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과 함께 하는 인생이야기]
『내 인생을 바꾼 108배』를 출간하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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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자 / 2019 년 3 월 [통권 제71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063회 / 댓글0건본문
박원자 | 불교 전문 작가
아마 서른 살 전후였을 것 같다. 나는 그때 무슨 일인지 해인사에 가 있다가 법문을 하고 나오시는 성철 큰스님을 먼발치에서 뵈었다. 스님은 상좌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걷고 계셨다. 어머, 키가 크시구나, 도인도 연세가 드시면 남의 도움을 받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게 스님에 대한 소박한 나의 첫 느낌이었고,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이었다. 그리고 입적하시고 나서 그해 월간 『해인』 표지에 나온 큰스님의 얼굴 사진을 보고 네 살 된 큰딸애가 ‘엄마, 부처님이다!’ 하는 외침을 듣고, ‘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눈에 스님이 부처님으로 보이는 구나’ 생각했던 게 큰스님을 마음으로 다시 만난 기억이다.
성철 큰스님을 만나다
세월이 무심히 흘렀다. 정확히 2005년 봄에 큰스님을 다시 만났다. 그때 나는 초대 비구니 총재 인홍 스님이 주석하며 후학들을 지도했던 울산 석남사에 가 있었다. 입적 10주년에 맞추어 인홍 스님의 일대기를 준비하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생전에 스님을 뵙지 못했던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스님을 시봉하며 함께 정진했던 상좌 스님들을 취재했다. 선원장 법희 스님, 유나 현묵 스님, 법용 스님, 도문 스님, 불필 스님 등은 당신들의 은사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정성을 다해 들려주셨다. 그리고 덧붙여 나온 이야기가 성철 큰스님에 대한 이야기였다. 인홍 스님이 성철 큰스님의 지도를 받아 정진하고 후학들을 이끌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큰스님을 추억하던 가운데 가장 주류를 이룬 것이 삼천배에 대한 이야기였다. 큰스님께서 스님들에게 무슨 이유로 어떻게 절을 시켰는지를 이야기해주셨는데, 그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나중에 이 이야기들을 글로 써서 책으로 내야지. 나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소중한 이야기들이었다. 나 개인적으로 마흔 살 즈음에 1080배 백일기도를 해서 절수행이 몸과 마음을 열고 치유하는 아주 적절한 수행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 자극이 되었다.
인홍 스님께서 췌장염에 걸려 생사를 헤매고 계실 때 성철 큰스님의 지시로 석남사 대중 스님들 모두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21일 절 기도를 해서 인홍 스님을 살렸던 이야기는 많은 이야기 가운데 백미였다.
한 주 정도 석남에 머물며 취재를 마치고 나와 강릉 대성사에 계신 현각 스님을 만났다. 성철 큰스님께 절을 해야 살 수 있다는 말씀을 듣고 삼천배 백일기도를 해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이야기는 절 수행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들 만큼 극적이었다. 이 이야기는 수행자들에게 인생을 물은 내 책 ‘인생을 낭비한 죄’에서도 자세히 소개가 되어 많은 분들에게 신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처음 세상에 밝혀진 이 이야기는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등 여러 곳에 인용이 되어 발심을 불러일으킨 전설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그밖에 다른 스님들이나 백련암에 다니면서 절을 한 분들을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서 글을 써야지 하다가, 재작년 「현대불교」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절 수행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수행자는 단연코 성철 큰스님이다. 나는 큰스님께서 왜 그토록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절을 시키셨는지, 절을 하면 어떤 변화가 있고 무엇이 좋은 것인지, 건강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절 수행 메시지 등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절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었다. 작가인 나의 108배와 삼천배에 대한 경험이 연재 첫 번째 글로 나가자 여기저기서 ‘글을 읽고 108배를 시작했다’는 연락이 왔다.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겠다는 즐거운 신호였다.
한 해 동안 격주로 스물다섯 번의 연재가 끝나고, 몇 달에 걸쳐 원고를 보완하고 다듬는 과정을 거쳐 드디어 지난해 말 『내 인생을 바꾼 108배』(나무를 심는 사람들, 2018)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책이 나왔다. 책을 내면서 두 가지를 발원했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이들이 절 수행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주변에 절을 권하고 싶을 때 망설임 없이 선물할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내고 나면 매번 긴장을 하며 독자들의 반응을 기다리게 된다. 과연 나의 마음이 독자들과 통했을까? 책에 등장하는 스님들과 도반, 그리고 지인들에게 책을 보내고, 며칠 후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독후감을 전해온 사람은 이 책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이교도(기독교)인이었다. 현재에 온전히 집중할 때 행복할 수 있음을 일깨어주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해온 그녀는 봉정암 삼보일배를 함께 했던 도반의 직장동료였다. 몇 해째 일 년에 한 번 삼보일배로 봉정암에 오르고 있는 사십대 중반의 두 아이 엄마. 물론 매일 절을 하지는 않는다. 그녀에게 물었다. 책을 보고 난 느낌 두 가지만, 짧아도 괜찮다는 나의 말에 그녀는 이렇게 답을 보냈다. “우선 저부터 절을 해봐야 할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이 와요. 그리고 이 책을 선물하고 싶은 지인이 생각나요.”
