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체험기]
‘인연’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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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정 / 2015 년 2 월 [통권 제2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504회 / 댓글0건본문
불교를 알게 된 것은 아득한 옛날부터였다. 내가 태어난 곳은 관광지로 꽤 알려진 전북 무주이지만, 당시만 해도 첩첩산골이었다. 어머니는 여느 어머니가 거의 다 그렇듯이 불교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부처님을 향한 정성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와 반대로 부처님을 알게 된 햇수가 30여 년이 넘은 나, 처음부터 나는 아웃사이더였다. 법회시간이 지루하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스님의 법문이 고루하다는 이유로, 사찰이 멀다는 이유 등으로 늘 나는 혼자였다.
법당이 한적한 틈을 타 바람처럼 살며시 스며들어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거나, 108배를 올리는 것이 고작이었던 나는 정말 한심한 불자였다.
1. 한심한’ 불자였던 나
왜 그랬을까? 아주 어렸을 때부터 먼발치에서 스님을 보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근원을 알 수 없는 서러움에 눈시울을 붉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면서 말이다. 그랬으면서도 정작 내가 불교에 입문한 것은 1983년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있는 한 건물의 작업실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출퇴근 하는 시간이 아까워 작업실에서 자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도 작업실 소파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꿈속에서 나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흰 옷을 입은, 말 그대로 전설 따라 삼천리에 나오는 그런 귀신을 만나게 되었다. 그 귀신은 내게 달려들어 목을 조이면서 자기와 함께 가야한다는 것이다. 나는 안타깝게 몸부림치며 그 귀신을 벗어나려 애를 썼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귀신은 더욱 더 센 힘으로 나를 압도해버렸다. 그렇게 꿈속에 기진맥진한 내가 ‘아, 이렇게 내가 죽나보구나’라고 체념을 하며 슬픔에 잠겨있을 때였다. 불현듯 내 머릿속을 스치는 한 생각!
관세음보살님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귀신은 자취를 감추는 것이 아닌가! 땀과 눈물로 뒤범벅이 된 내가 진저리를 치며 몸을 일으켰다. 작업실의 캄캄한 어둠이 너무나 무서웠다. 그렇지만 내게 생긴 한 가지 확신!
관세음보살님께서 나를 보살펴주신다는 그 놀라운 사실이었다. 그렇게 부처님은 내 마음속 깊이 자리를 잡으셨다. 그때부터 내게는 두려움이 없어졌다. 혼자 작업실에서 밤새워 작업을 하는 내게 사람들은 무섭지 않느냐고 묻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당당하게 대답을 하였다.
“무섭긴 뭐가 무서워요, 제겐 든든한 관세음보살님 ‘빽’이 있는데요.”
축복받은 일이 분명했다. 불교에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인 초심자에게 말이다. 그런데 나는 내가 선택받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만족하며 그렇게 오만하게 살아갔다. 어쩌다 들른 사찰에 갈 때면 뜻하지 않은 일로 스님들과 각별한 인연으로 이어져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게 되니 자만심은 나날이 더해갔다.
그러나 그에 비례라도 하듯 내가 하는 일은 영 신통치 않았다. 그러다보니 건강 또한 악화되었다. 그때 외삼촌께서 말씀하셨다.
내게 조용한 절에 가서 100일 기도를 정성껏 하면 내가 하는 일을 모두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믿기 힘든 말이었다. 아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말이었다.
“흥, 외삼촌도 정말 웃기셔. 만약 기도를 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어?, 하루나 이틀도 아까울 텐데 자그마치 100일이라니, 미치지 않고서야 그 어리석은 짓을 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러나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나의 건강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졌다. 얼굴은 까맣고 손가락 하나 들 힘조차 없어졌다. 그러다보니 ‘이러다 정말 죽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나는 기도의 힘에 의존해보기로 하였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내 뜻과는 너무나 딴판인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낙산사 홍련암에서 21일 기도를 하게 되었다. 불교의 입문을 우리나라 제일의 관음도량에서 시작하였으니 그것 또한 내게 있어 큰 복이리라.
