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록 읽는 일요일]
마음에 탱크가 지나가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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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글 / 2019 년 4 월 [통권 제7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811회 / 댓글0건본문
곰글 | 불교작가
한 스님이 조주에게 와서 물었다.
“오래 전부터 조주의 돌다리가 유명하다고 해서 와 봤는데 그냥 초라한 외나무다리가 아닙니까?”
“그대는 왜 외나무다리만 보고 돌다리는 보지 못하는가?”
“그 돌다리란 어떤 겁니까?”
“나귀도 건너가고 말도 건너가지!” (『벽암록』 제52칙)
선종의 강령 가운데 하나가 불립문자不立文字다. 깨달음을 언어로 알려고 하지도 말고 가르치려고 하지도 말라는 의미다. 하지만 ‘문자를 세우지 말라’는 것도 하나의 말이다. 인간이란 사고하고 소통하는 본질적 수단인 언어를 떠나서는, 세상을 인식할 수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동물이다. 밥을 달라고 하던 법을 펴려고 하던, 어쨌거나 말을 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누군가 깨달음에 대해 물어올 때 선사들은 언어를 최소화해서 교육하는 고육책을 쓰는데, 그것은 대개 짤막한 대화의 형태로 드러난다. 선문답이다.
『벽암록』은 대표적인 선어록이다. 역대 공안公案 1701칙則 가운데 학인들의 참선수도에 크게 도움이 될 만한 100칙을 선별해 묶었다. 100개의 공안 각각에 설두(雪竇, 980~1052)라는 스님이 송을 붙이고 원오(圓悟, 1063~1125)라는 스님이 평을 달았다. ‘공안’이란 원래 당시 중국 당나라 정부가 펴내던 공문을 가리킨다. 곧 선종에서 쓰는 공안은 ‘공인된 화두’라는 뜻이다. 법칙을 일컫는 ‘칙則’이라고 낱낱의 화두를 명명한 까닭 역시 그 화두가 그만큼 객관성과 정통성을 지녔음을 시사한다. 인생의 진리를 깨우치자고 뛰어드는 것이 수행이니, 결론적으로 공안만 잘 이해해도 세상살이의 견딤이 한결 수월해질 수 있다.
언어란 것은 자못 신비한 구석이 있는데, 언어를 줄이면 줄일수록 더 농익고 폭넓은 의미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른바 여백의 아름다움 또는 함축의 묘미. 좋은 시들은 이 기법을 능란하게 활용했기에 명시 대접을 받는다. 그래서 선사들은 특출한 도인인 동시에 특출한 시인인 경우가 제법 있다. 『벽암록』이 그렇다. 문학적 은유와 상징의 결정판이다. 오죽하면 원오의 제자이자 간화선을 체계화 시킨 대혜(大慧, 1089~1163)는 후학들이 보는 앞에서 스승의 역작을 불살라버리는 소동을 벌였을까. 직접적인 체험과 도전으로 깨달음에 다가서려지 않고 그저 그럴듯한 말꼬리나 붙잡고 허송세월하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대혜가 간화선을 만든 까닭은 그 즈음 사대부 문인들을 중심으로 술 한 잔 걸친 채 선시禪詩 쓰기나 겨루는 문자선文字禪이 횡행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조주(趙州, 778~897)는 그러한 대혜가 가장 싫어했을 법한 인물이다. 『벽암록』 100칙이란 ‘100가지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중국 역대 선사들의 일화와 법문을 소재로 삼았다. 이 가운데 조주를 주인공으로 한 것이 12개로 최다最多에 자리한다. 그의 혀에서 나온 선문답은 도합 550개에 달한다. 특히 ‘개에겐 불성이 없다’는 조주구자趙州狗子는 그의 사후 1100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의 선원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화두로 손꼽힌다. 후대는 조주의 선을 구순피선口脣皮禪이라고 기린다. 그만큼 깨달음을 입으로 잘 가지고 놀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달변은 아니었다. 선문답에서 조주의 답변은 길어도 스무 글자를 좀처럼 넘어가지 않는다. 툭툭 내뱉는 말을 잘 한다고 해서 말을 잘 한다고 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다만 언어의 주요한 기능으로 감화感化가 꼽힌다. 조주에게 말을 걸어오는 자들은 대다수가 승려이며 그러므로 깨달음이 무엇인지 불법의 참뜻이 무엇인지를 늘 궁금해 하는 자들이다. 조주는 그때마다 번뜩이는 직관과 비약으로 그들의 마음을 크게 들었다 놓았다. 그의 말은 언제든 막힘이 없으며 쩔쩔매거나 중언하거나 곤경에 처하지도 않는다. 마치 인생 다 산 사람처럼. 더는 내려갈 곳이 없다는 사람처럼.
