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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심리학의 만남]
불교심리학의 근거로서 불교존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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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조  /  2023 년 2 월 [통권 제118호]  /     /  작성일23-02-03 14:33  /   조회2,69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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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심리학은 불교철학의 테제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서구심리학이 철학으로부터의 독립을 모토로 전개된 반면 불교심리학은 불교철학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불교철학 가운데 존재론, 인식론, 진리론의 세 가지 차원에서 3회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존재론을 바탕으로 인식론이 전개되고, 인식론을 바탕으로 진리론이 전개된다. 진리론의 마지막에 있는 방법론은 또 다시 불교심리치료와 연결된다.  

 

불교존재론

 

서양에서처럼 존재론으로 성립하고 있지는 않지만, 불교에서도 존재의 문제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존재론은 ‘있다’라는 의미가 무엇인가, ‘참으로 있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개별 존재에 관한 질문이 아닌 존재 일반에 관한 질문을 다루는 것이다. 존재적 질문이 아니라 존재론적 질문을 다룬다. 서양의 전통적 존재론에서는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것(substantial being, ουσια)을 참으로 있는 것, 즉 실재實在(reality)라고 한다.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것, 즉 실체實體(substance)는 고정불변하는 것이고, 자기원인적인 것이다. 이러한 실체가 실재라고 보는 관점의 존재론을 전개한다.

 

사진 1. 법의 체현자로서 법신불.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불교의 존재론은 담마(dhamma, 法)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담마는 불교뿐만 아니라 인도사상 전반에 걸쳐서 사용되는 용어로 그 의미의 폭이 대단히 넓다. 불교적 관점에서 담마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이 둘은 대소문자로 구분한다. 대문자 담마(Dhamma)는 ‘진리’, ‘법칙’, ‘가르침’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복수형태의 소문자 담마(dhammas)는 ‘사물’, ‘현상’의 의미로 사용된다. 존재론에서 관심을 가지는 담마는 소문자 담마이다.

 

이 담마가 지칭하는 사물, 현상은 생멸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생멸하는 사물, 현상을 불교에서는 참으로 있는 것, 즉 실재(reality)라고 한다. 전통적인 서양의 존재론에서는 실체를 실재로 보는 반면, 불교의 존재론에서는 생멸하는 담마를 실재로 본다. 이는 실재에 대한 이해를 달리하는 것이고, 존재를 보는 관점이 다른 것이다. 실재를 실체적 존재로 보는지, 생멸적 존재로 보는지의 차이이다.

전자와 같은 관점의 존재론을 온톨로지(ontology)라고 한다면, 후자와 같은 관점의 존재론을 담마로지(dhammalogy, 法論)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생멸하는 존재를 실재로 보는 관점은 이후에 등장하는 불교의 모든 개념에 영향을 끼친다. 이는 인식, 세계, 마음, 진리, 인간 등 모든 것이 존재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생멸의 특징은 네 가지 존재론적 특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사법인四法印, 즉 제행무상諸行無常, 일체개고一切皆苦,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의 특징을 가진다. 일체를 다른 말로 제행諸行으로 표현하므로, 무상과 개고는 제행의 특징이다. 행行은 다른 말로 유위법有爲法을 나타내고, 열반은 다른 말로 무위법無爲法을 나타낸다. 유위법과 무위법은 법을 분류하는 가장 큰 범주이다. 유위법은 무상과 개고라는 특징을 가지고, 무위법은 적정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법은 무아라는 특징을 공유한다.

 

사법인 가운데 제법무아가 가장 중요하다. 모든 법의 특징이 무아無我라는 것에서 모든 불교심리치료적 함축이 시작된다. 이렇게 되면 유위법도 무아라는 특징을 가진다. 우리가 만든 모든 유위법은 무아라는 특징을 가진다. 보통은 유위법을 유아有我라는 특징을 가진 것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모든 법은 무아이기 때문에 유아적有我的 경향성을 가지고 있는 것에서 무아적無我的 경향성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큰 틀에서의 불교심리치료가 된다. 무아는 단순히 무아라는 특징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원래 상태가 무아이므로 무아로 나아가야 한다는 함축을 가진다는 것이 된다. 무아와 반대되는 유아로 나아가거나 유아에 머무는 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존재론의 함축으로서 연기론

 

담마는 생멸生滅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생멸 가운데서도 무아적 생멸, 즉 비실체적인 생멸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생멸의 운동에는 하나의 법칙이 있다. 담마는 연기緣起(paṭiccasamuppāda)라는 법칙성을 가지고 운동한다. 연해서[緣] 발생하는[起]는 것으로 생멸을 설명하는 것이다. 생멸은 의존적으로 발생하고, 원인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원인의 원인, 자기원인과 같은 것이 성립하지는 않는다. 한 찰나와 다음 찰나가 이미 다르기 때문에 자기원인이 성립할 수 없고, 찰나의 연속이기 때문에 무원인도 성립하지 않는다.

