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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승, 성철]
큰스님께서 말씀하신 증오(證悟)를 깨닫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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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이  /  2015 년 12 월 [통권 제3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69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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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심정사 불교대학 정진반 문선이(겁해지) 전 회장

 

 


 

 

성지순례는 수행일까, 아닐까? 누군가 묻는다면 “최고의 수행법 중 하나”라고 답할 것 같다. 관광객으로 갔다가 수행자가 되어 돌아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수행처를 찾아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스승들의 가르침을 되새겨 보는 것은 수행의 여정에서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순간 발심이 돼 그 자리에서 절이나 참선을 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최근 부산 고심정사 불자들은 미얀마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일주일 동안 양곤과 만달레이, 헤호, 바간 등을 돌아보며 살아 있는 불국토(佛國土)를 직접 체험했다. 불교가 생활속에 스며든 미얀마는 말 그대로 ‘부처님의 나라’였다. 약 2년 전 40명이 채 되지 않았던 인도성지순례 팀은 100여 명 규모로 발전했고, 이 때문인지 미얀마 성지순례는 즐겁고 활기찼다. 

 


틸로민로 사원 앞에 모인 대중들. 

 

두 차례에 걸친 성지순례는 원택 스님을 비롯한 고심정사 스님들의 배려와 불자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원만하게 진행됐다. 인도와 미얀마 성지순례에 동참했던 한 보살님은 “인도는 눈물, 미얀마는 감동”이라고 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 표현에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두 차례의 성지순례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문선이(겁해지・劫海智) 보살님이다. 성지순례에 동참했던 스님들과 불자들 모두 “문선이 보살님이 있었기 때문에 성지순례가 가능했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보살님은 성지순례의 기획부터 실무진행까지 모든 과정을 꼼꼼하게 챙겼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예상치 못했던 일들을 해결하는 것도 보살님의 몫이었다. 보살님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순례는 여법하게 마무리됐다. 

 

전부터 만나고 싶었던 차에 성지순례를 계기로 보살님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인도성지순례에서 보살님의 ‘기운’을 느꼈다면 미얀마에서는 ‘그릇’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보살님이 성지순례 이전에 이미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진정한 ‘백련암 불자’였다는 것이다. 

 


보살님이 마하보디 사원에서 미얀마 스님에게 가사공양을 하고 있다. 

 

“같이 동참한 보살님들이 행복해 하고 즐거웠다고 하니까 저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미얀마 스님들에게 가사를 올리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친견했을 때는 정말 저도 행복했습니다. 앞으로도 모든 신도님들에게 이번 성지순례처럼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면 좋겠습니다.”

미얀마 성지들을 참배하며 진행한 인터뷰는 순례만큼이나 흥미롭고 유쾌하면서 진지했다.

 

“실망”이었던 성철 스님과의 첫 만남

 

“저는 어릴 적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서 불교와는 아주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렇다고 교회에 열심히 나간 것도 아닙니다. 결혼과 동시에 교회 나가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관심도 멀어졌습니다. 그러다 1993년 고 최인호 작가의 『길 없는 길』을 접하고서는 경허 선사에 대한 관심으로 관련 책을 다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한암 스님, 효봉 스님, 경봉 스님 관련 글까지 봤습니다. 경봉 스님을 기린 책 『야반삼경에 빗장문을 만져 보거라』는 지금도 욀 정도로 읽었습니다.

 

성철 큰스님은 제가 늦은 대학생활을 하고 있던 1981년 1월에 발표된 종정 추대 수락 법어로 처음 알게 되었어요.

 


부파야 사원에서 원택 스님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문선이 보살님 부부. 

 

원각(圓覺)이 보조(普照)하니 적(寂)과 멸(滅)이 둘이 아니라 

보이는 만물은 관음(觀音)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妙音)이라.

보고 듣는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시회대중은 알겠는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그 당시 큰스님 법어의 언어적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지만 한편 마음속으로는 당시 시국상황에 대한 말씀이 한마디도 없어서 내심 실망이 컸습니다. ‘광주’가 사람들 마음속에 아픈 역사로 살아 있을 때였잖아요. 불법(佛法)을 알지도 못하던 저의 모습 그대로 말입니다. 하하. 

 

시간이 지나고 제 친구가 아들 수능기도를 하는 것을 보고 저도 절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인연이 크게 이어지지 못하다가 결국 고심정사 불교대학에 오면서 제가 불자(佛子)로 거듭난 것 같습니다.” 

 

보살님은 집 근처 화엄사에서 각성 스님을 모시고 공부하던 중 스님이 불교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고심정사에 오게 됐다고 한다. 고심정사 불교대학에 와서 원택 스님에게 ‘劫海智(겁해지)’라는 법명도 받았다. 2010년의 일이다. 

