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별어]
백만군대를 향해 오른 손으로 배를 두드리며 대갈일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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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 / 2016 년 7 월 [통권 제39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273회 / 댓글0건본문
고산사를 찾다
이미 사위는 어두워졌다. 여름 낮이 긴 것만 믿고 늦게 출발한 것이 화근이었다. 초행길인지라 오직 내비게이션만 믿을 뿐이다. 큰길을 빠져나갔다. 자동차도로와 나란히 달리는 농로를 따라 ㄱ(기역)자로 꺾었다. 다시 도로 밑을 지나가는 굴다리를 지나 ㄷ(디귿)자로 꺾으라고 알려준다.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했다. 산길로 진입한다. 이제 정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뿐이다. 길을 안내하는 인로왕보살인 ‘내비양’이 오작동하지 않기만 바라면서 오르막을 숨가쁘게 밟았다. 다행히 갈림길에 ‘고산사’ 사찰표지판이 서있다. 헤드라이트 불빛 끝자락에 누각이 설핏 보인다. 더듬거리며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문 밖까지 마중 나온 도반의 안내에 따라 객실에 몸을 뉘었다. “나무내비보살마하살.”
백제유민의 흔적을 만나다
밤에 도착해 쉰 누각은 컴퓨터글씨체로 새긴 ‘백제루’였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북과 운판, 목어 등 사물이 함께 달려 있다. 아침햇살에 비친 안내판을 읽어 내려갔다. 1997년에 창건한 새 절이었다. 2008년 ‘백제삼천범종’ 타종식 날 어디선가 송아지 아홉 마리(백제유민의 환생?)가 찾아와 함께 종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날부터 지역민들에게 ‘우종(牛鍾)’또는 ‘소종’이라는 별명이 붙게 된 영험 있는 종이었다. 2015년 ‘백제극락보전’을 낙성하고 현재 단청작업만 남겨 놓았다.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대왕 위혼비’가 절 마당 가운데 외로이 서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이 절의 창건주인 최병식 박사는 어느 날 문중의 선산인 고산(高山, 옛 이름 운주산)이 백제부흥운동의 마지막 근거지인 주류성(周留城)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운주산성은 그 흔적이었다. 그것을 알고 난 후 삼천 명의 유민이 몰살당했다는 삼천굴 찾기를 발원했다. 아무리 1500년 전의 일이지만 ‘불을 때면 운주산 꼭대기에서 연기가 났다’는 구전으로 미루어 보건대 엄청나게 큰 동굴이었을 텐데 도무지 흔적이라고 아무 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그것을 정녕 찾으려고 한다면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주변인의 말을 듣고 이 절을 창건했다. 당시 전몰 삼천 영가들을 위해 늘 기도하는 도량으로 만들었다. 더불어 불혹의 나이에 고고학을 공부했고 사재를 털어 연구소도 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으니 원하는 결과가 있을 것이다.
승려와 장군의 모습을 겸하다
세종시 고산사 도침당 영정
전쟁터에는 늘 종교인이 함께 하기 마련이다. 기본적으로 군종병이야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때로는 참모로, 심지어 장군도 더러 있었다. 승려이면서 장군인 도침(道琛, ?~661) 스님을 여기서 만났다. 백제멸망 후 남은 유민들은 임존성에서 부흥운동을 하다가 도침 대사가 이끄는 주류성에 합류하여 항전을 했다는 지역이다. 경내 도침당에는 도침 대사 영정을 모셨다. 삭발에 장군복장으로 두 눈이 부리부리한 모습이다. 『개암사 불복장 별기』에 의하면 스님은 부안 개암사를 창건한 묘련(妙蓮) 대사의 제자라고 한다. 부여 은산면에서 열리는 ‘은산별신제’에서는 도침 스님을 ‘토진대사’라고 부른다. 당시에 수천 명이 스님과 함께 머물던 곳이었으니 당연히 사찰도 있었을 것이다. 혹시 이 자리가 옛 절자리인지도 모를 일이다. 도침 대사는 1500년 전 장군이다. 이로 미루어 보건데 전쟁터에서 스님들이 군인처럼 활약한 역사도 한국불교 역사만큼이나 길다고 하겠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제일이다
바수반두의 제자인 22조 마라나 존자는 나제국의 둘째 왕자 출신이다. 당시에 코끼리를 탄 백만 명의 기병이 쳐들어온다고 하니 조정은 전전긍긍했다. 할 수 없이 왕은 바수반두에게 자문을 구했다. “군사도 필요 없고 칼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태자의 일갈(一喝)만 필요합니다.” 긴가민가하면서도 별다른 방책이 없는지라 바수반두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왕의 명령에 따라 태자는 성 남쪽에 도착했다. 백만 군대를 향해 오른손을 들어 올려 복부를 치면서 크게 한번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자 땅이 진동을 했다.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백만 기병이 땅바닥에 쓰러지더니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보림전』 권4)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좋은 전술이라고 『손자병법』에서 말했다. 마라나 존자는 출가 전에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고함만으로 적을 제압한 ‘장군이력’을 가지고 있다.
백만의 코끼리 부대를 꺾기 위하여(爲催百萬象)
배를 두드리며 신통력을 부렸도다.(鼓腹作神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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