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산책]
흰 개가 서리 맞은 낙엽을 물고 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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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기 / 2019 년 10 월 [통권 제78호] / / 작성일20-05-29 10:13 / 조회6,680회 / 댓글0건본문
백원기 | 동방문화대학원대 석좌교수 · 문학평론가
부휴선수(1543-1615)는 ‘만일 자식을 얻으면 출가시키겠다’고 서원하고 기도를 올렸던 모친이 신승으로부터 원주圓珠를 받는 태몽을 꾸고 태어났다고 한다. 17세 때 지리산 영원사 신명 장노에게 출가하여 부용영관의 심법을 이어 받은 그는 성종과 연산군의 법난이 있은 뒤 사형인 서산대사와 함께 불교를 중흥에 힘썼다. 특히 스승으로부터 문자를 떠난 격외선을 배워 참구하였던 부휴는 도는 다른데 있지 않고 오직 자신에게 있음을 강조하며 조주 선지禪旨를 익힐 것을 강조하였다.
도는 다른 데 있지 않고 오직 내게 있으니 道不在他唯在我
모름지기 멀리서 구하거나 하늘에서 구하지 말라 不須求遠不求天
마음 거두고 고요히 산창에 앉아서 收心靜坐山窓下
밤낮으로 항상 조주선을 참구할지니라 晝夜常參趙州禪
심산유곡은 수행자들에게 더 없는 깨달음과 보임의 도량이고, 그러한 자연과의 교감은 한결 세외지미世外之美의 깊은 선취를 느끼게 한다. ‘부휴浮休’라는 법호가 의미하듯이, 선사는 혼란스런 세상을 벗어나 산 속에 혼자 초탈한 삶을 살았다. 선사의 이러한 수행의 삶은 깊은 산중에서 홀로 참선 수행을 하며 차 사발 하나와 한 권의 경전으로 살아가는 모습에서 한결 잘 드러난다.
깊은 산 홀로 앉으니 만사 가볍고 獨坐深山萬事輕
문 닫고 온 종일 무생을 배우네 掩關終日學無生
생애를 점검해 보니 남은 것 없고 生涯點檢無餘物
차 사발 하나와 햇차, 한 권의 경전뿐이네. 一椀新茶一券經
제자 벽암각성에게 준 시편이다. 번다한 생각을 내려놓고 무생의 도리를 배우며 살아가는 검박한 수행의 삶이 잘 드러나 있다. 모든 연緣을 여읜 선사에게 문을 열고 닫음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만, 무생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 문을 닫고 선정에 드는 것이다. 평생 살아 온 삶을 점검해 보니 남긴 물건 하나 없고, 차 사발 하나와 햇차, 그리고 한 권의 경전뿐이라는 대목에는 산승의 청빈하고도 무욕의 삶의 향기가 그대로 녹아 있다. 이것이 바로 수행자의 본분사이다.
스승 부용영관의 심법을 이어받아 수행자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고 격외선을 참구했던 부휴는 두류산(지리산)에 토굴을 마련하고 정진하였다. 그러던 어느 해 가을, 토굴에 함께 지내던 개가 낙엽을 물고 오는 것을 보고 몰록 깨달음을 얻었다.
가을 산중에 성근비가 지나가고, 秋山疎雨過
서리 맞은 잎 정원 이끼 위에 떨어지네 霜葉落庭苔
하얀 개에게 소식을 전하고 白犬通消息
선정에서 깨어나 학을 타고 오도다. 罷禪御鶴來
자연은 단지 대상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연과 합일을 추구하는 이상이며 그 자신의 해탈의 경계로 표상된다. 가을 산중에 성근비가 내리고, 정원의 이끼 위에 떨어지는 서리 맞은 잎을 하얀 개가 물고 오는 자연의 이법에서 깨달음을 증득한 것을 표현한 오도송이다. 화두를 타파하고 얻은 깨달음을 선정에서 깨어나 학을 타고 오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분별과 차별을 뛰어넘은 무심의 경지에서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다.
‘심우’ ‘백척간두진일보’ ‘부모미생전’ ‘허공의 꽃’ 등은 선가의 전형적인 어법이다. 선가에서는 소를 찾는 일을 자신의 본성을 깨닫는 일에 비유한다. 부휴는 어느 선승에게 준 다음의 시에서 도를 배우는 것은 별다른 것이 아니라 소를 타고 집으로 가는 것이고, 또한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면 제불은 눈앞의 꽃[공화空華]에 지나지 않음을 설한다.
스승을 찾아 도를 배우는 것 별다른 것 아니요 尋師學道別無他
다만 소를 타고 집으로 가는 것이네 只在騎牛自到家
백척간두에서 능히 활보할 수 있다면 百尺竿頭能闊步
수많은 부처조차도 눈앞의 꽃에 불과하네. 恒沙諸佛眼前花
소를 타고 소를 찾는 것은 자기에게 이미 있는 불성을 다른 데서 찾으려하는 어리석음을 경책한다. 소를 타고 있으면 저절로 집으로 가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자기가 타고 있는 소를 두고 또 다른 소를 찾고 있다. 문제는 백척간두에 올라 선 것이 능사가 아니라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결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금강金剛의 눈을 얻을 수 있고,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부처가 눈앞의 꽃, 즉 ‘공화空華’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선사들은 번다한 세속의 모든 일을 초월하여 자연과 벗 삼아 살아간다. 인생살이가 본래 고독한 것이기는 하지만, 출가 수행자의 경우 그 고독을 친구나 스승으로 삼고 살아간다. 부휴라는 법호가 암시하듯이, 부휴 선사는 자신을 항상 자연 속에서 이리저리 부유하고 있는 존재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은 눈이 내려 온 천지가 하얗고 달빛 가득한 빈 절에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끝없는 상념에 잠기는 모습에서 한결 극화되고 있다.
