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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 그 숲을 걷다]
귀신 둘이 시체를 다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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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  2017 년 3 월 [통권 제47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09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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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의 65권-13판(516쪽) 이후의 몇 페이지에는 불교의 근본적인 교설 가운데 하나인 무아(無我)를 강조하는 내용과 그와 관련된 <대지도론>의 인용이 소개된다. 인용의 내용은 귀신 둘이 시체를 두고 다투는 얘기인데, 이 얘기를 소개하기 앞서 ‘무아’에 대해 조금 설명해보고자 한다. ‘무아’라는 용어에서 아(我)는 대개 인도 철학에서 강조하는 영원불변의 자아인 아트만(Atman)을 가리킨다. 우리의 육신은 끝내 소멸하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불변의 영혼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아트만을 주장하는 이들의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지닌 이들은 요가 수행을 통해 순수한 정신적 존재인 아트만을 우리의 몸을 비롯한 제반 물질적인 조건으로부터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만들고자 노력한다. 

 


 

 

언젠가 인도의 자이나교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이들은 해가 떠서 지는 동안 끊임없이 걸어 다니며, 하루 한 끼의 식사만 하고 있었다. 수행이 높아질수록 걸치던 옷도 다 벗어버리므로, 이들을 가리켜 천의파(天衣派)라 부르기도 한다. 하늘을 옷 삼아 다닌다는 말이다. 이들의 수행은 단적으로 고행이다. 그들의 고행을 보면, 음식을 적게 먹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수개월에 한번 씩 머리카락과 수염을 손으로 몽땅 뽑는 것도 들어가 있다. 

 

머리카락을 뽑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한두 가닥만 뽑혀도 따끔한데, 수십 가닥이 한꺼번에 뽑히면 그 고통을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런데, 자이나교도들은 가령 수염을 뽑다가 고통에 눈물이라도 흐르면 수행이 부족한 것으로 간주되므로, 그 고통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관찰하면서 잘 참는 것으로 보였다. 또 최근 인도의 자이나교 가정에서 13세 소녀가 68일간 단식한 뒤 세상을 떠나는 일이 발생했는데, 자이나교도들은 이 소녀를 성인으로 받들기도 했지만, 인도 경찰은 이를 수사하고 있다고 한다. 

 

불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이나교는 ‘자아’에 대해 바른 견해를 세우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의 행동 역시 극단적인 단식이나 고행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인도 철학의 여러 학파들과 같이 자아에 대해 그릇된 사상을 학습함으로 인해 잘못된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은 기본적으로 ‘나’를 붙잡고 그것을 보존하려는 본능적인 의지를 지니고 있다. 전자를 분별아집(分別我執)이라고 하고, 후자를 구생아집(俱生我執)이라고 한다. 분별이란 후천적으로 배워서 익혀진 것이고, 구생이란 나면서부터 있는 본능적인 것을 말한다. ‘나’에 대한 이 두 종류의 집착은 그 뿌리가 무척이나 깊기 때문에 거의 모든 불전에서 무아(無我)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무아(無我)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계기 

 

<명추회요>에 인용된 귀신과 시체에 대한 얘기는 본래 인도의 용수 보살이 지은 <대지도론>에 나온다. <대지도론>을 보면, “어떤 경우 다른 사람의 몸에 대해 ‘나’라는 생각을 일으킨다.”라는 구절 다음에 귀신 둘이 시체를 두고 다투는 내용이 나오므로, 귀신 얘기가 ‘나’에 대한 여러 가지 집착 가운데 다른 사람의 몸에 대해 ‘나’라는 생각을 일으키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매우 이상스럽게 들리겠지만, 아래 내용을 보면 금방 이해될 수 있다. 먼저 <명추회요>의 얘기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이 먼 길을 가던 중 홀로 텅 빈 집에 묵게 되었다. 밤이 되자 귀신 하나가 죽은 시체를 지고 앞을 지나갔고, 곧장 그 뒤에 다른 귀신이 따라와서 ‘왜 자기의 시체를 짊어지고 가느냐?’면서 항의하였다. 두 귀신이 서로 자기 시체라고 다투던 중에 옆에 사람이 있음을 보고, 그 시체가 누구의 것인지를 물었다. 귀신 앞에서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그 사람은 ‘앞의 귀신이 짊어지고 왔다.’고 솔직히 말하였다. 

