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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의 책 이야기]
청년 이영주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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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정  /  2022 년 11 월 [통권 제115호]  /     /  작성일22-11-07 11:29  /   조회3,76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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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각자 시절 인연과 젊은 시절에 가졌던 고민과 선택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싯다르타 태자는 12살 즈음에 아버지인 슈도다나 왕을 따라 처음 농경제에 참여했을 때, 화려한 옷을 차려입고 황금 쟁기를 든 왕이 좌우에 대신들을 거느리고 여흥을 즐기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헐벗은 농부들이 힘겹게 쟁기질하는 모습을 보고 깊은 고뇌에 잠겼다. 왕궁에서의 호화로운 삶이 그냥 주어진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의 고통 위에서 자신이 편안하게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진 1. 성철스님 생가 율은고거.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

 

하나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가 불행한 현실에 싯다르타는 ‘어떻게 하면 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 인생의 큰 화두가 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인간이 늙고 병들어 죽어갈 수밖에 없는 괴로움 이상의 훨씬 더 근원적인 문제였다. 하층민의 비참한 삶의 토대 위에 지배계급의 풍요로움과 안온함이 있다는 것을 꿰뚫어 보았기에 싯다르타는 태자라는 자신의 기득권마저도 미련 없이 내려놓을 수 있었다. 청년 싯다르타가 출가를 선택한 동기와 깨달음을 얻고 난 이후에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궁극의 행복과 자유에 이르는 길로 인도하고자 했던 이유는 바로 그가 젊은 시절에 가졌던 이런 현실에 대한 깊은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성철스님의 출가 전 청년 이영주가 가졌던 관심과 출가의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출가 전 ‘영주英柱’의 인장과 영어로 ‘young chu Ree’가 기록된 스님의 책 속에서 그 편린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영주서적기

 

1912년 음력 2월 19일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 유학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이영주는 세 살 때부터 글을 익힐 정도로 신동이었다(사진 1). 아버지로부터 천자문, 소학, 대학 등을 배웠으며, 열 살이 되기 전에 사서삼경까지 독파했다. 남에게 배운 것은 서당서 자치통감을 배우고 1920년 단성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해 소학교 6년 과정이 전부였지만, 그의 독서열과 비범함은 남달랐다. 몸이 약해 신체검사에서 떨어져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지만, 독학을 하면서 오히려 폭넓은 지식을 채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1932년 12월 2일에 기록한 ‘이영주서적기李英柱書籍記’는 21세의 청년 이영주의 관심과 학문 세계를 반영해 주고 있다.

 

사진 2. 『간례휘찬』 속 이영주서적기.

 

관혼상제 의식을 간략히 모은 『간례휘찬簡禮彙纂』 책 속에 덧붙여진 종이에 『철학개론』·『논리학통론』·『순수이성비판』·『실천이성비판』 등의 철학서와 『남화경』·『근사록』·『소학』·『대학』·『중용』·『주역전의』·『채근담강의』·『주자가례』 등의 동양서 그리고 『십육의문선十六醫文選』·『연년익수延年益壽』·『생리위생生理衛生』 등의 양생서, 『에스페란토(ESP) 독습』 등의 외국서, 『한화대사전』·『옥편』 등의 사전류, 『세계문학명구선집』·『신구약성서』 등 70여 종의 책이 기록되어 있다(사진 2). 그가 소장했던 책 목록으로 철학, 종교, 의학, 문학, 어학 등에 관련한 다양한 서적들을 탐독했음을 알 수 있다.

 

라 에스페로La Espero

 

특히 1887년 폴란드 의사인 라자로Lazaro 자멘호프Zamenhof가 창안해 발표한 국제공용어인 에스페란토를 독습한 것이 주목된다. 같은 민족끼리는 모국어를, 다른 민족과는 에스페란토의 사용을 주창하면서 이를 통하여 만인평등과 세계평화를 추구하는 운동의 일환으로 고안되었으며, 우리나라에는 1920년 김억金億에 의해 YMCA에서 공개강습회가 개최된 것이 시초였다.

 

사짖 3. 『편주의학입문』 속 「La Espero」(우) 및 「시소선인示紹禪人」(좌).

 

1930년 중국 상해 금장도서국에서 인쇄한 중국 명대 이천李梴이 주석한 『편주의학입문編註醫學入門』 앞 속지에 에스페란토로 쓴 여러 글들이 확인된다. 그중 자멘호프가 쓴 「La Espero」 즉 ‘희망’이라는 제목의 시가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사진 3).

 

세상 속으로 새로운 느낌이 왔도다.

세상을 가로질러 강한 부름이 간다.

순풍을 맞은 날개로써

지금 여기저기로 날아라.

피에 굶주린 칼에게로가 아니라

그것은 인류의 가족으로 이끄네.

영원히 전쟁하고 있는 세상을 향해

그것은 성스러운 조화를 약속하네.

(중략)

중립적 언어의 기초 아래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람들은 힘을 모아

하나의 커다란 가족을 이루리.

우리의 부지런한 동료들은

평화의 일을 하면서 지치지 않네.

인류의 아름다운 꿈이

영원한 축복을 위해 실현될 때까지.

