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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원효 혜능 성철에게 묻고 듣다 ]
니까야·아함과 붓다의 육성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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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  2024 년 7 월 [통권 제135호]  /     /  작성일24-07-05 09:45  /   조회45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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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 설법을 비롯한 붓다의 육성 설법 내용들에 근접하게 하는 문헌은 단연 니까야(빨리어 5부)·아함(한역 4부) 경전이다. 그런데 니까야·아함 문헌을 통해 붓다와 대화하려면 반드시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니까야·아함이 전하는 붓다의 가르침’과 ‘니까야·아함 법설에 대한 불교 전통의 이해’는 구분되어야 한다. 특히 남방 상좌부 불교의 아비달마적 이해에 대해서는 그 타당성과 신뢰성에 대해 과감한 수준의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 

 

니까야·아함 경전들은 붓다의 육성 그대로인가?

 

기록과 전승에 따르면 붓다 입멸 직후 종합된 붓다의 법설은 암송暗誦으로 전해지다가 붓다 입멸 이후 500여 년이 지나 스리랑카에서 처음 문자에 옮겨졌다. 그 후 4-5세기 경(붓다 입멸 이후 약 1000년)에 현재의 니까야 대장경 체계로 정비되었고, 이 빨리어 니까야 대장경(경장經藏과 율장律藏)만을 붓다의 육성 친설親說이라 주장하면서 보존·탐구해 온 것이 남방 상좌부 전통이다.

 

사진 1. 카로슈티 문자. 불교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문헌이 이 문자로 쓰여졌다. 사진: 위키백과.

 

남방 상좌부 전통을 ‘붓다의 육성 불교’로 간주하는 사람들은 한국 및 동아시아불교의 대승과 선불교 전통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다. 대승불교와 선불교 전통을 ‘비非불교’ 내지 ‘변형된 힌두이즘’이라고까지 힐난한다. 그러나 열반을 ‘불변·절대의 궁극실재’로 간주하는 상좌부 유부의 시선이 단적으로 입증하듯, 남방 상좌부 전통의 불교관도 ‘불교의 옷을 입은 우파니샤드 사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붓다의 가르침은 남방과 북방전통 모두에서 ‘불변·절대의 궁극실재를 염원하는 사유’에 의해 왜곡·오염되어 온 측면이 있다. 남방 전통에서 형성된 니까야 주석서나 논서들 역시 특정 관점(위빠사나 해석학)에 경도되어 있고, 그 타당성을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할 대목이 즐비하다. 남방의 니까야 주석서 및 논서를 니까야 법설 이해의 유권해석처럼 의존하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남방 상좌부의 니까야 법설 이해에 기대어 초기불교를 탐구하는 학인들, 대승불교와 선불교를 통해 붓다의 길을 탐구하는 학인들은, 자신이 의지하는 불교 전통 안에 이런 비판이 유효한 대목이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직시하는 용기가 우선이다. 이 문제를 극복해야 남방과 북방의 전통 속에서 축적된 보배를 제대로 발굴할 수 있다. 특히 대승과 선불교의 안목을 제대로 살리면 니까야·아함 문헌을 통해 붓다와 대화하는 작업이 새로운 힘을 받을 수 있다. 그러자면 대승과 선불교에 대한 전통적 이해도 과감하게 재성찰해야 한다.

 

사진 2. 간다라어로 된 『법구경』 필사본. 자작나무 껍질에 쓴 것으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진: 위키피디아.

 

20세기 들어 새롭게 발견된 문헌들과 그에 대한 연구는 니까야·아함에 부여되던 문헌적 권위를 약화시켰다. 아프카니스탄의 핫다 및 파키스칸의 스와트에서는 간다라어를 카로슈티 문자로 필사한 법장부法藏部 소속 불교사본 두루마리들이 발견되었다.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으로 기원전 2세기까지 소급되는 이 문헌들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불교문헌으로서 초기불교 자료의 범위를 확대시켰다. 또한 티베트어로 번역되어 산재하던 초기불교 경전들이 종합·편집되어 이들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빨리 문헌들과 비교되어 출판되었다.

