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승, 성철]
“무한한 능력과 영원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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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주 / 2015 년 7 월 [통권 제27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783회 / 댓글0건본문
부산 옥천사 주지 백졸 스님
얼굴을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관상(觀相)과는 다른 그 무엇이 얼굴에 있음을 느낄 때가 가끔 있다. ‘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는 말이 아니어도, 세월이 흐르면서 이 말에 더 동의하게 된다.
절도 마찬가지다. 절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일주문(一柱門)을 보면 가풍(家風)이나 사격(寺格)을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부산 범어사의 일주문에는 ‘禪刹大本山(선찰대본산)’이, 양산 통도사에는 ‘佛之宗家 國之大刹(불지종가 국지대찰)’이, 보은 법주사에는 ‘湖西第一伽藍(호서제일가람)’이라는 글씨가 걸려 있다. 이 글귀들만 보아도 사찰의 역사와 지향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경내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
‘메르스’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했던 6월 첫 주 주말 부산 옥천사를 찾았다. 옥천사의 활동을 알 수 있는 색색의 현수막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매주 화요일 점심에 진행하는 지역 어르신 무료 사찰음식 대중공양, 2007년 7월부터 진행해 온 능엄주 108독 철야정진,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진행하는 컴퓨터 및 인터넷 무료 교육 등등. 수행과 나눔이 바로 옥천사에 있었다.
다시 시선을 돌리니 일주문 중앙에는 ‘萇山玉泉寺(장산옥천사)’라는 편액과 함께 양 기둥에는 ‘山色文殊眼 水聲觀音耳(산색문수안 수성관음이-산색은 문수보살의 눈이요, 물소리는 관음보살의 귀로다)’ 글씨가 당당하게 서 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으니, 바로 ‘남모르게 남을 도웁시다’ 현수막이다. 한 번에 옥천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정체를 알고 나니 마음이 편해진다. 흡사 ‘큰고모 댁’에 놀러온 기분으로 옥천문화원을 따라 대웅전으로 올라갔다. 옥천문화원에는 천초(千草) 작은도서관과 어린이법당 등이 들어서 있다. 발걸음을 재촉할수록 문화원을 비롯한 경내 곳곳에 붙어 있는 문구들이 또 눈에 들어온다. 본능적으로 옥천사의 ‘실체’에 좀더 다가서고 있음을 직감한다.
‘거룩한 당신의 본모습을 보라’-퇴옹 성철, ‘능엄주 암송으로 잠자는 뇌를 깨우라’,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면 마음이 온화해진다’, ‘배려하는 순간 장애는 극복된다’, ‘기도는 자기를 바로 보기위한 노력이다’, ‘공손한 것도 나누는 것이다’ 등등.
대웅전에 들어가니 성철 스님이 눈에서 빛을 쏘아대며 ‘한 눈 팔지 말고 정진하라’고 경책하는 듯하다. 참배를 마치고 접견실로 갔다.
“부처님은 우리의 연인(戀人)이자 인연(因緣)”
50여 불자들이 접견실에서 주지스님을 기다리고 있다. 조금 뒤 환한 미소를 가득 담은 얼굴의 노(老) 비구니스님이 들어선다. 바로 옥천사 주지 백졸 스님이다.
매월 첫 주 주말 옥천사 불자들은 능엄주 108 독송 철야 기도를 진행한다. 토요일 오후 5시 시작해 일요일 새벽 5시에 끝나는 일정이다. 본격적인 정진에 앞서 대중들은 백졸 스님께 법문을 듣고 또 지난 한 달간의 수행을 점검받는다.
옥천사 일주문
“부처님은 만인의 연인입니다. 우리 모두가 부처님을 존경합니다. 또 부처님도 모든 중생을 사랑합니다. 물론 때로는 무뚝뚝하기도 하십니다. 저는 지난 수십 년간 우리 부처님전에 정열을 바쳤는데, 아직 윙크도 못 받았습니다. 하하.
