를 준비하고 향유하는 전 과정을 통해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맛본다고 하였다. 결국 차를 마시는 마음은 평상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차를 마시면 귀로는 골짜기의 냇물소리와 솔바람소리를 듣고, 코로는 아름다운 향기 맡으며, 혀로는 감로의 맛을 보고 눈은 나쁜 것을 보지 않으니, 마음은 저절로 사악함이 가시고 맑아진다. 성우 스님이 선열의 오롯한 시간을 잃지 않았던 것도 한 잔의 차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선적 사유는 다음의 시에서 한결 깊어진다.
봄비 산을 건너가고 춘란 꽃순 고개 숙일 쯤
토기 옹두리 어루만지다.
또 할 일 없어 먼 하늘 구름결 헤다.
내 생의 그 어느 경치 살살 어려 올 즈음
옥로차 한잔 바위도 눈 뜨겠다.
봄비가 그치고 산자락에 걸린 운무가 걷히면 산색 푸름이 한결 뚜렷하고, 춘란 꽃순이 시들어 고개 숙인 한가로운 시간, 스님은 찻잎이 나올 무렵 차나무에 그늘을 만들어 싹이 햇빛을 덜 받게 재배하여 만든 옥로차 한 잔을 들고 마음을 맑힌다. 옥로차 한 잔으로 바위도 눈뜬다고 했으니 차를 마시며 선정에 드는 모습은 세속적인 얽힘과 인간적인 고뇌를 벗어나 자성의 본질을 체득하는 법열과 여유를 보여 준다. 이처럼 성우 스님은 차를 마시며 담담하고 고요하게 자신을 우주와의 합일 속에 맡김으로써 나와 우주, 우주와 나 사이의 틈이 없는 원융세계를 획득하고 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잊고 난 뒤의 기쁨, 즉 법열이다.
요컨대 선禪은 마음의 때를 씻는 도구이고, 차[茶]로써 때 자국을 씻을 것을 설하는 성우스님은 “지금 여기의 나”라는 절대적 현재에 비추어 ‘참된 자아’ 찾기를 강조한다. 그래서 스님의 선시에는 내려놓기와 걸림이 없고 무심한 삶의 관조의 세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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