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 큰스님 추모 기사]
몸·마음을 해탈로 안내하는 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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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퇴월 / 2018 년 12 월 [통권 제68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302회 / 댓글0건본문
비처럼 흠씬 젖은 몸으로 느릿느릿 올라 25년 전 이맘 때 만장輓章을 앞세워 가시던 그 길을 느끼고 싶었다. 얇은 옷을 입었다는 핑계로 차에 의지해 도착한 성철 대종사 사리탑엔 이미 수많은 신도들이 기도 입재를 준비하고 있었다. 대한불교조계종 6·7대 종정이자 한국불교의 큰 별이었던 퇴옹당退翁堂 성철性徹 대종사는 1993년 음력 9월20일 홀연 세연世緣을 접고 열반에 드셨다. 열반에 드시자 가야산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찾아드는 조문객들로 연일 붐볐다. 다비식茶毘式이 있던 날 가야산은 하루 종일 홍염紅焰에 불탔다. 가을 늦 단풍과 형형색색의 만장이 가야산을 붉게 물들였다. 그 때 그 광경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원택 스님이 10월27일 ‘성철 대종사 열반25주기 추모참회법회’ 3천배기도 입재식을 사리탑전에서 거행하고 있다.
스님의 열반재일 하루 전인 지난 10월27일 이른 아침, 저 깊은 기억이 나의 시점을 그때로 되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찬바람과 싸늘한 비는 기억의 생기生起를 위축시켰다. ‘육신에 억류’된 나는 차 안에서 추위를 피하는 못남을 드러내고 말았다. 믿고 따르던 하늘같은 존재가 떠나가면 울음이 크다고 했다. 스님이 떠나고 간 적막한 가야산엔 이날 숲이 울고 있었다. 숲의 울음을 바람이 돕고 바람의 길에는 스님을 그리워하는 대중들의 울음이 섞여 있었다. 성철 스님을 떠올리던 이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날 성철 스님의 사리탑이 세워진 비림碑林은 꽃으로 단장됐다. 신도들이 성철 스님의 사리탑뿐 아니라 비림에 안치된 경하 율사, 영암 대종사, 일타 대종사, 혜암 대종사, 자운 대율사 등의 부도에도 헌화하고 큰스님들의 생전 업적과 사상을 기렸다. 성철 대종사 열반추모 참회법회 3천배 정진 입재는 오전 9시25분 부산 고심정사 연빛합창단의 음성공양으로 시작됐다. 어느새 사리탑을 에워싸고 펼쳐진 3천 여 장의 방석은 주인을 맞아들여 빈 곳이 없었다. “곧 햇빛이 떠오르면 바람이 잠잠해질 것이고 비도 그칠 거예요.” 신도들을 위해 차 공양을 준비하는 한 보살님이 날씨를 걱정하는 나에게 던진 말인데 음성공양이 시작되자 정말 햇살이 사리탑을 비춘다. 간간이 바람이 불자 낙엽이 비처럼 내려앉았다. 그것은 마치 음성공양의 음률에 춤추는 듯 고운 선으로 신도들의 머리와 어깨에 얹혔다.
원택 스님은 음성공양이 끝난 후 인사말에서 남북정상회동 당시 남측 대표로 평양에 다녀온 일화를 소개하며 “성철 큰스님의 덕화와 여러분의 기도공덕으로 남북이 평화로운 통일을 이루어 모두가 함께 잘사는 사회를 이루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본격적인 삼천배 정진에 들어간 신도들은 ‘백팔대참회예불문’을 독송하며 한 배 한 배 호흡을 맞췄다. 백련암 법당에 놓인 방석엔 ‘백팔대참회예불문’이 새겨져 있다. 절을 일상 기도화 하고 있는 신도들을 위해 아예 방석에 예불문을 새긴 것이다. 이날도 신도들은 백팔대참회예불문에 맞춰 흐트러짐 없이 삼천배 정진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예불문이 네 번째 쯤 다시 시작될 때가 되자 신도들의 귀와 볼이 붉게 물들었다. 법복 등줄기에선 땀자국이 드러났다. 허공에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사리탑 일대를 열기로 채우고 있었다.
‘성철 대종사 열반 25주기 참회대정진법회’는 4일4야四日四夜로 진행됐다. 10월24일부터 28일까지 4일4야로 기도하고 절하는 것이다. 성철 스님 사리탑에서의 삼천 배는 3일째 되는 날이다. 성철 스님 문도 신도들의 기도는 남과 다른 특색이 있다. 바로 “남을 위해 기도하라.”는 성철 스님의 평소 가르침을 실천하는 기도다. 자신을 위해 하는 기도는 기복祈福에 가깝다. 자신의 복을 비는 기도는 정법불교가 아니다. 온당한 기도가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남을 위해 하는 기도는 보시布施가 되고 애어愛語가 되며 동사섭同事攝이 된다.