우리의 마음은 하늘보다 높고, 땅보다 두텁고, 바다보다 깊고, 허공보다 넓습니다. 진실한 나<眞我>에는 무한한 능력 그 자체의 차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정진을 하고 기도를 합니다. 능엄주를 독송하는 것은 내 속에 있는 착각, 망상, 편견을 알고 없애가는 과정입니다.
원(願)을 세워 정진하세요. 우물에 눈이 떨어지면 녹습니다. 하지만 계속 내리다 보면 우물에 물이 찹니다. 드넓은 산에 눈이 내리면 처음에는 녹고 맙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온 산이 눈 세상이 되고 맙니다. 기도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뭐가 안 된다고 실망하지 말고 하기 싫어도 하고, 하고 싶으면 더 하고, 그렇게 꾸준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오는 것입니다.”
백졸 스님의 법문에는 웃음과 흥겨움이 함께 했다. 불자들은 때로는 박수를 치며,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을 듣는다. 백졸 스님을 비롯한 대중들은 성철 스님의 법어 ‘한 물건’(『자기를 바로 봅시다』 中)을 합송한 뒤 자리를 정리했다.
능엄주 정진에 앞서 법문을 듣고 있는 불자들
한 시간여의 법문이 끝나고 사람들은 능엄주 독송을 위해 대웅전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몇몇 신도들은 자리에서 꿈쩍하지 않고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순간 백졸 스님은 인자한 어머니로 변해 있었다.
“절을 계속해오다 엊그제부터 매일 삼천배를 시작했습니다. 오늘까지 3일을 했는데 너무 겁이 납니다. 우선 21일을 하려고 하는데,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그러면 100일을 해봐. 100일 해도 안 죽어. 화두 있지? 삼서근(麻三斤) 화두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100배씩 나누어서 해. 망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화두로 점검하면서 하면 아주 상큼한 정신력이 계속돼서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어.”
“108배를 49일 했는데 몸이 너무 아픕니다. 의사가 무슨 일 있냐고 물어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안하다 절을 하니까 몸이 아픈 거야. 좀 더 익숙해지면 금방 괜찮아져. 의학으로 해명 못하는 것이 우리 기도야. 그래도 계속 아프면 병원에서 치료를 하면서 해봐. 몸뚱이는 쉬고 놀아주어도 아픈 거야.”
“지난달에 스님께 일과 500배를 받았습니다. 절을 하다 보니 재미가 있어서 700배, 800배를 했습니다. 결국 며칠 못가 탈이 났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방광염이 왔다고 합니다.”
“욕심을 부리면 안 돼. 방광염이 다 낫지를 않았으면 한 번에 하지 말고 몇 번 나눠서 해. 절은 재미있지?”
“네.”
“그러면 다시 일과를 줄게. 300배씩 3번해. 능엄주는 30독을 하고. 할 수 있겠어?”
“주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부지런히 해. 금방 늙는다.”
옥천사 대웅전에서 능엄주 독송을 하고 있는 불자들
오후 5시가 되자 백졸 스님과 함께 대웅전으로 갔다. 법문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까지 100여명의 대중들은 흔들림 없이 독송을 해 나갔다.
“스타타가토스니삼 시타타파트람 아파라지탐 프라튱기람 다라니……” 몇 번을 읽어보긴 했지만 아직도 생소한 단어에 숨이 멎을 듯하다. 그러나 대중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능엄주 독송을 하는 불자들을 본 뒤 자리를 다시 옮겨 백졸 스님의 수행여정, 평생의 스승 성철 스님과의 인연을 듣기 시작했다.
“니 등가원리(E=mc2) 아나?”
백졸 스님은 1974년에 옥천사로 왔다. 기도하고 수행하기 좋은 절을 찾던 중 만난 곳이 옥천사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겠지만 그때 옥천사는 깊은 산중에 있었습니다. 옥천사에 오니 개울물도 흐르고 물레방아도 돌고 있었어요. 화두를 챙기면서 절 좀 실컷 하려고 왔습니다. 처음에는 한 철만 있으려고 했는데, 절에 계시던 스님이 다른 사찰로 가버렸어요. 그래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눌러 앉았습니다.
