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
성철스님의 『단경지침』을 만난 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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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승 / 2023 년 7 월 [통권 제123호] / / 작성일23-07-04 11:08 / 조회2,549회 / 댓글0건본문
고우스님은 1987년(여러 사료를 확인한 바 1988년이 아니라 바로잡습니다) 각화사 동암의 깨달음을 통해 인식의 전환이 일어난 뒤 그해에 수좌 도반들과 선어록 공부를 추진하여 조계종 종정 성철스님의 뜻에 따라 『육조단경』을 공부하기로 했다. 처음에 서옹스님께서 강의를 해주기로 했다가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시어 다시 다른 분을 알아보다가 서암스님께 청을 드리기로 하였다.
성철스님께 『단경지침壇經指針』을 받은 법연
서암스님이야 고우스님이 은사처럼 모시는 분이니 참 잘됐다고 생각하고 봉암사로 가서 스님께 승낙을 받아 그렇게 준비를 해 나갔다. 예정한 날짜는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3박 4일 공부 일정을 짰다. 그렇게 대략적인 준비를 마치고 해인사를 나와서 부산으로 가서 무비스님과 대법사에서 지냈다.
부산 대법사에서 봉암사 결사 도반 무비스님과 같이 지내던 어느 날 해인사 원융스님으로부터 성철스님께서 찾으신다는 연락이 왔다. 해인사로 가서 원융스님을 만나 성철스님이 계시는 퇴설당으로 가서 인사를 드리고 뵈었다.
1975년 남해 용문사 염불암에서 우연히 뵙고 “돈오점수가 맞지 않느냐?”고 대든 이후 고우스님이 성철스님을 독대한 것은 처음이었다. 성철스님께서는 내의를 입고 맞이하셨다. 그 모습이 고우스님은 좋았다. 격식과 위의를 따지고 엄하게 대하기보다는 편안하게 평소 모습으로 대해 주시니 고우스님은 비록 가사와 장삼을 수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성철스님은 수좌들이 『단경』 공부를 하려면 이것을 알아야 한다면서 『단경지침壇經指針』이라는 제목의 작은 책자를 주셨다. 법회를 주관하는 스님이 이것을 알고 해야 하니 보고 의문이 있으면 물어라 하셨다. 그래서 성철스님이 주신 『단경지침』을 받아 원융스님 방에서 둘이서 앉아서 같이 보기 시작했다.
『단경지침』을 보니 70쪽 되는 얇은 책으로 『육조단경』을 공부하는 데 필요한 지침서였다. 머리말에서 성철스님은 이렇게 시작한다.
“『단경』은 육조의 법손인 동토東土 선종의 근본이 되는 성전聖典이다. 『단경』은 전래되는 과정에서 다른 본本이 많이 나와 학자들을 곤혹케 하였으나, 돈황고본이 발견되어 천고의 의심이 해결되었다고들 말한다. 『단경』의 근본 사상은 식심견성識心見性(마음을 알아 성품을 봄)이요, 식심견성은 법신불이 내외명철內外明徹(안팎이 사무쳐 밝음)이어서 견성見性(성품을 봄)이 곧 성불成佛(부처를 이룸)이므로, 깨달은 뒤[悟後]에는 부처님 행을 수행한다[修行佛行]고 분명히 하였다. 뒷날 교가敎家의 점수사상漸修思想이 섞여 들어와 오후점수론悟後漸修論(깨친 뒤 점차로 닦는다는 이론)이 성행하나, 이는 『단경』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니, 육조대사의 법손인 선가禪家는 『단경』으로 되돌아와 육조대사 본연의 종풍을 떨치기 바란다.”
성철스님은 이 『단경지침』에서 『육조단경』을 ‘선종의 근본이 되는 성전聖典’이라 정의한다. 참선 수행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공부해야 할 성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수좌들이 『육조단경』을 공부해서 사상 정립을 하고 참선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런데, 『육조단경』은 후대로 내려오면서 다양한 편집본이 만들어지면서 육조스님의 법문에 첨삭이 되어 선종의 돈오돈수 사상이 훼손되어 교가의 점수사상이 스며들게 되는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 20세기 초에 돈황 석굴에서 「돈황본」이 발견되어 여기에 육조스님의 선종사상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당시까지도 성철스님이 이토록 강조한 『육조단경』은 스님들의 기본 교육과정인 강원(승가대학)의 교육교재도 아니었다. 그래서 성철스님은 해인총림 방장이 되고 이 『육조단경』을 해인사 강원 교육과정에 넣게 하였다. 또한 성철스님은 『육조단경』의 여러 판본이 다 다르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차에 「돈황본」을 구하여 여러 판본과 대조하여 원형에 가까운 최고본임을 확인하고는 『단경지침』을 집필하여 수좌들에게 공부하게 한 것이다(후일 성철스님은 돈황본을 직접 교정하고 번역해서 『돈황본 육조단경』(장경각)을 간행하였다).
