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책 이야기]
재조대장경판과 남해분사대장도감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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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정 / 2022 년 2 월 [통권 제106호] / / 작성일22-02-04 11:18 / 조회5,404회 / 댓글0건본문
성철스님의 책 이야기2 고려시대 판각 불서
성철스님이 소장한 고서 2,231책 중 국내에서 판각 혹은 필사된 한국본은 584책이다. 고려시대에 판각된 불서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1236), 『대반열반경후분大般涅槃經後分』(1241), 『관정발제과죄생사득도경灌頂拔除過罪生死得度經』(1243),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1243), 『보변지장반야바라밀다심경普遍智藏般若波羅蜜多心經』(1246), 『종경록宗鏡錄』(1246~1248)의 6종 49책이다. 모두 13세기 전반에 판각된 것으로 그 중 『대반열반경후분』, 『관정발제과죄생사득도경』, 『보변지장반야바라밀다심경』은 재조대장경 인출본이다.
백련암 소장 재조대장경의 인경과 판본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한 발원으로 조성된 초조대장경이 1232년(고종 19) 몽고군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고종(1213~1259 재위)의 왕명으로 국가의 임시 중앙관서인 대장도감大藏都監을 강화도에 두고 1236년부터 1251년까지 경율론 삼장三藏의 대장경을 다시 판각했다. 바로 재조대장경이다. 1248년 『대장목록』에는 입장入藏되지 못했지만, 『선문염송집』과 『종경록』 등의 선禪의 전적들이 경상도 남해 분사대장도감에서 판각되었다.
고려시대 판각의 『종경록』과 『선문염송집』 등을 포함한 해인사 사간판전에 있던 15종 231권의 책판이 1865년 해명장웅海冥壯雄에 의해 「보유판목록」으로 분류되었다. 재조대장경판과 보유판은 1962년에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으로 국보로 지정되었고, 2007년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재조대장경판은 공식적으로 고려시대 3차례, 조선시대 8차례, 근·현대에 4차례 정도 인경印經된 사실이 실록 등의 사료에서 확인된다. 현재까지 전래된 고려 말부터 조선 세조 연간 인출본의 경우 권자본이나 절첩본 형태로, 조선 후기에서 근·현대에 인출된 책은 5침 안정眼釘의 선장본으로 확인된다.
백련암 소장의 『관정발제과죄생사득도경』(사진 1)과 『보변지장반야바라밀다심경』(사진 2)은 절첩본으로 14~15세기에, 선장본인 『대반열반경후분』(사진 3)과 『종경록』(사진 6)은 표지와 인출 상태로 보아 조선후기와 근래에 인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13세기 중엽에 판각되긴 했지만, 인경한 시점으로 보면 14세기부터 20세기 초에 발행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재조대장경이 국가 판각 불사佛事로 진행될 당시, 무신 정권의 집정자인 최우崔瑀(?~1249)의 무병장수와 그 가문의 안녕을 발원하는 불서들도 간행 되었다. 최우는 1232년 고종에게 강화천도를 주청하고 그 공으로 1234년에 진양후晉陽候에 봉해졌으며, 1242년에 작爵이 올라 진양공晉陽公이 되었다. 대장경 제작비용의 대부분을 희사했던 만큼 1236년 『묘법연화경』과 1243년 『선문염송집』의 판각에 최우의 수복을 기원하는 발원이 담겨 있다.
1236년에 판각된 『묘법연화경』의 발문은 정안鄭晏(?~1251)이 썼다. 정안은 하동 정씨로 3대에 걸쳐 고위 관료를 배출한 집안 출신으로 최우와는 처남 매부 간이었다. 희종대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료 생활을 하였다. 부친 정숙첨이 1217년경 고향인 하동으로 유배를 가자 그도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간 후 20여 년간 하동에서 주로 활동했다.
그는 산인山人 명각明覺에게 판각과 인행을 요청했으며, 진양후 최우가 오래도록 가문과 국가에 주석柱石이 되고, 영원토록 불법의 수호자[번장藩墻]가 되기를 기원하였다(사진 4). 1247년 본격적인 대장경 판각에 앞서 최우를 선양하기 위한 불사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이 책판도 해인사 사간판전에 남아 있다. 한 판에 42행 16자의 권자본 형식으로 판각되어 있으나, 백련암에 소장된 동일한 2질의 『묘법연화경』 인출본은 11행 혹은 10행씩 접은 선장본으로 제책되어 있다.
『선문염송』과 『종경록』
정안은 1241년 국자감 제주祭酒로 다시 관직에 나갔으나 최우가 전횡을 일삼는 것을 보고 1243년경에 다시 남해로 물러났다. 그해 음력 8월에 진각국사 혜심慧諶(1178~1234)의 『선문염송집』이 판각 되었다. 이때 발문도 정안이 작성하였다. 『선문염송집』은 혜심이 1226년(고종 13)에 경전과 조사 어록에서 1,125칙과 염拈과 송頌 등을 수록하여 30권으로 편찬한 선문공안집이다. 편찬 당시 혜심은 여러 어록을 다 참조하지 못했기에 빠진 부분에 대해 염려하기도 했다.