처음에는 대중도 없으니 기도하기가 좋았습니다. 그러다 ‘옥천사에 절을 하는 스님이 있다’고 소문이 났는지 신도들이 와서 대웅전 앞마당에서 절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걸 두고 볼 수 없어서 불사를 해 지금의 옥천사가 되었습니다.”
백졸 스님은 법문 이후에도 신도들과 맞춤형 상담을 했다
출가 이후 수행 외에는 관심이 없었던 백졸 스님은 자신의 정진을 위해 옥천사에 왔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불교와의 인연, 성철 스님과의 만남으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큰스님과의 인연은 어머니로 인해 만들어졌어요. 사실 제가 어렸을 때 남동생이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저를 비롯한 형제들에게 너무 잘 해주시는데 슬픔에 빠진 부모님을 위로해 드리지도 못하고 무엇 하나 도와드릴 수 없는 제 자신이 너무 한심했습니다. 한참 힘들어 하시고 계실 때 주위 분들의 소개로 어머니는 큰스님을 친견하게 되었고 큰스님께 많은 가르침을 받으셨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께서 저에게 병원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큰스님께서 부산 시내 한 병원에 잠깐 입원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따라 나섰습니다.
병실 문을 여는 순간 정말 사람한테서도 빛이 난다는 얘기를 실감했습니다. 큰스님의 눈에서 빛이 나오는데,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스님이라는 사람’을 처음 봐서 그런 것인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조금 있다가 궁금한 것이 생겨서 큰스님께 여쭈었습니다.
‘스님은 왜 스님이 되셨어요? 그 길에는 어떤 좋은 것이라도 있습니까?’
‘……. 가시나! 니 등가원리 아나?’
‘네.’
조금 당돌하게 여쭈었음에도 큰스님은 등가원리(E=mc2)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하셨습니다. 이 원리에서 핵폭탄이 만들어졌다고 하시며 모든 질량(m)에는 광속을 자성한 만큼의 막대한 힘이 있듯이 우리 정신력에도 핵폭탄 이상의 능력이 있다, 아니 더 큰 능력을 찾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무한한 능력과 영원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불교 용어를 하나도 쓰지 않고 말씀하시는데 정말 놀랐습니다. 그 때의 큰스님 말씀에 제 마음은 대지진을 겪은 것처럼 흔들려 버렸습니다. 하하.”
성철 스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평소 꿈꾸었던 의사나 교육자, 자선사업가가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핵폭탄 같은 사람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데 기여하겠다.” 백졸 스님은 다짐했다.
옥천사 전경
스님은 다시 성철 스님을 만나러 파계사 성전암으로 갔다. 성철 스님에게 ‘영원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여쭈었다.
“한 가지만 하면 된다. 참 좋은 것이 있데이. 알고 싶나?”
“네.”
“니 그럼 등록금 내라!”
“네. 내겠습니다.”
“그란데 그 돈은 한국은행권이 아니야!”
스님은 삼천배를 하고 오라는 말씀임을 알아차렸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스님은 삼천배를 하고 ‘삼서근(麻三斤)’ 화두를 받았다. 성철 스님은 “이 화두를 놓치면 살아 있어도 송장이다.”며 부지런히 참구할 것을 당부했다.
화두를 받고 보니 모든 일은 후순위가 되어 버렸다. 오직 화두만을 붙잡기 위해 발버둥 쳤다. 4층에 있던 방에 홀로 앉아 있으니 전차 지나가는 소리, 사람들 오가는 소리, 동생들 뛰어 노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화두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결론은 ‘가출’(?)이었다. 1956년, 스님은 부모님께 일주일만 절에 가서 공부하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해인사 청량사로 갔다. 청량사에서 친구 불필 스님을 만났다. 공부를 하다 보니 일주일이 한 달이 되고 또 3개월이 훌쩍 지나버렸다. 일주일만 공부하고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스님은 다시 거처를 옮겼다. 그렇게 태백산 홍제암, 대승사 묘적암과 윤필암, 석남사 등으로 다니며 공부를 했다. 그 사이 시간은 벌써 2년이 흘러 버렸다.
