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한국불교 사상사 정립에 일생을 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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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 / 2023 년 11 월 [통권 제127호] / / 작성일23-11-04 20:01 / 조회2,096회 / 댓글0건본문
근대한국의 불교학자들 35 | 고익진
고익진高翊晋(1934~1988)은 의대에 입학했지만 몇 년간 투병생활을 하다가 불교를 접하게 되었다. 이후 동국대 불교학과에 들어가서 교수를 지냈고, 초기불교에서 한국불교까지 아우르는 동서고금을 횡단하는 폭넓고도 깊이 있는 연구를 수행했다. 『아함법상의 체계성 연구』, 『한국의 불교사상』, 『한국 고대 불교사상사』 등을 저술했고 일승보살회를 조직해 삶 속에서 불교를 실천하고자 했다.
투병하던 의대생, 불교학자가 되다
고익진은 1934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나 1954년 전남대 의예과에 입학한 후 심장 계통의 병으로 5년간 병실에서 투병해야 했다. 이때 그는 인생의 덧없음을 절실하게 체감했다고 한다. 병이 조금 차도를 보이자 모친이 세운 무등산 기슭의 암자에서 요양했고 불교 관련 서적을 읽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반야심경』을 접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봉착하게 되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교와 철학을 생각하다가, 『반야심경』의 ‘눈도 없고 색도 없다’는 말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눈이 있고 색이 있는 세계에서 그것도 병을 앓으며 괴롭게 살다가 이제는 ‘도대체 눈도 없고 색도 없는 세계에서 먹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라고 자문을 하면서 3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면서 생각의 진전과 사고의 붕괴에 따라 기쁨과 허탈함이 교차했고, 마침내 왜 사람들이 생사의 괴로움 속에서 헤매는가를 알게 되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이후 불경을 많이 읽으면서 아함·반야·법화의 3부경에 불교의 가르침이 체계적으로 집약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의 현실적 존재를 분석적으로 관찰해 괴로움의 원인을 밝히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 아함의 교설이 모든 것이 공空하다는 『반야경』에 이르고, 이것이 다시 불교의 궁극적 목적인 성불과 중생교화를 설하는 『법화경』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그는 구도행과 깨달음을 위한 큰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병이 예부터 자신을 빛나게 한다’고 하여 병의 한자만 바꾸어 ‘병고丙古’라는 호를 스스로 지었다고 한다.
고익진은 불교 교리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 원전 언어인 범어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1965년 31세의 나이로 동국대 불교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불교 연구에 매진하여 1969년에 학부를 졸업한 뒤 1971년에 아함 관련 석사학위를 바로 취득했다. 1974년 박사과정 수료 후에는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강의를 병행했다. 1980년에는 동국대 불교학과의 교수로 부임했고, 1986년에 한국 고대 불교사상을 주제로 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에 교수가 되면서 동국대 출판부의 한국불교전서 편찬실장을 겸임하며 『한국불교전서 신라·고려편』(1〜6권)을 출간하여 한국 불교학 연구의 진흥을 도모하는 데 일조했다. 그는 전서를 내기 위해 앞서 나온 『한국불교 찬술문헌 목록』(1976) 작업에도 참여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한국불교전서』는 1979년 제1책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보유편 5책을 포함해 총 15책으로 완간되었다. 또 온라인 검색을 위한 전산화와 한글 번역 사업이 이어지면서 한국불교 연구의 기반을 크게 넓히고 있다.
1981년에는 ‘일불승一佛乘의 보살도’를 실천하는 모임인 ‘일승보살회’를 조직하여 재가자를 위한 생활 불교의 실현에도 힘을 기울였다. 이때 『한역 불교 근본경전』을 발간하여 교재로 삼았고, 강연과 기고 등을 통해 불교의 가르침을 널리 확산시켰다. 이처럼 그는 학문 연구뿐 아니라 ‘깨달음의 생활화’에서 한국불교의 나아갈 방향을 찾았지만, 1988년 중구 필동 자택에서 50대 중반의 나이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초기불교에서 한국불교까지 핵심을 관통하다
초기불교에서 한국불교까지 섭렵한 그의 폭넓은 지적 편력과 날카로운 이해는 저술의 면면에서도 확인된다. 『한역불교 근본경전』(1981), 『한글 아함경』(1982), 『현대 한국불교의 방향』(1985), 『한국의 불교사상』(1986), 『한국찬술불서의 연구』(1987)를 비롯해, 유고집으로 나온 『한국 고대 불교사상사』(1989), 『아함법상의 체계성 연구』(1990), 『불교의 체계적 이해』(1994) 등의 내역에서 인도부터 한국까지 불교사상의 전개 과정과 특성을 깊이 있게 연구한 그의 학문적 이력과 역량을 알 수 있다.