야호, 정말 내가 듣고 싶었던 말 아닌가. 내 뜻이 잘 전달된 것 같아 정말 기뻤다. 두 번째 독후감을 보내온 사람은 나의 오랜 도반. 저 멀리 영천에 사는 분으로 꽤 긴 독후감을 보내왔다. 20여 년 정도 해오던 절을 몇 해 전 아들의 취업을 앞두고 1080배 백일기도를 끝으로 이제 그만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는 다시 하루 108배를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여태껏 해온 나를 위한 기도는 그만하고, 이제 깊은 참회와 함께 남을 위한 절을 하겠다는 것이다. 조금 한 절을 가지고 마치 혼자 다 한 것처럼 이제 절은 그만하자고 했던 자신에게 이 책이 호된 죽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출간 후 독자들과의 소통
새벽에 일어나 평생 매일 108배 참회기도를 하시던 성철 큰스님께 시봉하던 스님이 물었다. “큰스님 무슨 큰 죄를 지으셨기에 그렇게 평생토록 참회의 절을 하십니까?” 이에 큰스님이 간단히 답하셨다. “자신이 지은 죄만 참회한다면 수행자라 할 수 있는가? 남이 지은 죄도 참회하는 사 람이 진정한 수행자다.”
‘일체 중생을 위해 매일 참회의 절을 하라’ 이르셨던 큰스님다운 말씀이었다. 우리들에게 절을 하라고만 한 것이 아니라 큰스님 자신이 평생을 솔선수범하셨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었을 것이고, 급기야 오늘날 이제 그만 절을 해야지 했던 사람에게 재발심을 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던 것이다. 영원히 살아계신 선지식이 아닐 수 없다.
세 번째 독후감을 보내온 사람은 우리 동네 미장원 원장님이었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자기 직업에 자긍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했던 오십 대 중반의 이 분은 한 해 전 난소암 수술을 받고 치료중인데, 그녀의 독후감을 읽으면서 책을 낸 보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녹이 슬은 로봇처럼 하체의 온 마디를 펴기 힘든 상태라는 밝힌 그녀의 독후감 전문은 이렇다.
“새해의 시작을 작가님 덕분에 환희심으로 시작됨을 무어라 말할 수 없이 감사합니다. 책을 받자마자 읽기 시작했고 다 읽기도 전인 새해 첫날부터 108배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책 제목에 영험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7배도 힘든 제가 108배를 하게 됨을 저 자신한테도 놀랐어요. 매일 아침 하루도 빠짐없이 108배를 하겠다고 다짐한 저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나가 보려고 합니다. 제가 자궁 외 10개를 절제했고 복부도 두 번이나 절개를 했기에 감히 엄두도 못냈어요. 이 책 덕분에 용기와 힘을 얻어 지금 너무도 맘이 가벼워요.”
가슴을 뭉클하게 한 독후감을 받고 나는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반드시 병도 번뇌도 없는 본래의 불성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천천히 절하시길 바랍니다. 뇌성마비로 온 몸이 굳어있던 한경혜 화가님도 그 몸으로 절을 해서 온전한 몸으로 회복함은 물론 인생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었고, 현각 스님도 숟가락 하나 들 힘도 없었는데 3천배를 해서 병을 치유하셨잖아요. 청견 스님도 사고로 온 몸이 망가져 삼배를 할 처지도 못되었으나 조금씩 절을 하기 시작해 오늘날 절 수행지도자가 될 만큼 건강해지셨어요. 할 수 있다, 이겨낼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절을 하면 반드시 회복하시리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한 달이 흘렀다. 이번 음력 설을 지내면서 안부를 물었다. 녹슨 로봇처럼 하체가 펴지지 않는 몸 상태라는 그녀의 말이 마음에 걸렸던 터라 절을 계속할 수 있는 상황인지 궁금했다. 그녀는 이런 답을 보내왔다.
“덕분에 뜻깊은 명절을 보냈습니다. 설 아침, 정릉에 있는 경국사라는 절에 가서 부처님 앞에서 저의 반려자와 108배를 올렸습니다. 진심을 다해서. 새해부터 시작해 한 번도 빠짐없이 아침마다 108배를 기를 쓰고 한 덕분에 지금은 어려움 없이 하루를 108배로 시작하고 있어요. 아침공기 마시며 절에서 하는 108배는 아무런 힘듦도 없이, 아니 신기하게도 몸이 종잇조각처럼 가볍게 훨훨 날면서 했어요. 좋더라고요, 몸도 마음도. 작가님 덕분입니다. 저의 선지식이십니다. 108배의 즐거움을 널리 알리는 데 힘써 보려고요. 제가 직접 몸으로 겪은 체험이기에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요? 그게 곧 제가 할 수 있는 보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108배 예찬론자로 자처하고 있는 나로서 이보다 더 감사한 편지가 있을까 싶다. 이처럼 감동적인 제2, 제3의 독후감을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더 많이 받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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