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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 그 숲을 걷다]
고성화상가(高城和尙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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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  2017 년 12 월 [통권 제56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30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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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에는 『명추회요』 747쪽에 나오는 고성화상가(高城和尙歌)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종경록』 98권-7판에서 유래한 것이므로, 이 가송(歌頌)이 「인증장」 가운데 나오는 현성(賢聖)의 말씀 60가지 중 하나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고성화상은 선종사에서 거의 알려진 적이 없으므로, 이 스님이 어떤 분인지를 먼저 찾아보자. 이에 대한 단서는 그리 많지 않다. 우선 『종경록』 안에서는 ‘고성화상가’가 18권, 44권, 그리고 98권의 세 부분에서 인용되지만, 스님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그런데 『종경록』과 비슷한 시기에 편찬된 선종의 전등서인 『조당집(祖堂集)』(952년)을 보면 스님에 대한 아주 간략한 기록이 나온다.

 


 

 

고성화상은 마조의 법을 이었다. 선사의 법명은 법장(法藏)이니, 행록(行錄)을 보지 못해 그의 생애를 알 수 없으나, 『가행(歌行)』 1수가 있다. … (『가행』 490자는 필자가 임의생략) … 선사께서는 또 『대승경음의(大乘經音義)』를 편집하였는데, 해장(海藏) 가운데 유통되고 있다.(『조당집』 14권)

『조당집』에 나온 이 짧은 기록이 고성화상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내용이 아닐까 싶다.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고성화상이 마조대사(709-788)의 법을 이었다는 점이다. 마조대사는 육조혜능-남악회양으로 이어지는 선종의 흐름 가운데 가장 우뚝 서 있는 분이다. 마조대사와 그의 후예들이 없었다면, 육조혜능의 가르침이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지 모를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강하다. 마조의 문하들은 육조대사의 또 다른 후예인 하택신회와 그를 계승한 규봉종밀(780-841)과 무척 치열한 쟁론을 펼쳤지만, 결과적으로는 마조 문하가 중국 선종의 주류가 됨으로써, 하택과 규봉은 선종의 방계로 취급받게 되었다.

 

『종경록』을 보면 마조와 종밀에 대한 인용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므로, 연수선사가 이 두 분에 대해 어떤 차별적 입장을 갖고 있었는지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연수선사는 선의 내용적 측면에 있어서는 마조의 견해를 계승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돈점론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데, 연수선사는 마조를 비판했던 종밀의 견해를 다시 비판한 뒤 마조의 수증론을 돈오돈수론으로 복원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연수선사의 글에서 마조의 후예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다.

 

위의 『조당집』 내용을 보면 고성화상은 생애가 알려진 분은 아니었고, 다만 선사의 법명이 법장이었고, 그가 지은 490자의 노래 1수가 전해지고 있으며, 선사가 쓴 『대승경음의』라는 책이 유통되고 있다는 점 정도만 알 수 있다. 인용문에 나오는 해장(海藏)은 원래 ‘바다 속 용궁에 있는 곳간’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책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생애보다도 그 노래로 더 유명했던 고성화상의 가르침이 어떤 것인지 한번 살펴보자.

 

마음을 알고 경계를 깨달아라

 

『명추회요』 상(141-142쪽)을 보면, 『종경록』 18권-4판의 내용을 ‘일심(一心)만 깨달으면’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여기에서 고성화상의 노래가 제일 먼저 등장한다. 고성화상의 노래가 『종경록』 안에서 세 번 인용되는 것을 보면, 그것이 연수선사가 드러내려던 바와 상당히 일치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그 공통점은 바로 ‘마음’에 있다. 『종경록』 100권은 분량상 결코 적지 않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그것은 마치 북극성을 중심으로 많은 별들이 돌아가듯, 모두 ‘마음’을 중심에 두고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연수선사는 매우 수고롭게도 온갖 경론들에서 마음과 관련된 문구들을 두루 뽑아 『종경록』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명추회요』 141쪽의 문답 역시도 초점은 ‘마음’에 있다.