 

1930년대 일제강점기 속 청년 이영주가 꿈꾸는 세계는 전쟁이 아닌 평화를 위한 인류애를 희망했던 공용의 언어에서 찾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영원에서 영원으로

 

청년 이영주가 쓴 ‘영원’과 관련된 문구들도 발견할 수 있다. 1921년 경성 박문서관博文書舘에서 신연활자로 인쇄한 이제마李濟馬의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에는 “from everlasting to everlasting(영원에서 영원으로)”, “through all eternal(영원히)”라는 영어 문구가 적혀 있다(사진 4).

 

사진 4. 『동의수세보원』 이제면.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린 이들도 영원한 행복을 이룰 수는 없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지위가 높더라도 죽음 앞에서는 끝이 나게 마련이다. 이영주는 ‘사람이 죽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 ‘영원에서 영원으로 통하는 진리는 없을까?’, ‘불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에 닿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채근담강의菜根談講義』를 읽고는 다르게 다가온 듯하다.

 

아유일권경我有一卷經 나에게 한 권의 경이 있으니 

불인지묵성不因紙墨成 종이와 먹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전개무일자展開無一字 펼치면 한 글자도 없지만

상방대광명常放大光明 항상 큰 광명을 내고 있다.

 

청년 이영주는 이 글귀를 읽고 종이와 먹을 떠난 내 마음 가운데 항상 큰 광명을 비치는 경이 있을 것이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한 글자도 없는 경을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결국 책 속 글귀가 아니라 스스로 본래의 마음을 밝혀야 비로소 변하지 않는 영원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해석했던 것은 아닐까. 

 

『편주의학입문』에는 ‘희망’이라는 시 외에도 『태고화상어록』에 수록된 「시소선인示紹禪人」(사진 3)과 「고담법어古潭法語」(사진 5)의 한문 원문을 기록해 두었다. 두 편 모두 조주趙州의 무자無字 화두 참선을 강조하고 있다. 두 원문을 번역한 글은 다음과 같다.

 

“생각생각에 무자 화두를 들어라.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느 때나 옷 입고 밥 먹을 때 항상 무자 화두를 들되, 고양이가 쥐를 잡고 닭이 알을 품듯 해야 한다. 무엇 때문에 ‘없다’고 하였는가를 의심하여 의심과 화두가 한 덩어리로 된 상태로 어묵동정語默動靜에 항상 화두를 들면 점차 자나깨나 한결같은 경지에 이를 것이다. 그때 화두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아 생각이 없고 마음이 끊어진 곳까지 의심이 이르면 금까마귀가 한밤중에 하늘을 날 것이다. 이때 희비의 마음을 내지 말고 진짜 종사宗師를 찾아 의심을 완전히 해결해야 한다.”

 

사진 5. 『편주의학입문』 속 「고담법어古潭法語」.

 

“만약 참선하려고 할진댄 말을 많이 하지 말지니, 조주趙州의 무자無字를 생각생각에 이어서 다니고 멈추고 앉고 누울 때 눈앞에 두어 금강 같은 뜻을 세워 한 생각이 만년 가게 하라. 

빛을 돌이켜 반조하야 살피고 다시 관하다가 혼침과 산란에 힘을 다하여 채찍질을 할지어다.

천 번 갈고 만 번 단련하면 더욱더욱 새로워질 것이요,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지면 밀밀密密하고 면면綿綿하야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려지는 것이 마치 흐르는 물 같아서 마음이 비고 경계가 고요해서 쾌락하고 편안하리라. (중략)

 

미혹의 구름이 다 흩어지면 만리장천萬里靑天에 가을달이 깊이 맑은 근원에 사무치리니, 허공에서 불이 나며 바다 밑에서 연기가 나면 문득 맷돌 맞듯하야 깊은 현관玄關을 타파하리니, 조사의 공안을 한 꼬챙이에 모두 꿰뚫으며 모든 부처님의 묘한 진리가 두루 원만치 않음이 없으리라. 이런 때에 이르러서는 일찌감치 덕 높은 선지식을 찾아서 기미機味를 완전히 돌려서 바름[正]도 치우침[偏]도 없게 하야 밝은 스승이 허락하거든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서 뗏집과 동굴에서 고락을 인연에 따르되 하염없이 탕탕蕩蕩하여 성품이 흰 연꽃 같게 할지니 시절이 이르거든 산에서 나와 밑 없는 배를 타고 흐름을 따라 묘를 얻어, 널리 인천人天을 제도하여 함께 깨달음의 언덕에 올라 함께 부처를 증득할지니라.”

 

‘문자가 없는 경’은 과연 어떤 경이었을까? 영원한 행복과 영원한 자유에 이르는 길을 찾아 1934년 스물세 살 청년 이영주는 결국 출가라는 새로운 진리의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참고문헌

김택근 지음·원택스님 감수, 『성철 평전』, 모과나무,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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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정
동국대 불교학술원 전문연구원.
성철스님의 장경각 책이 계기가 되어 「19세기 불서간행과 유성종劉聖鍾의 『덕신당서목德新堂書目』 연구」(2016)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박사학위 취득. 「해인사 백련암 불서의 전래와 그 특징」(2020), 「조선후기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 판본의 성립과정 고찰」(2021) 등 불교서지학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crystal07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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