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로 세상 읽기]
“선·교에 통달한 성철 스님은 생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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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도 / 2018 년 12 월 [통권 제68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738회 / 댓글0건본문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입니다.
자기는 항상 행복과 영광에 넘쳐 있습니다.
극락과 천당은 꿈속의 잠꼬대입니다. (중략)
자기를 바로 봅시다.
모든 진리는 자기 속에 구비되어 있습니다.
만약 자기 밖에서 진리를 구하면,
이는 바다 밖에서 물을 구함과 같습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영원하므로 종말이 없습니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세상의 종말을 걱정하며 두려워하여 헤매고 있습니다. (중략)
자기를 바로 봅시다.
아무리 헐벗고 굶주린 상태라도 그것은 겉보기일 뿐,
본모습은 거룩하고 숭고합니다.
겉모습만 보고 불쌍히 여기면, 이는 상대를 크게 모욕하는 것입니다.
모든 상대를 존경하며 받들어 모셔야 합니다. (중략)
자기를 바로 봅시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려고 오셨습니다.
이렇듯 크나큰 진리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다함께 길이길이 축복합시다.(주1)
한국불교 현대사에서 성철 스님은 ‘살아있는 부처’로 불렸다. 그의 수행 이력과 해박한 경전 해석은 선禪과 교敎에 두루 통달한 경지를 보여주는 것이었고, 걸림 없이 자유로운 산사생활의 모습은 ‘생불生佛’로 비쳐진 게 당연한 일이었다.
성철 스님은 1980년 10·27법난法難으로 망신창이가 된 한국불교의 상황에서 종정宗正직을 수락했다. 위기의 한국불교가 새 활로를 찾기 위해선 성철 스님이 종정을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고 스님도 끝까지 거절만 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이듬해 1981년 1월 6대 종정에 취임한 스님은 그러나 종단 일에는 전혀 간여하지 않았다. 다만 종정으로서 해마다 신년 법어와 봉축법어를 발표했을 뿐이다.
스님의 법어는 세간에 나올 때마다 국민들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언론에서도 국민들의 관심이 높은 것을 인지하고 스님의 법어를 앞 다투어 보도했다.
법어는 말 그대로 법어다. 딱딱한 경전말씀이고 때로는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성철 스님의 법어는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고 인기를 끈다. 이유는 무엇일까?
1993년 음력으로 9월20일, 스님께서는 세연世緣을 접고 본지환처本地還處하셨다. 올해로 열반 25주년째. 필자는 스님의 열반 25주년을 맞아 위 법어를 토대로 스님이 평소 무엇을 우리에게 일러주려 하셨는지 살펴보려 한다.
스님은 기존 관념과 인식을 탈피하는 파격破格의 행태를 보여주셨다. 역대 종정과 방장 스님들은 대부분 어려운 한문으로 이뤄진 법어를 발표했지만 스님은 한글로 쉽게 법어를 내려 보냈다. 비록 한글이지만 한문의 깊이보다 더하고 그 울림의 파장도 더 컸다. 한글 법어는 곁에서 시봉하고 있던 상좌 원택圓澤 스님이 권유했는데 스님께서 기꺼이 수용해 이뤄졌다고 한다. 파격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한문 위주의 법문이 주로 권위적인데 비해 스님의 법어는 ‘앞집의 복동아, 뒷집의 수남아 새해를 노래하세’(1983년 신년법어)처럼 평범하기 짝이 없다. 오히려 더 친근하고 메시지 전달이 확실하다. 표현의 파격은 다른 법어에서도 줄곧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뇌리에 오래도록 저장케 하는 효과를 불렀다.
