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직지禪宗直指』 > 월간고경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월간 고경홈 > 월간고경 연재기사

월간고경

[원명청 선어록]
『선종직지禪宗直指』


페이지 정보

김호귀  /  2020 년 11 월 [통권 제91호]  /     /  작성일20-11-25 11:01  /   조회7,657회  /   댓글0건

본문

1. 개요 

 

 『선종직지禪宗直指』』는 명심견성明心見性하려면 모름지기 성불成佛하고 성조成祖하는 요법要法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인데, 크게 『밀전참선요법密傳參禪要法』과 『밀전불법통지密傳佛法通旨』의 두 대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만신찬속장경』 제63권에 수록되어 있다. 청대의 석성금石成金이 짓고, 천기天基가 가려 뽑아 지었으며, 그의 아들 신년峷年과 숭년嵩年이 교감하고 새겼다.

 

전체적으로 『선종직지』의 내용은 박산무이博山無異의 『선경어禪警語』와 내용과 매우 흡사하다. 따라서 『선종직지』는 석성금이 박산무이의 글을 참고하고, 천기가 석성금의 글을 참고하여 완성한 것이다. 내제內題는 『전가보선종직지傳家寶禪宗直指』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명심견성明心見性하여 성불하고 작조作祖하는 요법을 설명한 책이다. 곧 밀전된 참선요법과 밀전된 불법통지를 두 대목으로 분별하여, 전자에 대해서는 참선을 공부하는 요법을 46가지 주제에 걸쳐 72항목으로 세분하여 설명하였고, 후자에 대해서는 10문답의 항목으로 나누어 불법에 대한 도리와 일반적인 사항에 대한 힐난에 대응하여 설명하였다.

 

2. 『밀전참선요법』

 

첫째 대목에 해당하는 『밀전참선요법』은 참선입문의 요법에 대하여 설명한 것으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3. 『밀전불법통지』

 

둘째 대목에 해당하는 『밀전불법통지』는 불법의 밀전에 대한 대의를 설명한 것이다. 곧 불법의 도리에 대한 힐난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제7항목 및 제8항목은 불법의 도리에 대한 것이고, 제9항목과 제10항목은 불법 자체에 대한 질문이다.

 

 불교는 인륜의 기강을 저버리고 수도한다는 힐난에 대하여 불교는 인륜을 저버리지 않고 세간을 구제한 것이다.

 마음으로써 마음을 추구한다는 힐난에 대하여 마음으로써 마음을 관찰하고 추구하지만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곧 마음의 이원성이 아니다.

 불법에 경敬은 있지만 올바름[義]도 있느냐는 힐난에 대하여 신身·구口·의意의 의의를 추구한다.

 입정入定은 죽음과 같은 경지가 아니냐는 힐난에 대하여 지止에는 관觀이 그리고 적寂에는 조照가 가미되어 있다.

 불교의 성性·심心은 유교의 심心·의意로서 각각 다른 개념이라는 힐난에 대하여 불교의 심心·성性은 동일하여 범부와 부처의 심心·성性이 동일하다.

 지智·견見이 많아지면 성性·영靈에 장애된다는 힐난에 대하여 잘못된 경우에만 그러하다.

 부처님에게는 인심人心만 있고 도심道心이 없다는 힐난에 대하여 인심은 번뇌이고 도심은 깨침이다. 인심은 타파의 대상이고 도심의 추구의 대상이다.

 무념無念에 대한 힐난에 대하여 무념이란 망념妄念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정定과 혜慧의 관계에 대한 힐난에 대하여 혜에 근거한 정이라야 옳다.

 무정無情은 무엇인가라는 힐난에 대하여 범凡·성聖의 분별이 없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 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묻는다: ‘석가모니가 가정을 버리고 도를 닦은 것에 대하여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은 인륜과 기강을 저버린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어찌 생각하십니까?’ 

