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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의 책 이야기]
근대 거사불교의 흥기興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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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정  /  2022 년 9 월 [통권 제113호]  /     /  작성일22-09-05 11:37  /   조회4,17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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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의 책 이야기 9  | 이재거사 유경종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에 ‘보광葆光’의 뜻이 설명되어 있다. “아무리 부어도 차지 않고, 아무리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다. 그것의 연유는 모르지만 빛을 숨긴 보광이라고 말한다.” 출가가 아닌 재가 거사로, 지혜의 달빛[慧月] 대신 빛을 감춘 구름[劉雲]으로 불리고자 했던 유성종은 1884년(고종 21) 64세라는 다소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해 봄 유성종은 자신의 스승이었던 월창거사 김대현(?~1870)의 아들인 김제도金濟道가 부친의 저서인 『술몽쇄언述夢瑣言』을 발간하고자 그를 찾아왔을 때 스승과의 생전 인연을 글로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유성종은 생전에 손수 가려 뽑은 내용을 모아 『부우제군약언보전孚佑帝君藥言寶典』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두었지만 간행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에 대해 김석金奭은 1884년 2월 비통한 마음을 담아 발문을 지었다. 이런 사실을 미뤄어 보면 그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석은 한 해 전인 1883년 9월에 유성종이 편찬한 『작비암시화昨非菴詩話』에 발문을 청탁받았는데, 당시 그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보광 유운[유성종] 선생은 부지런히 선을 행하면서도 명예를 가까이할 마음이 없다라는 말을 내가 예전부터 들었기에 교류하고 싶은 지가 오래되었다.… 선생은 평등한 마음으로 매우 온화한 기운을 베풀고 가까이서 말을 하듯 사람들을 이끄는 책을 냈으니 진실로 예전 사람들이 말하는 선한 사람이다. 춘추가 예순셋이지만, 안색이 밝고 환하며 신체도 맑고 정정하시다. 내면에 쌓인 것이 밖으로 그대로 드러난 모습이다.”

 

유성종은 자신도 선행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선행을 실천할 수 있도록 권선서勸善書와 같은 책들을 편찬했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는 데에는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는 생전에 무심옹無心翁이라는 자호도 사용했듯이, 죽음마저 무심해 보인다. 마치 달빛이 연못을 비추지만 물에 흔적을 남기지 않듯이.

 

유성종 사후 유경종이 잇다

 

유성종이 주도했던 정원사와 감로사 불서 간행도 그가 별세한 이후로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별세 이후 유성종이 소장했던 책들은 과연 누구에게 전해졌을까. 이 의문에 대한 단서는 1882년에 정원사에서 간행하고자 했던 『원해서범願海西帆』 중 미간행된 4편이 필사된 유성종의 수고본手稿本에서 찾을 수 있었다. 현재 이 책은 고려대학교 도서관(육당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 끝에 이재거사伊齋居士 유경종劉敬鍾이 1915년에 별지 1장에 남겨 둔 발문에서 확인된다(사진 1).  

 

사진 1. 『원해서범』 중 유경종의 발문. 

 

“나의 사촌형인 보광거사 유운은 여러 현인들과 감로사 결사를 맺어 정업淨業을 함께 닦았다. 『대아미타경』을 비롯하여 정토법문 중에서 가장 저명한 책들을 다수 간행해서 유포했다. 이를 『원해서범』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이 4편의 책은 인쇄되지 못해 결사를 함께 맺은 도반인 진정거사眞正居士 김제도金濟道에게 부탁하였다. 김군이 지금 보광거사의 뜻을 이어서 널리 인쇄해서 유포하려 한다. (중략) 이 책은 사촌형이 손으로 직접 써서 정리해 둔 것인데, 서방정토로 돌아가신 지 벌써 32년이 흘렀다. 지금 전하여 유포하고자 하는 것이 나라의 평안함을 생각하는 데 있으니 또한 기쁠 뿐이다.…을묘(1915) 납월 팔일 봉불계 우바새 ∴이재 유경종 삼가 발문을 쓰다.”

 

유성종이 세상을 떠난 지 30여 년이 지나 그의 원고를 사촌인 유경종이 간행하고자 한 것으로 볼 때 유성종이 생전에 소장했던 책들도 유경종이 맡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유경종에 대해서는 이능화李能和(1869~1943)가 1918년에 편찬한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에 비교적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유경종은 당시 환갑이었으며, 호는 이재伊齋인데 귀가 어두워 몇 번이나 되묻기 때문에 범롱梵聾이라고도 불렸다. 평상시에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경전에 의거해 말했고, 『종경록宗鏡錄』을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이능화가 부처님의 「응화기실應化記實」을 대신 찬술해 줄 것을 부탁했을 때에도 기꺼이 승낙하였다.  

 

사진 2. 『종경록』 필사본 

 

이러한 사실들로 볼 때 유경종은 1858년(철종 9)경에 태어났으며, 사촌인 유성종과는 30여 년 손아래였다. 실제 유성종이 소장했던 1753년 중국에서 중간한 『종경록』 판본을 유경종이 그대로 전사傳寫한 100권 20책도 백련암에 현전하고 있다(사진 2).

