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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불교는 지금]
만불성역과 아비야기리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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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광 김형근  /  2024 년 11 월 [통권 제139호]  /     /  작성일24-11-04 21:39  /   조회168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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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2시간 정도 가면 유키아(Ukiah)시 동쪽에 만불성역(The City of Ten Thousand Buddhas)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중국인 선화상인宣化上人이 건립한 미국 최초의 불교공동체이다. 성역 입구에는 여래사如來寺, 만불성역萬佛聖域, 법계대학法界大學이라는 커다란 중국식 산문이 서 있다.

 

선화스님의 원력으로 이룩한 만불성역

 

이곳은 85만 평의 땅에 대략 70개의 사찰, 종각, 상가 및 재가자 수련원, 출가자 숙소, 비구니 숙소, 초등학교, 중등학교, 법계불교대학, 도서관 등 다수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또 노인회관, 서점, 가족을 위한 관사와 기숙사도 포함하고 있는 미국에 최초로 세워진 불교공동체이다. 만불성역에는 대략 100여 명의 스님들을 포함하여 약 350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미국에서 가장 많은 스님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사진 1. 드론으로 촬영한 만불성역 전경(좌). 사진 2. 만불성역 출입구의 현판(우).

 

이곳에는 1만 2,000평에 이르는 유기농 농장이 있으며, 여기서 나오는 채소는 이 공동체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식재료이며, 대학교 건물 건너편의 채식 식당에도 보급된다. 정규 교육기관을 통한 유능한 불교 인력의 배출은 선화스님의 가장 중요한 비전이다. 대학은 인류애, 정의와 도덕성의 바탕 위에 설립되었으며, 법계대학은 학생들이 지혜롭고 덕이 있는 세계적인 지도자가 되도록 교육하고 있다.

 

“학교 측의 설명에 의하면, 학위 프로그램에 약 50여 명이 등록되어 있으며, 단기 프로그램이나 다른 과정에 약 500여 명이 참가하고 있다. 현재 학생들은 미국의 각 주에서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북미,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4대륙 15개국에서 왔다. 최근 입학생들의 나이는 17세에서 80세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를 보이고 있다.” 

- 《미주현대불교》 2023년 11월호, 제니 김, 「법계대학과 만불성역 방문기」 

 


사진 3. 법계대학 전경.


사진 4. 만불성역 경내 학생들(좌). 사진 5. 수업 받고 있는 어린이들(우).

 

이런 대규모 불교공동체를 미국에 건설한 선화스님(1918~1995)이 생존한 시기는 내가 활동하던 시기와 겹치는데 아쉽게도 친견하지 못했다.

선화스님은 1918년 4월 중국 북동부의 길림성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불심 깊은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채식을 하고 부처님의 명호를 암송하고 다녔다. 성품이 조용하고 말을 절제하며 곧고 강직한 성품을 가졌으며, 15세 때 삼보에 귀의하였다. 학교에 입학하여 다양한 중국의 고전철학을 이해하고 신학, 의학 등 다방면의 지식을 섭렵하였다. 19세 때 하얼빈에서 상지常智 스님에게 출가하였다.

 

그 후 1947년 보타산에서 구족계를 받았으며, 1948년 만리 길을 걸어 광동성 남화사南花寺에 도착해 근대 중국불교를 부활시킨 허운虛雲(1840~1959) 노스님을 친견하였다. 다음해 허운대사로부터 위앙종 9대 조사의 전법계를 받고 선화宣化(밝히고 전한다)라는 법호를 수지하고 스승의 교단에서 시봉하였다. 2년 후 선화스님은 홍콩으로 건너가 수행하고 사원을 재건축하고, 간경과 불상 조성 등 10년 동안 포교 활동에 집중하였다.

 

사진 6. 젊은 시절의 선화스님(오른쪽)과 허운대사(가운데). 왼쪽은 1932년 일본 대덕사에서 수행한 미국인 루스 풀러 에버트.

1959년 불법을 전하기 위해 그는 제자를 미국으로 파견하여 샌프란시스코에 불교 강당을 설립하고, 1962년 이 단체의 초청으로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다. 당시 샌프란시스코에는 중국 스님과 티베트 스님이 2〜3명 정도 있었다. 일본 출신 스즈키 순류 스님이 조동종 사찰의 주지로 있었는데, 젊은이들이 이 사찰로 많이 찾아오던 시기였다.

 

선화상인의 경전 강의를 듣는 대중들이 날로 증가하여 샌프란시스코 불교 강당은 중·미불교총회(Sino-American Buddhist Association)로 이름을 바꾸었다. 당시 미국 젊은 층들이 강당을 메우기 시작했고, 좁은 주택에 마련된 도량은 더 이상 밀려드는 불자들을 수용할 수 없게 되었다. 1974년 샌프란시스코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캘리포니아 주립병원으로 사용하던 건물과 부지를 매입했다.

 

사진 7. 박물관 벽면에 붙어 있는 선화스님의 사진.