답한다 : ‘그것은 석가모니가 일찍이 가정을 저버린 적이 없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곧 석가모니는 온몸으로 먼저 정반왕과 마야부인을 제도하였고, 다음으로 야쇼다라를 제도하였으며, 다음으로 라후라를 제도하였고, 다음으로 아난을 제도하였다. 이것은 군신·부자·부부·형제의 인륜을 결코 그만두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륜과 기강을 저버렸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하자면 인륜과 기강을 저버리려고 했겠는가. 또한 출가비구들이 내세우는 논리에 따르면 재관宰官 및 거사居士 등의 백성은 모두 임금과 부모로부터 떠나지 않으면서도 도를 닦고 진리를 배웠다. 그러니 그 누가 인륜의 뜻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가령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단지 음식만 탐내고 욕심을 부릴 줄만 알고 재계齋戒를 지키고 살생을 삼가는 것은 알지 못하여 귀인과 천인 기타 모든 생명을 죽이고 만다. 그것은 마치 채소나 과일의 식물과 같아서 방생과 이류는 모두 중생으로서 불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모르는 처사다. 비단주름으로 수를 놓아 장식을 하면서도 수많은 누에의 생명을 앗아가는 줄도 모르고 몸의 장식을 뽐내고 있으니 참으로 애석하다. 진수성찬을 맛있다 하면서도 수륙의 생명이 삶겨죽고 변방에서는 주리고 창고가 비어가는 줄도 모르고 있으니 큰 죄를 짓는 것이다.

 

또한 사냥하는 매와 개 및 사냥하는 도구가 산림에 가득하고, 물고기 잡는 그물과 도구가 강과 바다에 넘쳐나며, 소와 양과 돼지와 사슴의 고기가 도시에 낭자하고, 자라와 새우와 게 등 생선의 비린내가 거리에 가득하며, 그 기술을 익히고 전승하면서도 당장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여 두려워할 줄도 모르고 그 생명들에게 원한을 맺은 줄도 모르고들 있으니 그 과보가 반드시 무궁할 것이다.

 

또한 흥겨운 노래를 부르고 멋진 춤을 추며, 관악기를 불고 현악기를 뜯으며, 첩을 두고 사내아이를 사랑하며, 그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영웅 및 현인과 호걸을 불러들이면서도 그와 같은 욕망이 끝이 없는 타락으로 빠져드는 근본이 되는 줄을 모르고 있다. 무도하고 난잡한 세상을 만나서 명예와 이익을 다투어 모아서 거리에 나서면 광영이 넘치고, 도로에 나서면 타인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중인 이상은 모두가 다 그런 풍습에 물들어버렸으면서도, 그런 것들이 허깨비와 물거품처럼 무상하게 흘러가버리는 근본이 되는 줄을 모르고 있다. 또한 어리석은 인정에 얽매이고 애욕이 몸에 베어들고 고·락에 얽혀들며, 생·사에 계박되어 있으면서도 해탈의 길이 있는 줄을 모르고 있다. 또한 망령되게도 남과 나를 분별하여 은혜와 원망을 따지는 것에 힘을 쏟으면서 평등의 길이 있는 줄을 모르고 있다.

 

이제 이와 같은 목전에서 벌어지는 모습에 대해서는 그만 논하겠다. 이와 같은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어찌 몸이 죽은 이후에 벌어지는 선·악의 인·과가 천생·만겁을 지내더라도 그 과보가 끝이 없는 줄을 모르고 있는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근본적인 핵심을 모른다고 할지라도 자기 스스로 불법에 대하여 밝게 꿰뚫고 있다면 갖가지로 위범違犯하는 자가 이전과 같이 많을지라도 불교를 받들고 수지修持하는 자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세도世道의 중추적인 역할이 될 것이니, 그 어찌 위대하지 않겠는가. 유교는 세간법으로서 명분과 교양[名敎]의 강유綱維로 활용되어 생전의 보취保聚가 되지만(주), 불교는 출세간법으로서 본래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으로 활용되어 죽은 이후에 하늘에 올라가는 것이다. 이처럼 유교와 불교가 원래는 서로 위협하는 관계가 아닌데 무엇이 유교와 불교가 공존하는데 방해가 되겠는가.’”

 

주) 강유綱維는 물고기 잡는 그물을 사방에서 동시에 거두어 올릴 수 있는 벼릿줄을 의미하고, 보취保聚는 병력을 모아 성을 지키는 것이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김호귀
동국대 선학과 대학원에서 <묵조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및 학술교수 역임.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저서에 <묵조선 연구>,<선의 어록>,<선문답의 세계> 등이 있다.
김호귀님의 모든글 보기

많이 본 뉴스

추천 0 비추천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우) 03150 서울 종로구 삼봉로 81, 두산위브파빌리온 1232호

발행인 겸 편집인 : 벽해원택발행처: 성철사상연구원

편집자문위원 : 원해, 원행, 원영, 원소, 원천, 원당 스님 편집 : 성철사상연구원

편집부 : 02-2198-5100, 영업부 : 02-2198-5375FAX : 050-5116-5374

이메일 : whitelotus100@daum.net

Copyright © 2020 월간고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