흰 눈에 달빛 어리고 밤은 깊은데 雪月三更夜
떠나온 고향생각 끝이 없네 關山萬里心
맑은 바람 뼛속 깊이 파고들고 淸風寒徹骨
홀로 떠도는 나그네 시정에 젖네 遊客獨沈吟
공림사라는 절에서 유숙하면서 지은 시이다. 설한雪寒에 외로움이 더해지는 깊은 밤, 고독한 선사는 잠 못 이루며 선정에 들고 있다. 달빛에 눈이 흰 것인지 눈에 달빛이 흰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그네의 상념은 끝이 없다. 하지만 그 생각이 멎는 곳은 두고 온 고향이다. 출가자에게는 고향이 따로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선사는 몰려오는 망향을 ‘만리심’이라 하였다. 이 때 맑은 바람의 한기가 방안을 차갑게 하다못해 뼈 속으로 찾아든다. 그러니 선사의 시정詩情에는 말할 수 없는 간절함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
부휴는 세속을 결별하고 임천林泉에 은거하며 검박하게 살면서 출가자의 본분에 충실하고자 하였다. 덕화로 많은 대중들을 교화하였던 선사는 웃음과 담소로 화합하고 또한 자연을 관조하며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고자 했다. 하여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선사는 인간사는 허공을 지나는 한 조각의 구름과 같은 덧없는 것으로 담아내고 있다.
강호에 봄이 가고 꽃을 흩날리는 바람 江湖春盡落花風
해 저물녘 벽공을 지나는 한가로운 구름 日暮閑雲過碧空
그로 인해 덧없는 인간살이 알았으니 憑渠料得人間幻
한 바탕 웃음 속에 온갖 일 다 잊네. 萬事都忘一笑中
산하대지에 봄이 가고, 미풍에 꽃이 지는 것, 그리고 해 저물녘 푸른 하늘에 한가로이 흘러가는 구름, 이들을 통해 선사는 인간사 모든 것이 무상한 것임을 깨달았다. 흔히 삶은 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고, 죽음은 구름이 사라진 것으로 비유된다. 사실은 구름자체도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선사는 한 바탕 크게 웃어 세상일을 잊고자 하는 것이다. 탈속한 산승의 세외지심世外之心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임진왜란 당시 부휴는 신체적 결함, 즉 왼손과 팔을 자유롭게 쓸 수 없어 전장에 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산문에서 전선으로 나간 사형 서산과 사제 사명을 지원하였을 뿐만 아니라 선승으로서 승단질서를 확립하고 선문강령을 재정비하는데 진력하였다. 또한 전란으로 서로 뒤엉켜 나뒹굴고 있는 백성들의 시신을 땅에 묻어주고 그들을 위해 위령제를 지내주었다. 이러한 애국애민의 사상이 다음의 시에서 선명히 그려지고 있다.
애국과 애민의 마음이 더 깊어진 것은 愛國憂民日益深
병화로 모든 집이 타버렸기 때문이네 只緣兵火萬家侵
비록 가슴 속에 충정심 가득하지만 滿空雖有忠情在
한 쪽 손이라 붉은 마음 나타낼 길 없네. 雙手無因露赤心
부휴는 직접 창과 방패로 무장하여 전장에 나가지 못했지만 제자 벽암각성을 지도하여 전장에 나아가 혁혁한 전공을 세우게 하였다. 그런데 선사는 병화로 모든 집이 불타버린 참혹한 상황을 목격하고 애국애민의 마음을 절실히 느꼈다. 애석하게도 한 쪽 손만 있고 다른 손을 쓸 수 없어 전장에 나갈 수 없음을 한탄하고 있는 충정과 자비심은 가슴 가득한 ‘붉은 마음’이라는 표현에 선명히 응축되어 있다.
일념회기一念回機 · 일념회광一念回光 · 회광반조回光返照를 강조하여 임진왜란 이후의 불교계를 정비하는 일에 힘썼던 부휴는 72세에 조계산 송광사에서 방장산 칠불암으로 거처를 옮겼다. 다음 해 11월 상족제자 벽암각성에게 법을 맡긴 후 원적에 들었는데, 세수 73세, 법랍 57세였다. 문도들이 사리를 수습해 해인사, 송광사, 칠불암, 백장암에 봉안하였으며, 광해군이 홍각등계弘覺登階라는 시호를 하사하였다. 선사의 700여명의 제자 중 벽암각성, 뇌정응묵, 대가희옥, 송계성현, 환적인문, 포허담수, 고한희언 등이 있어 조선 중기의 불교계 11파 중 7파를 형성하여 법맥을 드날렸으며, 취미수초, 백곡처능 등 뛰어난 시승이 그 가풍을 계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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