“공부가 생각만큼 안됐어요. 그래서 ‘장기전’을 생각했습니다. 결국 큰스님께 출가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성철 스님은 스님에게 ‘백졸(百拙)’이라는 법명과 함께 게송을 내렸다.
住在千峯最上層(주재천봉최상층)
年將耳順任騰騰(연장이순임등등)
免敎名字掛人齒(면교명자괘인치)
今朝甘作百拙僧(금조감조백졸승)
머무는 곳은 깊은 산속
나이 육십에 이르러 자유자재함이라.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림을 벗어나
금일에 이르러 이제 백졸승이 됨이라.
“백가지가 못났다는 말입니다. 잘난 것은 하나도 없고 못날 대로 못났으니 바보처럼 공부만 하라고 주셨어요. 하하.”
백졸 스님의 속가 부모님이 기증한 천초탕 자리에 세워진 고심정사
성철 스님에게 법명을 받은 스님은 울산 석남사로 가 인홍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스님이 성철 스님을 모시고 공부하고 있던 것을 알았던 인홍 스님은 출가를 반겼다고 한다.
성철과 인홍, 최고의 스승
잘 알려져 있듯이 인홍 스님 역시 성철 스님을 스승으로 여기며 공부를 했었다. 당시 불교계에서는 인홍 스님이 ‘비구니계의 성철’로 회자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출가를 결심하고 찾아온 제자가 성철 스님에게 공부를 배웠다고 하니 인홍 스님 역시 기대가 컸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백졸 스님은 인홍 스님을 “본분에 투철한 참스승”이라고 강조했다.
“은사스님은 평생 승려의 본분을 지키며 정진하셨고 또 후학들을 위해 헌신하셨던 분입니다. 은사스님께서는 특히나 젊은 후학들이 한 눈을 팔면 가차 없이 혼을 내셨던 기억입니다. 석남사에 살 때 전 대중이 팀을 이뤄 탁발을 나갔습니다. 탁발 기한은 일주일이었는데 제가 속해 있는 팀이 일주일을 훨씬 넘겨 석남사로 돌아왔습니다. 절로 들어가는데 시래기가 보였습니다. 시래기를 보는 순간 겨울 김장이 다 끝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은사스님께 엄청 혼날 것이라는 것도 생각했습니다.
법문하고 있는 백졸 스님
아니나 다를까, 은사스님께서는 저희 일행을 보시자마자 커다란 대나무 작대기로 저희들을 쫓으셨습니다. 대중생활을 못했다는 경책이었습니다. 며칠 동안이나 참회를 해서 겨우 살아남았습니다.
또 한 번은, 대중들이 다 같이 산에 가서 나무를 하고 나면 함께 모여서 차를 마십니다. 그런데 젊은 스님들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조금 지루합니다. 어른들 사이에서 차를 먹고 앉아 있는 것도 편하지는 않고요. 은사스님께서는 차가 먹기 싫으면 산에 가서 나무를 한 짐 더 해오라고 하십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여법한 대중생활을 위한 훈련 과정이었는데 저희들이 스님 속도 모르고 너무 철없이 살았습니다.”
백졸 스님은 석남사 시절에도 화두와의 대결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공부가 수월하지는 않았다. 성철 스님을 찾았다. 성철 스님의 당부는 한결같았다. “한 길로 묵묵히 가라.”는 것이었다. 성철 스님을 만나고 오면 공부가 잘 됐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지지부진. 또 성철 스님을 찾아 갔다. 몇 번을 그렇게 하니 1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공부를 해보니 시간이 갈수록 망상은 적어집니다. 그렇다고 공부가 분명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러니 속에서 불이 납니다. 『선관책진』에 보면 원오 선사께서는 ‘10년 동안 이연(망상)이 없었다’고 말씀을 하신 구절이 나옵니다. 저는 한 시간도 어려운데 10년간 번뇌망상이 없었다는 말씀을 보고 너무 부러웠어요. 결국 또 큰스님을 찾아 갔습니다.”
성철 스님은 백졸 스님이 공부를 물으러 온 것을 알고 다른 처방을 내렸다. ‘화두 중에는 능엄주 화두가 제일 크데이.’
