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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일본에서 불교학 박사학위를 받은 첫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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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  /  2023 년 9 월 [통권 제125호]  /     /  작성일23-09-04 20:44  /   조회2,218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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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한국의 불교학자들 33 | 김지견

 

김지견金知見(1931~2001)은 일본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동국대와 강원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교수를 지낸 불교학자이다. 그는 잊혀진 한국의 불교 문헌을 발굴하고 학계에 알려서 한국 불교학의 기반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뿐 아니라 대한전통불교연구원을 설립하여 불교 연구와 한국불교의 정체성 모색을 위한 학술 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김지견의 학문 여정

 

김지견은 1931년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사서삼경을 읽었고 전쟁 중에 군 복무를 마치고 출가를 단행하여 1952년 선암사에서 행자 생활을 시작했다. 1953년 서옹석호로부터 사미계를 받고 우진雨震이라는 법명을 얻었다. 이후 동산혜일이 주석하던 범어사 금어선원에서 안거를 보내는 등 수행에 정진했고 『금강경오가해』와 같은 경론의 주석서를 통해 불교를 배웠다. 비록 그의 출가 생활은 길지 않았지만 만암종헌, 효봉학눌, 탄허택성 등 당대 최고의 고승들과 인연을 맺었다. 

 

사진 1. 김지견金知見(1931~2001).

 

1960년에는 동국대 불교학과의 학부를 졸업하고, 3년 뒤에는 「혜능의 사상 연구」라는 제목으로 석사논문을 썼다. 다음해에 일본 고마자와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1967년 수료한 뒤 저명한 불교학자 나카무라 하지메의 추천으로 도쿄대학 인도철학과의 박사과정으로 들어갔다. 1970년에는 일본 인도학불교학회의 학회상을 받았고, 1973년 「신라 화엄사상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도쿄대뿐 아니라 일본에서 불교학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은 첫 한국인이었다.

 

사진 2. 도쿄 대학을 상징하는 야스다 강당.

 

귀국 후 동국대에 자리를 잡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976년에 교수직을 그만두고 대한전통불교연구원을 설립하여 운영했다. 대한전통불교연구원은 원효사상에서 유래한 화쟁총화의 이념을 내세워 불교 학술연구와 대중포교 등을 지향했고, 한국불교의 계보학적 특성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 특히 1979년부터 총 12회에 걸쳐 국내외 불교학자들이 모여 연구성과를 발표하고 공유하는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그의 관심사이기도 했던 한국불교의 대표적 인물들이 대회 주제로 망라되었는데, 1회 균여, 2회 원효, 3회 의상, 4회 최치원, 6회 지눌, 7회 서산(휴정), 8회 김시습, 12회 도선이었다. 이 밖에도 아시아 불교의 원류와 유파, 동아시아 화엄, 신라와 당의 불교, 『육조단경』 등 다채로운 주제들이 선정되었다. 이중 의상 화엄을 종합적으로 다룬 제3회 대회는 일본 류코쿠대, 아시아 불교를 주제로 한 제5회 대회는 대만 불광사에서 개최되었다.

 

김지견은 이처럼 대외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다가 1983년에 다시 강단으로 복귀하여 강원대 철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이어 1989년에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철학종교실의 교수가 되었다. 이후 1997년 정년퇴임을 한 뒤에는 일본 국제문화연구센터 객원교수, 도쿄대 객원교수를 역임했고 2001년 도쿄 신주쿠에 있는 상원사常圓寺에서 향년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잊혀진 한국불교 문헌을 되살리다

 

김지견은 당시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잊혀진 한국불교 문헌을 수집하고 간행하여 한국불교 사상의 외연을 넓히고 관련 분야 연구를 활성화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먼저 1968년에 일본 요코하마의 가나자와 문고에 있는 보조지눌의 『화엄론절요』 필사본을 찾아서 당시 재학 중이던 도쿄대 문학부에서 영인판을 냈다.

 

사진 3. 균여의 『일승법계도원통기』.

 

이 책은 지눌이 당나라 이통현의 『신화엄경론』 120권을 요약하고 분석한 것이다. 『화엄론절요』는 앞서 1941년 일본 다이쇼대에 유학 중이던 이종익이 처음 발견하여 원고지에 베껴왔고 다른 필사본 1부를 송광사에 기증하는 한편 잡지 《불교신지》 36호(1942.3)에 「고려 보조국사 화엄론의 발견」이라는 글을 실은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김지견은 처음에 이종익의 발견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새로운 희귀 자료를 국내에 소개하기 위해 동국대, 서울대, 송광사, 역경원의 탄허택성에게 각각 1부씩 보냈다. 이로써 이 책의 내용이 학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관련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균여대사 화엄학 전서』는 1977년 퇴옹성철의 허락을 얻어 해인사 장경판본 등의 균여 저술을 모아서 간행한 책이다. 그런데 이는 단순한 영인본의 출판이 아니었고 10여 년의 공력을 들여서 본문 윗부분에 주석을 붙이고 원문에 현토를 한 뒤 책에 대한 상세한 해제를 수록한 역저였다. 균여의 『일승법계도원통기』, 『석화엄교분기원통초』가 포함된 이 책의 간행은 한국은 물론 일본 학계에서 균여 연구를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가마다 시게오, 요시즈 요시히데 등의 일본 화엄학자들이 텍스트 집성과 함께 그에 대한 주석적 연구를 수행했다. 