 

이처럼 담마의 생멸은 연기緣起로 정의할 수 있다. 모든 담마는 생멸하므로 이러한 연기는 모든 담마에 적용할 수 있다. 즉 담마와 연기는 외연이 동등하다고 할 수 있다. 담마라는 존재와 연기라는 운동이 동등한 외연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기를 보는 자 법을 보게 되고, 법을 보는 자 연기를 보게 된다. 실체론적 존재론에서는 고정불변의 실체를 다루기 때문에 운동론이 필요가 없다. 반면 생멸적 존재론에서는 생멸하는 담마를 다루기 때문에 생멸에 대한 운동론이 도출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연기론은 불교철학의 독특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법론과 연기론은 불교철학에서 가장 높은 위계에서 동등한 외연을 가지는 이론이다. 

 

존재론과 같은 외연을 가진 연기로 이지연기二支緣起를 들 수 있다.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날 때 저것이 일어나고,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할 때 저것이 멸한다.” ‘이것’과 ‘저것’은 원래 십이지연기의 각지各支를 대입하는 것이었지만, 후대로 갈수록 ‘이것’과 ‘저것’에 모든 존재를 대입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모든 존재가 연기적 관계를 이루게 되고, 그러한 관계는 중층적이고도 무한하게 이루어지게 된다.

 

사진 2. 연기를 보는 자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 연기를 본다.

 

이러한 연기의 정점이 화엄의 법계연기法界緣起이다. 이는 연기되어 있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발견의 맥락에서 보면 십이지연기十二支緣起가 먼저 발견되었지만, 논리의 맥락에서 보면 십이지연기는 이지연기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지연기는 인식주체가 없는 존재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존재론에서 출발한다면, 십이지연기는 인식주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인식론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붓다의 문제의식인 ‘괴로움의 원인을 발견하고 이를 소멸하기’ 위해서 연기적 관계를 거슬러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십이지연기이다. 붓다는 숙명통을 통해서 자신의 전생 전체의 연기과정을 보게 되고, 천안통을 통해서 자신과 연기적 관계에 있는 모든 중생들의 삶 전체의 연기과정을 보게 된다. 이러한 연기과정 전체를 보게 됨으로써 붓다는 자신의 문제의식을 해결하게 된다. 더 이상 생로병사가 문제가 되지 않게 되고 번뇌가 사라지게 된다. 붓다는 언제든지 모든 사건의 원인을 연기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에 번뇌가 쌓이지 않게 된다. 

 

함축

 

존재론의 관점에서 무상은 변화를 말하고, 변화는 치유와 퇴보의 가능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 무상에서 치유라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무아는 이러한 치유의 가능근거를 제시한다. 변화가 가능한 것은 모든 존재가 비실체적이라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 실체적인 존재라면 변화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치유가 불가능하게 된다. 그러므로 제법무아는 불교심리치료의 첫 번째 테제가 된다. 

 

제법무아는 치유의 가능근거뿐만 아니라 치유의 지향점을 제시한다. 제행무상, 일체개고라는 유위법의 바탕에도 무아가 있어야 하고, 열반적정에도 무아가 전제되어야 한다. 유위법의 바탕에 무아의 반대인 유아가 있으면 괴로움이 발생하게 된다. 유위법은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해체될 수 있는데, 이를 고정불변의 유아로 생각하면 괴로움이 발생하게 된다. 유위법의 바탕에 무아가 있으면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모든 법에 해당되는 특징을 보기 때문이다. 

 

사진 3. 화엄의 법계연기를 나타내는 의상대사의 화엄일승 법계도.

 

무아는 유위법, 무위법에 상관없이 모든 법이 지향해야 할 지향점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치유의 가능성, 치유의 가능근거, 치유의 지향점을 사법인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존재론에 의한 함축에서부터 인식론, 진리론, 방법론으로 나아가면서 세부적인 함의가 추가된다.

 

이지연기에서는 모든 존재가 연기적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법과 연기는 붓다 역시 발견한 것이다. 원래 있는 것이기에 이것에 대해서 어떠한 유위도 가할 수 없다. 존재론과 연기론에 대해서는 유위를 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볼 뿐이다. 존재와 연기 자체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단지 보고 따를 따름이다. 유위를 가할 수 있는 것은 인식론부터이다. 법의 특징과 연기의 법칙이 이러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깨달음과 치유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고, 이것을 거스를 때는 괴로움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아는 것뿐이다. 십이지연기에는 이미 인식론의 차원이 포함되어 있기에 존재와 연기만으로는 다루기 어렵다. 자세한 것은 진리론에서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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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조
서울대학교 철학과 학ㆍ석사.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학과 석ㆍ박사.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학과 불교상담학전공 지도교수. 한국불교상담학회 부회장, 슈퍼바이저. 한국불교학회 부회장. 저역서로 『불교심리학연구』, 『불교의 언어관』, 『불교심리학사전』 등이 있다.
heecho12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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