 

아울러 바미안(Bamiyan)에서는 3〜8세기에 걸쳐 필사된 불교 혼성 산스크리트로 적힌 사본들이 발견되었는데, 그 내용은 아함·율律·아비달마·대승경전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길키트(Gilgit)에서 발견된 것으로 추정되는 설일체유부의 『장아함경』 산스크리트 사본은 8세기 후반에 필사된 것으로, 비록 파편이지만 상당한 분량이 세계 각지에 산재해 있는 것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상응하는 한역漢譯 『장아함경』과 산스크리트 『장아함경』의 배치와 숫자가 다르다는 점은 각 지역 부파마다 독자적으로 편찬한 경전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주1)

 

사진 3. 바미안 계곡의 풍경과 고대 불교 유적. 바미얀 지역에서 불교 혼성 산스크리트로 적힌 사본들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문헌들의 발굴과 그에 대한 문헌학적 연구는 니까야 경전 문헌들이 누리던 종래의 지위와 권위를 약화시켰다. 빨리어 니까야 문헌이 누리던 ‘초기불교 탐구의 유일한 고층古層’이라는 지위는 문헌학에 의해 훼손되었다. 시기적으로도 빨리어 니까야 문헌의 형성 추정 시기와 버금가거나 더 오래된 다양한 문헌들이 등장하고, 현존 니까야 문헌 내부에서도 형성 시기의 층을 달리하는 문헌들이 병존하며, 동일 경전이라도 판본에 따라 내용상의 차이가 목격된다. 이런 사실은 ‘니까야 경전은 고스란히 붓다의 육성이다’라는 상좌부적 신념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니까야·아함에 대한 문헌학적 성과를 보는 세 가지 시선 

 

이러한 문헌학적 성과의 의미를 읽는 시선은 다양하다. 그 시선은 크게 세 유형으로 구분된다. ‘빨리어 니까야 경전들은 고스란히 붓다의 육성이다’라는 상좌부적 신념을 그대로 유지하는 시선(근본주의적 전통설), ‘니까야·아함 경전들이 고스란히 붓다의 육성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 속에서 붓다의 육성에 접근할 수 있다’라는 시선(수정설), ‘니까야·아함에서 붓다의 육성을 확인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붓다 법설의 원형은 사실상 확인할 수가 없다’라는 시선(강한 회의설)이 그것이다.

 

문헌학적 성과를 고려하면 근본주의적 전통설은 더 이상 설득력을 지니기 어렵다. 현존 니까야·아함은 전승자·전승집단들에 의한 편집·변형·추가·삭제 등이 반영된 결과로서 일자일구一字一句 고스란히 붓다의 육성 법문이나 대화가 아니다. 지금도 금방 마친 강의 내용을 수강생들에게 기억으로 복기해 적어보라고 하면 강의 내용과 상응하지 않거나 전혀 다른 내용을 허다하게 확인하게 된다. 화자話者와 청자聽者의 만남은 상응과 불상응, 겹침과 어긋남이 자아내는 교향곡이다.

 

그렇다고 해서 ‘니까야·아함은 붓다 입멸 직후 결집된 내용의 암송이 기록된 것이다’라는 전통설의 근거가 부정되어 무효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니까야·아함에는 다양한 전승자·전승집단들의 편집·변형·추가·삭제 등이 반영되어 있고, 더 오랜 기록물의 단편들도 있다’라는 것과, ‘니까야·아함은 붓다 입멸 직후 결집된 내용의 암송이 기록된 것이다’라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암송 및 기록 과정에서 편집·변형·추가·삭제 등이 있었고, 따라서 현존 니까야·아함의 내용이 고스란히 붓다의 육성 법문이나 대화가 아니라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헌학적 근거와 추정들이 ‘붓다 입멸 직후 결집되어 암송으로 전승된 내용을 근간으로 삼아 니까야·아함이 성립되었을 가능성’마저 부정하지는 못한다.

