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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과 함께 하는 인생이야기]
남편의 주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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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자  /  2019 년 11 월 [통권 제79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59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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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자 / 불교전문 작가

 

지난달 마지막 토요일에는 친구 딸 결혼식에 다녀왔다. 그녀는 나로 인해 불교에 입문해서 열심히 정진하고 있는 친구다. 오십이 넘어 불자가 된 그녀는 청출어람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입문을 이끈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효도하라

 

기초강좌도 듣고 절도 열심히 하더니, 최근에는 2박 3일 일정의 참선수행에 다녀왔다. 딸들의 결혼을 앞두고 하루 1080배씩 100일 기도를 했을 뿐만 아니라, 딸들과 예비사위를 데리고 절에 가서 법사님 지도로 결혼을 위한 100일 기도를 하게 했다. 자연스레 종교가 없던 사위들도 불자가 되었고, 사돈 될 분들에게는 불교 책을 선물하는 등 포교에도 앞장서고 있다.

 

덕분에 나도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우정을 나누고 있는 그녀와 진정한 도반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때때로 절에 함께 가고 정진에도 같이 가며, 신행 정보를 나누기도 한다. 친구는 불교 공부를 하면서 힘을 얻더니, 육십이 넘은 나이에 노인상담심리학 박사를 받는 기염을 토했다. 

 

 

세상에 나와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일찍 종교에 입문하지 못한 것이며 가장 잘한 일이 늦게나마 종교를 가진 것이라며, 불교로 이끌어준 나를 종종 사부님이라고 부르며 고마워하고 있다. 친구를 보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한 사람을 얼마나 변화하게 만드는지, 또 힘을 주는지 알 수 있었다. 친구는 불교에 입문하기 전 남편을 하늘로 보냈는데, 그 슬픔을 정진으로 이겨내기도 했다.

 


이번 결혼하는 막내딸의 결혼 100일 기도가 끝나는 날, 딸과 예비사위를 데리고 절에 가서 회향을 했는데, 밤새 3천배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정말 잘했다! 나는 이제 한 번에 하는 3천배는 생각도 못하겠는데, 정말 대단해. 밤새 혼자 3천배를 하다니, 축하한다, 축하해.”

 

결혼하는 딸에게 그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을까 싶었다. 그런 그녀가 딸 결혼을 앞두고 남편에게 주례를 부탁해왔다. 주례를 부탁할 사람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려서부터 딸애를 보아온 데다가 함께 정진하고 있는 남편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 생각이 든 순간이 가슴이 따뜻해지더라.”
남편도 선뜻 응해 주례를 서게 됐다.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남편이 메일을 보내왔다. 주례사를 써봤으니 한번 봐달라는 것이다. 주례사는 짧고 간단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서로에게 져주면서 살라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효는 사람 사는 도리의 근본인데, 이러한 근본을 망각해서는 가정의 평화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이 골자였다. 길지 않은 주례사에서 반 정도는 효도에 대한 얘기를 한 것 같다.

 

"웬 효도 이야기를 그리 오래했어요?”
결혼식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이 내가 물었더니 그의 대답이 이랬다.
“효도는 고사하고 요즘 부모님을 너무 무시하고 사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
잠깐, 결혼 후의 우리 얘기다.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은 효자 중의 효자였다. 시댁이나 우리 집에서 저녁을 함께 먹는 식탁에서의 부자간의 대화 시간은 기본이 두 시간이었다. 흔치 않은 풍경이어서 처음엔 그 모습이 좋아보였다. 그런데 가만 보니 정치 이야기에서 시작돼 친인척 간의 안부, 옛날 어린 시절 이야기 등 대화의 내용이 늘 비슷했다. 몇 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기에 한번은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똑같은 얘기 지루하지 않아요?”
“결혼을 해보니까, 어머니를 먼저 보내고 혼자되신 아버지가 그렇게 외로워 보일 수가 없어. 그런 아버지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밥 먹는 시간만이라도 아버지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거야.”

 

그 후 시누이들과 살던 아버님을 우리가 모시고 살 때도 식탁에서의 남편의 효도는 변함없었다. 몇 년 후, 아버님이 뇌경색으로 쓰러지셔서 한 해 정도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누워계시다가 돌아가셨는데, 그때도 남편의 효도는 지극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반 년 정도 말씀도 못하고 누워계실 때, 매일 아버지의 곁에서 잤던 남편은 아침이면 일어나자마자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곤 했다.

 

“아버지, 오늘은 날씨가 아주 좋습니다. 기분은 좀 어떠세요?”
이렇게 시작된 아침 인사는 족히 몇 분은 이어졌을 것이다. 처음엔 두런두런하는 소리에 누구와 이야기를 하나 문을 열어보았을 정도로 평소 때와 똑같이 다정하게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친정어머님은 당신이 아들 셋을 두었어도 저런 효자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셨을 만큼 지극한 효성을 보였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도 한참 동안 남편은 효도를 다하지 못했다며 괴로워했다. 아마 자신의 그러한 쓰라린 경험 때문에 결혼식 날 효도에 대한 주례사가 그토록 길지 않았나 싶다. 더구나 내 친구가 10여 년 전 남편을 잃고 아이들을 결혼시켜 내보내고 홀로 남는 상황이 자신의 아버지와 같았기 때문에 더 강조하지 않았나 싶다.

