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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 그 숲을 걷다]
밤낮으로 무량한 중생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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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  2017 년 4 월 [통권 제48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04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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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읽고 있는 『명추회요』는 중국 오대(五代) 시기의 영명연수(永明延壽, 904~975) 선사가 편찬했던 『종경록』100권을 10분의 1 분량으로 압축한 책이다. 책의 분량이 워낙 많아서 이를 선사 혼자서 다 썼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선림고경총서> 가운데 혜홍 스님의 『임간록』을 보면, 연수 선사께서는 항주에 있던 영명사(永明寺)에 천태종, 화엄종, 유식종의 3종의 스님들을 머물게 하면서 서로 논변하게 하였고, 그 가운데 해결이 안 되는 문제가 있으면 선종의 심종(心宗)을 기준으로 그 난제들을 풀어주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위의 구절을 근거로 『종경록』이 여러 사람의 공동 작품이라는 견해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연수 선사가 비록 글의 소재들을 여러 사람에게 제공받았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하나로 엮은 작업은 본인이 직접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왜 그런가 하면, 『종경록』은 여러 경론의 문구를 단지 그대로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늘 ‘마음’이라는 원리를 통해 재해석하는 전략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임간록』의 얘기처럼, 연수 선사는 불교의 다양한 주제들을 모아 선종의 종지인 ‘마음’의 관점에서 다시 한 번 풀어서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 연수 선사의 진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하여 연수 선사가 늘 활용하였던 불교적 방법론은 바로 관심석(觀心釋)이다. 이는 중국 천태종의 창시자인 천태지의(天台智顗, 538~597) 대사에 의해 제시된 것으로, 이후 선종에서도 적극수용한 방법이다.

 

천태지의의 관심석(觀心釋) 

 

연수 선사가 태어나서 활동했던 곳은 현재의 중국 절강성 항주(杭州) 일대이다. 이곳은 중국 천태종의 천태지의 대사가 활동했던 천태산과도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다. 연수 선사는 입적하기 1년 전에 천태산에 들어가 보살계를 내리는 법회를 주관할 정도로 이곳을 중시했다. 필자 역시 중국에서 공부하던 시기에 항주에 내려가서 연수 선사의 자취를 두루 돌아본 뒤, 천태산으로 가서 천태종의 본찰인 국청사(國淸寺)에서 이틀간 머물면서 연수 선사가 90일간 좌선했던 천주봉(天柱峰)에 올라가보기도 했다. 

 

그때는 1월이라 한겨울이었지만, 천주봉 아래 몇 채의 작은 토굴이 있던 곳은 유난히 볕이 잘 들어서 아주 포근한 느낌이었다. 토굴에 계시던 노스님에게 서툰 중국어로 그곳이 연수 선사가 좌선하던 곳인지를 물었더니, 그렇다고 답해주셨다. 본인은 천태종 스님인데, 중국의 문화혁명 때 피신해 있다가 다시 그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하셨다. 연수 선사를 알고 간 덕에 노스님 옆에서 사시 예불을 같이 올리고 공양도 같이 하고 왔던 기억이 새삼 새롭다. 

 

천태 대사는 정치적으로 매우 격동기에 활동한 분이었다. 자신의 고국인 진(陳)나라가 수나라에 의해 멸망되는 상황 속에서도 이 명망 높은 고승의 주위에는 늘 대중들이 북적였다. 그래서 중국을 막 통일시켰던 수나라의 입장에서는 천태 대사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많이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천태 대사는 생애의 마지막을 천태산의 경계인 석성(石城)에서 마쳤는데, 이곳에서 대사는 제자들에게 『관심론(觀心論)』이라는 짧은 책을 구술한다. 

 

대사가 보기에 자신들의 제자들은 매우 성실하게 공부하는 이들이었지만, 여전히 불법의 핵심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남의 돈을 아무리 많이 세어도 결국에는 한 푼도 자기의 것이 되지 않는 것처럼, 부처님 경전을 아무리 많이 읽더라도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 바로 천태 대사의 고민이었다. 이에 대사는 경전의 내용을 자기화할 수 있는 아주 요긴한 방법을 고안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관심석(觀心釋)이다. 이는 불전의 내용을 자신의 마음에서 대입시켜 관찰하고 풀어보는 방법이다. 

