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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 그 숲을 걷다]
우두종(牛頭宗) 불굴(佛窟) 화상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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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  2018 년 1 월 [통권 제57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453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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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의 98권-9판에는 “몸과 마음의 실상이 부처가 됨을 본다”는 제목 아래 우두종(牛頭宗) 불굴유칙(佛窟惟則, 751~830) 선사의 말씀이 나온다. 우두종은 우두법융(牛頭法融, 594~657) 선사로부터 나온 선종의 한 흐름인데, 우리나라에는 따로 전승되지 않았으므로 그간 잘 다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선법(禪法)은 상당히 특별한 측면이 있으므로, 이를 포함한 우두종 전반의 면모를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우두종의 시조인 법융 선사는 19세에 이미 유가의 경전과 역사서 등에 모두 통할 만큼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공(空)의 도리를 설하는 <반야경>을 읽고서 곧장 불법에 귀의하게 되었다. 그는 모산(茅山)의 경(炅) 법사(法師)에 의지하여 출가한 이후 20년간 게으름 없이 정진하여 수행의 묘문(妙門)에 들어갔다. 이후 643년 우두산(牛頭山) 유서사(幽棲寺)의 북암(北巖) 아래 따로 선실(禪室)을 짓고 선관을 닦았는데, 사방에서 100여 명 이상의 수행자들이 모여들었다.

 


 

 

<전등록>에 따르면, 멀리 쌍봉산에 주석하던 선종의 4조 도신(道信) 선사께서 우두산에 기인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법융 선사를 찾아가 선종의 돈법(頓法)을 전수했다고 한다. 그래서 법융 선사의 선법은 도신 선사의 제자였던 5조 홍인의 동산종(東山宗)과 대비되어 우두종(牛頭宗)으로 칭해지게 되었다. 이후 우두종에 속하는 선사들의 활동이 매우 활발해져서 마조 스님의 시대에는 당시 선종의 주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명추회요>에 나온 불굴유칙 선사 역시 우두종의 제6조인 우두혜충(牛頭慧忠)의 제자로서, 당시에 쟁쟁한 명성을 드날렸다. 다만 이들 우두종의 흐름은 송(宋) 이후로는 많이 쇠약해졌다.

 

우두종의 선사상에 대해서는 종밀이 쓴 <중화전심지선문사자승습도(中華傳心地禪門師資承襲圖)>에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우두종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모든 법이 다 꿈과 같아서 본래 일삼을 것이 없으며, 마음과 경계가 본래 고요하여 지금 비로소 공해진 것이 아니다. 미혹한 이들은 이를 실재한다고 여겨서 귀함과 천함, 화려함과 보잘것없음 등의 일이 있다고 본다. … 설령 열반보다 더한 법이 있다고 해도 또한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을 따름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두종의 선법은 철저히 공(空)에 기반해 있다. 5조 홍인 선사의 문하에서 “마음을 관하라”는 관심(觀心)이나 “마음을 지켜라”는 수심(守心)을 강조하는 것에 비해, 우두종에서는 “본다는 마음마저도 끊어라”는 절관(絶觀)을 내세운다. 이들은 주변 사물의 공한 상태뿐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주체의 공함 역시도 철저히 체득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우두종의 선법을 담은 책으로 <절관론(絶觀論)>이 전해지는데, <명추회요>의 근간이 되는 <종경록>에 이 <절관론>이 많이 인용되어 있어서 오늘날 우두종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한편 성철 선사께서 펴내신 책 가운데 <무심론(無心論)>에 대해서도 보리달마가 아닌 우두법융이 지은 것이라는 견해가 제기되기도 한다.

 

우두종의 관심석(觀心釋)

 

<종경록>과 관련된 박사학위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필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내용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우두종의 관심석(觀心釋)이다. <종경록>을 쓴 영명연수(永明延壽) 선사의 또 다른 작품인 <주심부(註心賦)>를 보면 다음의 내용이 나온다.

우두종의 제1조인 법융 대사와 천태종의 지자 대사께서 불경을 해석하실 때는 모두 관심석(觀心釋)으로 하셨다. 이와 같이 해야 조불(祖佛)의 본래 뜻에 깊이 계합하게 된다.