0월27일 고심정사 연빛합창단이 성철 스님 사리탑전에서 거행된 3천배기도 입재식에 참석해 음성공양을 올리고 있다.
절은 또 어떤가? 우선 건강에 이로운 운동이라는 점엔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불자들의 절하는 법을 응용한 요가와 스트레칭이 개발되는 점을 보더라도 절은 전신운동에 효과가 크다. 신행면에서도 절은 최상의 수행법이며 공덕의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절은 하심下心을 가르친다. 오체五體를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자신을 낮추고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상대에 대한 존경심을 표시한다. 말로만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게 아니다. 실제로 몸을 내던져 나를 한없이 낮추면서 상대에 대해서는 최상의 존경심을 표하는 것이다. 이만한 하심이 어디 있는가? 결국 이는 모두 수행으로 귀결된다.
공덕을 쌓는 효과도 크다. 『업보차별경』에서는 부처님께 절하고 예배하면 열 가지 공덕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첫째, 32상과 80종호를 갖춘 묘색신妙色身이 구비된다. 한마디로 엄청난 미모와 건강과 육체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모든 이에게 신뢰를 받는 사람이 된다. 셋째, 모든 두려움이 소멸된다. 넷째, 부처님께서 늘 지켜주신다. 다섯째, 위의威儀를 갖추게 되므로 항상 청아하고 단정한 몸을 유지한다. 여섯째, 화합심이 길러지므로 항상 선한 벗들이 몰려든다. 일곱째, 주위의 사랑과 공경을 받게 된다. 여덟째, 큰 복과 덕을 갖추게 된다. 아홉째, 죽은 뒤에는 부처님이 계신 극락세계에 태어난다. 열째, 마침내 깨달음을 이루게 된다.
하심은 자기를 비워내는 작업이다. 절의 횟수가 5백배를 넘어서고 천배를 넘어서면 자신의 몸이 가벼워진다. 천 근 만 근 몸이 무거워질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부산에서 왔다는 한 거사는 “어느 때 절 삼매에 빠져 있노라면 내 몸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그래서일까. 시간이 지나도 낙오하는 사람이 없다. 백팔대참회예불문은 음악처럼 리듬을 타고 있고, 신도들의 절은 땅으로 돌아가는 낙엽처럼 가볍기 그지없다. 삼천배는 사리탑에서만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잠시 점심공양을 위해 들른 백련암에서도 백팔대참회예불문에 맞춰 신도들이 삼천배 정진에 몰두하고 있었다. 성철 스님 등상等像이 봉안된 고심원古心院도 땀에 젖어있는 상황. 다음 날 오전 7시 회향이다.
성철 스님 사리탑에서 3천배기도를 올리고 있는 불자들.
이번 성철 스님 열반 25주기 추모법회에서는 『성철 큰스님을 그리다』란 책이 무료 배포됐다. 이 책은 백련불교문화재단이 성철 스님의 직계 상좌와 재가 제자들의 추모 인터뷰를 모은 것이다. 성철스님문도회장 천제 스님, 대구 금각사 주지 만수 스님, 해인총림 수좌 원융 스님, 해인사 백련암 감원 원택 스님 등 상좌 16명과 재가 제자 20명의 인터뷰 내용이 정리된 이 책은 비매품으로 발간됐다.
성철 스님 열반 25주기 추모법회는 28일 오전 10시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봉행됐다. 해인총림 방장 원각 스님, 전계사 종진 스님, 주지 향적 스님, 문도스님, 신도 등 600여 명의 사부대중이 참석해 성철 스님의 큰 뜻을 되새겼다.
3천배는 혼을 육신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이다. 원택 스님이 성철 스님을 처음 뵙던 날 “지남이 될 좌우명을 주십시오.”라고 하자, 성철 스님이 절돈 3천원을 요구했다. 원택 스님이 주머니를 뒤져 호기 있게 3천원을 내놓자 성철 스님이 불호령을 내렸다. 그런 돈이 아니라 절돈 3,000원이라면서! 절돈 3,000원은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3천배를 하는 것이었다. 성철 스님이 말씀하신 3천배는 결국 기도자의 혼과 육을 해탈로 안내하는 ‘통행료 같은 것’이리라! 사리탑 3천배는 그래서 구도求道가 되고, 신도들의 환희심을 더욱 타오르게 만드는 ‘신심의 불쏘시개’라 할 수 있다. 해인사 홍류동 계곡의 단풍을 보지 않고 더 아름답고 귀중한 삼천배의 장관을 본 나의 동참도 이미 작지 않은 공덕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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