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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와 불교윤리 ]
‘도덕적 무지’와 ‘도덕적 책임’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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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결  /  2025 년 4 월 [통권 제144호]  /     /  작성일25-04-04 11:45  /   조회2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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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에 걸쳐 동서양의 ‘공公’과 ‘사私’의 윤리에 대해 살펴봤다. 논의 과정에서 우리는 ‘사적 윤리’의 정서가 ‘공적 윤리’의 영역을 침해하는 도덕문화가 여전히 한국사회 곳곳에 잠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나라의 공직자문화는 보편적 가치의 적용에 앞서 혈연, 지연, 학연, 직연 등에서 비롯된 사적 친분관계를 더 중시하는 일종의 ‘의리(배신) 문화’가 암암리에 지배적인 에토스(ethos)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라를 불안과 혼란의 불구덩이로 몰아넣은 비상계엄령 선포와 국회의 대통령 탄핵 의결, 수사기관의 대통령 체포와 구속, 헌법재판소의 탄핵재판을 둘러싼 찬반 입장, 대통령의 구속 취소 등으로 국론이 양분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이런 불필요한 문제들의 발생원인과 근본적 해결책을 찾기 위한 보편적 윤리의식의 공유와 확산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이런 윤리적 인식의 자각은 불교를 비롯한 종교적 가르침들도 고유한 사상의 전파 못지않게 사회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유용한 윤리적 메시지를 계속 업데이트하지 못하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존재 의미마저 부정당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차원에서 재가불자들도 21세기적 미래환경에서 요청되는 윤리적 사고와 도덕적 행동의 당위성을 다시 한번 더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우리는 윤리적 삶의 출발점이 된다고 볼 수 있는 ‘도덕적 무지’와 ‘도덕적 책임’의 개념에 대해 한 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도덕적 행위와 책임은 소속 공동체의 문화적 영향을 받는가

 

사회적 존재라는 의미의 인간이 된다는 것은 말을 바꾸면 곧 그 사회가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도덕문화적 가치를 공유한다는 것과 사실상 동격으로 받아들여진다. 일반적으로 같은 사회구성원들 사이에서는 감정의 표현과 사고방식 및 행동유형이 비슷하게 나타나기 마련이며, 이를 판단하는 도덕적 기준에 대해서도 대체로 합의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말하자면 동일한 사회 내에서 어떤 상황에 적용되는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결정하는 윤리적 잣대는 이와 유사한 다른 사례에서도 거의 같은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 1. 트레이시 아이작(Tracy Isaacs, 1964∼). 캐나다 웨스턴대 철학과 교수.

 

그런 점에서 인간들의 행위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어떤 주어진 사회공동체의 도덕문화적 구속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게 되는 측면이 생긴다. 이 때문에 흔히 ‘문화(culture)’와 ‘행위(agency)’ 사이에는 상호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따라서 우리의 일상적인 행위들은 ‘문화적 관행(cultural practices)’의 승인을 필요로 한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주1) 그러나 이와 같은 논리를 확장할 경우 특정한 도덕문화적 맥락에서 이루어진 행위는 그 행위를 수행한 개인의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게 한다.

 

이처럼 도덕문화가 개개인의 가치와 행위에 미치는 직, 간접적인 영향력을 부인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어떤 도덕문화적 관행의 사회적 수용이 곧 그것의 도덕적 허용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는 곧 자신의 성장 환경인 내외부적 도덕문화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정서와 가치 및 목적들을 충실히 받아들여 내면화한(도덕문화화된) 결과가 윤리적인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눈을 흐리게 했다고 하더라도 행위에 대한 도덕적 책임은 어디까지나 행위자 자신의 몫으로 남게 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간혹 사정에 따라 인간적인 ‘변명(excuses)’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보편적인 의미의 도덕적, 법적 ‘책임(responsibility)’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 윤리학의 지배적인 견해인 것 같다. 

 

이런 상관관계를 혼동하면 우리들의 도덕적 행위는 그야말로 자의적인 통념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사회의 윤리적 진보는 멀어지고 말 것이 자명하다.(주2)  그것은 일종의 ‘도덕적 무지(moral ignorance)’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런 도덕문화 안에서는 평상시 특별한 도덕적 결함이 없는 정상적인 사람들도 심각한 잘못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를 수 있게 된다.(주3)  우리는 비상계엄령 선포에 이은 사회적 혼란 상황에서 대통령과 그 동조자들에게서 이런 ‘도덕적 무지’의 현장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된 무지’와 ‘일상적인 잘못들’의 도덕적 책임 

 

① 아테네 노예제의 경우

노예제도를 정당화했던 아테네 시민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잘못이라는 것을 정말 모르고(inability to appreciate something)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하며 편리한 사회적 관행 속으로 몸을 숨겼던, 이른바 ‘가장된 무지(affected ignorance)’를 표방했던 것일까? 

 

전자의 경우라면 도덕적 책임을 부과하기 어렵겠지만, 후자와 같은 경우에는 도덕적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가장된 무지’는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고 또한 알아야 하는가를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것으로 하나의 복합적인 도덕문화 현상이다. 그러나 때때로 그것은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특정한 관행이 그릇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기조차 거부하는 태도를 포함하기도 한다.”(주4) 

 

사진 2. 체셔 칼훈(Cheshire Calhoun, 1954∼).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철학과 교수.