 

강한 회의설은 ‘니까야·아함 속에서 붓다 법설의 원형을 발굴할 수 있다’라는 입장을 ‘문헌학 성과를 외면하는 개인적 신념’으로 폄훼한다. 그들은 빨리어 대장경이나 상좌부 전통에 관한 문헌학·역사학·종교학적 연구결과를 근거로 삼아 ‘니까야·아함에서는 붓다의 육성을 확인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붓다 법설의 원형은 사실상 확인할 수가 없다’라는 회의설이 최신 학문적 성과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필자는 이러한 회의설에 동의하지 않는다. 문헌학적 성과들이 지닐 수 있는 의미를 너무 확장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비록 다양한 전승자·전승집단에 따른 내용상의 차이, 편집이나 추가·삭제·변형 등의 변수들을 충분히 감안할지라도, 또한 ‘니까야 대장경 내부의 고층古層·신층新層 문제’나 ‘현존 니까야 문헌보다 먼저 성립된 문헌들의 존재와 의미’를 십분 고려할지라도, 강한 회의설로까지 나아가는 것은 지나치다.

 

필자는 니까야·아함을 형성시킨 뿌리와 큰 줄기는 붓다 입멸 직후 결집되어 암송으로 전해지던 내용일 것으로 추정한다. ‘붓다 법설의 유일한 문헌적·교학적 적손嫡孫’임을 주장하는 상좌부의 입장을 수긍해서가 아니라 니까야·아함의 내용에 대한 필자 나름의 음미가 이러한 추정의 근거이다. 이런저런 문헌학적 논거에 의거하여 ‘니까야·아함에서 붓다의 육성은 확인할 수가 없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거의 의미와 맥락을 부당하게 확장하는 과잉 추정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니까야·아함과 붓다 법설의 탐구

 

대승경론과 니까야·아함이 내용상으로는 상통할 수 있어도 니까야·아함에서는 대승경론으로는 만날 수 없는 원형적 생생함을 다양한 형태와 내용으로 접하게 된다. 게다가 니까야·아함에는 상좌부 교학이나 대승경론·교학에서 미처 주목하지 못하고 있거나 아직 그 의미를 제대로 포착해 내지 못하고 있는 내용들도 풍부하다. 근본주의적 신념으로 니까야의 가치와 위상을 절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상좌부 전통이지만, 정작 그들이 보여주는 니까야 법설에 대한 이해에는 그 타당성이나 깊이에서 미심쩍은 대목이 널려 있다.

 

니까야·아함을 형성시킨 뿌리와 줄기는 결집 이후 암송으로 전해지던 붓다의 법설로 보인다. 전승자·전승집단에 의한 변형이나 편집 등으로 인한 혼란을 안고 있어 붓다의 육성을 고스란히 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추가 등의 변형에는 붓다의 법설과 충돌하는 내용까지 포함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붓다 법설의 원형에 접근하는 데 있어 니까야·아함은 내용상 그 어떤 문헌보다 요긴하고 풍부한 자료를 전한다. 그러나 니까야·아함의 내용에 대한 남방 상좌부 전통의 이해에는 부적절하거나 불충분한 내용들이 많다. 또 대승교학은 니까야·아함의 붓다 법설과 대화하는 데 매우 요긴한 통찰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 역시 붓다의 법설과 철학적으로 상응하지 않거나 불충분한 내용을 안고 있다.

 

니까야·아함이 전하는 붓다 법설의 탐구를 위해서는 니까야·아함 이외의 모든 경론과 남·북방의 모든 불교 해석학을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열린 태도로 활용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원효와 선종의 통찰이 니까야·아함 속의 붓다 법설과 대화하는 데 매우 유익하다. ‘과거와 접속하면서도 갇히지 않는 현재적 능동성’, ‘그 어떤 전제나 선행 이해에도 매이지 않는 열린 성찰’, ‘실존 실험적 탐구 정신’을 두루 갖출 때 붓다 법설의 문고리는 문득 손안에 잡혀 있을 것이다

 

<각주>

(주1) 이와 관련된 문헌학적 연구 현황은 『불교학연구』 66호(불교학연구회, 2021)의 ‘초기불교 다시 보기 – 학문적 반성과 과제’에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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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고려대에서 불교철학으로 석·박사 취득. 울산대 철학과에서 불교, 노자, 장자 강의. 주요 저서로는 『원효전서 번역』, 『대승기신론사상연구』, 『원효, 하나로 만나는 길을 열다』, 『돈점 진리담론』, 『원효의 화쟁철학』, 『원효의 통섭철학』, 『선禪 수행이란 무엇인가?-이해수행과 마음수행』 등이 있다.
twpark@ul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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