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땀 흘리는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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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 2024 년 8 월 [통권 제136호] / / 작성일24-08-05 10:10 / 조회1,413회 / 댓글0건본문
필자는 어려서 불상이나 탑비에서 땀이 흐르면 나라에 큰 재앙이 일어날 조짐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간혹 신문 지면에 어느 지역의 불상이 땀을 흘렸다고 하면 혹시나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가령 밀양 표충사의 표충비석은 1894년 갑오경장 7일 전에 62ℓ의 땀을 처음 흘렸으며, 1910년 한일병합, 1919년 3.1운동, 한국전쟁, 5.16쿠데타 등 국가 중대사가 있을 때마다 땀을 흘렸다고 한다.
나라의 재앙을 예고한 불상
불상의 신이한 이적을 기록한 것은 『삼국유사』에서부터 보이지만, 땀을 흘린 이적에 관해서는 고려시대 이규보(1169~1241)의 「왕륜사 장륙금상 영험수습기王輪寺丈六金像靈驗收拾記」라는 글에서 처음 보인다.
나라에 장차 무슨 큰 재앙이 일어나려 할 때에는 장륙금상이 먼저 땀을 흘리고 좌우의 진흙으로 빚은 보살상과 돌에 새긴 『화엄경』 속에 있는 모든 여래·세존·불佛·보살이란 글자는 다 젖지만 그 밖의 글자는 젖지 않았다. 이것은 장륙금상이 우리 국가를 수호하면서 미리 깨우쳐 타이르는 것이다. - 『동국이상국집』 권25
나라의 큰 재앙이 일어나려 할 때마다 개경 북쪽 왕륜사의 비로자나불 장륙금상(16척의 황금 불상)과 좌우의 보살상에서 땀을 흘렸고, 또 돌에 새긴 화엄 석경에서도 땀이 났는데 여래·세존·불·보살이라는 글자에만 땀이 젖었다는 이야기다. 이규보가 살았던 시기는 몽골의 침략을 받던 시기이므로 왕륜사의 불상과 석경에서 땀이 흐르면 몽골이 침략해 올 조짐이라 여기고 대비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불상의 이적에 관한 인식은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전해졌다. 변계량(1369~1430)이 찬술한 「낙산사행소재법석소洛山寺行消災法席䟽」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거룩하신 부처님께서 나라를 보호하는 자비에 어찌 다함이 있으오리오만, 소자가 재앙을 만나 두려워서 어찌할 줄 몰라 이에 간절히 귀의하오며 이익 받기를 바라옵니다. … 정치를 잘못하고 지나친 형벌을 가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이에 천제天帝께서 마음으로 검열하시고 꾸지람을 내리시매, 비를 많이 내려 산사태로 인명이 손실되기도 하고, 폭풍이 불어 나무가 뽑히고 곡식의 피해도 많았습니다. 또한 불상이 땀을 흘리는 기이한 일이 있었으며 금성金星이 낮에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 청정한 곳을 가려서 재앙 없애는 기도의 자리를 베푸나이다. - 『동문선』 권 130
낙산사에서 재앙을 소멸하는 법석을 베풀 때 변계량이 쓴 소문疏文이다. 비가 많이 내려 산사태가 나고 폭풍이 불어 곡식의 피해가 많았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땀 흘리는 불상의 이적이 재앙의 조짐이라 여기고 미리 부처님께 자비로움을 베풀어주기를 바라며 법석을 열었던 것이다.
총 37회에 걸쳐 나타나는 기록
그러면 『조선왕조실록』에 땀 흘리는 불상에 관한 기록이 있지 않을까? 지방에서 이적이 일어날 때마다 조정에 보고하는 것이 오랜 관례였으므로 이 또한 보고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상의 이적이 보고되었다면 『실록』에 몇 회나 기록되어 있을까? 필자는 『실록』에서 조선 전기 24회, 조선 후기 13회로 총 37회의 땀 흘리는 불상에 관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조선 전기 『실록』의 땀 흘리는 부처님에 관한 기록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태조: 2회
3년(1394) 11월 17일 / 4년(1395) 7월 27일 : “개성 흥국사 동불상이 땀을 흘렸다.”
정종: 2회
1년(1399) 10월 13일·19일·29일 : “개성 흥국사 금불상이 땀을 흘렸다.”
2년(1400) 1월 20일 : “개성 흥국사 금불상이 땀을 흘렸다. 이튿날 중추원사 최유경을 보내어 칠일 도량을 베풀어 기양祈禳하였다.”