고익진은 초기불교와 그 전거가 되는 아함 경전을 중시했다.
그는 아함이 이후 대승불교의 기초를 이루고 아함을 완성한 것이 대승불교라고 보았다. 『아함법상의 체계성 연구』에서는 아함의 교설이 12처-6법-5온-12연기의 체계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했고, 마지막 12연기설을 아함의 궁극적 가르침이며 완성이라고 보았다. 그는 인연, 연기 등을 유위법의 성립과정을 설명하는 개념이라고 하면서 진여법계나 진여실상을 궁극적 실체라고 했다. 또한 무아를 아트만으로 규정하는 등 실체론적 관점에서 접근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고익진의 독특하면서도 획기적인 아함 이해에는 그가 직접 체험한 구도의 과정이 그대로 녹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한편 고익진은 한국불교 사상사의 정립에 일생을 걸었다. 그는 사상에 대해 시대의 과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관념체계로 정의하고, 당시 사상가들의 해결 노력을 찾으면서 역사적 연구방식을 추구하고자 했다. 먼저 『한국의 불교사상』은 한국불교가 걸어온 사유의 여정을 따라가는데 길라잡이가 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1부 한국불교의 정신사적 해석, 2부 일연의 역사의식과 단군신화, 3부 한국 불교철학의 원류와 전개, 4부 불교 윤리와 한국 사회로 구성되었다. 1부는 정신사관의 정의, 불교 전래부터 조선 후기 태고법통의 등장과 계승 등을 내용으로 하며, 2부는 동명왕편, 일연의 『삼국유사』를 통한 단군신화 이해, 도덕 사관 등을 다루었다. 3부는 대승반야경의 공 개념, 승랑의 중관적 공관, 원측의 유식적 공관, 원효의 화엄적 공관, 지눌의 선적 공관 등 한국불교 철학사의 주요 사상을 정리했다. 4부는 불교의 윤리적 교설, 한국사회에 정착된 불교 윤리, 불교 윤리의 현대적 의의로 나누어 불교 윤리가 한국에 미친 영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박사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한 『한국 고대 불교사상사』는 삼국에서 통일신라까지 전개된 다양한 불교사상의 경향과 특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연구서이다. 1장 서론에 이어 2장 삼국의 불교 전래와 정착에서는 불교 전래 이전의 무속신앙, 불교의 전래와 국가적 전개, 무속의 포섭과 불교화 등을 다루었다. 3장은 대승 교학을 주제로 고구려 승랑의 삼론학과 삼국의 교학 사조, 신라 원측의 유식학을 심도 있게 다루었다. 4장은 통일신라의 화엄사상을 개관하면서, 원효의 기신론 철학과 화엄경관, 중국 화엄과 원효와의 비교, 의상의 실천적 화엄과 의상 화엄학의 영향, 정토신앙의 화엄적 수용, 의상계 및 원효계 화엄학의 계승과 영향 등을 살펴보았다. 5장은 밀교의 도입과 순밀사상의 수용을 주제로 했고, 6장은 신라 하대 선의 전래와 구산선문의 성립, 선사상의 형성을 사회상 등 시대 배경과의 연관 속에서 접근했다.
고익진은 불교 전래 이후 미륵불과 전륜성왕 관념이 귀족 세력의 무교적 기반을 해소하기에 적합했기에 왕실의 환영을 받았다고 보고, 불연국토 등 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중점적으로 설명했다. 또 승랑과 원측이 중국 불교에 큰 사상적 영향을 미쳤으며, 원효와 의상의 원융무애하고 상입상즉하는 화엄적 세계관이 시대의 공존공화의 질서에 부응한다고 해석했다. 특히 화쟁을 내세운 원효의 회통론에 주목하여 ‘진속원융무애관’으로 명명했다.
고익진은 40편이 넘는 연구 논문들을 썼는데, 한국불교에 관한 것으로는 「원효의 기신론소별기를 통해 본 진속원융무애관」(1973), 「원효사상의 실천윤리」(1975), 「벽송지엄의 신자료와 법통문제」(1975), 「원묘요세의 백련결사와 그 사상적 동기」(1978) 등이 있다. 그는 원효의 사상과 관련해서 『대승기신론』의 일심·이문을 통해 중관과 유식사상을 회통하고 『금강삼매경론』 저술을 통해 실천 수행의 방법을 찾았다고 보았다. 또 청허휴정의 조사 벽송지엄을 다룬 논문에서는 조선 후기 불교가 사상 면에서 보조지눌의 영향을 받았고 법계 면에서는 임제의 법맥을 중시한 이중구조였다는 주장을 하여 이후 연구에 큰 시사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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