『선문염송집』 판본은 강화도로 천도할 당시에 한 차례 소실되었다. 수선사 제3세였던 청진국사 몽여가 제방의 공안 347칙을 증보하여 다시 간행 하고자 했으나 실행하지 못했다. 최우의 서자이자 경상도 산청 단속사 주지였던 만종萬宗(?~1257)이 남해 분사도감[海藏分司]에 물자를 보내 판각될 수 있었다(사진 5). 1234년 혜심이 입적한지 9년 후인 1243년의 일이다. 만종도 당시 발문에서 『선문염송집』을 간행 유통한 공덕으로 왕실의 안녕과 진양공의 무병장수 그리고 전쟁의 종식과 조정의 화평 등을 기원하였다.
혜심의 스승이었던 보조국사 지눌知訥(1158~1210)이 지방의 향리층에게서 후원을 받았던 반면 수선사의 제2세 사주였던 혜심의 주된 후원자는 왕실과 고위 관료였다. 혜심은 승과를 거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1216년에 대선사라는 최고위의 승계를 받은 인물이었다. 특히 최우는 혜심을 신뢰하여 후원을 많이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들들을 그의 문하에 출가시키기까지 하였다. 혜심이 입적하고 난 뒤 『선문염송집』을 국가기관이었던 분사도감에서 판각했던 것은 그 만큼 혜심의 권위를 세우려는 입장이 엿보인다. 조선이 건국되고 『선문염송집』이 국가에서 시행했던 승과 과목으로 선정되었던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종경록』은 영명연수永明延壽(904~975) 선사가 대승경전 60부와 300여 명에 이르는 인도와 중국의 고승들의 가르침을 모아 유심唯心의 종지를 100권으로 엮은 책이다. 1246년부터 1248년까지 3년에 걸쳐 남해 분사대 장도감에서 판각되었다. 『종경록』의 판 형식은 재조대장경판과 같았으며, 각 권의 권수제와 권차 아래에 녹祿·치侈·부富·거車·가駕·비肥·경輕·책策·공功·무茂의 10개 함차가 새겨져 있다(사진 6).
그런데 이 함차는 재조대장경에 입장된 『신집장경음의수함록新集藏經音義隨函錄』(권19~30), 『어제연화심윤회문게송御製蓮華心輪廻文偈頌』(25권), 『어제비장전御製秘藏詮』(30권), 『어제소요영御製逍遙詠』(11권), 『어제연식御製緣識』(5권), 40권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권1~30) 6종의 경판에 새겨진 함차와 동일하다. 『종경록』이 이들 6종의 경판을 대체할 목적에서 판각된 것이었는지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다만 분사대장도감에서 판각되었던 만큼 『종경록』의 위상이 컸던 것으로 짐작된다.
성철스님의 저작에 인용된 장서
지금까지 백련암 소장본으로 살펴본 고려시대 재조대장경 판각은 몽고 군의 침략을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극복해 보자는 의지에서 국가적 차원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대장경 제작에 재정적 지원을 도맡았던 최우의 안녕을 기원한 불서 간행과 정안이 경제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남해 분사대장도감에서 선서가 판각된 배경도 주목된다. 후대에 재조대장경이 갖는 출판문화사적 의의와 『종경록』과 『선문염송집』 등의 고려시대 판각 선서가 한국불교에 미친 영향도 자못 크다.
성철스님의 저서인 『백일법문』과 『선문정로』에도 『종경록』이 중요하게 인용되고 있다. 특히 『선문정로』에는 견성見性과 관련된 문구를 『종경록』에서 인용한 뒤 그에 대한 평을 싣고 있다. 그리고 성철스님이 100칙의 공안을 모은 『본지풍광』에서도 『선문염송집』의 내용이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다. 본칙에 대한 여러 선사들의 공안 해설을 모아서 엮는 방식이 『선문염송집』과 맞닿아 있다.
성철스님은 ‘언어문자인 팔만대장경이 성불成佛하는 노정기인 줄만 분명히 알면 그것도 꼭 필요한 것’이라며 경전의 가치를 인정하고 교학의 역할을 평가한 바 있다. 경전이 깨달음 그 자체는 아니지만 깨달음의 세계로 수행자를 인도하고, 마침내 부처를 완성하게 하는 성불의 길라잡이가 됨을 알려주고 있는 말씀이다.
흔히 고서라고 말하면 가장 오래된[最古] 책이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그만큼 오랜 세월을 견뎌 온 책에 대한 가치를 높게 평가해서 일 것이다. 다만 책을 쓴 저자와 편찬하게 된 배경 그리고 책이 담고 있는 내용과 후대에 미친 영향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1377년에 최초의 금속활자로 찍어 낸 책이 『직지直指』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저자인 백운경한白雲景閑과 마음의 요체를 깨닫는데 필요한 내용을 요약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는 그 내용에는 잘 관심을 두지 않는다.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에서도 『선문염송집』 등을 인용하고 있다. 부처님을 비롯한 수많은 조사와 고승들의 깨달음을 글로 풀어 쓴 책들이 8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전승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책의 내용을 반조하여 깨달음을 얻고자 했던 많은 수행자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육조 혜능스님도 그러했듯이, 책 속 한 구절만이라도 깊은 자각과 깨달음으로 이끌 수 있다면 그것이 책의 최고最高의 가치가 아닐까 싶다.
참고문헌
국사편찬위원회 편, 『신앙과 사상으로 본 불교 전통의 흐름』, 두산동아, 2007.
회당조심 엮음, 벽해원택 감역, 『명추회요』, 장경각, 2015.
최승이, 「13세기 분사대장도감分司大藏都監의 선적禪籍 간행과 그 의미」, 『한국사상사학』 67집, 2021.
최연주, 「분사남해대장도감과 정안鄭晏의 역할」, 『동아시아불교문화』 41집,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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