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
“사랑한다”는 말이 사랑까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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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연 / 2018 년 7 월 [통권 제63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877회 / 댓글0건본문
혜월의 ‘손해’
민주民主사회는 국민이 주인인 사회다. 거기서는 모든 국민이 공평하게 소중한 존재이므로, 모든 국민이 주인 대접을 받으려고 한다.
주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결국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다. 요즘엔 여기저기서 법정法廷 관련 드라마만 하는 것 같다. 팩트fact는 ‘사실’인 동시에 ‘약점’이란 걸 잘 아는 사람들이 잘 안 진다. 이른바 ‘팩트폭행’은, 진짜 폭행이다.
모든 국민의 주류는 서민이다. 20:80구조는 견고하다. 서민들의 원한을 존중하는 않는 정치는 살아남기 어렵다. 잘사나 못사나 똑같이 ‘1표’다.
#미투MeToo 현상을 보면서 느낀 점 : ①인생, 말년이다. ②인사 잘 하고 살자. ③유명해지지 말자.
혜월혜명(慧月慧明, 1862~1937)이 부산 선암사 주지를 맡게 됐다. 사찰의 살림을 늘리려 산을 개간하기로 했다.
= 곳간에서 인심 나고 포교도 곳간이 한다.
개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기존에 있던 논 다섯 마지기를 팔았다. 하지만 세 마지기를 개간하는 데 그쳤다. 사실상 두 마지기 손해를 본 셈이다. 대중이 이걸 가지고 구시렁대자 혜월도 투덜댔다.
= 인심仁心은 인심人心의 부하여서, 주인이 곳간을 부숴버리거나 곳간 열쇠를 달라고 할 때 찍소리도 못한다.
“다섯 마지기는 그대로 있고 세 마지기가 늘지 않았느냐.”
= 찍찍거려봐야, 쥐밖에 더 되겠나.
처음부터 예고된 손실이었다. 개간을 위해 고용한 인부들은 대충 일했다. 게다가 걸핏하면 혜월에게 ‘부처님 말씀을 가르쳐 달라’ 조르며 일손을 놓았다. 농땡이가 빤한 데도 혜월은 그때마다 친절히 법문을 해주었다. 인부들이 꼼수를 써서 노동의 경제성을 추구할 때, 절 땅을 사간 사람들은 혜월의 순진함에 힘입어 자본의 경제성을 이룩했을 터이다. 경제성은 기본적으로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다.
당장만 생각하면 혜월의 행동은 철두철미하게 바보짓이다. 그러나 누가 농사를 짓든, 농지의 총량은 여덟 마지기로 증가했다. 땅의 새 주인들은 스님들 앞에서 떵떵거리거나 코웃음을 치겠으나, 땅은 늘어난 채로 살아있다. 장 씨가 그 땅에서 밭을 갈든 이 씨가 새 건물을 지어 올리든, 땅은 살아서 사람을 두루두루 계속 먹여 살릴 것이다.
그 땅을 투전으로 날려먹든 자식들 학비로 날려먹든 상관없다. 국토는 좁아도, 땅 살 사람은 많으니까. 아예 전쟁이 터져서 모두 죽고 땅문서가 불타버려도, 땅은 유유히 자리를 지키며 새로운 주인을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요행히 혜월의 법문을 들었던 이들이나 그 자손들이 살아남았다면, 거기서 술이나 팔고 있진 않을 것이다.
●
꽃이 피었다.
‘내 몫 내놔라.’
제산의 ‘우쭈쭈’
술자리에 가서 화장실에 갔다.
사실은 불편한 동료가 옆에 앉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줌을 누니 시원하다.
그놈도 함께 쓸려 내려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는데,
문득 스치는 것이 있었다.
물이 아래로 흘러야만 다들 닦이는구나!
손을 씻으면서,
정말 손을 씻었다.
땅으로 처박히면서도 노래하는
빗소리가 참 듣기 좋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좋아하는 척이라도 해주어야겠다.
남의 집 세면대에서 사랑을 배웠다.