 

관심석이란, 불경에 나오는 다양한 문구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 대입해서 해석하는 방법이다. 가령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은 내 마음과 무관한 존재가 아니라, 바로 ‘내 마음 속에 있던 신묘한 지혜가 극대화된 상태’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행원(行願)을 상징하는 보현보살 역시 ‘내 마음 속의 행원이 다 발휘되어 지극하게 된 상태’인 셈이다. 이렇게 보면 부처님은 ‘내 마음의 지혜와 자비, 행원이 모두 최대로 발휘된 상태’라고 이해될 수 있다. 이 방법은 한편으로는 불경의 진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게 만들 위험성을 내포하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처님이 하신 말씀을 모두 ‘자기 마음을 개발시키는 도구’로 사용하게 만드는 장점을 지니기도 한다.

 

이런 관심석의 방법은 천태종의 지자 대사가 제일 먼저 활용하였고, 이후 우두종의 법융 대사 역시 적극 발휘했는데, 그런 풍모가 대략 2~300년이 지난 뒤 활동했던 연수 선사에게도 깊은 감명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명추회요>의 98권에 우두종 선사의 말씀이 등장하는 것에는 우두종에서 활용했던 관심석의 영향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연수 선사가 머물렀던 항주 일대가 바로 우두종 선사들이 주로 활동했던 지역이었던 만큼, 이들 종파의 가르침이 항주 일대에 널리 퍼져 있었을 가능성 역시 생각해볼 수 있다.

 

몸과 마음의 실상이 부처가 됨을 본다

 

<명추회요> 748쪽을 보면 이번에 살펴볼 우두종 불굴 선사의 말씀이 나온다. 이는 선사의 말씀과 그에 대한 문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하나를 살펴보자.

 

【물음】 <경(經)>에서 “중생은 부처님과 평등하여 속박도 해탈도 없다.”고 했는데, 어째서 6도중생은 생사에 깊이 빠져 해탈을 얻지 못합니까?

 

【답함】 중생은 색(色)과 마음이 청정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망상으로 전도되었기 때문에 해탈을 얻지 못한다. 만약 인(人)과 법(法)이 항상 공적한 줄 알면 그 속에는 진실로 속박도 해탈도 없다.

 

인용문에서 언급한 <경>의 출처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이는 <화엄경>에서 설한 “마음과 부처, 그리고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는 내용과 상통한다. 중국의 많은 불교도들이 바로 이 <화엄경>의 경문을 보면서 부처님과 같이 깨닫는 길의 통로를 ‘마음’으로 파악하였다. 어쨌든 인용문에 나오는 경문에 따르면, 중생 역시 부처님처럼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다고 했는데, 어째서 보통 사람들은 윤회의 속박에 빠져 해탈을 얻지 못하는가 하는 점을 충분히 궁금하게 여길 수 있다.

 

이에 대해 불굴 선사는, 중생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이 본래 청정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해탈을 얻지 못한다고 답하였다. 그런데 “자신의 몸과 마음이 본래 청정하다”는 말씀은 초기불교의 맥락에서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초기의 <아함경> 등을 보면 몸과 마음이 무상(無常)하고 무아(無我)이므로, 이를 버리고 떠날 것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굴 선사의 답변은 대승불교에서 주창한 ‘공(空)’의 관점에 입각해서 이해해야 제대로 파악된다.

 

대승의 공은 다양한 인(因)과 연(緣)이 조합되어 하나의 사태가 발생한다는 뜻의 연기(緣起)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즉 나의 몸과 마음 역시 다양한 인과 연의 조합으로 성립된 것이므로, 이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살펴보면, 그 속에는 우주의 이법(理法)인 연기의 원리가 관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나의 몸과 마음을 버리고 따로 연기의 이치와 공의 도리를 찾을 것이 아니라 바로 그곳에서 우주의 진실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러한 공의 도리는 누군가 억지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항상 본래 그러한 것이다. 따라서 이런 자각 속에서는 누구도 우리를 속박할 수 없게 되고, 속박이 없으므로 그로부터 풀려나는 것[解脫]도 없다는 것이 바로 불굴 선사께서 답변하신 요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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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불교전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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