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로 세상 읽기]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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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도 / 2019 년 8 월 [통권 제76호] / / 작성일20-05-29 10:31 / 조회7,037회 / 댓글0건본문
김군도 | 자유기고가
남전화상은 동당과 서당의 승려들이 고양이 새끼를 두고 서로 다투자, 그 고양이를 붙잡아들고 말했다. “내가 고양이를 집어 든 이유를 말한다면 살려줄 것이요, 그렇지 못한다면 죽이겠다.” 양당의 승려들 누구도 아무 말을 못했다. 그러자 남전화상은 고양이를 베어 버렸다. 밤늦게 조주가 외출에서 돌아오자 낮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조주가 아무 말 없이 신발을 벗어 머리에 이고 나가자 남전화상이 말했다. “만약에 네가 있었다면 고양이 새끼는 죽지 않았을 것을!”
南泉和尙, 因東西兩堂爭猫兒, 泉乃提起云: “大衆道得卽救, 道不得卽斬却也.” 衆無對. 泉遂斬之. 晩趙州外歸, 泉擧似州, 州乃脫履安頭上而出. 泉云: “子若在卽救得猫兒.” 『무문관』 제14칙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4)화상은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선사의 법을 이었다. 서당지장(西堂智藏735~814)과 백장회해(百丈懷海 749~814)와 함께 마조도일의 가장 뛰어난 3대 제자로 꼽혔다. 남전화상의 속성은 왕王씨이며 현 하남성 개봉부 신정현에서 태어났다. 10세때 출가하여 대혜선사를 찾아 수학하다 훗날 강서 마조도일 선사의 문하에 들어갔다. 스승의 강론이 있는 날이면 빠지지 않고 참청參廳했고, 곁에서 선수禪修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화상의 나이 47세 때 남전산南泉山에 선원을 짓고 정주定住했다.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았으나 그의 법력을 흠모해 사방에서 1천명 가까운 납자들이 몰려와 대산문大山門을 이루었다.
어느 날 동당과 서당의 제자들이 고양이 새끼 한 마리를 두고 서로 ‘우리 당의 고양이’라며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남전화상이 고양이 새끼의 목을 번쩍 들어 올리고 한 손에 칼을 쥔 채 일갈했다. (당신이 고양이 새끼 목을 들어올린 이유에 대해) “맞게 말하면 살려줄 것이요, 틀리게 말하면 즉시 목을 베어버리겠다” 하였으나 대중 누구도 이에 대답하지 못했다. 화상은 주저 없이 고양이를 베어버렸다. 저녁이 되어서 외출했던 조주가 돌아오자 화상은 낮에 있었던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자 조주가 아무 말 없이 신발을 머리에 이고 나갔다. 이를 지켜 본 화상은 “만약에 조주가 있었다면 고양이 새끼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말했다는 게 이 공안의 내용이다.
고양이를 단칼에 죽인 남전 선사
그런데 여기에서 드는 의문이 하나 있다. 살생을 엄하게 금하는 불문에서 스승이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양이 새끼를 참수하는 살생을 저질렀으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혹자들은 고양이 새끼를 단박에 참수함으로써 시시비비에 빠져있는 제자들의 분별심을 타파하려는 스승의 엄중한 가르침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고양이 새끼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던 제자들은 ‘우리 당의 고양이’라며 싸웠던 자신들의 행동을 후회했을 터이고, 고양이를 지켜주지 못한 자신들의 부족한 수행력에 자괴감이 들어 눈물을 흘렸을 터이다.
파격破格과 역설逆說을 가풍으로 삼는 선문에서 살생이란 깨달음으로 이끌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이다. 이 공안에서 살생을 저지른 이는 남전화상이 아니다. 여전히 미망과 망상에 빠져 치열한 수행을 등한시하고 있던 양당의 제자들이 공업共業의 살생자다. 그들은 고양이 새끼를 죽음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했다. 신발을 머리에 이고 아무 말 없이 나가는 조주를 보며 남전화상은 “조주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고양이 새끼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남전화상은 조주의 수행이 무르익었음을 인정하고 있는 대목이다. 신발을 머리에 이고 나가는 행동이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인지 필자는 모른다. 분명한 건 남전화상은 조주의 행동을 칭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행동은 평소 수행을 얼마나 치열하게 해왔는지에 대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를 남전화상은 정확히 읽고 있다. 다른 제자들이 조주처럼 수행의 경지를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면 고양이 새끼의 죽음을 말릴 수 있었으리라.