중력重力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김천 직지사 천불선원에 30여 명의 대중이 모여서 제산정원(霽山淨圓, 1862∼1930)의 지도를 받으며 참선에 열중했다. 다들 열심히 정진했는데 유독 하나가 말썽이었다. 입선入禪 시간에 자주 지각을 했고 혼자 낮잠을 자거나 남몰래 누룽지나 먹었다.
= 나 좀 알아달라는 거다.
보다 못한 선승禪僧 여럿이 제산을 면담하고 불만을 터뜨렸다. “큰스님, ○○ 때문에 공부가 방해됩니다. 쟤를 선원에서 내보내주세요.” 제산은 아무말이 없었다. 다음 안거 때에도 단독행동은 반복됐고 똑같은 건의가 올라왔다. 역시 묵묵부답. 그렇게 몇 철이 흘렀는데도 도무지 개선의 기미가 없었다. “큰스님, ○○를 쫓아내지 않으면, 저희들이 떠나겠습니다!”
= 못 알아주겠다는 거다.
제산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잘들 가시오.”
= 알아주라는 거다.
의외의 반응에 놀란 이들에게 제산이 다시 말했다. “여러분은 모두 똑똑하고 공부도 잘하니, 어디를 가더라도 잘들 살 것이오. 하지만 이 사람은 나하고 있어야 그나마 살 것이오.”
= 알아주겠다는 거다.
‘사랑하다’의 어원으로 ‘살다’, ‘사량하다(思量, 생각하다)’, ‘사르다[燒]’ 등이 거론된다. 그런데 중세국어에서 ‘사랑’의 ‘사’는 ‘ᄉ·(아래아)’였다. 반면 ‘살다’의 ‘살’은 원래부터 모음이 ‘ㅏ’였으니, ‘살다’는 후보에서 탈락이다.
결국 ‘사량하다’와 ‘사르다’만 남는데, 둘을 섞으면 사랑의 본질이 나타나는 듯도 하다. ‘당신을 열렬熱烈히 사모思慕한다’는 옛날 연애편지의 해묵은 관용구는 사실 인류의 면면하고 숭고한 전통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사람의 안위와 행복을 생각하며 나를 불태우고 희생하는 것’, 사랑의 객관적인 원형이겠다.
수월관음 무늬 동제 거울. 고려. 청동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만인萬人을 사랑하면 만인의 사랑을 받는다. 그래서 역대 임금들도 현실의 톱스타들도 만인을 사랑한다. 만인을 사랑한다고 해야, 정권이 안정되고 억대의 개런티가 끊이지 않는다. 결국 만인에 대한 사랑은 만인에 대한 지배와 다르지 않다. 반면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돈이 되지 않고 그다지 표도 나지 않는다. 더구나 피지배의 성격을 띤다. 성질만 나고 희생만 강요당하기 십상이다. 나이를 한참 먹었다 싶은데 여전히 ‘빵 셔틀’을 뛴다.
수없이 다치고 상처주고 바람맞는 속에서 나는 서있었다. 그리하여 나를 비우는 것이 아니면 사랑이 아니다. 그대의 입장에서 생각해주는 것이 아니면 사랑이 아니다. 모텔에 가자고 조르는 것이 사랑은 아니다. “사랑한다”는 말이 사랑까지는 아니다. “사랑해달라”는 말이 사랑이어선 안 된다. 그대의 편에 서주는 것이 아니면 사랑이 아니다. 행여 발밑이 오판이거나 치욕이더라도.
나는 사랑이 모자라고 사랑에 서툴며, 때로는 사랑 앞에 군침 흘리는 걸 좋아하는 짐승이다. 다만 그대의 잠을 깨우지 않고 출근하는 것, 내가 멀리 갔을 때 그대의 삶을 걱정하는 것, 걱정해주는 게 아니라 그냥 막 걱정이 되는 것, 나의 정신병력을 염려하는 그대 옆에서 오래오래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는 것, 그건 사랑일지 모른다. 잠 못 이루거나 하루에 10시간씩 한 사람과 통화하는 젊은이 또는 내연남들아, 사랑은 그리 아름답지도 포근하지도 않다. 나를 내어 주고 죽여낸 곳에만, 피를 흘리며 나타난다.
●
내가 너를 사랑했을 때,
너를 제외한 모든 것을
미워해야 했다.
불륜은 성전聖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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