 

여기서 보듯이 특정 집단의 도덕문화는 그들이 유지하고 싶어하는 삶의 방식에 바탕을 둔 내적인 관점을 무비판적으로 계승하고자 하는 구성원들에 의해 영속화된다는 특징을 갖는다. 예컨대, 특수부 검찰의 엘리트주의적 도덕문화를 들 수 있겠다. 그렇지만 잘못된 관행에 참여하는 개인들은 설사 그것이 그들의 도덕 정서상 용인된 행위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는 도덕적 책임을 모면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담스(Michele M. Moody-Adams)의 입장이다. 그렇다면 자의든 타의든 이번 비상계엄령 발동에 동참한 사인 및 공인들은 응분의 도덕적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들만의 도덕적 관행의 묵수는 사회적 진보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구성원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가능성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② 나치 정권의 유대인 탄압의 경우 

나치 정권 당시 유태인 학살 책임자로 악명 높았던 아이히만(Adolf Eichmann)을 만나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가 도착적인 성격의 소유자도 아니요, 가학적인 사람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가장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주5)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아이히만을 통해 평범한 일반 시민들도 얼마든지 사악한 행위자가 될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일깨워 주고 있는 셈이다. 비정상적인 사람이나 괴물처럼 무서운 사람만이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아이히만과 같은 사람들에게 훗날 인류의 씻지 못할 과오로 남은 끔찍한 전쟁범죄 행위들은 그저 ‘늘 하던(routine)’ 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사진 3. 노예의 시중을 받는 아테네의 귀족.

 

아담스는 이런 현상을 가리켜 ‘일상적인 일처럼 일어나는 그릇된 행위(banality of wrongdoing)’(주6) 라고 표현한다. 그들도 여느 가장들처럼 일과가 끝나면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하거나 아이들과 놀아주며 웃고 떠드는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에 불과했다. 1980년대 군사독재시절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고문 기술자로 악명 높았던 이근안 경감도 사무실에서는 자식들의 대학 진학을 걱정하던 한국의 평균적인 아버지에 불과했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놀란 적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아담스는 ‘가장된 무지’를 몇 가지 경우로 나누어 설명했다. 첫째는 예컨대, 고문에 가담한 사람들이 그들의 행위를 빗대어 ‘통닭구이’ 또는 ‘앵무새의 날개’라는 교묘한 말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잘못과 희생자의 고통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려는 경우이고, 둘째는 회사 간부가 부하 직원들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최대한 실적을 올릴 것을 강요하면서도 동원된 수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말라는 요구를 하는 경우이며, 세 번째는 잘못된 행동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에 대해 서로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경우이다. ‘계엄’을 ‘계몽’이라고 우기거나 마치 자신은 어떠한 불법적인 일도 저지르지 않은 것처럼 강변하는 것 등에서 우리는 ‘가장된 무지’의 전형적인 사례들을 거듭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4.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 독일 출신의 정치 철학자.

 

도덕적 책임은 무한한가

 

이른바 ‘도덕적 무지’는 소속 사회가 공유한 도덕문화의 영향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크다고 본다. 흔히 ‘가장된 무지’의 경우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자기가 처한 환경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스승은 ‘바담 풍’이라고 해도 제자들은 ‘바람 풍’이라고 알아들어야 할 일도 많았다. 그것은 비단 스승과 제자 사이의 문제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는 기성세대의 갖가지 사회적 부조리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된 도덕적 무지’에서 출발했지만, 그것은 단순히 ‘도덕적 무지’에서 비롯되는 일시적 후유증 정도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데에 사안의 심각성이 있다. 그 생생한 사례가 비상계엄령 사태 이후 지속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혼란과 불안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한국사회 일반의 무의식적인 ‘도덕문화’가 부지불식간에 합작한 전근대적인 불상사일 수도 있겠다는 우려마저 들었다.

 

이처럼 도덕문화와 개인행위의 관계는 상당한 연관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사람의 행위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도덕적 책임을 물어왔다.(주7) 그런 점에서 개인의 도덕적 진보는 사회의 도덕문화적 진보로 나아가는 첫걸음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새삼스럽지만 도덕문화의 영향과 도덕적 책임의 구분은 언제나 윤리적 삶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이럴 때일수록 불교윤리적 삶을 살기 위한 재가불자들의 인식변화와 태도의 전환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이는 예컨대, 문중의식의 재고를 요청한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어쨌든 이런 종류의 윤리적 담론을 계속 주고받으면서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도덕문화를 한 차원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계기를 우리 불교계가 주도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희망을 품어봤다. 

 

<각주>

(주1) Michele M. Moody-Adams, “Culture, Responsibility, and Affected Ignorance”, 

Ethics(vol.104, January 1994, no.2), pp.291∼292.

(주2) Tracy Isaacs, “Cultural Context and Moral Responsibility”, Ethics(vol. 107, July 1997, no.4), pp.670∼672.

(주3) Cheshire Calhoun, “Responsibility and Reproach”, Ethics(vol. 99, July 1989, no.2), pp.389∼390.

(주4) Ibid.

(주5)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New York; Viking, 1963), p.253. Michele M. Moody-Adams(1994), p.298에서 재인용함.

(주6) Michele M. Moody-Adams(1994), p.298.

(주7) Michele M. Moody-Adams(1994),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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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결
동국대 국민윤리학과 졸업(문학박사). 영국 더럼 대학교 철학과 방문학자 및 동국대 문과대 윤리문화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로 있다. 역저서로는 『불교윤리학 입문』, 『자비결과
주의』, 『불교의 시각에서 본 AI와 로봇 윤리』 등이 있고, 공리주의와 불교윤리의 접점을 모색하는 다수의 논문이 있다.
hnk@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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