 

“불교대학에 와서야 고심정사가 성철 큰스님을 시봉하신 원택 스님이 계신 절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와보니 대학시절 접했던 성철 큰스님의 법어가 다시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원택 스님께서 쓰신 『성철 스님 시봉이야기』를 시작으로 큰스님에 관한 책과 학술회의 자료 등을 탐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철 큰스님의 가르침을 익히고 실천해 제대로 실력을 갖추고 싶은 생각에 오늘도 고심정사 불교대학을 떠나지 못하고 이렇게 몇 년째 다니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 

 

보살님은 “불교의 근본이 연기법이며 인연법이듯 오랜 세월 돌고 돌아 고심정사로 오기까지 수많은 인연들이 있었다.”며 “오늘날의 저를 있게 해준 모든 인연들에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보살님은 고심정사에 와서 여느 절들과는 다른 점들이 먼저 보였다고 한다.

“여러 사찰을 전전하면서 절 복장이라고 준비하는 게 법복 바지와 조끼정도였는데 고심정사에서는 모든 보살님들과 거사님들이 동방까지 갖춰 입었습니다.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복장이 갖춰지면 마음까지 여법해지듯 저도 자연스럽게 동방을 갖춰 법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삼천배, 아비라기도, 능엄주 독송, 광명진언 1만800독 등의 수행생활은 앞으로도 계승되어 뿌리깊은 전통으로 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성철 큰스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는 길이니까요.”

 

고심정사에서의 사교입선(捨敎入禪)

 

보살님은 고심정사 불교대학에 와서 본격적으로 불교공부를 시작했다. 불교대학에서만 벌써 8년째 ‘학생’으로 지내고 있다. 

 

대부분의 불교대학생들은 교리반을 시작으로 학과반과 경전반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밟지만 보살님은 각성 스님을 모시고 와서 경전반 수업을 바로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교리반과 학과반을 마치고 다시 경전반에서의 여러 수업들을 듣고 있다. 보살님은 그래서 공식적으로 불교대학 8기다. 

 

“경전반에서 『금강경』 강의 2번, 『법화경』, 『능엄경』, 『유마경』, 『화엄경』, 『육조단경』, 『대승기신론』, 『유식 삼십송』, 『신심명』, 『백일법문』, 『선문정로』 등의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울산대 박태원 교수님의 『니까야』 수업을 들어요. 수준 높은 강의를 통해 참다운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디에 있는지를 점검하고 올바른 깨달음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딛고 있습니다. 좀 더 일찍 부처님 법을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이제 뒤로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정진을 하려 합니다.” 

 


고심정사 불교대학 수업 모습1 

 

보살님은 일과(日課)로 108배와 능엄주 독송, 『신심명』 사경을 하고 있다. 또 한 달에 한 번 고심정사에서 하는 아비라기도와 매주 월요일 참선정진에도 참여한다. 불교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 생활에서의 수행으로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불교 경전이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고 인상적이지 않은 것이 없듯이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스스로를 점검하게 되고 강의의 최종 지점은 참선으로 맺어지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탐욕, 분노, 무지의 세계를 연기법적 관점으로 이해하며 마음속에 엉켜있는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보려 합니다. 앞으로도 마음의 힘을 키워 보도록 더 노력해 보겠습니다.” 

 

앞서 언급한 인도성지순례도 이러한 공부의 과정에서 기획된 것이었다. 보살님은 인도성지순례의 기억을 더듬었다. 

 

“2년 동안 불교대학을 중심으로 매월 적금을 해서 2014년 2월에 다녀온 인도성지순례는 행복 그 자체였습니다. 2500년 전 부처님께서 걸식을 하며 다니셨을 길을 버스로 다니는 것이 송구스러울 따름이었지만, 성도지 보드가야, 열반지 쿠시나가라에서의 순례는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있고, 어두운 갠지스 강에서 천도재를 올리고 나서 영가들의 이름이 적힌종이를 꽃등에 태워 보내면서 순례의 백미를 장식했습니다.

 


인도 보드가야의 마하보디 대탑 모습. 

 

비가 쏟아지는 성도지 보드가야에서는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正覺)을 이루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으리라 다짐하셨던 부처님의 뜨거운 정진의지를 느꼈습니다. 연이틀 비가 왔지만 대중들 틈에 끼어 『금강경』을 독송할 때는 정말로 신심이 났습니다. 보드가야의 웅장한 건축물 마하보디 대탑에서 경이로움을 느낀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내재된 부처님에 대한 믿음의 맛을 보았다고 할까요. 하하. 어쨌든 40여 대중들과 함께 한 인도순례는 정말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보살님은 불교대학을 다니기 전까지는 그저 기복적인 종교인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변했다고 한다.

