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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 이야기]
임제선사의 다양한 제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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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  2023 년 9 월 [통권 제125호]  /     /  작성일23-09-04 22:17  /   조회4,30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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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종 ⑧ 

 

임제의현은 학인들을 제접함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임제삼구臨濟三句와 삼현삼요三玄三要를 중심으로 하여 방할제시棒喝齊施와 사빈주四賓主 등의 제접법을 설시하여 운용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제접법이 나타난 원인은 학인들의 근기根器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다시 말하여 뛰어난 학인도 있지만, 조사선의 선리禪理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네 가지 근기根器의 제접

 

더욱이 학인들의 다양한 성향과 참알할 때의 상황에 따라 적절한 접인接引이 필요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의현은 무엇보다도 “다만 너희들이 인혹人惑을 받지 않게 하는 것”(주1)을 학인들에게 가르치는 핵심이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이러한 인혹은 불교의 모든 가르침은 물론 조사들의 가르침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의현은 기존의 교의敎義를 학습하거나 선을 수행한 이들을 근기에 따라 분류하여 제접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와 관련한 내용이 『임제어록』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사진 1. 임제의현상(하북성 석가장시 정정현 소재).

 

“제방의 학인들이 온다면, 산승은 여기에서 삼종三種의 근기根器를 끊어 버린다. 예컨대 중하근기中下根器가 온다면 나는 곧 그 경계를 뺏어 버리지만 그 법을 없애지 않고, 혹은 중상근기中上根器가 온다면 나는 곧 경계와 법을 모두 뺏어 버린다. 예컨대 상상근기上上根器가 온다면 나는 곧 경계와 법法과 사람[人]을 모두 빼앗지 않는다. 만약 격을 벗어난 견해를 가진 사람[出格見解人]이 온다면, 산승은 여기에서 바로 전체작용全體作用으로 근기를 끊어 버림을 행하지 않는다.”(주2)

 

여기에서 의현은 학인을 중하근기, 중상근기, 상상근기, 출격견해인의 네 가지로 구분하고 있으며, 앞의 세 근기에 대해서는 각각 경계와 법 등을 뺏거나 뺏지 않으며, 마지막 출격견해인에 대해서는 그대로 ‘전체작용’으로 대함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의현이 각 근기의 구분을 명확하게 설하지는 않지만 법과 경계를 뺏거나 뺏지 않는다는 표현으로부터 중하근기와 중상근기는 여래선의 단계에 있는 학인들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사료간四料揀

 

『임제어록』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시중示衆한다.

 

“어느 때는 사람을 빼앗고 경계를 빼앗지 않고[奪人不奪境], 어느 때는 경계를 빼앗고 사람을 빼앗지 않으며[奪境不奪人], 어느 때는 사람과 경계를 모두 빼앗고[人境俱奪], 어느 때는 사람과 경계를 모두 빼앗지 않는다[人境俱不奪].”(주3)

 

이처럼 서로 다른 근기를 제접하는데, 여기에서 설하는 ‘탈인불탈경奪人不奪境’, ‘탈경불탈인奪境不奪人’, ‘인경구탈人境俱奪’, ‘인경구불탈人境俱不奪’의 네 가지를 이른바 ‘사료간’으로 칭한다. ‘요料’는 헤아리다 혹은 처리한다는 뜻이고, ‘간揀’은 선택한다는 의미이니, 사료간이란 학인들의 근기를 네 가지로 결택하여 선리禪理를 깨우치게 하는 제접법이라고 하겠다.

 

사람은 빼앗고 경계는 빼앗지 않음

 

이러한 ‘사료간’에 대하여 임제의현은 다음과 같이 분별하고 있는데, 먼저 ‘탈인불탈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한다.

 

“어떤 승려가 묻기를, ‘어떠한 것이 사람을 빼앗고 경계를 빼앗지 않는 것인가?’라고 하자, 선사는 ‘해가 떠올라 비추어 땅이 비단 같고, 갓난아이의 드리운 머리카락이 하얀 명주실 같구나.’라고 하였다.”(주4)

 

여기에서 의현은 ‘사람[人]’과 ‘경계[境]’에 대한 개념은 명확히 설하지 않고 있으며, 그 설명도 상당히 시詩적이다. 다만 불교에서 일반적으로 ‘사람’은 바로 인아人我를 가리키니 아집我執으로 해석할 수 있고, ‘경계’는 바로 이법理法으로 법집法執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다르게 해석한다고 해도 선리에 적합하다면 전혀 무방할 것이다.