하루 4번 기도 시간 관음정근을 하고 수 없는 절을 하면서 나는 참으로 많은 반성의 눈물을 흘렸다. 내가 살아온 세월을 되돌아 보니 왜 그렇게 사람들에게 모질게 했는지, 나쁜 짓은 왜 그렇게도 많이 했는지,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읽으면서 지옥에 있는 중생이라도 나를 부르면 기꺼이 달려가겠다는 말씀에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21일 기도 회향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내게 생긴 변화는 아무리 피곤하여도 새벽 3시가 되면 잠에서 깨어난다는 것이다.
2.『백일법문』을 만나면서 바뀐 삶
내게는 특별히 정해진 사찰이 없다. 어디엔가 얽매이기 싫어하는 성격 탓도 있지만 수수방관자로 살아가는 게 훨씬 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신촌에 있는 만덕사에는 어머님을 비롯한 우리 조상님들의 영가가 모두 모셔져 있어 각별하고, 종묘 옆에 있는 대각사에는 내가 존경하는 용성 스님이 계셔서 좋고, 성북동 길상사는 그윽한 정취가 있어 가끔씩 들르며, 보도각 백불이 계신 세검정 옥천암은 언제라도 시간에 구애됨 없이 갈 수 있는 곳이라 개인적으로는 가장 선호하면서 자주 가는 사찰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옛 말이 틀린 것이 없듯이, 아웃사이더 불자로 살다보니 세상의 모든 일에서도 나는 아웃사이더였다.
그 근원을 알게 되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몇년 전 조계사에서 개최된 재가불자를 위한 『백일법문』 강좌를 접하면서 성철 큰스님에 대해 여러 가지로 알게 되었다. 성철 스님이 살아계실 때, 나는 불경스럽게도 친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삼천배를 해야만 만나준다는 그 말도 솔직히 우스웠고, 만나서 뭘 얻을 수 있단 말인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강좌를 들으면서 처음으로 ‘성철 스님이 살아계셨을 때 만나보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뼈에 사무치도록 절실하지는 않았다. 그때 능엄주와 아비라기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능엄주를 구해 읽어보았으나, 생경한 발음이 어려웠고 가슴에 와 닿지도 않았다.
다시 세월이 흘렀다.
2007년 12월 20일 인터넷 카페를 통해 조계사에서 재가불자를 위한 신행 강좌에 한 보살(?)님의 능엄주 독송공덕과 기도 가피 내용을 새벽 4시까지 본 뒤 능엄주 독송을 하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 하루에 능엄주 독송 108독을 하기로 말이다. 며칠은 그럭저럭 열심히 하였다. 그러나 공주에서 언니가 올라와 집에 머무는 바람에 기도는 내 뜻대로 108독은커녕 30독도 힘들었다. 그렇게 하여 지난 2월 말일까지 3362독의 능엄주를 독송하였다.
집이 비좁은 관계로 언니가 잠을 자는 새벽 시간에 주로 능엄주 독송을 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능엄주 독송을 하면 갑자기 아득하게 막막해지면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솟구쳤다. 내 전생과 현세의 부모형제들 그리고 나와 인연을 맺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 하나 떠올랐고, 그들을 그리워한 것도 아닌데 저절로 서러워 눈물이 나는 것이다. 행여 언니가 잠에서 깰까봐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마음으로는 능엄주를 독송하면서 뺨으로 흐르는 눈물이 더 서러워 다시 흘린 눈물!
능엄주를 독송하다 보니 아비라 카페와 능엄선 카페를 알게 되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과를 정해 능엄주 독송과 절 기도를 병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고무되었다. 매달 한 번씩 성철 큰스님께서 생전에 수행하시던 백련암에서 삼천배 기도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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