 

사진 4. 김지견이 펴낸 『법계도기총수록』, 동방원(1988).

 

1988년에는 해인사본 『법계도기총수록』을 영인하고 활자화하여 간행했는데, 이 책의 현토는 운허용하가 붙였다고 한다. 한편 1994년에는 19세기 해남 대흥사의 고승이었던 범해각안의 소장본 『사산비명주四山碑銘註』를 영인 출판했다. 여기서는 근대기의 고승인 영호정호(박한영)가 필사한 『정주 사산비명』을 소개하고 『사산비명 주해연기』를 실으면서 오류 등을 지적해 놓았다. 이처럼 김지견은 『화엄론절요』, 『균여대사 화엄학 전서』, 『법계도기총수록』 등 화엄 관련 문헌뿐 아니라 최치원이 쓴 고승 비문과 사찰 사지인 사산비명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친 자료 수집과 유통에 공력을 기울였다. 

 

문헌과 사상을 아우른 한국 화엄학 연구 

 

『균여대사 화엄학 전서』의 간행 이후 균여의 화엄사상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면서 균여에 대한 개설서가 나오고 번역 및 역주 작업이 이루어졌다. 김지견은 앞서 고마자와대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균여 저술을 접했고, 1973년에는 『법계도원통기』에 대한 교감 주석을 냈다. 그는 당시 해제에서 균여의 생애와 저술, 새로 발견된 자료와 향가 등에 대해 기술했다. 균여에 대해서는 “나말여초의 혼란한 사회 배경 속에서 빛을 잃어가던 불교를 사상적으로 통일시키고 불교 대중화에 앞장선 위대한 사상가”라고 높이 평가한 바 있다.

 

한편 그는 1983년에 김시습의 『대화엄일승법계도주병서』를 번역하고 주석을 붙였다. 이는 생육신으로 유명한 김시습의 불교 저작에 대한 첫 역주서이자 철학적 해석을 가미한 연구서라고도 할 수 있다. 조명기가 소장하던 김시습의 『화엄석제』와 조선 후기의 승려 도봉유문이 의상의 『화엄일승법계도』에 주해를 단 『법성게과주』도 이 책에 함께 실었다. 부록에 있는 김시습 전기의 해설, 화엄과 선의 관계에 대한 김지견의 글은 의상계 화엄 사상의 특징을 성기性起에서 찾으려는 첫 시도로써 의미를 가진다. 

 

사진 5. 『균여대사화엄학전서』(상하권), 대한전통불교연구원(1977). 사진 6. 김시습金時習(1435~1493).

 

김지견은 『법계도기총수록』에 실린 의상의 『일승법계도합시일인』을 저본으로 하여 역주 작업을 진행했는데, 기존의 <대정신수대장경> 수록본보다 『총수록』본을 선본으로 판정하고 원제목도 「일승법계도합시일인」이라고 보았다. 1993년 대한전통불교연구원에서 『화엄일승법계도기』로 이를 출간하면서 한·중·일의 관련 주석을 참고 자료로 함께 넣었다. 여기서도 기존 번역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는 한편 <신수대장경본>과 교감한 대조표를 붙여서 문헌학적 엄밀성을 갖춘 연구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김지견은 석사학위를 육조 혜능으로 썼고 출가 경험을 통해 선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그럼에도 선에 대한 그의 학문적 관심은 역시 문헌학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1989년 대한전통불교연구원의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육조단경』 관련 논문은 다양한 판본 및 텍스트를 검토한 내용이었다. 문헌학에 기반한 선학 연구로는 『조당집과 논집』(1987)을 들 수 있는데, 이는 해인사 소장 『조당집』 원본과 일본어·중국어 등의 논문들을 한데 모으고 중국 근대 사상가 호적의 편지와 민영규의 회고담을 수록하여 관련 연구에 도움을 주었다.

 

김지견의 불교연구는 의상계 화엄학에 무게중심이 두어졌다. 그는 신라 화엄을 주류(의상계)와 비주류(원효계)로 나누었는데, 그 이후 신라 화엄사상에 대한 계통별 접근이 대세가 되었다. 또 의상의 한자가 기존의 ‘義湘’이 아닌 ‘義相’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는데 현재 학계에서는 그의 설을 대체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진 7. 범어사 의상 진영.

 

나아가 해동 화엄이 법장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 화엄의 일부가 아니라 독자적 특성을 갖는다고 역설했다. 그 주요 근거 중 하나로 김지견은 의상계 화엄사상을 해인삼매에서 연원한 성기사상에 기반한다고 보았다. 이는 본래성으로 현현하고 저절로 그러한 화엄의 세계 그 자체를 드러낸 말이다. 김지견은 김시습의 저작을 해석하다가 지눌과의 관련성을 통해 화엄과 선의 관계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성기사상에 착목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의상 계통의 화엄을 성기사상의 계보학적 맥락으로 이해한 것은 후속 연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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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
서울대 국사학과 문학박사 학위 취득(2008). 저서로 『韓國佛敎史』(2017, 東京:春秋社), 『토픽 한국사12』(2016, 여문책),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임제 법통과 교학전통』(2010, 신구문화사) 등이 있고,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및 한문불전 번역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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