둘째는 정법正法의 강조다. 위 법어는 정법에 기초한 불교사상을 대중들에게 설시說示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부처를 신격화하거나 사후세계를 거론하며 예수재豫修齋에 몰두하는 등 한국불교의 타락과 세속화가 한창 진행되던 때가 이즈음이다. 스님은 이의 잘못됨을 파악하고 바로 잡으려 한 것이 분명하다. ‘자기가 바로 부처’란 해탈의 길을 제시한 정법에로 나아가라는 준엄한 가르침이다. 또 ‘극락과 천당은 꿈속의 잠꼬대’라 함은 사후세계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 ‘노코멘트’로 응대한 부처님의 ‘무기無記’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현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소모적 사상에 빠지지 말라는 경고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수행과 실천이다. 수행과 실천은 기도를 우선하는 이웃종교와 분명히 대비된다. 정법을 강조한 스님의 지론은 상좌 천제 스님의 증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큰스님께서는 시대를 앞서가는 선견지명先見之明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한국불교가 일제강점기를 지나오며 너무 세속화·미신화 되고 뒤떨어졌다는 것에 대해 대단한 충격을 받은 분이 바로 큰스님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직접 새로운 지식에 대해 관심을 갖고 온갖 자료를 수집하셨습니다.”(주2)
스님은 경전을 두루 섭렵하면서 정법을 펼쳐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계셨던 것으로 분석된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려고 오셨습니다.’란 구절도 정법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스님의 확고한 신념에서 나온 표현이다.
만일 부처님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라면 신神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기도와 기복祈福의 대상이다. 때문에 스님은 부처님이 사바세계에 나투신 것은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려고 오셨다’고 한 것이다. 구원되어 있음을 알려면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정법에로 나아가는 길이다.
셋째로 성철 스님의 법어는 역설逆說의 미학美學이 수반되고 있다. 기존 인식과 관념을 뒤집는 메시지가 일품인 스님의 법어는 그래서 진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다’, ‘겉모습만 보고 불쌍히 여기면, 이는 상대를 크게 모욕하는 것이다.’ 등의 표현은 일반적 상식을 뛰어넘는 것으로 다시 한 번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역설적 표현은 스님의 법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펄펄 끓는 용광로에 차디찬 맑은 물이 넘쳐흘러,(중략) 장엄한 법당에는 아멘 소리 진동하고 화려한 교회에는 염불소리 요란하니”(주3)
“귀머거리가 우레 소리를 듣고, 장님이 구름 속 번갯불을 보고, 앉은뱅이가 일어나 너울너울 춤을 춥니다.”(주4)
“교도소에서 살아가는 거룩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술집에서 웃음 파는 엄숙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중략)”(주5)
역설은 겉으로 보기엔 모순된 듯 보이나 깊이 들여다보면 어떤 진리를 담고 있는 표현법이다. 특히 통념을 뒤집는 모순을 통해 상대방의 인식에 충격을 줌으로써 심오한 깨달음이나 상식을 초월한 진리를 나타내는 효과를 지니고 있어 예로부터 선사들이 선시를 통해 자주 쓰는 문학적 기교이기도 하다. 성철 스님의 법어는 통념과 상식을 뒤집는 역설을 통해 정법을 추구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숨어있는 진리를 확연히 드러내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한국불교는 지금 여전히 기복과 사법邪法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 사회 역시 신분적 불평등은 물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모든 상대를 존경하며 받들어 모셔야 한다’는 스님의 법어가 무색하리만치 서로에 대한 신뢰와 배려가 너무 부족하다.
불교는 과거 재래 인도사회에서 낡은 관념의 탈피를 주장하며 출현했다. 불교 안에선 신분을 떠나 누구나 평등한 대접을 받았다. 불교가 폭발적 성장을 보인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불교는 불교 태생 이전의 낡은 관념으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스님들은 제사장 역할에 빠져있고 불교는 신본사상神本思想과 별 다른 차이 없는 기복의 타성에 젖어 있다.
만일 성철 스님이 다시 우리 곁에 돌아와 이 모습을 보신다면 뭐라 하실까? 스님의 법어는 8만대장경을 압축한 ‘진액眞液’이다. 각종 폐해와 병리 현상으로 고통 받고 있는 한국불교와 우리 사회가 반드시 복용해야 할 ‘약’이다. 다시금 스님의 법어가 사회의 경종이 되어 우리를 올바르게 이끌어 주길 기대한다.
주)
(주1) 성철 종정 초파일 법어, 1982년 음력 4월 초파일.
(주2) 『성철 큰스님을 그리다』, 유철주 지음, 장경각, 2018, p.27.
(주3) 1986년 1월1일 신년법어.
(주4) 1993년 1월1일 신년법어.
(주5) 1986년 음 4월8일 봉축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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