태종: 15회
1년(1401) 5월 13일 : “개성 연복사 불상이 땀을 흘렸다.”
3년(1403) 12월 21일 : “개성 왕륜사 이소불상泥塑佛像과 흥국사의 금불상이 땀을 흘렸다.”
5년(1405) 2월 2일 : “남양주 봉선사 불상이 땀을 흘렸다.”
7년(1407) 6월 28일 : “문경 양산사 이소불상이 땀을 흘렸다.”
9년(1409) 7월 26일 / 11월 15일 : “충청도 목주의 자복사 석불이 땀을 흘렸다.”
9년(1409) 10월 29일 : “개성 연복사·흥국사·왕륜사의 불상이 땀을 흘렸다.”
12년(1412) 6월 1일 : “영흥 보현사와 국창사의 석불이 땀을 흘렸다.”
12년(1412) 6월 7일 : “예원 관음사 북굴北窟 불상이 땀을 흘렸다.”
12년(1412) 10월 23일 : “논산 관촉사 석불이 신시부터 해시까지 땀을 흘렸다.”
12년(1412) 11월 21일 / 13년(1413) 12월 24일 : “완산 임천사 석불이 땀을 흘렸다.”
14년(1414) 6월 15일 : “예원 장정사 불상이 땀을 흘렸다.”
15년(1415) 7월 28일 : “순안 신사薪寺의 나한상과 국창사의 석불과 함주 성사城寺의 철불이 땀을 흘렸다.”
15년(1415) 8월 24일 : “영흥 보현사 미륵불이 땀을 흘렸다.”
16년(1416) 2월 15일 : “충청도 목천현 자복사 석불이 땀을 흘렸다.”
16년(1416) 2월 29일 : “현풍 대견사 관음상이 땀을 흘렸다.”
세종: 1회
5년(1423) 11월 29일 : “현풍 비슬산 대견사 석石 장륙관음상이 땀을 흘렸다.”
『실록』 1403년 12월 21일의 기록을 통해, 앞서 이규보가 언급했던 왕륜사의 불상이 흙으로 빚은 이소불상이었음을 알 수 있겠다. 그리고 1401년 5월 13일 연복사 불상이 땀을 흘렸다고 기록한 날 『실록』에는 “사흘 동안 금성이 낮에 나타나 하늘에 비쳤다.” 하고, 또 “소격전에서 북두초례北斗醮禮를 베풀고 3일 동안 재계齋戒 하였다.”고 하였다. 연복사 불상이 땀을 흘리고 금성이 낮에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나자, 도교 의식을 담당하는 소격전에서 일월성신에게 제사 지내는 초례를 설행했던 것 같다.
이처럼 땀 흘리는 불상에 관한 보고가 계속 올라오자 1415년 7월 28일에 태종은 “사사寺社를 혁파할 때에는 땀이 나지 않더니 지금 어째서 땀이 나는가? 불상에서 땀이 나는 것은 특별한 현상이 아니니 괴이할 것이 없다.”며 불신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위의 기록에서 보듯이 조선 전기 태조 대로부터 세종대까지 땀 흘리는 불상에 관한 기록이 24회나 보이다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 땀 흘리는 불상이 없지 않았을 터인데 『실록』에 기록이 보이지 않다가, 200여 년이 지난 인조 대에 이르러 다시 나타난다. 조선 후기 땀 흘리는 불상에 관한 기록은 아래와 같이 13회 나타난다.
인조: 1회
13년(1635) 2월 23일 : “보은 속리사 장륙불상이 땀을 비 오듯 흘리자, 감사가 보고서를 올렸다.”
효종: 5회
10년(1659) 3월 28일 : “합천 해인사 불상과 석탑과 대장경판본이 3일 동안 땀을 흘렸다. 대구 팔공산의 모든 사찰 불상도 땀을 흘렸다. 관찰사가 계속해서 알렸다.”
10년(1659) 윤 3월 3일 : “임금이 이르기를, ‘재이災異의 발생이 어느 시대인들 없었겠는가마는 근일과 같은 경우는 있지 않았는데, 영남의 불상에서 땀이 난 변괴는 그중 가장 놀라운 것이었다. 하였다.”
10년(1659) 윤3월 20일 : “금성 쌍계사 불상이 땀을 흘렸다.”
10년(1659) 윤3월 27일 : “충홍도 서원현 불상이 땀을 흘렸다.”
10년(1659) 윤3월 28일 : “보은 속리사 불상이 땀을 흘렸다.”