“수업을 통해 체계적으로 배운 불교는 사람이 근본적인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정말로 성철 큰스님이 말씀하신 ‘영원한 자유’와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탐욕과 분노와 무지를 일으키는 조건들을 살펴보고 누구나가 맞는 독화살에서 2차, 3차 독화살로 자신을 자해하는 무지에서 벗어나 정말로 눈 밝은 불자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不欺自心(불기자심)의 한 길로…”

 

보살님은 불교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 깨달음에 대한 관심도가 부쩍 높아졌다고 한다. 다양한 방편을 통해 공부도 하고 있다. 특히 보살님은 운전을 할 때마다 성철 스님의 법문 CD를 듣는다. 벌써 몇 년째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듣다보니 이제 성철 스님의 법문을 외울 정도가 되었다. 

 


인도성지순례중 쿠시나가라에서의 기념 촬영. 맨 오른쪽이 보살님이다. 

 

“처음에는 말씀도 빠르시고 내용도 어려워 알아듣지 못했는데, ‘백일법문’ CD를 되풀이 해 듣다보니 큰스님께서는 무엇을 저토록 우리에게 전하고 싶으신지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 주변의 스님과 불자들 중에는 성철 큰스님의 깊은 뜻을 제대로 고민해 보지도 않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편견으로 큰스님을 평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제가 수없이 반복해서 들었던 큰스님의 육성법문에서 알게 된 사실은 해오(解悟)와 증오(證悟)의 차이를 모르고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깨달음을 판단하는 것이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조그마한 견처가 생기면 거기에 빠져 도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큰 오산입니다. 큰스님 말씀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그때 공부는 망하고 맙니다. 『신심명』에서 말하는 ‘執之失度 必入邪路(집지실도필입사로)’입니다. 깨달음에 집착하면 법도를 잃게 됩니다. 그래서 반드시 삿된 길로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보살님은 성철 스님의 가르침 ‘不欺自心(불기자심)’ 즉, ‘자기를 바로 봅시다’를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다고 밝혔다. 

 


고심정사 법당에서 성철 스님 진영에 예를 올리는 보살님 1 

 

“달마 대사께서는 ‘밖으로 모든 반연을 쉬고 안으로 헐떡거림이 없어서 마음이 장벽과 같아야 도에 들어갈 수 있느니라(外息諸緣 內心無喘 心如墻壁 可以入道)’고 하셨잖아요. 성철 큰스님께서 평생 동안 말씀하신, 해오(解悟)의 도(道)가 아닌 증오(證悟)의 도(道)를 실천적으로 깨닫도록 열심히 수행하겠습니다.” 

 

보살님은 성철 스님의 가르침은 부처님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성철 스님의 사상이 더 널리 전해질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를 더 만들어 후학들이 그것을 더 펼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큰스님의 중도(中道)는 불교의 핵심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중도를 수없이 강조하셨잖아요. 모두가 중도의 삶을 이해해서 나날이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인터뷰가 마무리 될 때쯤 보살님은 당신의 일기장에 있는 구절이라며 게송을 하나 적어 준다. 조선시대 때 어느 고승이 쓴 것이라고 한다. 보살님은 수행에 어려움이 있어도 그것들을 하나하나 극복하고 싶다고 했다.

 

無風天地無花開(무풍천지무화개)

無露天地無結實(무로천지무결실)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필 수 없고

이슬내리지 않는 곳엔 열매도 없다.

 

또 자주 읊조리는 글이라며 몇 글자를 더 보탰다.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이 없으되

그대를 꽃으로 볼 일이로다.

 

털려고 들면 먼지 없는 이 없고,

덮으려고 들면 못 덮을 허물이 없으되

누구의 눈에 들기는 힘들어도

그 눈 밖에 나기는 한순간이더라.

 

귀가 얇은 자는

그 입 또한 가랑잎처럼 가볍고,

귀가 두꺼운 자는

그 입 또한 바위처럼 무거운 법.

 

겸손은 사람을 머물게 하고

칭찬은 사람을 가깝게 하고

넓음은 사람을 따르게 하고

깊음은 사람을 감동케 하니

 

마음이 아름다운 자여!

그대 그 향기에 세상이 아름다워라

 

보살님은 남편과 함께 조그만 철강유통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부처님과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통해 극복했다고 한다. 앞으로도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담고 고심정사와 불교대학에서 활약하는 보살님의 모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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