 

1910년대 불교잡지에 필진으로 참여하다

 

1910년대에 창간되기 시작한 근대 불교잡지에 유경종의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주로 1912년부터 1916년 사이에 게재한 것으로,『조선불교월보』에 「학불자일람學佛者一覽」, 「사정문금침謝頂門金針」,「변사집두정리설辨邪執頭正理說」, 「참선명자參禪名字」,「속불교개혁론續佛敎改革論」과 『해동불보』에 「선교요지禪敎要旨」, 「유식종원류唯識宗源流」,「유식송초唯識頌抄」 그리고 『조선불교계』에 「종경대지宗鏡大旨」 등의 글을 한문으로 연재하였다.  

 

사진 3. 『불교진흥회월보』 제6호(1915.9). 

 

특히 『불교진흥회월보』의 발행인 겸 편집인이었던 이능화가 제6호(1915.9)에 임제종을 논하는 유경종의 글을 반론[反辨伊齋居士(劉敬鐘氏)論臨濟宗書]하자(사진 3), 유경종도 제9호(1915.12) 「한갈등閑葛藤」에 자신의 의견을 게재하기도 했다. 이처럼 유경종은 1910년대 불교잡지를 발행한 거사불교 운동의 중심인물이었던 이능화와 임제종지를 담론할 만큼 불교 교리에 해박한 거사로 활동하였다.

 

1920년대 조선불교총서간행에 참여하다

 

거사들의 불교계 참여가 활발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1920년 2월에 조선불교회朝鮮佛敎會가 조직되었다. 창립 당시의 구성원은 모두 29명으로, 박한영·이능화·오철호吳徹浩·최창선崔昌善·정황진鄭晃震(1890~?) 등 출가자와 재가 지식인이 중심이었다. 1922년 4월에 이능화가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한국의 고승 대덕들의 저술을 간행하고자 조선불교총서간행朝鮮佛敎總書刊行 계획을 수립하였다. 고서를 수집하는 데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사람은 정황진 화상과 취농거사翠農居士 오철호였다. 쌍계사 기룡선사起龍禪師의 제자로 출가하여 일본 조동종대학(현재 고마자와대학)에 유학 중이었던 정황진은 한국에서 찾을 수 없었던 고승들의 문헌을 찾아 직접 손으로 베껴 썼다. 또 혼자서 쓸 수 없을 만큼 많은 권수의 책일 경우 조선불교회에 부탁하여 사람들을 모집해 전사하기도 했다. 현재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에도 전사본이 확인된다(사진 4).  

 

사진 4. 『조선불교총서』 필사본. 

 

오철호는 육당거사 최남선에게서 신라 원효元曉의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 3권을 얻어 스승인 범롱거사 유경종에게 교열을 부탁하였다. 『금강삼매경론』은 조선불교회에서 1923년 6월에 신연활자로 인쇄한 첫 번째 불서였다. 활자본의 저본은 1244년(고려 고종 31)에 정안鄭晏(?~1251)이 진양공 최이崔怡의 수복을 빌기 위해 판각한 『금강삼매경론』 목판본일 것으로 짐작된다. 1865년(고종 2) 해인사에서 대장경 인출 불사가 있었는데, 당시 대장경 인출 불사에 참여했던 해명장웅海冥壯雄이 경판 마구리에 함차 표시가 없어 순차 확인이 어려운 경판 15종 231권을 따로 모아 「보유판목록」을 만들었다. 이 보유판에 『금강삼매경론』 3권도 포함되어 있었다. 조선불교회에서 인쇄한 판본은 활자 판식으로 체제는 다르지만 정안이 쓴 발문과 「신라국황룡사사문원효전」이 그대로 수록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해인사 판본을 저본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크다(사진 5). 

사진 5. 『금강삼매경론』 신연활자본(1923) 이제면 및 정안 발문. 

 

이것을 시작으로 조선불교회에서는 1925년에 본격적으로 이능화와 정황진의 주도로 ‘조선불교총서간행회’를 설립하고 『조선불교총서간행예정서목』을 그해 7월에 발간하였다. 『예정서목』에는 총 533종의 한국찬술 불교 문헌이 수록되었는데, 모두 조선불교회에서 공들여 수집한 자료였다. 10월부터 간행을 시작하여 3년 내에 마칠 계획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예산 등의 문제로 시작조차 못했다. 비록 계획으로만 그쳤지만 20세기 초 불교의 대중화를 위한 출판 노력과 불교 담론을 활발히 이끌어 냈던 유경종과 같은 일련의 엘리트 거사들의 출현은 암울한 일제강점기 속 불교계에 숨은 희망의 빛이었을 것이다.

 

참고문헌

김종진, 『근대 불교잡지의 문화사 : 불교청년의 성장 서사』 , 소명출판 , 2022.

佐藤 厚, 「『朝鮮仏教總書』刊行計画について(1)-目録の紹介-」, 『東洋学研究』 53, 東洋大學 東洋學硏究所, 2015. 3.

______, 「『朝鮮仏教總書』 刊行計畫について(2)」, 『東洋學硏究』 54, 東洋大学 東洋學硏究所, 2016. 3.

______, 「조선불교회의 역사와 성격-1920년대 『조선불교총서』 간행을 계획한 단체」, 『(2016년 불교학연구회)춘계 학술대회 자료집』, 불교학연구회, 201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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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정
동국대 불교학술원 전문연구원.
성철스님의 장경각 책이 계기가 되어 「19세기 불서간행과 유성종劉聖鍾의 『덕신당서목德新堂書目』 연구」(2016)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박사학위 취득. 「해인사 백련암 불서의 전래와 그 특징」(2020), 「조선후기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 판본의 성립과정 고찰」(2021) 등 불교서지학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crystal07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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