 

가령 불교에서는 중생의 끊임없는 생사를 육도윤회(六道輪廻)로 설명한다. 중생은 자신이 지은 업(業)에 따라 선한 갈래로 가거나 나쁜 갈래로 가는데, 그 갈래는 천(天)·인(人)·수라(修羅)·축생(畜生)·아귀(餓鬼)·지옥(地獄)의 여섯 가지이다. 그런데 중생이 죽은 다음에 위의 여섯 가지 길 중 어느 하나로 간다고 할 경우,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아주 멀게 느껴질 수 있다. 이에 천태 대사는 이 육도윤회를 죽은 다음의 일로 생각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품고 있는 ‘마음의 상태’로 이해해보라고 제안하였다. 다시 말해 늘 흔들리고 있는 우리의 마음이 이 여섯 가지 갈래 가운데 과연 어느 곳에 처해 있는지를 관찰해보라는 말씀이다. 

 

가령 배가 너무 고파서 탐욕스럽게 오직 먹을 것만 찾는 상태라면 이것은 다름 아닌 ‘축생’의 마음 상태이고,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여 그것을 폭발시킨다면 이것은 바로 ‘수라’의 마음 상태이며, 괴로움이 치성해서 잠시도 편하지 않다면 그것은 바로 ‘지옥’의 마음 상태라는 것이다. 반대로 마음이 지극히 가볍고 즐겁다면 그것은 ‘천’의 상태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 훗날 육도윤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하루 중에서도 끊임없이 육도윤회하고 있다고 보라는 것이 천태 대사의 가르침이다. 

 

불교가 지향하는 ‘괴로움을 떠나 즐거움을 얻는다’는 이고 득락(離苦得樂)의 말씀처럼, 하루 속에서도 줄기차게 윤회하고 있음을 자각한다면, 바로 그 가운데서 윤회를 끊는 행위를 일으키는 것이 마땅하다. 이에 천태 대사는 윤회를 끊은 네 가지 마음 상태를 또 제시한다. 이는 성문(聲聞)·연각(緣覺)·보살(菩薩)·부처님(佛)을 말한다. 이들 네 존재는 모두 윤회를 끊은 성자(聖者)들인데, 우리가 공부하기에 따라 이런 마음 상태 역시 현실에서 체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회하는 세계가 바로 나의 오늘 하루 속에 있고, 또 그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바로 눈앞에 있다고 본다면, 그 많은 불교의 가르침들이 보다 분명하게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중생 구제는 망념 일으키지 않는 것 

 

『명추회요』 89권-10판(647쪽)의 내용은 위에서 말한 천태의 관심석에 입각해서 제기된 내용들로서, 그 내용이 매우 비근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중생이란 온갖 잡된 것들이 심식(心識)에 섞여서 순간마다 생기고 소멸하므로 중생이라 한다. 『경』에서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너희들은 밤낮으로 항상 무량한 중생을 만들어 낸다. 만약 지혜로 관조하여 상속하는 망념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하였다. 또 망념이 그대로 공(空)이어서 생기는 곳이 없음을 깨닫는 것이 바로 무량한 중생을 남김없이 제도하여도 열반을 얻은 중생은 하나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천태교(天台敎)에서 “무명을 아버지로 하고 탐애를 어머니로 하며, 6근(六根)을 남자로 하고 6진(六塵)을 여자로 하여 식(識)이 중매해 결혼하여 무량 번뇌를 출생시켜서 자손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경(經)』에서 “망념이 있으면 생사이고 망념이 없으면 니원(尼洹, 열반)이다.”라고 하였다.

 

인용문의 말씀처럼, 중생이란 늘 마음에 잡된 것들이 생겼다 소멸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중생을 구제한다는 것은 이런 잡된 마음들을 잘 관찰하여 망념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금강경』에서 “제도된 중생이 한 사람도 없다.”라고 한 말씀도 바로 우리 속에 생멸하는 망념의 정체가 그대로 공(空)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내용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마음의 상태를 대상으로 놓고 본다면, 중생 구제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밤낮으로 만들어지는 그 한량없는 마음의 정체를 어떻게 잘 관찰하고 다스릴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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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불교전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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