“능엄주를 하라는 큰스님 말씀을 들어도 ‘필(feel)’이 안와요. 옥천사에 와서 대중들에게 그 얘기를 하니 제 상좌인 정혜 스님이 삼천배와 능엄주 독송 10년 기도를 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저는 격려만 해줬지 같이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대중들을 보니 온 몸에 빛이 넘쳐요. 그때 대중들이 모두 능엄주와 절을 하고 있었거든요. 꼭 살아 움직이는 산수화 같았어요. 그래서 저도 삼서근 대신 능엄주로 바꾸었는데 변속이 어려웠지요.
능엄주는 3000단어가 넘어요. 외우다가 한 글자만 틀리면 다시 해야 합니다. 그러니 집중을 안 할 수 없습니다.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됩니다. 화두는 상대적으로 망상이 비집고 들어올 여지가 많습니다. 계속 하다 보니 큰스님께서 말씀하신 ‘능엄주가 화두’, 즉 화두 공부는 착각(망상)에 매몰되지 않는 노력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화두 중에는 능엄주 화두가 제일 크데이!”
‘능엄주(대불정능엄신주)’는 『능엄경』에 있는 주(呪)로써, 이 주문을 외우는 사람은 세간에서 뛰어난 지혜를 이루고 모든 선신(善神)이 밤낮으로 따라다니며 보호한다고 한다. 또 능엄주를 독송하면 온갖 죄업이 사라져 청정한 본래 근본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전해진다.
백졸 스님은 능엄주 독송을 1. 정확하게 할 것 2. 침착하게 할 것 3. 외워서 할 것 4. 속도 있게 할 것 5. 시간적으로 연속해서 할 것을 주문했다.
스님은 또 능엄주 독송의 효험으로 『마조록』의 한 구절을 예로 들었다.
‘心地若空 慧日自現 雲開日出 具足一切功德 自然具足神通妙用(심지약공 혜일자현 운개일출 구족일체공덕 자연구족신통묘용) - 마음대지가 텅 비면 구름장이 열리고 해가 나오듯 지혜의 햇살 일체공덕이 저절로 나타난다.’ 또 『기신론』의 ‘妄心滅卽 法身顯顯(망심멸즉 법신현현) - 망상, 착각, 편견, 혼침이 사라지면 즉시 법신이 나타난다’을 제시하기도 했다.
옥천사는 매년 어린이 능엄주 독송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백졸 스님은 “공부의 목적이 여기에 있어요. 저는 공부에 도움이 되는 책을 세 가지 추천합니다. 『원오심요』는 공부하는 사람에게 부처님이 주신 간절한 편지라고 생각해요. 『육조단경』과 『돈오입도요문론』은 공부의 내비게이션입니다. 꼭 수지독송하세요.”
백졸 스님은 성철 스님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스승”이라고 말했다. “큰스님께서 시키는 대로 안하니 결국 공부가 안 됐습니다. 큰스님을 친견하면 꼭 여쭈었어요. 깨치면 어떠냐고요. 그러면 큰스님께서는 ‘눈 감고 자도 환하다’고 하십니다. 아직도 환한 세상을 못 봐 큰스님께 죄송할 따름입니다. 하하.”
팔순의 노스님은 예정된 시간을 훨씬 넘기면서도 유쾌하게 인터뷰를 계속했다. 어느덧 능엄주 독송 3시간이 지나 저녁 공양 시간이 됐다. 대중들과 함께 저녁공양을 한 뒤 다시 백졸 스님을 찾아 지면에 담을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말씀을 들었다.
능엄주 독송이 계속 될수록 도시는 잠에 빠져들었지만 옥천사 대중들은 더 또렷하게 깨어났다. 일주문을 나서는데 이번에는 ‘선문정로(禪門正路)’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선문의 바른 길은 무엇일까? 불교의 올곧은 방향은 무엇일까? 밤을 새워 가며 정진하는 대중들과 이를 지도하는 백졸 스님 같은 어른들이 있기에 ‘선문정로’는 명확하다는 생각을 하며 절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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