 

【물음】 중생의 업과(業果)와 종자(種子)의 현행(現行)이 오랜 겁 동안 훈습된 것은 마치 아교와 옻처럼 쉽게 떨어지지 않는데, 어째서 일심(一心)을 깨닫기만 하면 단박에 그것을 끊고 성불할 수 있는가?


【답함】 만약 마음과 경계가 실재하고 인(人)과 법(法)이 공하지 않다고 집착하면 비록 만겁(萬劫)을 수행한다 해도 끝내 도과(道果)를 증득하지 못한다. … 그러므로 『고성화상가(高城和尙歌)』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만약 경계를 깨닫고 곧 마음을 알면 만법이 모두 다 건달바성의 신기루와 같으리라.

 

이 하나의 ‘물음-답합-인증’의 구조는 『종경록』의 전형적인 논의 방식을 드러내고 있다. 우선 물음의 요지는 인간의 행위인 업(業), 그리고 인간의 행위가 남긴 흔적 혹은 힘을 뜻하는 종자(種子)는 무수한 윤회의 시간을 거쳐 형성된 것인데, 『종경록』에서는 어째서 마음만 깨달으면 단박에 그러한 것들을 끊고 성불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지를 묻는 데 있다. 이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 대답에서는 마음과 경계, 인(人)과 법(法) 등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듯 그렇게 견고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인(因)과 연(緣)을 따라 일어났다가 소멸하는 공(空)한 것임을 분명히 자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자각이 없으면, 마치 모래로 밥을 지을 경우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제대로 된 밥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도의 결과 역시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연수선사는 자신의 이러한 대답이 단지 자신만의 견해가 아니라, 이전의 훌륭한 선사들의 관점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고성화상가’를 인용하여 ‘만법이 모두 신기루와 같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신기루란, 실체가 없지만 눈앞에 분명히 존재하는 것처럼 나타나는 현상을 가리킨다. 업의 과보는 너무나 생생하지만, 그것의 본질은 신기루와 같이 공(空)하다. 그 업과 종자 등이 공(空)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속박으로부터 단박에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선사의 말씀이다.

 

지금 이대로 전부 마음뿐이다

 

위에서 짧게 나온 고성화상가는 『명추회요』의 후반부(747쪽)에 이르면 보다 길게 인용된다. 이 부분에서는 135자가 인용되므로, 『조당집』에 전해지는 전체 490자의 노래의 약 28% 분량에 해당된다. 다만 이 후반부의 인용에서는 이전처럼 질문과 대답은 나오지 않고 노래만 인용되고 있다. 이 가운데 몇 구절을 읽어보자.

 

부지런히 배우고 총림(叢林)을 가까이할지니 

병든 눈으로 허공 꽃을 오인하지 말라
설교란 본래 무상(無相)의 이치 궁구하는 것
많이 읽어보았자 원래 마음 알지 못하네
마음을 알고 경계를 깨달아라
마음을 알고 경계를 깨달으면 선하(禪河)가 고요하리라

 

우선 여기 나오는 총림(叢林)은 수행자들이 한데 모여 있는 모습을 마치 나무가 우거져 숲을 이루는 형상에 비유한 것이다. 이는 당에서 시작된 총림 제도를 언급하는 것으로 보인다. 총림 속에서 부지런히 배우되, “병든 눈으로 허공 꽃을 오인하지 말라”는 당부가 이어진다. 원래는 없던 허공 꽃에 대해 그것의 색깔을 논하고 꽃잎의 숫자를 세려고 한다면, 아마 평생 동안 해도 다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허공 꽃은 병든 눈에서만 보일 뿐 실제로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앞서 말했던 공(空)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이와 같은 공에 대한 자각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한번 펼쳐보라는 것이 고성화상가, 그리고 연수선사가 지닌 의도가 아니었을까. 다만 우리의 일상은 너무도 생생하고 긴박하므로, 이런 자각을 대입해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허공꽃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장(場)이 바로 우리의 일상이므로, 바로 이곳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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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불교전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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