 

뒤에 좇아왔던 귀신은 이 말을 듣고 무척 화가 나서 그 사람의 손발을 몸에서 떼어 땅에 던져 버렸다. 그러자 앞에 있던 귀신이 자신이 짊어지고 있던 시체에서 손발을 떼어 그 사람에게 꿰매어서 붙여 주었는데, 꿰매자마자 붙어 버렸다. 이런 식으로 신체를 뗐다 붙였다 하다 보니, 그 사람의 몸은 거의 다 바뀌게 되었다. 게다가 귀신들은 그 사람의 버려진 몸뚱이를 다 먹어버린 다음 입을 닦고 가 버렸다. 

 

홀로 남겨진 그 사람은 ‘부모님이 낳아 주신 몸을 눈앞에서 귀신들이 다 먹어버렸다. 지금 나의 이 몸은 모두 다른 사람의 육체이다. 그렇다면 나의 몸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라고 생각하였고, 무척이나 당황하여 만나는 사람마다 ‘내 몸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러다가 어떤 나라에서 스님들을 만나 그간 겪었던 일들을 자세히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이 얘기를 접한 스님들은 모두 ‘이 사람은 자기 몸에 나라는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으니 쉽게 교화할 수 있겠다.’라고 하고는, 그 사람을 출가시켰다. 

 

여기서 불도를 추구하는 스님들의 반응이 매우 흥미롭다. ‘몸이 나’라고 생각하다가 그 몸이 통째로 바뀌는 통에 자신의 정체성에 심각한 혼란이 온 사람에게 무아(無我)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적극적인 계기를 만들어주었으니 말이다. 이후 <대지도론>에서는 이 사람이 번뇌를 다 끊고 아라한과를 얻었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고 있는데, 이는 매우 이상적인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생명연장과 불교 

 

<대지도론>의 저자로 알려진 용수 보살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1900년 전에 태어난 인물이다. 용수 보살의 시대에는 귀신을 등장시켜 사람의 몸뚱이를 통째 이식하는 상상력을 발휘한 것일 테지만, 오늘날 사회에서는 실제로 타인의 장기나 신체의 일부분을 이식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신체나 장기의 일부분을 이식할 경우 그 사람의 정체성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일은 크게 없겠지만, 몸뚱이 전체를 이식하는 경우라면 그 사람의 정체성에 중대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요즘에는 생명 연장을 위해 신체의 일부 혹은 전신을 교체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상상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복제 기술과 줄기 세포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는 추세로 미루어본다면, 위의 <대지도론>에서 나온 사례가 앞으로 발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다만 이런 추세들은 단지 건강하게 늙어가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수명을 무한히 늘리려는 인간의 뿌리 깊은 욕망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앞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통찰에서 본다면, 육신의 교체를 통해 수명을 무한히 연장하려는 시도 역시 ‘자아’에 대한 그릇된 관점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육신이 바로 ‘나’라고 생각하는 경우에 해당되는데, 우리가 늘 지송하는 <반야심경>을 보면, 바로 이 점에 대해 ‘오온이 공함을 비추어 보고[照見五蘊皆空]’라거나, ‘물질이 공과 다르지 않다[色不異空]’고 하여, ‘몸이 바로 나’라는 집착을 자꾸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앞으로 과학이 더욱 더 발전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자아의 문제에 대한 불교적 진단은 여전히 주목할 만한 통찰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통찰 가운데 한 가지를 <명추회요> 518쪽의 내용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당신의 몸에는 본래 ‘나’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단지 4대가 화합하여 모인 것을 본래의 몸이라고 계탁했을 뿐입니다. 당신이 본래 가지고 있던 몸은 지금의 것과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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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불교전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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