 

여기에서 의현이 설하는 “해가 떠올라 비추어 땅이 비단 같고”라는 말은 ‘불탈경’을 지적하는 것이고, “갓난아이의 드리운 머리카락이 하얀 명주실 같구나.”라는 말은 바로 ‘탈인’을 가리킨다. 우주의 법계가 마치 해가 떠올라 비추어 땅이 비단과 같이 여여如如함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법계에 대하여 아집을 발생시키는 상황을 “갓난아이의 머리카락이 하얀 명주실과 같다”고 묘사했는데, 갓난아이의 머리카락이 이미 늙은이의 백발로 급변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는 지독한 아집이 발생하는 무서운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기에 이를 빼앗아 버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경계는 빼앗고 사람은 빼앗지 않음

 

다음에 ‘탈경불탈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한다.

 

“한 승려가 ‘어떤 것이 경계를 빼앗고 사람을 빼앗지 않는 것인가?’라고 하자 선사는 ‘왕의 명령이 이미 천하에 두루 행해졌는데 장군은 새외塞外에서 연진煙塵을 끊었다.’라고 하였다.”(주5)

 

여기에서 의현은 군사軍事와 관련된 용어를 채택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른바 “왕의 명령이 이미 천하에 두루 행해졌다.”라고 함은 외부의 경계에 대하여 통제와 질서를 부여하고 있음을 가리키니, 외재적 법리에 철저하고 있음이 명확하다. 즉 이법理法의 경계에 철저히 집착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장군은 새외에서 연진을 끊었다.”라고 하는 말에서 ‘연진’이란 봉화의 연기와 군마가 일으키는 먼지를 의미하니, 장군이 이미 병장기를 창고에 넣고 군마들을 쉬게 하여 더는 명령을 내리지 않음을 가리킨다. 이는 바로 아집을 방하放下하였음을 뜻한다고 하겠다. 그에 따라 법집에 대해서는 빼앗지만, 아집에 대해서는 뺏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사람과 경계를 모두 빼앗음

 

다음에 ‘인경구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한다.

 

“한 승려가 ‘어떤 것이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는 것인가?’라고 묻자 선사는 ‘병주幷州와 분주汾州가 소식이 끊어지고, 독자적으로 한 지방을 차지하였다.’라고 하였다.”(주6)

 

의현이 말하는 ‘병주’는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태원시太原市의 서남부를 가리키고, ‘분주’는 산서성 분양현汾陽縣을 가리킨다. 당말唐末에 이 지역 절도사節度使들이 황제의 명령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통치했던 고사로 유명하였다. 따라서 “병주와 분주가 소식이 끊어짐”은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통제할 방법이 없는 극도의 혼란을 의미하고, 그렇게 절도사들이 각각 한 지방을 차지하였다는 말이다. 이를 아집과 법집으로 배대하여 본다면, 둘 다 모두 제멋대로 행해지고 있어 이를 모두 빼앗아야 한다는 의미라 하겠다.

 

사람과 경계를 모두 빼앗지 않음

 

마지막으로 ‘인경구불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한다.

 

“한 승려가 ‘어떤 것이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지 않는 것인가?’라고 하니, 선사는 “왕이 보전寶殿에 오르고, 시골 노인들이 노래를 부른다.’라고 하였다.”(주7)

 

사진 2. 임제사의 불탑(하북성 석가장시 정정현 소재).

 

여기에서 “왕이 보전에 올랐음”은 다양한 수행을 통하여 아집이나 법집이 상당한 경지에 올라 더는 얽매임이 없이 자신의 본분을 지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그러한 까닭에 왕의 법이나 명령이 필요치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골 노인이 노래를 부르는 것은 왕의 법이나 명령 때문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러운 본분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는 바로 의현이 지극히 강조하는 인혹인 아집과 법집이 모두 타파되었거나 혹은 상당히 미미한 상태의 학인을 대상으로 하며, 그러므로 아무것도 빼앗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이러한 사료간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모호하게 시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해석의 외연外延이 상당히 넓다. 여기에서는 다만 하나의 해석을 제시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료간’은 또한 ‘사조용四照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사조용’은 <대정신수대장경> 47에 수록된 『임제어록』에는 실려 있지 않지만,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 권5에 실린 『임제선사어록지여臨濟禪師語錄之餘』에 실려 있고, 또한 『인천안목』과 『오가종지찬요』 등에 임제의현의 제접법으로 게재하고 있다.