 

1976년 이곳을 만불성역이라고 이름을 붙인 뒤 중·미불교총회의 총본부로 정했다. 이 해에 법계불교대학(Dharma Realm Buddhist University, DRBU)과 초등학교도 설립했다. 1984년 중·미총회 본부는 법계불교총회(Dharma Realm Buddhist Association)로 명칭을 바꾸었다. 현재까지 이 총회에서 북미주뿐만 아니라 아시아권에 세워진 학교, 사찰, 강당, 수련원, 역경원 등을 총괄하여 관리하고 있다.

 

필자는 선화스님이 아시아에서 온 불교인 중에서 가장 모범적인 스님이었고, 원력을 크게 세워 대성한 스님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성공적으로 대작불사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엄격하고 계율을 철저히 지킨 스님이었기에 그를 생각할 때마다 거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선화스님의 성공은 시대를 보는 안목과 더불어 철저한 계율의 준수와 큰 발원 그리고 제자들과 신도들이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자기 관리라고 본다.

 

선화스님은 자신을 ‘무덤 속의 승려(Monk in the Grave)’라고 생각하여 일체의 이익이나 명예를 구하지 않았다. 또 자신을 하나의 미물로 생각해서 불법의 대의를 구하는 누구에게나 봉사하는 구도의 초석이 되기를 서원하고 몸소 실천하였다.

 

사진 8. 만불성역 여래사 법당의 법회 장면.

 

만불성역을 운영하는 원칙은 참선, 경전, 계율, 염불, 고행과 정토신앙이라는 여섯 가지 중국불교의 전통을 굳건하게 유지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하루 한 끼의 식사를 권장하며, 하루 일과는 일과표에 따라 오전 4시부터 밤 10시 30분까지 엄격하게 진행하는 것이다.

 

선화스님은 특히 승가의 계율 준수를 매우 중시했다. 계율이 영적인 생활의 태도로써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반문화 히피 세대의 무절제한 태도에 반감을 지니고 있던 제자들에게 큰 호소력을 발휘했다.

선화스님은 자신이 설립한 불교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6대 종지와 4대 발원을 세웠다.

 

6대 종지

 

① 싸우지 말라.

② 탐심을 내지 말라.

③ 구하지 말라.

④ 사심을 버려라.

⑤ 사적 이익을 추구하지 말라.

⑥ 거짓말하지 말라. 

 

이상의 6대 종지는 5계와 더불어 만불성역의 모든 생활 규범에서 엄격하게 적용된다.

 

사진 9. 역경원 전경.

 

4대 발원

 

① 구족계를 받고 계율을 지키는 남녀 승려들이 잘 조직된 승가 공동체를 이루게 한다.

② 전체 불교 경전을 영어 및 다른 서양 언어로도 읽을 수 있도록 유능한 번역자를 배출한다. 불교 경전 전체를 영어와 기타 서양 언어로 번역하는 일을 조직하고 지원한다.

③ 전통적인 불교 가치와 혁신적 교육을 융합시킨다.

④ 종교 간의 대화를 적극적으로 한다. 

 

선화스님과 그를 따르는 승가 구성원들은 이와 같은 발원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1973년 미국에 처음 세워진 ‘역경원(The International Translation Institute)’은 벌링게임(Burlingame)시에 있는데 중국어로 된 불경을 영어, 불어, 스페인어, 일어, 베트남어 등 여러 나라 언어로 200여 권 이상 번역 출판하였다. 

 

사진 10.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선화스님의 장례식 사진.

 

종교 간의 대화를 위해 설립한 ‘세계종교연구원(The Institute for World Religion)’은 버클리시에 있다. 스님은 테라바다 불교와의 교류, 이웃 종교 간의 화합을 지속적으로 도모하였다. 1995년 만불성역 부근의 레드우드(Redwood Valley)에 있는 임야 120에이커를 아잔 차 스님 계열의 숲속의 수행처 아비야기리 수도원에 기증하였다. 아잔 차 스님은 태국의 테라바다 불교 전통을 따르는 수행자였다. 이 아비야기리 수도원은 현재 20명이 넘는 미국인 출가자가 공동체 생활을 하는 곳이다. 

 

1995년 6월 7일 선화스님은 LA에서 입적하였으며 입적 때까지 예불과 설법을 계속하였다. 선사는 유언으로 화장하며 부도나 사리탑을 조성하지 말고 장례식은 간소히 할 것과 자신의 자취를 세상에 남기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에 따라 대사의 부도는 없고 유골은 만불성역에 뿌려졌다. 스님의 유일한 자취는 제자들이 성역 내와 계열 사찰에 보관하고 있는 사리와 함께 모신 사진이 전부이다. 장례식은 6월 8일부터 7월 29일까지 롱비치와 만불성역에서 거행되었으며, 세계 각국에서 2천여 명의 신도와 조문객이 참배하였다. 당시 부시 대통령과 수많은 남방불교, 대승불교의 고승 대덕이 조문과 조전을 보내왔다.