과거 세간에 ‘지못미’라는 젊은이들 사이에 쓰이는 말이 있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의 압축된 표현이다. 실제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사례는 우리의 역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화냥년’이라는 비속어다. ‘화냥년’은 본래 ‘환향녀還鄕女’에서 유래된 것으로 ‘고향에 돌아온 아녀자’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본뜻을 폄훼하고 왜곡해서 ‘함부로 몸을 놀리는 여자’로 변질시켰다. 원인은 나라를 지키지 못한 왕실과 백성들에게 있었다. 서기 1636년 우리나라를 치고 들어 온 청나라로 인해 병자호란이 일어났지만 우리 땅을 지키지 못한 당시 조선은 처녀와 아낙 등 수천 명을 인질로 내줘야 했다. 그 후 인조 13년 청나라에 끌려갔던 아녀자들이 돌아온다. 고향 땅을 밟는 이들을 ‘환향녀’라 부르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일부 조정 대신과 남성들은 그녀들을 따스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몸을 팔고 온’ 기생 정도로 여겨 도성 땅을 밟는 입구에서 단체로 몸을 씻게 하는 등 마치 속죄라도 하라는 양 파렴치한 행태를 보였다.
사정은 일제 시대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라를 지키지 못해 벌어진 사안 중의 하나가 위안부 사건이다. 나라를 지켜내지 못한 대가는 국민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위안부는 나라 잃은 설움과 비애를 상징한다. 그럼에도 당사자들에게 손가락질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일부 국민들의 의식과 행태를 보고 있자면 화가 난다.
‘지못미’는 우리의 역사에서 숱하게 반성하고 시정해야 할 과제를 시사해주고 있다. 자신의 과오가 무엇인지 모른 체 남에게 손가락질하고 수모와 냉대를 일삼는 행태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살생을 죄 중 으뜸으로 치는 불가에서 남전화상이 고양이의 목을 벤 것은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일까? 여기에 고양이의 목숨을 지켜주지 못한 양당의 승려들은 무엇을 말하지 못한 것일까? 공안은 파격과 역설의 언어다. 도를 구하는 문턱에서 자비심을 논하는 따위란 없다. 남전화상이 양당의 승려에게 말하려는 메시지는 갑론을박의 시비를 고양이의 목을 베는 것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럼으로써 고양이를 지켜주지 못한 양당 승려의 허약한 법력을 질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내가 지켜줘야 할 수많은 요소와 상황들이 놓여 있다. 그럼에도 꼭 지켜줘야 할 것을 내 나약함과 어리석음과 비겁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잃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지켜줘야 할 것이 있다면 사력을 다 해 지켜주는 것이 참된 도리다. 부모가 자식을 지켜주지 못하고 스승이 제자를 지켜주지 못하며 사장이 직원들을 지켜주지 못하면 사회의 일탈과 불화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죽은 고양이 위해 부고장 돌린 오상순
이런 얘기를 할 때 떠오르는 작가가 있다. 현대문학의 거장 공초空超 오상순(1894~1963)이다. 그에게 이런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공초가 대구시 덕산동에 살 때 친구들에게 자기 딸이 죽었다는 부고장을 돌렸다. 딸이 없는데 딸이 죽었다니 친구들은 의아해 하며 공초의 집으로 달려갔다. 공초는 병풍을 둘러치고 곡을 하는데 영락없이 초상집이었다. 그러나 사연인즉 평소 그가 딸처럼 애지중지 키우던 ‘안나’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죽은 것이다. 친구들은 어처구니가 없어 욕이라도 퍼부어 주고 싶었으나 끝까지 지켜주지 못하고 떠나보내는 애절한 마음이 담긴 장문의 재문을 엄숙하게 낭독하는 공초의 모습에서 화가 눈 녹듯 사라졌다. 더욱이 공초는 고양이를 관에 넣고 대명동 공동묘지로 가 무덤까지 만들어 묻어 주었으니 이것이 당시 문단에 화제가 되었다. 문단의 지인들은 이 일화를 빗대 ‘공초묘장空超描葬’이라 이름했다.
지켜준다는 것은 이렇게 간절한 마음이 담긴 것이다. 우정과 사랑에 금이 간다는 것은 지켜줘야 할 것을 지켜주지 못한 때문이다. 한낱 볼품없는 것인데도 억대를 지불하며 지켜내는 것은 잃어버릴 경우 억대를 뛰어넘는 후회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세월호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만일 양당의 승려들이 수행 본분에 전념하고 출가자가 지녀야 할 화합중和合衆의 원칙을 깨지 않았다면 고양이 새끼는 죽음으로부터 지켜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본의 아니게 지켜주지 못해 벌어지는 안타까운 일들이 없도록 경각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다시는 우리 사회에서 나와서는 안 될 말,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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