고우스님은 성철스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단경지침』을 받아 보았는데, 별 의문이 없었다. 스님은 이전에 믿고 있던 돈오점수 사상이 교가의 이론이라는 것을 깨닫고 조사어록과 성철스님의 『선문정로』을 정독하여 선문禪門은 돈오돈수라는 정견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단경지침』도 쉽게 이해가 되었다. 그리하여 성철스님과 법에 대한 견해가 같음을 확인하였다.
그래서 다음 날 성철스님을 다시 찾아뵙고 『단경지침』을 다 보았고 별 의문이 없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성철스님이 흡족해 하시고는 환하게 웃으시면서 “수좌들이 선종사상을 바로 알고 참선해야지 아무 것도 모르고 참선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다시 하셨다.
이런 말씀으로 볼 때 성철스님께서 “참선하는 수행자는 책 보지 말라.”고 했다는 말은 잘못 알려진 것이다. 성철스님이야말로 누구보다 경전과 조사어록을 중요시한 분이다. 성철스님 개인 도서관인 장경각을 보면 스님 중에서는 최고의 장서가라 할 수 있고, <선림고경총서> 한글 번역을 지시하신 것을 보아도 잘 알 수가 있다. 다만, “결제 중에 수좌들이 책이나 신문 잡지를 보지 말라.”고 한 말이 오해를 낳은 것이다.
성철스님과 문답 일화 하나
그때 고우스님은 평소 가지고 있던 궁금한 것을 성철스님에게 한번 물었다.
“스님, 『육조단경』에 보면 육조스님이 문자를 알지 못한 나무꾼 출신이고, 8개월간의 행자 생활 끝에 『금강경』을 듣고 깨쳤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무식한 분이 별 공부도 없이 빨리 깨칠 수 있었는지요?”
그랬더니 성철스님께서 반색하면서 이렇게 답했다.
“그게 말이지,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육조스님 같은 경우는 워낙 전생부터 공부가 깊었던 분이라고 봐야지 금생 공부 인연으로만 볼 수는 없지.”
이렇게 답하시고는 육조스님을 만나 단 한 번의 문답 끝에 깨친 영가현각 대사 이야기와 마조스님, 임제스님, 대혜스님 등등 조사들이 깨친 이야기를 몇 시간이나 장광설을 하셨다.
성철스님이 신이 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고우스님은 중간에 말을 끊을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렇게 해서 몇 시간이 지나 말씀이 끝나고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데 옆에 있던 원융스님이 한마디 했다.
“아이코 오늘 시자들이 죽어나겠구나!”
그렇게 성철스님을 뵙고 나와서 해인사를 나서는데 원융스님이 따라와서는 고우스님 주머니에 봉투를 하나 찔러주었다. 스님이 놀라서 “아니 스님이 무슨 돈이 있다고?” 하면서 그 봉투를 돌려주려 하니 원융스님이 말하기를 “아니오! 이건 내가 주는 게 아니고 노장이 주는 거요!”라고 했다.
“그래? 하, 이거 영광이네. 성철스님한테 여비도 얻어 보고. 이거 쓰지 말고 표구를 해놓아야 겠네!” 하며 고우스님은 흔연한 마음으로 해인사를 나와서 서암스님이 계시는 봉암사로 갔다.
서암스님의 뜻밖의 모습
봉암사 조실채로 가서 서암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성철스님께 받은 『단경지침』을 내놓고, “성철스님께 받은 것입니다. 선화자법회에서 『단경』 강의를 하실 때 참고하시죠.” 하며 드렸더니 노장께서 바닥을 탁 치시고는 아무 말씀이 없었다.
암스님, 성철스님, 혜암스님, 법전스님).
너무나 뜻밖이었다. 20여 년 전 김용사 금선대에서 처음 뵌 이래 어떤분은 고우스님은 서암스님 상좌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은사처럼 잘 모시고 살았고, 서암스님 또한 성품이 온화하시고 인격자이시어 한 번도 하대하거나 싫은 소리를 하신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바닥을 탁 치시고는 아무 말이 없으시니 고우스님은 좀 당혹스러웠다. 노장의 안색을 살피니 굳어 있었다. 더 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라 고우스님은 인사를 드리고 조실채를 나왔다.
그 후 스님은 혼자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노장이 성철스님과 공부에 대한 견해 차이 때문에 그러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암스님은 돈오점수 공부를 하고 계셨기에 제자, 도반같이 생각한 고우스님이 돈오돈수하는 성철스님에게 『단경지침』을 받아서 가져다 보시라 하니 노장이 언짢게 생각한 것이다. 이 일이 있은 뒤 노장은 고우스님을 예전처럼 대하지 않아 사이가 좀 서먹해졌다. 하지만 고우스님은 노장이 그러시더라도 선배 스님이자 어른인 서암스님을 깍듯이 예우했다. 법에 대한 견해가 다르더라도 인간적인 정리는 지키고자 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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