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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어쓴 선문정로]
깨달음을 지킬 것인가, 맡겨 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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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  2023 년 4 월 [통권 제120호]  /     /  작성일23-04-05 14:14  /   조회2,67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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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부처님 이상의 깨달음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불교에는 교리 발전의 역사가 뚜렷하다. 나아가 새로 개발된 교리는 기존의 교리를 부정하는 입장을 취하곤 한다. 예컨대 성문, 연각의 이승은 방편으로 제시된 것이고 오직 일승만이 진실하다는 『법화경』의 주장이 그렇다. 

 

보임론의 제기

 

성문聲聞이 누군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듣고 부처님께 그 깨달음을 인정받은 존재가 아닌가? 연각緣覺이 무엇인가? 부처님의 최초 가르침인 12연기를 관찰하여 깨달음을 증득한 존재가 아닌가? 여기에 어떤 잘못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이들의 깨달음이 중간 기착지에 불과하며 진정한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법화경』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대승 교리는 이러한 패턴으로 그 교리적 정당성을 강조한다. 이것은 발전인가? 변질인가?

 

불교에서 새롭게 조직된 교리는 스스로가 부처님의 본뜻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자신감을 장착하고 출현한다. 또 직접 실천하는 입장이 되어 보면 실제로 그렇다는 확신이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불교사에 새롭게 출현한 각각의 교리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시대와 상황에 맞게 되살리기 위한 고심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 개화한 선종 역시 그렇다. 선종은 부처님 마음과의 직접 접속을 표방한다. 그 핵심 종지는 돈오견성頓悟見性, 견성성불見性成佛이다. 이에 의하면 깨달음은 찰나에 일어나며, 그것은 자기의 본성에 바로 눈뜨는 일을 내용으로 한다. 나아가 바로 눈뜨는 순간 그대로 부처가 된다. 빠르고, 쉽고, 완전하다. 이 돈오론은 6조 스님을 발원지로 삼는다. 여기에서 남종선이 일어나고 다시 남종선은 중국 선종의 대표가 된다. 그러니까 돈오론은 결국 전체 선종의 영혼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러한 선종의 돈오론은 성불에 이르기까지 삼아승지겁에 걸친 수행을 필요로 한다는 교학의 논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럼에도 돈오성불론은 그 간명함과 통쾌함으로 다수 대중에게 환영을 받아 천하를 지배하게 된다.

 

그런데 송대에 접어들면서 이 돈오론에 새로운 단계론이 추가된다. 돈오 이후 번뇌의 잔유물을 제거하는 보임保任의 단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단번에 깨달으면 바로 부처가 된다는 6조 스님의 돈오론과 충돌하는 점이 없지 않다. 보임론에서는 이 점을 의식하여 달마스님의 면벽과 6조 스님의 은거가 번뇌의 잔재를 떨어내는 보임의 실천이었다는 주장을 한다. 이를 통해 그 교리적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성철스님은 이러한 주장을 비판해 마지않는다. 

 

“6조 혜능대사가 5조 홍인대사로부터 인가를 받고 16년 동안 숨어 산 일을 두고 ‘5조 회하에서 견성하고 16년 동안 보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망설이다. 당시 가사와 발우를 전해 받은 혜능스님을 시기 질투한 무리들은 6조를 시해하려고까지 했었다. 그들을 피해 법을 펼 적절한 시절이 도래하기를 기다린 것이지 부족한 공부를 무르익게 하려고 숨어 지낸 것이 아니다.” 

 

사진 1. 남화선사에 봉안된 육조대사 육신불.

 

사실 6조 스님의 16년 은거에 대해 부족함을 보완하는 보임수행으로 보는 것은 일종의 추측에 해당한다. 그래서 성철스님은 이것을 ‘망설’이라고 한 것이다. 이처럼 성철스님은 돈오 이후 번뇌의 잔재를 떨어내는 수행으로서의 보임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극력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런데도 보임에 대한 논의 자체를 버리지는 않는다. 왜일까?