현종: 1회
3년(1662) 1월 4일 : “담양 보국사 금불상 3구에서 땀이 흘렀다고 전라감사 이태연이 보고하였다.”
숙종: 5회
4년(1678) 12월 7일 : “영의정 허적이 호남의 불상이 땀을 흘린 변이를 아뢰었다.”
5년(1679) 3월 1일 : “대구 부인사 이소불상이 2월 9일부터 땀을 흘려 그 이튿날에야 비로소 그쳤다고 관찰사가 보고하였다.”
12년(1686) 2월 12일 : “경상도 관찰사 이규령과 전라도 관찰사 이세화가 불상이 땀을 흘리는 일로써 잇따라 보고하였다.”
21년(1695) 6월 30일 : “과천 만수암 석불이 땀을 흘렸다.”
44년(1718) 12월 7일 : “연풍 각연사 불상 3구가 동시에 땀을 흘렸는데 마치 비가 뿌리듯 하였으며 솜으로 닦으면 닦는 대로 땀이 나왔다고 관찰사가 아뢰었다.”
경종: 1회
2년(1722) 4월 12일 : “장연 천불사 금불상이 땀을 흘렸는데, 하루를 지나 땀이 그쳤고 그 자국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위의 『실록』 기록 가운데, 현종 3년에 담양 보국사 금불상이 땀을 흘렸다는 전라 감사의 보고에 대해 비변사에서 문제 제기를 하였다. 전라 감사 이태연은 불상이 땀을 흘리는 이적이 있었고 기근이 심하므로 미리 세금을 탕감해 주겠다고 하였으나 비변사에서는 세금을 탕감해 주기 전에 수조안收租案(세금 거둘 계획안)을 먼저 올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대사간 민정중(1628~1692)은 전라 감사를 벌 주고 불상들을 부수어 요망한 말을 그치게 하기를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불상의 이적에 대한 태도의 변화
신이 전라 감사 이태연이 보고한 장계를 보건대, 도내 여러 사찰의 불상들이 땀을 흘린 일이 변이에 관계된 일이라고 하였으니, 신은 놀랍고 분개함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대체로 바른 정도正道가 쇠퇴하고 이교異敎가 흥행하면서부터 생업에 태만한 백성들이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는 일이 날이 갈수록 더욱 성행합니다. 이렇게 더욱 성행하기 때문에 또 그것을 위하여 요망한 말을 지어내 퍼뜨리면서 못하는 짓이 없습니다. 이에 겨울과 봄 사이에 쇠나 흙으로 빚은 불상들에 안개와 이슬이 맺혀 젖은 것을 가지고 땀을 흘렸다고 억지로 말하면서 백성의 귀를 현혹시키고 민심을 동요케 했으니, 그 정상이 참으로 흉측하고 참혹합니다. - 『현종실록』 3년, 1662년 1월 20일.
민정중은 불상이 땀 흘리는 것은 자연 현상일 뿐이지 별다른 징조가 아니며 오히려 백성을 현혹시키는 요망한 말이므로 보고서를 올린 감사에게 벌을 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전에도 불상이 땀 흘리는 지방관의 보고가 있었지만 이처럼 보고서를 올린 지방관에게 벌을 주어야 한다고 상소를 올린 예는 없었다. 그만큼 불교에 대한 신하들의 종교적 태도가 바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숙종 12년 2월 12일의 기록에도 나타난다. 『실록』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지평 민진주가 아뢰기를, “경상도 관찰사 이규령·전라도 관찰사 이세화는 불상이 땀을 흘린다는 일로써 서로 잇따라 보고하였는데, 불상은 금이나 주석으로 제작한 것이므로 음습한 기운이 어리면 물방울이 맺히는 것은 이치로 보아 본디 그러한 것입니다. 어찌 혈기를 가진 동물과 같이 보아서 반드시 땀을 흘린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변이라 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보고서를 올리는가 하면, 승려들의 거짓말을 사실화하여 세속에서 놀라고 의혹하는 단서를 만들었으니 경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세히 살펴보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 『숙종실록』 12년, 1686년 2월 12일.
위 기록에서도 불상이 땀 흘리는 것은 자연 현상일 뿐이라고 하였다. 그만큼 불교의 이적에 대한 믿음이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유학자들의 불교 이적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면서 18세기 이후 땀 흘리는 불상에 관한 『실록』의 기록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전국 사찰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문헌에는 땀 흘리는 불상에 관한 기록이 곳곳에 남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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