 

백인 출가자가 많은 아비야기리 수도원

 

미국불교가 전통적인 아시아 불교국가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 중의 하나는 스님들이 모여 사는 승가공동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승가공동체가 있는 수도원은 주로 테라바다불교 사원들이다. 그 외에 만불성역, 틱낫한 스님 계열 수도원, 뉴욕의 선산 수도원(Zen Mountain Monstery) 등이다.

 

사진 11. 산 위에서 바라본 아비야기리 수도원.

 

이 중에서 미국에서 백인 출가자 스님들이 가장 많은 사원은 북가주 아비야기리 수도원(Abhayagiri Buddhist Monastery)인데, 이곳에는 20명 이상의 행자, 사미, 비구 스님 등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이 수도원은 태국 아잔 차 계열로 이 수도원의 건립자는 아잔 수메도 스님이다. 아잔 차 스님은 숲속의 수행 전통을 따른다.

 

숲속의 수행 전통은 단순, 금욕, 엄격한 생활습관, 규율, 도덕적 행위, 명상과 성찰, 교학적 지식보다는 내적 경험의 변화에 더 집중하는 수행을 한다. 태국 농카이라는 곳에서 이런 수행을 하는 아잔 차 스님에게 1960년대 초부터 서양인들이 찾아와 수행하거나 그의 제자가 되었다.

 


 

미국 시애틀에서 1934년에 태어난 아잔 수메도는 미군으로 한국전에 참가한 경험도 있다. 1963년 태국에 평화봉사단으로 가서 아잔 차 스님을 만나 1967년 5월에 비구계를 받고 이후 10년간 아잔 차 스님 아래에서 수행과 지도를 받았다. 영국과 태국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하던 아잔 수메도 스님은 북미주에도 아잔 차 계열 수도원을 건립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다음은 이에 대해 《미주현대불교》에 보도된 글이다.

 

“1988년 아잔 수메도는 서양 제자들과 함께 북가주에 상가팔라 재단(Sanghapala Foundation)을 설립한다. 이 재단의 임무는 아잔 차 스님 전통의 숲속의 사원 지부를 캘리포니아에 설립하는 일이었다. 1990년에 영국에 있던 아잔 아마로(Ajahn Amaro) 스님이 이 포교 사명에 합류하면서 아잔 수메도는 캘리포니아의 제자들과 초심자들에게 핵심 지도 스승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캘리포니아 지부 설립을 향한 노력은 큰 진전이 없었다. 그러던 중 1995년 그동안 불교지도자와의 교류를 통해 인연을 맺게 된 중국선불교 만불사 창건주인 선화스님으로부터 120에이커(15만 평)의 부지를 기증받는다.

 

사진 16. 젊은 시절의 아잔 수메도 스님.

 

만불성역은 레드우드(redwood valley)에서 15마일 떨어진 유키아(Ukiah)시에 위치하고 있다. 선화스님은 기회 있을 때마다 그의 마지막 꿈에 대해 언급하곤 하였는데, 북방불교와 남방불교가 화합하여 함께 만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가 임종할 즈음에 제자들에게 레드우드의 산비탈에 위치한 땅을 기증하라는 말을 남기게 된다. 현재의 모습은 그 이후 계속 부지가 늘어나 총면적 250에이커(30만 평)의 산림 부지에 능선, 계곡, 트레일 사이로 30여 채의 꾸티(개인 수행처), 선방 등 주요 건물과 종각, 불탑, 요사채, 그리고 주차장이 갖추어져 있다. 지금의 사원 건물은 6여 년에 걸친 불사의 결과로 2017년에 증축된 새 건물이다. 단층의 현대식 건물로 담마 홀, 식당, 식당과 부엌 어린이실, 다용도실, 도서실, 테라스 다실, 장애인용 화장실 등이 종각을 가운데 두고 아치형으로 아담하게 둘러져 있다.  

- 《미주현대불교》 2022년 11월호, 제니 김.

 

사진 17. 왼쪽부터 제니 김, 아잔 냐니코 스님, 삼파노 스님, 필자.

 

일반신도들의 대부분은 태국 교민이며, 스리랑카, 캄보디아 출신 신자들과 인근의 일부 미국인 지지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보시의 대부분은 태국인 신도들에 의해 조달되고 있으며, 각자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와서 공양물로 올리기도 하고, 공양간에서 만들어 공양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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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광 김형근
미주현대불교 편집인 및 발행인. 전북 김제가 고향으로 전북대학교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1989년 뉴욕에서 월간 잡지 『미주현대불교』를 창간하여 운영하고 있다. 2010년부터 사단법인 ‘korean Cultural Heritage Foundation’을 설립하여 한국전통문화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남북불교교류 활동의 일환으로 미국에서 북한사찰순례단을 조직하여 2005 년부터 4차례에 걸쳐 단체로 북한사찰순례를 하면서 북한불교를 소개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정부의 북한 여행 금지로 인해 중단되었다.

mobuddhis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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