 

보임이라는 용어가 송대 이후 선사들의 설법에 자주 보이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그 보임에 대한 설법을 살펴보면 보호[保]를 강조하는 입장과 맡겨 둠[任]을 강조하는 입장으로 나뉜다. 보호를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돈오 이후에도 번뇌의 관성이 남아 다시 미혹으로 끌고 갈 수 있다고 본다. 만약 그렇다면 깨달음 이후의 수행이 꼭 필요하게 된다. 이 경우 보임은 돈오점수론의 점수와 같은 일이 된다. 이에 비해 맡겨 둠을 강조하는 입장이 있다. 무엇인가 보호할 것도 없고, 그것을 보호하겠다는 의지조차 남아 있지 않은 무심삼매의 실천이 보임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원오스님의 주장이 이에 해당한다. 원오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마음 가운데 어떠한 것도 남아 있지 않아서 당장 그 자리에서 나무나 돌처럼 무심한 사람과 같아야 하며, 바보나 멍청한 사람과 같아야 한다. 뛰어난 견해의 마음조차 내는 일 없이 잘 양육해 나가야 한다. 삶과 죽음을 보되 극히 한가한 사람과 같이한다면 바로 조주나 남전, 덕산이나 임제와 보는 자리가 같게 될 것이다. 간절히 스스로 보임하여 마음이 일어나는 일도 없고 인위적 닦음도 없는 크게 안락한 경지에서 평온하게 지내야 한다.”

 

사진 2. 원오극근 선사.

 

원오스님은 이렇게 마음이 일어나는 일도 없고[無生] 인위적 닦음도 없는[無爲] 한가하고 안락한 삶 자체를 보임이라고 규정했다. 이것은 깨달은 뒤 오매일여의 무심삼매로 일관했던 성철스님의 삶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래서 『선문정로』의 ‘보임무심’에 대한 설법을 하면서 거의 모든 인용문을 원오스님에게서 가져왔던 것이다.

 

지키는 보임과 맡기는 보임

 

원오스님의 법을 이은 대혜스님도 같은 입장이다. 그래서 보임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눈에 낀 백태와 같다는 귀종스님의 견해에 완전히 동의한다. 대혜스님에게는 보임과 관련된 흥미로운 얘깃거리가 하나 발견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장』을 간화선의 교과서로 삼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서장』에

는 「대혜선사행장」이라는 것이 서문의 앞에 추가되어 있다. 이 행장은 여러 판본을 참고

하여 누군가가 새롭게 구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완전히 동일한 문건은 발견되지 않는다. 

특히 대혜스님이 원오스님의 개당설법을 듣다가 시간의 앞뒤가 끊어지는[前後際斷] 체험을 하는 장면의 묘사에는 일반적으로 전하는 사실과 다른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한 중이 운문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곳이 모든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입니까?” 운문스님이 대답했다. “동쪽 산이 물 위를 간다.” 나(원오)는 그렇게 말하지 않고 딱 이렇게 말하겠다. “따뜻한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오니, 법당의 모퉁이에 서늘함이 일어난다.” 스님이 이

것을 듣고 홀연히 시간의 앞뒤가 끊어졌다. 이에 원오스님이 그를 택목당擇木堂에 머물면서 업무를 맡지 않는 시자로 임명하고 전념으로 보임[專念保任]하게 했다.

 

대혜스님은 앞과 뒤가 끊어지는 자신의 체험을 깨달음으로 여겼다. 그러나 원오스님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것이 남다른 차원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것은 죽기만 하고 다시 살아나지 못한 차원이다. 이때 화두참구를 멈춘다면 큰 병이 될 것이다.”는 지적을 한다. 대혜스님은 이에 새로운 화두참구에 들어간다. 그 결과 막힘없는 깨달음을 성취하여 원오스님의 인가를 받게 된다.

 

사진 3. 『대혜보각선사서(서장)』.

 

성철스님은 시간의 앞과 뒤가 끊어진 대혜스님의 경계가 제7지의 무상정이었다고 본다. 무상정을 성취하면 망념이 없어서 걸리는 바가 없기 때문에 깨달음으로 착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제8아뢰야식의 미세한 번뇌가 온전히 남아 있다. 오매일여의 멸진정 선정을 통해 이것을 타파할 때 온전한 진여무심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혜스님의 이 체험은 뛰어난 경계일 수는 있어도 깨달음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 성철스님의 입장이다.

 