 

서로에게 져주며 살라

 

효도하라는 것 다음으로 신랑신부에게 했던 말은 서로에게 져주라는 것이었다. 결혼 초,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며 나에게 많은 것을 져주었던 남편이다. 술에 취해 종종 친구들에게 말하기를, 남자가 오죽 못났으면 함께 사는 아내에게 이기려고 하느냐며, 지는 게 이기는 거라고 소리치곤 했었다. 가끔 섰던 지인들의 주례에서도 가정의 평화는 상대방에게 져주는 것에 있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그런데 나이 들어 요즘은 나에게 지지 않으려는 듯 잔소리가 많아졌다. 무슨 일인가 싶다. 친구들은 내 탓이라고 한다. 그동안 나에게 얼마나 당하고 살았으면 그렇겠냐고 나를 나무란다)


남편의 그날 주례사 중에서 나에게 깊이 다가온 것은 마치 책의 부록처럼 한 마디 덧붙인 ‘한 달에 한 번 부부가 함께 책 한 권 읽기’와 ‘매일 108배하기’를 권한 것이다.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면서 살 줄 알아야 성숙한 삶을 살 수 있다면서 그 방법으로 책읽기와 108배를 권한 것이다. 책을 함께 읽고 서로 토론을 하면서 인생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읽은 책은 남겨두었다가 자식에게 정신적 유산으로 물려주라고 부탁했다.

 

108배를 하면서 내면의 평화와 건강을 챙기기를 바란다고 말하자 옆에 앉아 있던 천주고 신자인 내 친구가 ‘어머나 108배 전도사가 되셨네’ 하면서 신랑신부도 108배를 하느냐고 내게 물었다. “결혼하기 전 백일 동안 기도를 하면서 간간히 108배를 했다네.”
늙어가며 잔소리가 부쩍 많아졌지만 정신적 유산으로 물려주라며 책읽기와 108배를 권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 주례사가 내 자식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기 때문이다.

 

친절하라

 

그날은 오후에 남동생의 작은 딸 결혼식도 있었다. 여의도에서 평택까지 부랴부랴 갔더니 결혼식이 시작되기 5분 전이었다. 동생네 결혼식엔 주례가 따로 없고 혼주가 나와서 한 마디씩 하는 것으로 주례사를 대신했다. 남동생은 신랑신부를 향해 간단히 말했다.

 

“아빠가 존경하는 한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절은 친절이라고 하시더라. 너희들도 서로에게 친절하기 바란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미소 지었다. 남편의 책읽기의 정신적 유산 얘기도, 서로에게 친절하라는 얘기도 법정스님의 말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법정스님께서 일생에 딱 한번 주례를 서셨는데, 주례사에서 저 말씀을 하셨다고 알고 있다. 남편과 동생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환경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인생의 새 출발을 할 때 저 두 가지가 소중한 것만은 틀림없다 싶다.

 

법정스님의 주례사에 비추어 30년이 넘는 결혼생활을 돌아본다. 책읽기는 그런대로 실천한 것 같다. 남편도 나도 책은 원 없이 읽었고, 애들에게 물려줄 것은 집에 있는 책뿐이니 말이다. 무엇보다 불교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고 때로 생겼던 위기감도 그것으로 극복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친절에선 많이 망설여진다. 다정다감한 남편에 견주어 무뚝뚝한 나 때문이었을까, 남편은 예전에 비해 잔소리도 많아졌고, 잘 져주지도 않는다. 친구의 말처럼 내가 잘못한 게 아닐까 싶다. 더욱이 애들에게 ‘엄마, 아빠한테 친절하게!’ 하는 소릴 종종 듣고 있으니까, 또 애들이 이 부분은 나를 닮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드니까 친절에 대해서 자신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뭐니 뭐니 해도 기막힌 주례사는 법륜스님의 ‘상대방에게 덕을 입으려고 하지 말고 내가 상대방에게 덕을 베풀고 살아야 행복한 결혼이 될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인 것 같다. 돌아보니 내가 친절에 대해 자신에 없는 것도 저 진리에 가까운 말씀을 어기고 살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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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자

불교 전문 작가.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중국 문학을 전공했고, 동국대학교 역경위원을 역임했다. 108배를 통해 내면이 정화되고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하면서 108배 예찬론자가 되었다. ‘불교입문에서 성불까지’를 지향하는 인터넷 도량 금강카페(cafe.daum.net/vajra) 운영자로 활동하며 도반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1박2일 정진을 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인홍 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길 찾아 길 떠나다』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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