조주석교를 실제로 구경한 적이 있다. 어느 종단이 한국의 불교전통의식을 중국 스님들에게 보여주러 가는 길에 동행했다. 조현趙縣은 허베이 성河北省 소속으로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에서 서남쪽으로 1000리쯤 떨어진 마을이다. 조주가 거주했던 백림선사柏林禪寺와 그가 왕래했던 조주석교趙州石橋는 조현에서 가장 이름난 명승지다. 도심 속의 백림선사는 웅장하고 견고했다. 당나라 최고 선승의 조정祖庭이었다는 명성 그리고 뭐든지 크게 만들고 보는 대륙적 기질이 결합한 대가일 것이다. 높이 33m의 조주 사리탑이 압권이다. 대법당에는 2,000명까지 들어간다. 경내에는 수십 그루의 측백나무가 가지런히 도열했다. 그래서 백림이다. 선사의 유명한 화두인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 조주백수)’에서 착안한 식목이다. 절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天下趙州천하조주’라고 쓴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조주석교는 백림선사에서 4km 남짓 떨어져 있다. 택시로 10분을 달리니 다리가 보였다. 조주가 맹랑한 학인과 입씨름을 벌였던 그 다리요, 나귀도 건너가고 말도 건너간다는 그 다리다. 선문답 안에서 학인은 조주석교의 실상이 허술한 외나무다리라며 빈정거리고 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조주석교는 드넓고 탄탄한 돌다리였다. 석교라 부르기에 충분한 외형이다. 다리가 건축된 시기 역시 선사가 태어나기 200년 전이다. 고구려 정벌에 나섰던 수양제隋煬帝 치하였던 595년부터 605년까지, 이응李膺이란 석수장이가 10년에 걸쳐 제작했다. 나귀나 말은 말할 나위 없고 탱크가 지나가도 끄떡없을 만한 너비이고 위세다.
백림선사의 본래 이름은 관음원觀音院이었다. 조주는 나이 여든에 여기에 왔고 여기서 죽음을 맞았다. 지금의 관음원은 더없이 찬란하다. 곳곳이 그를 추켜세우는 유적이며 여기저기서 그의 이름을 단 기념품을 내다 판다. 조주가 선종을 대표하는 인물로 역사에 자리했기에 이러하다. 반면 조주가 살아서의 관음원은 가난했고 무명無名이었다. 그때 조주는 신도들의 공양이 없어 졸졸 굶어야 했다. 심지어 “평상을 받치는 다리 하나가 부러지면 ‘타다 만 부지깽이’로 지탱해야 할 만큼(『조주록』)” 경제적 사정이 비참했다. 이때의 조주석교 역시 조주의 소유도 아니었을 뿐더러 조주를 알아주는 다리조차 아니었던 것이다. 앞서의 선문답으로 돌아가 보자. 앞서 밝혔다시피 조주는 9세기에 활동했고 석교는 7세기의 시작과 함께 만들어졌다. 곧 조주에게 묻는 학인도 내가 보았던 석교를 보았을 것이다. 누가 봐도 단단하고 우람한 다리를 뜬금없이 고작 외나무다리라며 비웃는다. 신세가 늙고 형편없었던 조주에 대한 능멸의 비유로 읽어야 한다.
세상에서 정말 보기 힘든 광경이 가난한 자가 도도한 것이다. “나귀도 건너가고 말도 건너간다.”는 말은 아무나 와서 시비를 건다는 뜻이고 별 거지같은 것이 와서 기분을 잡친다는 뜻이다. 더불어 그렇더라도 기꺼이 그것을 감내하겠다는 화자의 여유와 기백이 깃든 답변이다. 혹자는 조주의 대답이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큰스님의 아량과 자비’라고 평하는데, 빗나간 구석이 있다. 나귀와 말을 인간보다 못한 짐승 또는 짐승처럼 우매한 인간으로 빗대던 선가禪家의 여러 관용어들이 근거다. 임제臨濟 선사는 제자인 삼성三聖을 ‘눈먼 나귀’라 비난했고, ‘나귀의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와 버렸다’는 ‘여사미료驢事未了 마사도래馬事到來’는 좀체 견성하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핀잔이다. ‘나귀와 말의 전후를 쫓는 사람’이라는 여전마후한驪前馬後漢도 ‘멍청이’에 해당하며 2차적으로 주인에 딸린 종을 가리킨다. 또한 죽어서 내생에 축생畜生이 된 자는 여태마복驢胎馬腹이라 불렀다. 내가 글감으로 조주를 택한 건 결정적으로 조주석교 때문이다. 마음에 탱크가 지나가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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