그런데 위 행장에는 원오스님이 그것을 깨달음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구절 대신 전념으로 보임하게[專念保任] 했다는 구절이 추가되어 있다. 이렇게 하면 대혜스님의 앞뒤가 끊어지는 체험은 깨달음이 된다. 그리하여 대혜스님이 돈오 이후 보임을 통해 깨달음을 완성하는 길을 걸었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당시 대혜스님은 ‘펄펄 끓는 기름 솥을 보면서 핥지도 못하고 떠나지도 못하는 개’와 같은 심경으로 화두를 참구하는 중이었다. 스승 원오스님도 그것이 금강의 올가미[金剛圈], 목에 걸린 밤송이[栗棘蓬]에 비유되는 화두일념의 경계라고 평가한 바 있다. 어떻게 보아도 그것은 깨달음 이후 번뇌의 잔재를 걷어내는 수행으로서의 보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서장』의 행장에서는 왜 보임의 구절을 추가한 것일까? 그 의도는 명확하다. 간화선의 완성자인 바로 그 대혜스님이 ‘깨달음 → 보임수행 → 큰 깨달음 → 더 큰 깨달음’의 여정을 거쳐 그 깨달음을 완성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이를 통해 돈오점수로서의 보임론이 강한 설득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다 보니 돈오 이후 수행이 필요하다는 보임론이 논리적 억지와 텍스트의 변형을 자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정도의 논리적 비약과 텍스트의 재해석은 불교사에 출현한 여러 교리에 흔히 발견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성철스님의 『선문정로』 역시 예외가 아니다. 더구나 보임론의 경우 성철스님이 동의해 마지않는 원오스님의 주장은 오히려 소수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번뇌의 잔재를 걷어내는 수행으로서의 보임론이 주류에 가깝다는 말이다. 그래서 여징吕澄 같은 근대 학자는 ‘발심 → 해오 → 해오와 실천의 일치[解行相應] → 보임’의 방식으로 선종의 보임론을 정리했던 것이다.

 

보임 실천의 자세

 

그렇다면 무엇이 옳은가? 아니! 이렇게 물어서는 안 된다. 옳고 그름의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득이 되지 않는다. 참선수행에 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실천을 옳고 그름의 틀에서 해방시킬 필요가 있다. 생각해 보자. 일찍이 대혜스님은 묵조선을 묵조사선이라고 규정했다. 사마외도의 선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혜스님은 사마외도에 속하는 묵조선의 완성자인 굉지스님과 진심 어린 지음知音의 교류를 이어갔다. 굉지스님의 견처를 인정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묵조선이 사마외도일 수는 없다. 당장 성철스님만 해도 선종사에 출현한 5가 7종의 종파에 우열이 있을 수 없음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니까 대혜스님의 묵조선 비판은 간화선을 널리 펼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일 수 있을지언정 그 뜻이 시비를 가리는 데 있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적어도 대혜스님은 우리를 그 시비의 마당으로 안내할 의도가 없었다.

 

이런 경우는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예컨대 대승불교의 교리에서 성문과 연각을 소승으로 낮추어 보는 경우가 그렇다. 그런데 대승불교의 적자를 자처하는 한국불교에서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천이백 제대아라한(성문)’에 예경하고 ‘독수성(연각)’에 경배한다. 선종의 돈오론은 교학의 지위론을 비판한다. 그럼에도 화엄의 지위론을 수행의 기준으로 삼는 데 걸림이 없다. 송대 이후의 보임론은 기존의 돈오론에 깨달음 이후의 단계를 추가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오성불의 종지까지 내려놓은 것은 아니다.

 

성철스님은 깨달음 이후 무심의 삼매로 살아가는 무학도인의 삶을 보임으로 규정한다. 분명히 그것은 주류적 보임론과 내용적으로 충돌한다. 그럼에도 보임론을 폐기하지는 않는다. 대신 간화선의 초석을 마련한 원오스님의 문장을 집중 인용하여 주류적 보임론을 비판한다. 그 목적은 분명하다. 보임이라고 불리는 깨달음 이후의 삶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깨달음 이후 부처로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점차적 발전의 궤적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런데 서툴거나 원숙하거나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어도 번뇌가 재발하는 일은 없다. 이것이 성철스님이 말하는 깨달음 이후의 삶이고 보임인 것이다.

 

만약 무엇인가 지키고 떨어낼 것이 있다면 거기에는 결국 실천하는 주체와 대상이 세워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분별의 차원이라면 번뇌를 떨어낸다는 생각 자체가 이미 번뇌일 수밖에 없다. 나아가 그것은 제반 번뇌를 활성화하는 원동력이 된다. 유심의 생멸 현장에 스스로 떨어지기를 자처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성철선에 있어서 최고의 길은 걸림 없는 자리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일념으로 화두참구의 길을 걷는 일이다. 그렇게 하여 완전한 무심을 증득하고, 그 무심삼매 속에서 유희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보임이라는 것이다. 오로지 무심의 실천을 통해 무심의 완성에 이르는 본분사 만을 강조하는 철저함은 성철스님 법문의 표징이라 할 수 있다. 바로 그 철저함이 수행자를 쉼 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감로의 법문이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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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현재 동의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앙도서관장을 맡고 있다. 교수로서 강의와 연구에 최대한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한편 수행자로서의 본분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kkkang@de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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