 

사조용四照用

 

『임제선사어록지여』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시중示衆하여 설하였다. “나는 어떤 때는 먼저 비추고 뒤에 쓰며[先照後用], 어떤 때는 먼저 쓰고 뒤에 비추며[先用後照], 어떤 때는 비춤과 씀을 동시에 하고[照用同時], 어떤 때 비춤과 씀을 동시에 하지 않는다[照用不同時].

 

‘선조후용’에는 사람[人]을 남기고, ‘선용후조’에는 법法을 남긴다. ‘조용동시’는 밭가는 농부의 소를 내몰고, 굶주린 이의 음식을 빼앗고, 뼈를 두드려 골수를 취하고, 아픈 곳을 침과 송곳으로 찌른다.

‘종용부동시’는 질문과 대답이 있으며, 손님이 서면 주인도 서고, 물과 진흙을 합하듯이 응기접물應機接物한다. 만약 뛰어난 사람[過量人]이라면 아직 들기 전에 몸을 일으켜 바로 가버리니, 오히려 얻은 것 같다고 하겠다.”(주8)

 

여기에서 조照·용用은 앞의 사료간에서 논한 인人·경境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할 수 있으며, 아집과 법집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선조후용’은 ‘인’을 남기고 법집을 제거하며, ‘선용후조’는 법을 보존하고 아집을 제거하는 것이고, ‘조용동시’는 법집과 아집을 모두 제거함이고, ‘조용부동시’는 법집과 아집의 제거가 필요 없는 학인에게 베푸는 제접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선용후조’와 ‘탈인불탈경’, ‘선조후용’과 ‘탈경불탈인’, ‘조용동시’와 ‘인경구탈’, ‘조용부동시’와 ‘인경구불탈’이 서로 일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상으로 임제종을 창립한 의현이 설시設施한 ‘임제삼구’, ‘삼현삼요’, ‘방할제시’, ‘사료간’, ‘사조용’ 등의 제접법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제접법은 당연히 선사가 깨달은 선리로부터 나온 것이고, 다양한 근기의 학인들을 접인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후대에 정리된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제접법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긴밀한 사상적 관계가 있다고 하겠다. 나아가 이러한 제접법은 바로 임제종의 종풍과 가풍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이를 이어 임제종의 종지宗旨와 종풍宗風, 그리고 간략한 법맥을 논하고자 한다.

 

<각주>

(주1) [唐]慧然集, 『鎭州臨濟慧照禪師語錄』(大正藏47, 497b), “秖要爾不受人惑.”

(주2) 앞의 책(大正藏47, 501b), “如諸方學人來, 山僧此間作三種根器斷. 如中下根器來, 我便奪其境而不除其法, 或中上根器來, 我便境法俱奪. 如上上根器來, 我便境法人俱不奪. 如有出格見解人來, 山僧此間便全體作用, 不歷根器.”

(주3) 앞의 책(大正藏47, 497a), “有時奪人不奪境,有時奪境不奪人,有時人境俱奪,有時人境俱不奪.

(주4) 앞의 책, “有僧問: 如何是奪人不奪境? 師云: 煦日發生鋪地錦, 嬰孩垂發白如絲.”

(주5) 앞의 책, “僧云: 如何是奪境不奪人? 師云: 王令已行天下遍, 將軍塞外絶煙塵.”

(주6) 앞의 책, “僧云: 如何是人, 境兩俱奪? 師云: 幷汾絶信, 獨處一方.”

(주7) 앞의 책, “僧云: 如何是人, 境俱不奪? 師云: 王登寶殿, 野老謳歌.”

(주8) [宋]頥藏主集, 『古尊宿語錄』 卷5, 『臨濟禪師語錄之餘』(卍續藏68, 32c), “示衆云: 我有時先照後用, 有時先用後照, 有時照用同時, 有時照用不同時. 先照後用有人在; 先用後照有法在; 照用同時, 駈耕夫之牛, 奪飢人之食, 敲骨取髓, 痛下鍼錐. 照用不同時, 有問有答, 立賓立主, 合水和泥, 應機接物. 若是過量人, 向未擧已前撩起便行, 猶較些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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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남경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부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교수. 저서로 『중국불교거사들』, 『중국불교사상사』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조선불교통사』(공역), 『불교와 유학』, 『선학과 현학』, 『선과 노장』, 『분등선』, 『조사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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